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전현직 대통령 사저에 집회·시위가 늘었고, 이는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된다. 과격하고 부적절한 표현이 범람하자 일부 국회의원들이 이를 규제하는 내용의 집시법(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발의했다. ‘혐오표현’ ‘헤이트스피치’를 규제하겠다고 내건 해당 법안들이 과연 실제 집회에서 혐오표현을 규제할 수 있을지, 법안 내용과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나왔다. 

4일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 등이 주최한 집시법 관련 국회 토론회에서 박한희 변호사(희망을 만드는 법)는 박광온·윤영찬·한병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각각 대표발의한 집시법 개정안을 따져봤다. 

한 의원 안에선 ‘사람을 비방할 목적으로 개인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모욕을 주는 행위’ 등을 금지하도록 하고 있고, 박 의원 안은 ‘성별, 종교, 장애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이유로 반복적으로 특정한 대상과 집단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조장·유발하거나 폭력적 행위를 선동’하는 등의 행위를 금지한다. 윤 의원 안을 보면 ‘혐오표현’ 정의 조항을 신설하고 혐오표현을 통한 집회 주최를 금지한다. 

▲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 모습. 사진=JTBC 보도 갈무리
▲ 문재인 전 대통령 사저 앞 시위 모습. 사진=JTBC 보도 갈무리

혐오표현 이유로 집회 금지, 괜찮은가?

박 변호사는 혐오표현을 이유로 집회 전체를 금지하거나 해산하는 근거로 이어져선 안 된다고 비판했다. 근거로는 국제사회 규범과 해외 선진국 사례를 들었다. 

유엔(UN) 자유권위원회 집회의 자유에 관한 일반논평 제37호를 보면 혐오표현에 대한 대응은 개인 참가자들을 대상으로 이뤄져야 하고 집회 전체를 대상으로 해선 안 된다고 규정했다. 유럽안보협력기구 민주제도인권사무소(OSCE/ODIHR) 평화적 집회의 자유에 관한 지침에서도 집회 참가자들이 혐오표현을 사용할 때 그 자체로 그 행사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의 해산을 반드시 정당화하는 것은 아니며 공무원들은 연루된 특정 개인에 대해서만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규정했다.  

미국에서 1977년 유태계 주민이 다수 사는 스코키(Skokie) 마을에서 국가사회당이라는 네오나치 단체가 ‘백인 표현의 자유 보장’ 시위를 계획하자 법원이 나치마크 게양, 인종·종교적 증오선동 표현물 배포를 금지하고 마을에서도 혐오집회 금지 조례를 제정했다. 국가사회당은 위헌 소송을 제기했는데 주 대법원은 폭력반응이 야기된다는 이유로 사전억제는 허용되지 않아 법원의 금지명령을 위헌이라 판단했다. 

영국 고등법원은 2019년 영국 버밍햄 초중등학교에서 성소수자 관련 교육을 한다고 항의시위가 이어지자 영국 평등법에 근거해 집회금지 명령을 내렸다. 다만 이때도 집회의 내용을 제한하기 어렵다고 판시하며 제한구역, 시간, 방식 역시 합리적 수준이어야 한다는 한계를 제시했다. 

일본 가와사키시의 경우 혐한집회가 이어지자 혐오표현 처벌 조항을 담은 조례를 제정했고 차별언동을 금지했다. 이를 위반할 경우 1차로 권고, 2차에서 명령을 내리도록 했고 명령을 따르지 않는 이에 대해 3차로 성명을 공표하거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종합하면 혐오표현을 이유로 사전억제, 즉 집회를 허가제로 제한하거나 집회 전체를 해산할 수 없다는 게 국제규범이다. 혐오표현이 문제인 것은 명백하지만 그럼에도 집회의 자유를 최대한 보장한다는 원칙과 조화를 염두에 둔 조치들이다. 일본처럼 원칙을 세우더라도 3단계에 걸쳐 신중하게 규제를 적용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기준으로 현재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을 보면 집회 자체를 금지하는데 목적으로 두고 있다고 판단할 만큼 규제가 과해 집회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박 변호사는 “유럽 국가들은 역사적 맥락이 있어서 혐오표현을 형사처벌하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대응(규제)를 신중하게 하고 있다”며 “국가가 문제가 있는 모든 표현을 혐오표현이라고 자의적으로 해석할 경우 표현의 자유가 훼손되고 이는 집회에서도 마찬가지”라고 우려했다. 

▲ 4일 국회에서 열린 집시법 관련 토론회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 4일 국회에서 열린 집시법 관련 토론회 모습. 사진=장슬기 기자

부정확하게 정의한 혐오표현

일부 법안에선 혐오표현을 부정확하게 정의해 문제의 소지를 포함하고 있다는 지적도 했다. 윤 의원 안에서 혐오표현을 “개인 혹은 특정 집단을 대상으로 한 멸시, 모욕, 위협 등 부정적 편견에 기반한 선동적이고 적대적 표현행위”로 규정했다. 

박 변호사는 “혐오표현을 차별과 연관된 개념으로 정의하지 않고 자칫 일반적 욕설이나 모욕적 표현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통상 국제사회에서도 혐오를 특정 소수자 개인이나 단체에 대해 차별을 정당화하거나 강화하는 표현으로 정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 의원 안에서는 “성별, 종교, 장애 또는 정치적 의견 등”을 규정했는데 ‘정치적 의견’ 부분을 지적했다. 박 변호사는 “현재 법안을 발의한 배경 등을 비춰볼 때 정치적 의견을 이유로 한 혐오표현을 법안에 명시할 만큼 심각한지 의문”이라며 “자칫 정부정책이나 정치인에 대한 비판까지 자의적으로 처벌하는데 활용할 위험성이 있다”고 했다. 

진정 혐오표현과 차별을 줄이려면 차별금지법 제정에 동참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 변호사는 박 의원(과거 법제사법위원장)이 차별금지법 공청회 개최에 소극적이었던 점을 지적하며 “혐오표현의 근간이 되는 차별 구조를 없애 전반적으로 사회 인식을 변화해야지 집회에서만 갑자기 혐오표현을 규제하는 것은 국회가 할 일이 아니다”라며 “국회가 적극적으로 대처하려면 현재 발의된 차별금지법(평등법)을 제정하라”라고 주장했다. 

▲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좌측)와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사진=민중의소리
▲ 지난 4월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무기한 단식 농성에 돌입한 미류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좌측)와 이종걸 차별금지법제정연대 공동대표. 사진=민중의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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