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연합뉴스

지방선거 직후 조선일보-국민의힘-윤석열 대통령으로 이어지는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자진 사퇴 압박이 공영방송 사장 교체를 위한 사전 작업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박성제 MBC 사장은 2023년 2월24일, 김의철 KBS 사장은 2024년 12월9일까지 임기다. 

방통위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 이사를 해임할 수 있다. 방문진 이사 임면권을 쥔 방통위는 앞서 2018년 1월4일 고영주 방문진 이사를 해임했다. KBS 이사 역시 방통위 해임 건의에 따라 대통령이 해임할 수 있다. 때문에 정부여당이 문재인정부 시절 임기를 시작한 KBS사장과 MBC사장을 교체하기 위해선 방통위 구조가 국민의힘 중심으로 달라져야 하고, 이것이 ‘한상혁 흔들기’의 진짜 목적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강성원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장은 “임기가 보장된 방통위원장을 흔드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 방송장악 수순으로 볼 개연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방통위원장 자진 사퇴 압박은 KBS와 MBC에 손을 대기 위한 것이다. (한상혁 사퇴로) 방통위 구조가 3대2 여권 다수로 바뀌면 KBS와 MBC 사장을 바꿀 수 있다. 방송을 장악하겠다는 게 (사퇴 압박의) 진짜 의도인데 언론이 애써 언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여권의 방통위원장 흔들기는 조선일보를 통해 시작됐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지난 9일자 조선일보를 통해 “새 정부에서 여전히 버티고 있는 것은 몰염치한 일”이라며 한 위원장의 자진 사퇴를 요구하고 나섰다. 조선일보는 지난 15일 한상혁 위원장의 ‘농지법 위반 의혹’을 보도했고, 18일엔 “여권은 한 위원장이 지난 정권에서 프로그램 제작과 관련해 방송사 사장을 압박한 사례 등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고 보도했으며, 21일엔 “감사원이 조만간 방통위를 상대로 감사에 착수한다”고 보도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선일보 기사를 인용하며 지난 16일 “자리에 연연하는 것은 국민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라며 한 위원장의 즉각 사퇴를 요구했다. 그러면서 “민주언론시민연합 대표 출신인 한 위원장은 2019년 9월 임명 당시부터 언론계 조국이라는 비판을 받았던 인사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과방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같은 날 “윤석열 정부의 방통위원장 사퇴 협박은 방송장악 음모의 시작”이라며 “한상혁 위원장은 어떠한 사퇴 외압과 회유, 협박에도 흔들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야권의 반발에도 ‘방통위원장 퇴출’은 발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한상혁 위원장은 지난 14일 국무회의 참석 대상이 아니라는 통보를 받았고,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17일 출근길에서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라고 말하며 사실상 사퇴를 요구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은 한 시민단체가 2020년 8월 한 위원장을 직권남용 등으로 고발한 사건에 대해 지난 16일 고발인 조사를 진행했다. 고발 1년10개월 만이었다.

일부 언론은 “자진 사퇴가 상식”(국민일보), “자진 사퇴가 맞다”(서울신문)며 정부 여당의 ‘압박’에 화력을 보태고 있다. 한상혁 위원장 임기는 2023년 7월까지다. 새 대통령과 임기를 시작하거나 동시에 물러날 공직 리스트를 정하는 미국식 방식(플럼북)을 대안으로 제시하는 언론도 있지만 “(미국에서도) 합의제 위원회는 대통령이 해임할 수 없다. 미국 대법원판결도 있다”(이상돈 중앙대 법대 명예교수)는 반박도 있어 대안이 될지는 회의적이다. 

▲공영방송 3사.
▲공영방송 3사.

최성혁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장은 “방통위의 가장 중요 의결 사항이 공영방송의 지배구조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만 봐도 정치적 중립 의무를 부여받은 방통위원장을 흔드는 목적이 어디에 있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면서 “공영방송 장악 수순으로 방통위원장 사퇴 여론몰이에 나선 정부에 국민들이 결코 속지 않을 것”이라 강조했다. 이번 사안을 소위 ‘전임 정부 알박기 인사 논란’으로 판단해서는 본질을 볼 수 없다는 의미다. 

언론계에선 ‘방통위원장 흔들기’가 단순히 장관급 인사 한 명의 거취 문제가 아니라, KBS와 MBC를 비롯해 EBS와 YTN 경영진, 나아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시청자미디어재단‧한국방송광고진흥공사‧한국언론진흥재단‧언론중재위원회‧뉴스통신진흥회(연합뉴스 대주주) 등 전임 정부에서 임명된 사장‧위원장‧이사장이 있는 언론 유관기관에 적지 않은 ‘신호’를 줄 것으로 보고 있다. 방통위원장이 임기를 못 채우고 무너지면 다른 언론 유관기관장들 또한 임기를 채울 수 없을 것이란 예측 속에 일종의 ‘전선’이 형성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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