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경제지가 김영란법(청탁금지법) 비판 보도를 반복해서 내고 있다. 코로나19, 경기침체, 국내산업 보호 등 이유는 계속 달라지지만 결론은 같다. 청탁금지법이 옳지 않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에는 이해당사자인 언론의 ‘의도’를 의심하는 댓글이 잇따른다. 당사자인 언론이 주기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언론윤리에 어긋난다는 의견과 법 취지는 무시하고 경제 논리만 반복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청탁금지법은 2016년 시행됐다. 공직자와 언론인, 학교법인 직원이 3만원 이상 식사와 5만 원 이상 선물·경조사비를 받을 수 없게 한다. 선물 중 농축수산물에 대해서는 2018년 10만 원으로, 올 1월부터 설과 명절 기간에는 20만 원으로 기준이 변경됐다.

▲ 2017년 1월 6일자 매일경제 사설
▲ 2017년 1월 6일자 매일경제 사설

매일경제는 2017년부터 김영란법 비판 보도를 내고 있다. 설, 추석 등 명절을 앞두고, 같은 내용이 반복된다. 도입 초기엔 ‘기준 상향’을 주장했다가, 상향이 이뤄진 지금은 ‘폐지’를 촉구하는 식이다. 이유도 국산 제품 보호, 내수 위축, 지나치게 많은 대상자, 코로나19 등 다양하게 꼽혔다.

처음에는 법 개정을 요구했다. 2017년 1월 사설 ‘김영란법 시행후 첫 명절, 수입산 선물 우려가 현실로’에서 매일경제는 “우려했던 대로 선물한도 5만원 규정 때문에 원가가 싼 수입산 제품이 국산 제품을 대체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며 “기왕 손볼 것이라면 꼼꼼한 실태조사를 통해 현실과 괴리된 조항들을 추려낸 후 한번에 고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전했다.

2017년 9월 사설에선 “여론조사기관인 리얼미터가 김영란법 1년을 맞아 성인 남녀 506명을 대상으로 조사해 보니 절반 이상이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역시 농축산물을 예외로 두거나 식사와 선물 상한액을 높여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이처럼 많은 국민이 원하고 있고 정부도 필요성에 공감하고 있는 만큼 김영란법 개정을 미룰 이유는 없다”고 말했다.

2018년 8월엔 ‘자영업자의 절규 “김영란법 완화해 내수 살려야”’ 기사를 보도했고, 2020년 8월에는 ‘김영란법 완화 검토할 때 됐다’는 사설을 냈다. 법의 ‘가액 기준 상향’을 2017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법 개정 이후엔 ‘폐지 주장’

▲ 2022년 1월 7일자 매일경제 사설
▲ 2022년 1월 7일자 매일경제 사설

올해부터는 본격적으로 ‘폐지’ 주장을 하고 있다. 올해 1월 사설 “명절 때마다 후퇴하는 김영란법 폐지가 답이다”에서 매일경제는 “법 시행 초반에는 시범 케이스로 걸릴까 봐 공직자들이 조심했지만 최근에는 누군가 신고하지 않는다면 걸릴 일이 없어 무용론까지 나오고 있다”며 “김영란법은 2016년 9월28일 시행한 지 5년이 지난 만큼 법의 실효성을 다시 검증할 때다. 현실에서 사문화되고 있는 법은 국민의 준법의식을 무너뜨리고, 국민을 잠재적으로 범죄자로 만들게 된다”고 말했다.

올해 7월에는 청탁금지법 비판 기사가 하루(24일) 내 3개 연속 보도됐다. 새로운 이유 ‘경기침체’와 ‘물가상승’이 등장했다. 다음은 7월24일 매일경제 기사 제목이다. 

① 물가폭등에도 6년째 그대로… 범죄자로 내모는 김영란법
② ‘3만 원 식사’ 상향 개정안 표류 중… 외식업계 “망하고 통과되나”
③ 설·추석에만 올리는 선물가액… 농가 “여름과일 팔지말란 소리”

이날 기사들에선 ‘현재의 가액 기준을 고집하면 잠재적 범죄자가 양산된다’는 메시지가 반복됐다. 물가 대란이 펼쳐지고 있는 현실과 맞지 않다는 것이다. 이데일리 역시 지난 26일 ‘19년전 기준 김영란법, 경제 현실 맞게 손질할 때 됐다’는 사설을 냈다.

