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악용한 ‘5인 미만 위장 사업장’ 가운데 노동자를 개인사업자로 둔갑시키는 등 수법을 동원한 경우가 절반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동단체 권리찾기유니온은 “이 같은 ‘가짜 3.3’은 사업장 규모와 직종을 가리지 않는다”며 방송산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권리찾기유니온·권리찾기전국네트워크지원센터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공동고발 2년을 맞아 130개 고발 사업장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또 방송계를 비롯한 6대 산업에서 갈수록 심화하는 ‘위장 프리랜서’, 즉 ‘가짜 3.3’ 실태조사 계획을 밝혔다.

▲권리찾기유니온·권리찾기전국네트워크지원센터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공동고발 2년을 맞아 130개 고발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권리찾기유니온·권리찾기전국네트워크지원센터는 23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가짜 5인미만 사업장’ 공동고발 2년을 맞아 130개 고발 사업장을 분석한 결과를 발표했다. 사진=김예리 기자

“1000명 대기업도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쪼개기”


하은성 권리찾기노동법률센터 상임노무사는 이 자리에서 가짜 5인미만 사업장이라 했을 때 ‘6~10명 규모의 회사가 몇 명만 빼고 등록한 것 아니냐’는 질문이 먼저 들어오지만, 전수 분석 결과 산업 유형과 사업장 규모를 가리지 않는 문제”라며 “고발자 218명엔 52종의 직업군이 있었다. 30인 이상 규모도 19개나 됐고, 직원 수 1000명이 넘는 대기업도 사업장 쪼개기를 하고 있었다”고 했다.

5인 미만 위장 사업장에선 근로기준법 사각지대를 악용한 부당해고나 직장 내 괴롭힘 등 문제가 반복됐다. 선광그룹이 실소유한 건물의 ㅅ관리사무소에서 경리로 일한 강소연씨는 발언에 나서 “5인 미만 사업장으로 총 7년 반 근무하며 잘못도 없이 1개월 정직, 3번의 부당해고를 당해 노동위원회에 구제신청했다”고 했다. 강씨는 “사측이 부당해고를 인정하고 취하를 요청해 합의 뒤 복직했지만, 복직 첫날부터 관리소장이 모멸감을 주는 발언을 했다”며 “결국 저는 며칠 전 또 잘렸다”고 말했다. 강씨는 다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하기로 했다.

▲ ㅅ관리사무소 빌딩관리·회계를 담당한 강소연씨가 5인 미만 위장 사업장의 직장내 괴롭힘과 수 차례 부당해고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 ㅅ관리사무소 빌딩관리·회계를 담당한 강소연씨가 5인 미만 위장 사업장의 직장내 괴롭힘과 수 차례 부당해고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2년째 밀린 급여…스태프와 신인·무명 배우에 빈번”


하 노무사는 “종합분석 결과 특히 ‘가짜 3.3’의 확산을 절박하게 확인했다”고 우려했다. 이른바 ‘가짜 3.3’은 사업주가 노동자에게 지휘·감독하며 일을 시키면서도 개인사업자로 봐 근로소득세 아닌 사업소득세(3.3%)만 내도록 하는 경우다. ‘무늬만 프리랜서’도 여기에 속한다. 하 노무사에 따르면 단체가 최근 고발한 30개 사업장 가운데 개인사업자로 등록시켜 ‘가짜 3.3’을 활용하거나 아예 세금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가 63%에 달했다.

방송제작연기자 강정연 씨는 이날 “ㅊ영상제작사에서 조연배우로 일했다. 웹드라마 오디션과 미팅, 대본리딩, 크랭크업까지 두 달 간 촬영과 소통을 하며 힘든 점은 없었다. 그러나 촬영 뒤 2년이 넘도록 급여를 주지 않았다”며 “노동청에 신고했지만 노동자로 먼저 입증을 받아야 했고, 사측은 이를 위한 출석통지에도 제대로 응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그는 “영상 산업에서 스태프와 신인·무명 배우들은 이런 문제를 빈번하게 겪는다”며 “더 이상 이런 불공정한 사례는 없어야 한다”고 했다.

▲하은성 권리찾기노동법률센터 상임노무사가 24일 ‘가짜 5인 미만 공동고발 2주년 및 가짜 3.3 실태조사 개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하은성 권리찾기노동법률센터 상임노무사가 24일 ‘가짜 5인 미만 공동고발 2주년 및 가짜 3.3 실태조사 개막’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윤유경 기자

방송·조선·학원·스포츠·외식·물류 산업 실태조사


권리찾기유니온은 “5인 미만과 프리랜서·특수고용·플랫폼으로 불리는 최신 직종뿐 아니라 노동법을 삭제시키려는 모든 곳에 출몰한다”며 “이에 방송과 조선, 학원, 스포츠, 외식, 물류산업 등 6대 산업을 대상으로 ‘가짜 3.3 노동자’ 심층 실태조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내년 근로기준법 개정 70주년을 맞아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개념을 재정의하고 사업장 규모와 상관 없이 적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용우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장은 “근로기준법의 주요 내용이 5인 미만 사업장엔 적용되지 않고, 노동자의 개념도 너무 전통적으로 정의돼 있어 노동자로 포섭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 변호사가 증명하고, 판사가 판단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라고 했다.

이 변호사는 “70년을 앞둔 노동법에 전면적 리모델링이 필요하다”며 “타인에 노무를 제공하는지 기준으로 노동자로 추정하고, 이를 뒤집으려면 실제 노무를 제공받고 있는 사용자가 증명하는 방식으로 노동자 규정을 새로 세팅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법적 변화가 절실한 상황에 직종 전반에 대한 실태조사는 별로 없었다”며 “‘가짜 3.3’을 제대로 드러내고 제도 개선 필요성을 확인 시켜주는 중요한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이 24일 ‘가짜 5인 미만 공동고발 2주년 및 가짜 3.3 실태조사 개막’ 기자회견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이 24일 ‘가짜 5인 미만 공동고발 2주년 및 가짜 3.3 실태조사 개막’ 기자회견에서 인사말하고 있다. 사진=김예리 기자

한상균 권리찾기유니온 위원장은 “한국 사회의 전 업종에서 노동을 하고 임금을 받는데도 사업소득자로 세금을 내고 살아가는, 노동자로서 보장 받을 기본 권리를 빼앗긴 채 살아가는 현실이 외면 받고 있다”며 “이번 실태조사는 시작에 불과하며, 조직 노동자를 포함한 시민사회와 모든 운동 단위가 당사자들의 용기에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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