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속과 실명을 공개하며 기자를 분홍색의 우스꽝스러운 표정으로 캐릭터로 그린 ‘기자 캐리커처’는 풍자일까, 증오의 표현일까. 한준호·김용민·민형배 의원실은 지난 5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를 열었다. 토론회에서는 해당 캐리커처가 예술을 빙자한 불법이자 인격모독이라는 의견과 표현의 자유 영역이며 책임성을 간과한 언론은 비난을 감수해야한다는 의견이 맞섰다. 

서울민족예술단체총연합(서울민예총)은 지난달 1일부터 15일까지 광주광역시 메이홀에서 전시회 ‘굿, 바이 전 시즌2’를 개최했다. 논란을 부른 ‘기자 캐리커처’는 이곳에 전시한 서울민예총 시각예술위원회 박찬우 작가 작품으로 전·현직 언론인 및 방송·정치인 110명을 우스꽝스럽게 캐릭터화하고 얼굴에 분홍색을 덧칠한 그림이다. 해당 그림 밑에는 기자의 소속과 실명도 공개되어 있다. 

▲ 서울민예총이 6월1일부터 15일까지 광주광역시 메이홀에서 개최하는 전시회 ‘굿바이 시즌2’.
▲ 서울민예총이 6월1일부터 15일까지 광주광역시 메이홀에서 개최하는 전시회 ‘굿바이 시즌2’.

김봉철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아주경제 기자)는 “민예총이 ‘작품’이라고 부른 이 게시물은 타인의 성명, 소속 등을 허락없이 사용하여 인격권을 침해한 명예훼손과 모욕죄에 해당한다. 이번 토론회 제목은 ‘풍자냐 증오냐’가 아니라 ‘불법이냐 범죄냐’라고 붙여져야 한다. 부제목은 ‘불신시대 저널리즘 회복 방안’이 아니라 ‘언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과 적법성 기준 마련’이라고 정해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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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이어 “예술은 편향적이어도 민예총은 편향적이어선 안된다. 개인의 명예가 훼손됐고 악플과 조롱으로 본인과 가족들이 고통을 받고 있다”며 “지난 4월 기자 트라우마 조사 결과, 10명 중 8명은 근무 중 심리적 트라우마를 느낀 적 있다고 답했다. 특정 기사에 대한 공격, 댓글 테러, 얼굴 공개, 가족에 대한 욕설 등으로 기자들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 언론권력이라고 하지만 우리도 조직원이고, 개인이다. 극성 지지층에 대한 비판적 논조의 기자들을 향한 집단적 공격에 더이상 묵과할 수 없다”고 했다.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김봉철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김봉철 한국기자협회 부회장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아울러 “예술을 빙자해 인격모독적 공격을 하면서 풍자라고 하는 것은 언론에 대한 정당한 비판이라고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또 “특정 진영이나 이념에 반하거나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무조건 가짜뉴스, 왜곡보도라고 폄하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져야 한다. 팩트도 부정확한 언론 혐오를 예술과 표현의 자유라고 감싸고 도는 것을 진보라고 포장하면 안된다”고 했다. 

김운성 서울민예총 시각예술위원장은 해당 캐리커처에 대해 “비판, 비난, 조롱에 대한 판단은 예술가들은 아주 간단하게 대중들이 하는 것으로 본다. 대중의 관심을 못받으면 그 예술은 사라지게 된다. 또, 예술가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자발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며 “예술이 과연 공적 영역에 있는 것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김운성 서울민예총 시각예술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김운성 서울민예총 시각예술위원장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아울러 “예술가도 수용자이자 대중이며 언론 소비자다. 현재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많이 쌓여왔다”며 “거대 언론 권력의 모습이 기자님들 손끝에서 생산되는 기사이기에 일차적으로 기자님들 뉴스에 분노하고 슬퍼할 수밖에 없다. 뉴스가 팩트와 진실에 다가갔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만약 책임성을 간과하고 가짜뉴스 혐오뉴스를 생산한다면 비난과 조롱도 감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은 “(이번 캐리커처는) 풍자가 주고자했던 카타르시스보다 증오가 증폭된 경우”라며 “누적된 평가가 공격적인 표현으로 등장하면서 누군가를 폄하하고 혐오하는 단계까지 가게 되면 적절한 수준인가 고민해야 한다. 누군가를 비판할 때는 명확한 기준과 일관성 있는 설명이 있어야 한다. 예술이 증오나 혐오의 도구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지금과는 달라야 한다”고 했다.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그러면서 기자협회 등 언론계에서 캐리커처를 전시한 작가 등에 대한 소송으로 이 문제에 대응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심 위원은 “소송에 승소한다고 해서 언론인의 신뢰도가 높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수용자로부터 외면받은 언론인들의 고통이 끝날 것인가에 대해서도 의문”이라며 “소송까지 번지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한 적정 수준의 고민과 상호 합의가 있어야 하는데 그런 노력들이 부족했다”고 지적했다.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은 “SNS를 통해 기자들을 공격하는 방식이 전세계적으로 많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라며 “특히 여성 기자에 대한 트롤링(마음에 들지 않은 기사를 쓴 특정 기자에 대한 욕설, 협박 등을 담은 게시글을 올리는 행위)은 가부장적 사회의 여성 혐오와 맞물려 더욱 폭력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고 설명했다.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 ‘풍자냐 증오냐? 불신시대 저널리즘의 신뢰회복 방안’ 토론회 현장. 진민정 한국언론진흥재단 책임연구위원이 발언하고 있다. 미디어오늘 영상 갈무리.

아울러 “정파적이지 않은 뉴스를 소비하고자 하는 독자들이 더 많을거라고 믿는다. 이에 대한 고민을 언론이 더 했으면 좋겠다”며 “어떻게 하면 좀 더 윤리적인 언론, 독립적인 언론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것인가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건강한 언론인이 탄생할 수 있도록 만드는 환경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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