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면 (계획)이 있을 때는 지면이 하나의 나침반이 됐다. 1면 뭐, 2면은 뭐, 오늘의 포인트는 뭐다는 식으로. 반면 이 시스템(디지털 퍼스트 전환)은 그런 것이 없다. 국장단의 역할은 사라진 나침반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온라인 중심이라고 해서 그날의 강점과 약점, 셀링 포인트가 없지는 않을 것이다. 우리가 집중할 것은 뭐고, 어떤 것은 좀 더 콘텐츠를 양적, 질적으로 늘려야 할지 이런 가이드를 만들어주는 것이 편집국장 역할이 아닐까 싶다.”

“예전 지면 만들 때처럼 아침 점심 저녁 회의에서 정리하는 것만으론 쉽지 않을 것 같다. 틈틈이 (국장단과 데스크 간) 작은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벼운 스탠드 미팅이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지난 5일자 경향노보.
▲지난 5일자 경향노보.

 

지난달 23일 임기를 시작한 김광호 새 경향신문 편집국장이 같은 달 20일 편집국장 지명자 토론회에서 ‘(디지털 퍼스트) 과도기적 상황에서 편집국장 역할이 이전하고 달라져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라는 질문에 이같이 답했다. 지난해 7월 경향신문은 신문과 디지털콘텐츠 제작을 분리해 ‘디지털 퍼스트 전환’을 시작했다.

지난 5일 전국언론노동조합 경향신문지부(지부장 김인)가 발행한 ‘경향노보’를 보면 ‘지난 1년간 디지털 퍼스트 전환 작업에 대한 총괄적인 장·단점, 보완할 점 등 후보자의 평가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는 구성원들의 질문이 나왔다.

이에 김광호 당시 지명자는 “총론으로 보면 편집국하고 신문국을 분리 개편한 체제 자체가 아주 만족스럽지는 못하더라도 안착했다는 점이 성과가 아닐까 싶다. (1년간 국장을 맡았던) 신문국에서 콘텐츠들의 변화를 보았다.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형태의 실험들이 꽤 많이 있었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김광호 지명자는 “초기에는 그런 상황이 있었는데 일정 시점이 지나면서 그런 것이 조금 후퇴했다는 생각은 든다. 현안과 시점에 매이지 않는 기획들은 개편 이후 많이 증가했지만 현안에 대한 콘텐츠들의 폭과 깊이가 부족해지는 느낌이 있다. 뒤로 갈수록 초기에 만들어졌던 양적 측면에서의 콘텐츠의 다양화가 확실히 좀 떨어졌다. 조금 더 지면에 가깝게 콘텐츠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다”고 평가했다.

‘지속 가능한 모델’로 보냐는 질문에 김광호 지명자는 “핵심은 계속 피드백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도 편집국에서 회의를 해서 아침에 강약을 정하고 그게 아침 부장회의에서 이뤄져서 전달이 되는데 그게 조금 더 편안하게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해결 방법 중 하나는 아까 말했던 잦은 만남, 귀찮을 정도의 잦은 만남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온전한 디지털 전환을 위해선 종이신문 중심의 현 인력자원을 재배치해야 한다. 어떤 부분에서 재배치가 필요한지, 이 과정에서 내부 반발이 나오면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지’에 대해 김 지명자는 “지면이 여전히 중요한 하나의 플랫폼으로 존재하는 상황에서 굉장히 어려운 질문이다. 인력의 크기나 또 인력의 구조 전환, 개개인의 업무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라서 짧은 시간에 결론을 내는 게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그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데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 지명자는 “끊임없이 실험을 하고 시도하는 방안을 늘려가야 하고 필요한 부분은 경영진을 설득할 생각도 있다. (내부 반발과 관련해선) 사람이 연관된 부분인데 결단도 중요하지만 구성원의 공감과 합의가 굉장히 중요하다. 그 외 특별한 방법이 더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진보 언론으로서 정체성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보냐’는 질문에 김 지명자는 “우리 사회에서 기득권층보다 조금 덜 조명받는 영역이 있는 부분을 발굴하는 게 진보라면 저는 여전히 (진보적 정체성이) 유용하다고 생각한다”며 “윤석열 정부에 대한 입장도 그 기반에서 볼 필요가 있다. 진보의 입장에서 우리가 비판할 수 있는 부분이 명료하기 때문에 지적이 쉬울 수 있다. 반대로 윤석열 정부를 지지할 수 있는 부분도 있을 수가 있다. 진영보다는 가치를 더 중시하며 사안에 따라 (입장이) 다를 수 있다”고 말했다.

▲서울 중구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중구에 위치한 경향신문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새 편집국장에게 조형국 경향신문 조합원은 “모두가 안다. 문명이 리셋되지 않는 한, 2012년 이후 거대한 악어 입을 만들어온 모바일과 종이신문의 이용률 추이가 바뀔 리 없다는 사실을, 78% 대 8.9%. 말은 78%를 좇으면서 몸은 8.9%에 묶여 있으니 기자들은 ‘내 글이 누군가에게 읽히기는 하나’는 만성 불안에 시달린다”고 토로했다.

조형국 조합원은 이어 “경향의 독자는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우리의 전략은 타겟팅인지 확장인지… 좋은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풀어야 할 질문은 여전히 차고 넘치는데, 디지털 개편 이후에도 답을 못 찾는 건 어쩌면 당연한 결론 같다”며 “78%와 가까워지려는 시도는 늘어야 한다. 그들이 누구인지 들여다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김동주 경향신문 조합원도 “디지털 퍼스트를 외친 지 1년이 지났다. 신문국과 편집국의 분리, 인사 단행, 새 CMS 도입 등 업무 환경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하지만 토론회에서도 지적이 나왔듯 지면 중심으로 후퇴했다. 콘텐츠의 다양성이 떨어졌다. 마감 시간 기준으로 기사가 몰린다. 지면이 없는 토요일엔 기사 가뭄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동주 조합원은 “‘디지털 퍼스트’란 핵심 전략이 성공하려면 조직 전체가 총력을 다해야 한다. 경향신문도 큰 뼈대를 바꿨다. 분리 체계와 CMS를 도입했지만, 이것만으론 부족하다. 출고 기자는 온라인용과 지면용 기사를 두 번 작성해야 해서 콘텐츠에 선택과 집중하기 어렵다. 절대적인 취재 시간 부족에 스트레이트가 사라졌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온라인 뉴스 유통 최전선인 디지털 뉴스편집팀은 1년 중 7개월간 인력 부족 상태였다”고 토로했다.

김 조합원은 이어 “1년 전 우리는 변화를 택했다. 앞으로도 도전할 것이고 격랑을 헤쳐 나갈 것이다. 디지털에서의 영향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경향신문의 미래는 밝지 않다”며 “소통으로 편집국에 ‘디지털 퍼스트’란 동기를 불어 넣어주길 바란다. ‘나침반’ 역할을 해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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