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이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을 선정적으로 보도해 논란이 된 가운데 반성을 담은 기사가 독자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지난 28일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는 ‘반성하며 다시 쓴, ‘인하대 성폭력·사망 사건’ 기사’ 제목의 기사를 썼다. ‘성폭력 범죄보도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쓴 기사로 가이드라인을 지키는 내용으로 기사를 구성하고, 가이드라인 내용을 전하는 구성이다.

기사는 “인하대학교 1학년 남학생 가해자 김모씨(20)가 교내에서 같은 학교 학생 A씨를 성폭행한 뒤 숨지게 한 혐의로 15일 경찰에 체포됐다”로 시작한다. 이와 함께 ‘피해자 보호를 최우선으로 한다’ ‘피해자 등의 신원이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가이드라인 내용을 전한다.

▲ 7월18일 인하대에 마련된 피해자 추모 공간. ⓒ연합뉴스
▲ 7월18일 인하대에 마련된 피해자 추모 공간. ⓒ연합뉴스

기사는 ‘인하대 교내 성폭행·사망 사건’으로 규정하고 ‘불법 촬영’을 한 사실을 명시했다. 여기에는 사건에 피해자 이름을 붙여선 안 되고, 가해행위의 심각성을 희석시키는 듯한 내용을 담아선 안 된다는 내용의 가이드라인을 부연했다.

이어 기사는 구조적 문제를 비중 있게 담았다. 기사는 “교육부와 인하대는 순찰 인력 증원, CCTV 추가 설치, 야간 시간에 승인받은 학생만 건물 출입 등 재발 방지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이는 근본적인 대책이 아니란 비판이 나왔다”고 지적했다.

기사는 “한국여성민우회 성폭력상담소가 고질적 문제로 지적한 건, 대학공동체 내 만연한 ‘강간문화’”라고 설명하며 “실제로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의 연구 결과에선  20대 남성의 성인지 감수성이 특히 낮게 나왔다”는 내용과 관련 통계를 덧붙였다.

“성희롱·성폭력을 근절하기 위하여 피해를 유발하는 조직문화 및 사회구조적인 문제, 피해자 보호 및 구제대책, 예방대책 등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보도한다”는 가이드라인 내용을 반영한 대목이다.

기사는 독자들의 호평을 받았다. 31일 오후 5시 기준 네이버에 송고된 해당 기사에 붙은 감정표현은 1만1149건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공감백배(8843건), 분석탁월(1350건), 후속강추(815건), 쏠쏠정보(124건), 흥미진진(17건)순이다. “기자님 응원합니다. 이 분같은 기자님이 많으셨음 합니다. 기레기들이 넘 많아서 기자는 아무나 하는지 알았는데 오늘 의미있는 글 잘봤습니다”라는 댓글에 ‘좋아요’가 4482건 붙었다.

▲ 머니투데이 기사 갈무리
▲ 머니투데이 기사 갈무리

이 기사를 쓴 남형도 머니투데이 기자는 31일 통화에서 “관련 기사를 쓰지는 않았지만 보도가 나오면서 걱정이 됐다. 섬세한 고민 없이 쓴 기사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유족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사건 자체로도 힘든 상황인데 무수한 기사들이 피해 상황을 묘사해 마음이 좋지 않았다. 독자들이 더 높은 시선에서, 감수성이 나은 측면에서 요구하는 것을 기자들이 따라가지 못한다고 느꼈다”고 했다.

남형도 기자는 “조회수를 고려하는 구조적 문제가 있더라도 이런 표현을 쓰지 않을 수 있다는 고민이 들었는데, 한겨레에서 좋은 선례를 보여주셨다”며 “여러 보도준칙이나 실천요강이 있는 건 알고 있었는데 저도 자세히 들여다보지는 않았다. 제대로 읽어보고 이에 따라 기사를 써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제가 다른 기자들보다 나아서 그런 게 아니라 저 역시도 과거 그런 기사를 썼을 것이다. 반성의 의미로 썼다”며 “수습기자 때 보도준칙들을 제대로 배우지 못했지만, 연차가 쌓이더라도 늦었다고 생각하지 말고 하나하나 섬세하게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앞서 한겨레는 관련 기사의 제목을 수정한 사실을 자발적으로 밝히고 반성해 호응을 얻었다. 정은주 한겨레 콘텐츠총괄은 지난 19일 지면에 ‘선정적·성차별적 제목, 고백합니다’ 칼럼을 썼다. 15일 한겨레의 관련 기사 첫 제목은 ‘대학 내 알몸 상태로 발견된 여대생 숨져…경찰 수사’였는데, 문제의식을 느낀 디지털뉴스 편집자가 한겨레 젠더 보도 가이드라인에 근거해 ‘인하대 교내서 피흘린 채 발견된 학생 숨져…경찰 수사’로 수정했다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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