한국다양성연구소는 “모두를 위한 성교육”이라는 이름으로 포괄적 성교육이 무엇인지, 어떤 내용을 다루어야 하는지 그리고 일방적인 강연의 형태가 아닌 활동과 대화 중심의 경험학습으로 성교육을 만들고 진행하는 방법을 전하고 있다.

인권 활동가들과 성교육 활동가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콜로키움을 통해 포괄적 성교육의 개념, 가치, 내용을 전하기도 하고 직접 교육 영상을 만들어 유튜브 채널에 무료로 공개하고 있다. 일방향적인 전달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러 방법을 통해 질문과 피드백을 받고 그에 대한 답변을 콘텐츠로 만들어서 공유하고 있다. 지금도 이메일과 카카오톡 채널을 통해 질문을 보낼 수 있다.

남성 청소년들의 “뇌절임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근, 지난 몇 년간 급격하게 변한 10-20대 남성들의 성교육, 성평등교육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걱정하며 ‘이를 어떻게 하면 좋겠냐’는 문의를 하시는 분들이 많다. 나는 20대 남성을 하나로 묶어서 “이대남”이라고 부르며 20대 남성이 모두 동일할 것이라는 가정하는 태도는 절대 좋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최근 몇 년간 큰 변화가 생긴 것은 사실이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수업 중에 “선생님은 왜 여자 편만 드세요? 요즘은 남자들이 여자들보다 더 살기 힘들어 진 시대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당당히 이야기하는 학생이 있으면 그 학생 주변에 있는 친구들이 “신경쓰지 마세요. 얘 남초 사이트 해서 그래요”라고 말하며 그 학생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요즘은 그런 일이 있으면 학급 전체가 그 학생의 말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순식간에 만들어 진다.

얼마 전 연구소로 “남성 청소년들의 뇌절임 현상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라는 질문이 들어왔다. 질문을 보내주신 분께서 ‘뇌절임 현상’이라고 표현하신 현상은 여성을 포함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메시지가 머리에 가득 차 있어서 사실관계 파악을 어려워하며(혹은 시도조차 하지 않으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메시지들을 사실이라고 믿고 말하고 다니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는 이유는 예전에는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적이고 혐오적인 메시지를 접할 수 있는 곳이 남초 사이트 정도 밖에 없었다면 이제는 남초 사이트에서 글로 접한 이야기를 유튜브와 같은 영상 공유 플랫폼에서 수많은 스트리머들이 만든 영상으로 또 다시 접하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이준석류의 정치인이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자신의 지지기반으로 만들기 위해 차별과 혐오를 적극 활용하면서 부터였다. 정치인에 의해 공적인 영역으로 진출한 차별과 혐오는 언론에서 마치 ‘동등한 힘을 가진 두 그룹의 갈등’ 처럼 보도됐다. 남초 사이트 이용자들과 스트리머들은 자신들이 하는 이야기가 정치와 언론의 영역에서도 들리니 자신들의 말과 생각이 맞다고 확신하며(또는 누가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지 확인을 한 후) 의기양양하게 더 큰 목소리를 내고 있다.

확증편향은 보고싶은 것만 보는 현상으로 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등에 부합하는 정보만 수집하고 그 외의 정보는 무시하는 사고방식이다. 그런데 지금 남성 청소년들이 처해 있는 상황은, 애써 찾지 않아도 주변 친구들(또래그룹), 남초 사이트, 유튜브, 정치인, 언론 등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환경에서 사회적 소수자들에 대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하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상황이다. 가만히 있으면 차별주의자로 만들어진다. 과연 우리는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수 있을까?

▲ 사진=gettyimagesbank
▲ 사진=gettyimagesbank

쉽지는 않겠지만 충분히 가능하다

먼저 공교육에서 인권교육, 성평등교육, 시민교육, 노동교육, 정치교육을 통해서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을 때 사회문제를 구조적으로 볼 수 있는 명확한 관점을 가지고 사회구조 속에 존재하는 자기 자신,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바라볼 수 있다. 구조적인 관점을 기반으로 정확한 정보를 찾고 찾아낸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부적절한 메시지에 휘둘리지 않을 수 있다. 이것을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이라고 한다. 공교육이 우리가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갖출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교사들도 그런 역량을 가지고 성장해야 한다고 배운 시대의 사람들이 아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교사들도 그렇지 못하다. 게다가 교사는 ‘정치적 중립’을 유지해야 한다는 이유로 직접적인 정치 이슈는 물론이고 성평등, 인권 등에 대한 이야기 조차 편히 하지 못하기도 한다. 교사들이 사회구조에 대해 이야기 할 수 없게 만듦으로써 어린이 청소년들이 공교육을 통해서 사회구조적인 관점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한다.