언론윤리 위반 지적… ‘경제 논리’ 대신 법 취지 고려해야

문제는 일부 경제지만이 청탁금지법 비판 보도를 ‘반복’한다는 점이다. 타 언론사들은 ‘김영란법 시행 당시’, ‘김영란법 시행 후 1년’, ‘김영란법 개정안 발표’ 등 특정 시기에만 청탁금지법을 다뤘다. 전문가들은 청탁금지법처럼 언론의 이해관계가 얽힌 보도는, 더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무분별한 반복 보도는 언론윤리에 어긋난다는 평가다.

신미희 민주언론시민연합 사무처장은 “언론윤리헌장 8조에 따르면, 언론은 이해상충을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청탁금지법에 대한 목소리를 내는 것 자체가 이해상충 행위”라며 “더 조심하고 경계해야 하는데, 비슷한 맥락의 주장을 명절마다 되풀이하는 것 자체가 경계하지 않는 행위다. 해당 매체가 관련된 이익을 위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 언론윤리헌장 8조
▲ 언론윤리헌장 8조

청탁금지법을 거론하면서 ‘경제성’만 다루는 보도에 대한 문제제기도 이어졌다. 공직 사회의 ‘투명성’ 등 법 취지에 대한 보도는 거의 하지 않고, 물가 상승, 농축수산업, 외식산업 등 ‘경제 논리’만 반복했다는 것이다. 

신 처장은 “법 제정 당시 무분별한 향응, 접대를 막는 ‘투명한 사회’라는 취지에 사회가 합의를 이뤄 만들어진 것인데, 이를 무시하고 법 자체를 호도하는 식의 보도는 옳지 않다”며 “경제 논리대로 예외조항을 계속 두다보면, 법 취지 자체가 무색해지는 것인데, 그런 것에는 주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소상공인, 유통업계, 농축수산물 등이 청탁금지법 때문에 어렵다는 식의 보도는 왜곡으로까지 볼 수 있다”고 전했다.

대중들의 반응도 좋지 않았다. 이해당사자인 언론의 일방적 보도가 ‘의심’이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난해 한국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김영란법 형사처벌’ 3명 중 2명은 언론·교육계 인사였다. 기소된 사람 중 민간인을 제외한 69명 중 언론인이 24명, 교육종사자가 19명이었다. 즉, 언론인이 가장 많았다.

실제로 청탁금지법 비판 기사들에는 부정적 반응이 대다수였다. 24일 ‘물가폭등에도 6년째 그대로… 범죄자로 내모는 김영란법’ 기사에는 ‘물가폭등이랑 무슨 상관이야? 안받으면 되는거 아닌가’라는 글이 가장 많은 공감을 받았다. 그 뒤로는 ‘그냥 받지를 마 식사자리 있으면 걍 국밥 한 그릇 먹거나 좀 비싼 밥 먹어야 하면 더치하면 되잖아’ 등의 글들이 잇따랐다.

김춘식 한국외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보도 자체는 할 수 있지만 근거가 얼마나 설득적인지가 중요하다. 근거가 충분하지 못하다면, 언론 신뢰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 대중의 의심을 살 수밖에 없다”며 “더군다나, 수용자보단 기업의 이익을 위한다는 비판이 있던 경제지가 자신과의 연관성을 빠뜨린 채 같은 보도를 반복하는 것이 국민들의 동의를 얻기는 더 힘들 것”이라고 전했다.

신 처장은 “진정으로 법의 현실화를 말하고 싶었으면 ‘투명한 공적 사회’라는 법의 취지를 흔들지 말고 합리적 개선책을 토론하는 공론화를 열어야지, 한쪽의 주장을 하루에도 3건씩 보도하고, ‘폐지가 답이다’는 식의 사설을 내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하다”며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인지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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