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통신위원회가 29일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자료를 통해 방송 주요과제로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과 규제 완화를 제시했다. 한상혁 위원장 체제에서 매년 업무과제에 강조해온 ‘허위조작정보 대응’ ‘팩트체크’ 사업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온라인 플랫폼 규제는 새 정부 정책 방향에 맞춰 자율규제로 선회했다.

지난 1월 방통위가 2022년 업무계획을 발표해 문재인 대통령에 보고한 바 있지만, 수장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정권이 교체돼 업무 기조에 변화가 생길지 관심이 모아졌다. 방통위는 1월 업무계획 내용 가운데서 비교적 이견이 적은 분야를 추려 ‘중점 과제’로 국회에 보고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인수위에도 대동소이한 보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방통위는 지난 29일 국회에 제출한 업무보고 중점 과제로 △미디어환경 변화에 따른 통합법제 마련(시청각미디어서비스법) △미디어 공공성 및 산업활력 제고(지배구조 개선 및 규제완화) △ 온라인플랫폼 자율규제 △앱 마켓 이용자 보호 △방송광고 규제 네거티브 전환 등 다섯 가지를 제시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관련 과제로 올해 1월 발표한 업무보고 내용을 유지하면서 관련 정책을 부각했다. 방통위는 ‘공영방송 공적책임 강화’ 과제로 “공영방송의 공정성과 경영의 투명성을 높여 국민이 신뢰할 수 있도록 공영방송 역할 재정립”하겠다며 “이사‧사장 선임 절차 개선을 위한 방송관계법 개정을 추진하는 등 관련 제도를 지속적으로 개선”을 명시했다. 방통위는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지배구조 관련 방송관계법안 24건 등에 대한 입법 논의를 지원하겠다는 계획이다.

방통위는 수신료 제도 개선과 협약제도 도입도 언급했다. “수신료 산정·사용의 투명성‧객관성 확보를 위해 수신료 회계분리제도 도입, 수신료위원회 설치 근거 마련”과 “민영방송과 차별화되는 공영방송의 책무를 규정하고 그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공영방송 협약제도 도입 추진” 등이다. 

▲ EBS, KBS, MBC 사옥의 로고. 디자인=안혜나 기자
▲ EBS, KBS, MBC 사옥의 로고. 디자인=안혜나 기자

앞서 윤석열 정부 인수위원회는 △공영방송 재허가 제도 폐지와 협약제도 도입 △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수신료위원회 설치 △공영방송 경영평가 제도 개선 △방송 심의체계 개편을 언급했다. 

기존 방통위 업무계획과 달리 인수위가 새롭게 제시한 ‘경영평가 제도’와 ‘심의체계 개편’에 관한 내용은 방통위 업무보고에서 찾아볼 수 없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KBS 수신료 자율납부’ 주장이 나오고 있다는 점에 비춰보면 수신료 정책 역시 여당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

한상혁 방통위 체제에서 주요 과제로 부각한 허위조작정보 대응 및 팩트체크 관련 사업은 국회 업무보고 자료에는 빠졌다. 

앞서 1월 방통위가 발표한 2022년 업무계획에는 ‘방송통신 이용자 권익 증진’ 정책으로 △팩트체크넷 활성화를 위해 팩트체커에 대한 활동 지원 확대, 시의성 있는 검증 대상 발굴 강화 △ 팩트체커 양성을 위한 온라인 팩트체크 전문교육 시스템 마련 △ 지자체 공공기관 등 수요기관 맞춤형 팩트체크 시민교육 추진 △팩트체크 동향 조사 분석 및 홍보 등을 통한 팩트체크 활성화 기반 구축 등을 언급했다.

▲ 2022년 1월 방통위 업무계획 자료 요약본
▲ 2022년 1월 방통위 업무계획 자료 요약본

팩트체크 활성화 정책은 1월에 만든 업무계획 요약 자료에도 언급될 정도의 주요 정책이었지만 이번 업무보고엔 빠졌다. 이미 예산이 배정된 만큼 관련 사업은 추진 중인데 여당을 의식했을 가능성이 있다. 국민의힘이 팩트체크 사업이 편향된 팩트체크를 양산한다고 주장하며 지속적으로 비판해왔고, 최근에는 권성동 국민의힘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도 이 사업을 공개 비판한 상황이다.

온라인 플랫폼 정책은 특별법 제정을 통한 ‘규제’ 기조에서 ‘자율규제’로 선회했다. 온라인 플랫폼은 오픈마켓, 배달, 숙소예약, 대리운전, 택시 등 플랫폼을 말한다.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방통위
▲ 방송통신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사진=방통위

당초 1월 업무계획 자료에 방통위는 ‘플랫폼 이용자보호법 마련’ 정책을 제시하고 “플랫폼 산업의 공정경쟁 및 이용자 보호를 위해 플랫폼사·이용사업자·이용자 다면관계를 고려한 종합적 규율체계 마련”을 하겠다고 밝혔다. 또한 “플랫폼 이용사업자에게 불합리하게 차별적인 조건을 부과하거나 손해를 전가하는 행위 등 불공정 행위 금지”를 언급하며 규제를 시사했다.

그러나 이번 국회 업무보고 자료에는 ‘자율규제’를 전면에 제시했다. 방통위는 ‘온라인플랫폼 관계부처가 참여하는 범부처 협의체 구성 운영’을 언급하고 “부처별로 분담하고 있는 플랫폼정책을 통합 논의하고 플랫폼사업자의 자율규제에 대한 제도적 재정적 지원방안 논의”를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민간 자율규제기구도 구성하겠다는 방침이다. 방통위는 “기존에 방통위, 공정위 등이 추진하던 온라인플랫폼 관련 특별법 제정은 당분간 유보하고, 향후 시장상황을 고려하여 재추진 검토”라고 설명했다.

방통위의 기존 정책이 윤석열 정부 정책 과제와 충돌하게 되면서 조정한 것으로 보인다. 윤석열 정부는 범부처 플랫폼 정책협의회를 열고 민간 자율기구 중심의 온라인 플랫폼 정책 방향을 발표했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자율기구 법제도 전담팀을 마련하는 등 자율규제 정책 논의가 시작된 상황이다.

방통위는 방송규제 완화와 방송광고 ‘네거티브 규제’ 전환도 비중 있게 다뤘다. 방송과 관련한 규제를 줄이고, 특히 광고의 경우 예외적으로 금지하지 않은 광고는 허용하는 방식으로 규제 체계를 전환할 예정이다. 즉, 법이 금지하지 않은 광고를 전격적으로 허용해 광고가 늘어나게 된다. 방통위는 시청자 영향평가를 도입해 과도한 광고에 대응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규제 완화가 본격화되면 시청권 침해 논란이 제기될 가능성이 높다.

1월 업무계획 자료에는 네거티브 규제완화와 함께 ‘협찬 규제’를 강화하는 대목도 있다. 건강 프로그램 등에서 사실상 광고처럼 등장하는 지나친 협찬 문제에 개선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번 업무보고 자료에는 ‘협찬 규제’ 관련 언급은 없다. 오히려 “지역·중소방송사의 자율성 확대 및 경쟁력 제고를 위해 방송광고·협찬고지 규제를 예외적으로 완화할 수 있는 근거 마련”을 통해 추가적인 규제 완화를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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