이런 현실은 당장 고쳐야 한다. 뿐만 아니라 교대와 사대 그리고 교육 대학원에서 교사가 되기 위한 훈련을 받을 때 성평등, 인권, 다양성, 노동 등에 대해서 배울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래서 인권과 성평등에 기반한 사회구조적인 관점을 가진 교사가 되어 현장에 나올 수 있어야 한다. 이미 교사가 된 사람들에게는 교사 연수를 통해 제공돼야 한다. 교사를 평가하는 방식 또한 바뀌어야 한다. 교감 자격 연수라든지 교사들을 평가할 수 있는 시기마다 성평등, 인권, 노동, 정치 같은 이슈들에 대해서 대화를 진행할 수 있고 다양한 목소리를 모아 낼 수 있는 능력과 역량이 있는 사람인지 또 미디어를 읽어낼 수 있는 관점, 지식, 태도를 가지고 있는지,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길러 줄 수 있는지 등이 평가요소에 포함될 수 있다. 이런 역량들이 평가 요소에 들어간다면 교사들이 신경을 쓸 수 밖에 없다.

온전히 교사와 공교육에만 맡겨야 할까? 그렇지 않다. 양육자(부모 등)가 피양육자(자녀 등)에게도 할 수 있다. 어린이집, 유치원을 다니는 시기부터 그림책과 애니메이션을 함께 보며 대화할 수 있다. 어린이, 청소년 시기가 돼서는 드라마나 영화를 같이 보면서 질문하며 대화할 수 있다. ‘저 사람은 왜 저런 행동을 했을까?’, ‘무엇을 원했을까?’,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저런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을까?’, ‘저런 선택을 하게 만든 배경과 역사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등을 질문하며 함께 볼 수 있다. 미디어 제작자가 보여주는 대로만 보는게 아니라 능동적인 자세로 비판적인 관점에 의한 질문을 던지며 대화를 통해 서로의 생각을 나누면서 볼 수 있다. 일상적으로 보던 장면도 새롭게 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는 것이 미디어 리터러시 역량을 기르는 시작이다.

좋은 질문은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게 한다

작년에 인천의 한 마을의 작은도서관에서 포괄적 성교육을 진행했다. 4시간씩 4회기였는데 첫번째 두 번은 그 도서관을 이용하는 남성청소년들이 대상이었고 나머지 두 번은 그들의 양육자들이었다. 남성청소년들은 자위와 섹스에 대해서 배우고 콘돔 그리고 다양한 월경용품 사용법에 대해서도 배웠다. 또한 그동안 가장 궁금해 했던 ‘역차별’ 사례들에 대해서 심층적으로 이야기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정체성은 오로지 성별 밖에 없는 게 아니기 때문에 자신이 경험하는(경험할 수 있는) 억압, 차별, 착취, 폭력이 어떤 정체성에 기인하는지 찾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하다. 청소년들은 일방적인 강의가 아닌 직접 몸을 움직이며 게임, 활동, 상황극 등에 참여하며 자신이 문제라고 여기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찾고 해결방안을 강구해 본다. 이런 과정을 통해 군대문제는 국가에게, 노동문제(장시간 노동,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률 등)은 고용주 그리고 국가에게 해결하라고 요구해야 할 문제라는 점을 스스로 찾아낸다.

청소년들과의 시간을 마치고 3주차가 됐을 때 그들의 양육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업을 마친 후 자녀들에게 변화가 있었는지 여쭤봤다. 지난 몇 년 간 “엄마는 여자라서 몰라서 그래. 요새 남자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 알아? 엄마는 군대를 안갔다 와서 몰라” 등의 말로 엄마를 많이 괴롭히던 아들이었는데 수업을 마친 후 “엄마 미안해. 군대 문제를 여자에게 말한다고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됐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아들의 변화가 너무너무 기쁘고 감사하면서도, 이렇게 몇 시간이면 될 걸 학교에선 왜 안해주는지 너무 궁금하고 원망스러워졌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금새 변화를 경험한 사례도 있을 수 있지만, 사람의 생각을 한 번에 바꾼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내가 지금 이 사람의 생각을 당장 바꾸겠다’는 목표는 이루어지기 힘든 목표다. 늘 실패할 수 밖에 없는 목표를 세우면 지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사람이 단 한 번에 바뀌길 기대하기 보다는 여기저기서 사회구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좋은 질문’을 계속 들을 수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어린이 청소년들 주변에서 양육자가, 교사가, 친구들이, 다양한 활동가들(청소년 지도사, 사회복지사, 마을활동가, 성교육활동가, 인권활동가 등)이 그리고 미디어와 언론이 크고 작은 좋은 질문들을 계속 던져야 한다.

나는 사람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그 답을 정확히 볼 수 없도록 만드는 여러 농간들을 피해 근본적인 문제의 원인을 찾을 수 있게 하는 질문과 고민이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당연하다, 어쩔 수 없다, 원래 그렇다”고 믿어왔던 것들에 균열을 낼 수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그 역할을 하자.

▲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 김지학 한국다양성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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