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논란이 됐던 언론중재법(언론중재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주요 인권 문제로 선정하고 해당 개정안에 대해 수정·보완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냈다. 표현의 자유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나오는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 주장에도 힘을 실었다. 

인권위는 지난해 국내 인권상황을 종합 정리한 ‘2021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상황 보고서’를 지난 22일 발간했다. 지난 1년간 국내에서 제기된 인권 문제를 종합해 다룬 보고서를 발간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민주당 추진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란 

인권위는 해당 보고서에서 당시 여당(더불어민주당)이 국회에 상정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허위·조작 보도’를 ‘허위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 멀티미디어 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언론 등의 고의·중과실로 허위·조작보도로 재산상·인격상·그밖 정신적 고통이 발생하면 법원이 손해액 5배 이내에서 손해배상액을 정할 수 있도록 했다고 개정안 내용을 정리했다. 개정안에선 고의·중과실이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는 사항을 명시하고 공공의 이익을 위한 언론보도는 징벌적 손배 책임을 면하는 규정도 포함했다. 

해당 개정안 발의 이후 시민단체와 언론단체 등이 반대 입장을 냈다. 유엔 표현의 자유 특별보호관은 지난해 8월27일 개정안이 표현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할 우려가 있다며 수정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한국 정부에 보냈다. 인권위도 지난해 9월 국회의장에게 일부 신설 조항이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으므로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냈다. 

인권위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은 ‘가짜뉴스’로부터 피해구제 실효성을 높여 언론의 책임을 요구해야 한다는 견해와 헌법에 보장된 표현 및 언론의 자유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어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견해로 나뉘었다”며 “이 논쟁은 언론의 자유 보호 범위에 관한 본질적 문제를 생각하게 했다”고 평가했다. 논쟁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9월27일 본회의 상정 예정이던 개정안은 상정이 보류됐다. 

▲ 국가인권위원회
▲ 국가인권위원회

 

인권위는 언론중재법 비판 요지를 다섯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허위조작 보도의 개념과 고의·중과실 추정 요건의 모호성 문제다. 이 경우 불리한 기사와 비판 여론을 위축하고자 하는 전략적 소송 수단으로 남용될 수 있고 배상책임 유무 역시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맡겨질 개연성이 있어서다. 

둘째는 포털에 과도한 책임을 부여한 문제다.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인터넷뉴스서비스사업자)도 허위·조작보도로 평가되는 뉴스를 게시하면 징벌적 손배 대상이 될 수 있다. 포털이 손배 책임을 피하기 위해 논란이 될 만한 뉴스를 선제적으로 차단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역시 언론보도의 위축효과를 가져온다. 

셋째는 과잉책임 문제다. 이미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 정보, 불법 정보 등에 대해 형법이나 정보통신망법으로 처벌이 가능하다. 그런데 준형사법 성격이 있는 징벌적 손배를 추가 도입하면 이중처벌 효과를 야기한다는 지적이다. 

넷째, 일반 위법행위엔 징벌적 손배가 없는데 언론 행위에만 징벌적 손배를 부과하는 게 언론의 고발기능을 위축시킬 것이란 의견도 있다. 하도급법 등 일부 분야에 징벌적 손배가 도입되긴 했지만 언론은 어느 분야를 보도대상으로 삼든 징벌적 손배를 부과하는 게 적절하냐는 주장이다. 

끝으로 법안의 국회 소위 처리 과정에서 민주당의 일방 강행에 대한 비판과 국제사회에서 신뢰 하락이 우려된다는 비판도 있었다.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장슬기 기자
▲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사진=장슬기 기자

 

이에 인권위는 개정안의 수정·보완을 주장했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 등 국제기구는 단순 거짓 정보(mis-information)와 구별되는 구체적인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의 개념을 명시하고 있는데 언론중재법도 ‘가짜뉴스’를 정의할 때 국제기준에 부합하는 개념을 심도있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고의·중과실 추정 규정 등의 불명확성, 포털까지 징벌적 손배 대상에 포함하고 있어 과도한 책임을 부여하는 표현이나 조항은 삭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해외사례도 소개했다. 인권위에 따르면 유엔 등 국제기구는 가짜뉴스나 허위조작정보에 실체적 책임을 부과하는 방식의 규제보다 언론환경의 투명성 확보 등 자율·간접 조치를 중시하고 있다. 그러나 가짜뉴스 생성·유통을 제재할 적절한 대안으로 직접 처벌 강화 등은 고려하지 않는다고 전했다. 

또 독일과 프랑스 등이 표현을 규제하는 법률 규정을 두더라도 나치 찬양 등 특수한 혐오표현으로 제한하거나 공직선거라는 특정 기간에 한정해 한시적으로 허위표현을 규제하고 있다. 즉 표현의 포괄적 규제를 지양하고 그 범위와 대상을 한정하고 있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했다. 

국가보안법 제7조 폐지 거론한 인권위

인권위는 폐지 주장이 나오는 국가보안법 제7조에 대한 입장도 보고서에 담았다. 지난해 9월 김일성 주석 회고록을 펴낸 출판사 대표가 국보법 7조 위반 혐의로 검찰에 송치됐다. 국보법 제7조(찬양·고무 등)는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자는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는 내용이다. 

▲ 이념대립으로 만든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pixabay
▲ 이념대립으로 만든 국가보안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사진=pixabay

 

인권위는 “근래 ‘대동강 맥주를 먹으면 지상낙원처럼 느껴진다’, ‘사람들이 젊은 지도자에 대한 기대감에 차 있다’, ‘핸드폰이 이미 250만 대가 넘어 어린아이들도 평양에서는 문자를 확인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등 발언을 수사기관에서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위태롭게 하는 행위라 판단하고 국보법 위반 혐의를 적용해 해당 발언자를 기소유예 처분하고 강제 출국시킨 사례가 있다”며 “국보법 7조에 따른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는 여전히 한국 사회가 관심을 가지고 해결해야 할 과제 중 하나”라고 봤다. 이어 “안보에 실질적 해악을 끼칠 위험성이 현저히 낮다고 볼 수 있는 개인의 표현행위까지 국가가 처벌하는 게 옳은가, 한국사회가 충분히 고민해 볼 수 있는 지점에 이르렀다”고 평가했다. 

인권위는 국보법 7조의 모호성을 지적하는 의견도 보고서에 담았다.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라는 구성요건에 대해 “본질적으로 행위자의 내심에 관한 사항을 규정한 것으로 여전히 내심을 판단하는 기준이 추상적이거나 불명확하다”며 “수사기관이나 법원이 행위자의 내심을 어떻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특정 행위의 처벌 여부가 결정되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해당 법 제1항 ‘찬양’ ‘고무’ ‘선전’ ‘동조’ 등 추상적 표현도 논란이다. 인권위는 “이와 같이 추상적이고 모호한 규정에 의존해 구성요건 해당성을 판단할 수밖에 없어 법문의 다의성이 해소됐다고 보기 어렵다”며 “그 행위가 실질적 해악을 끼치지 않으며 반국가단체에 아무런 이득을 주지 못하는 경우에도 이를 처벌할 개연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인권위는 “국보법의 경우 국가의 존립·안전과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적극적이고 공격적인 표현행위가 물리적 해악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현존하는 경우로 처벌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있다”며 “현재 규정만으로 한계가 불명확하므로 이를 폐지하거나, 해악을 초래할 명백·현존하는 위험성이 입증된 경우에만 처벌하는 원칙이 수용되도록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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