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9월22일밤,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어업지도 활동을 하던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씨가 실종된 뒤 북한 측 해역에서 북한군 총에 사망했다.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고 정부는 공무원 이씨의 자진 월북이라고 발표했다. 근거는 도박빚 등이었다. 

같은해 10월29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에선 정부를 비판했다. “총탄 수십 발을 난사당하고, 소각되고, 그리고 자신의 정부에서 매도당했다. 만약 그가 월북이 아니고 실족이나 다른 이유로 북한까지 떠내려간 것이라면 그 한(恨)을 어찌해야 하나. 유족들의 억울함, 원통함은 어찌해야 하나. 누가 책임지나” 타당한 지적이었다. 

지난 20일 동아일보 보도를 보면 2020년 9월24일 당시 인천해양경찰서장은 월북 가능성에 신중한 입장이었다. 그러자 담당자가 교체됐다. 같은달 29일 중간수사 결과 발표 때 발표자는 이례적으로 본청 수사정보국장으로 바뀌었고 월북이라고 발표했다. 월북으로 발표한 인사나 수사 담당자들은 줄줄이 승진했다. 유족들 입장에선 수사결과에 의심이 커질 수밖에 없는 정황이다. 

같은날 JTBC는 해경이 고 이대준씨 선실을 압수수색한 자료에 대해 보도했다. 자료에는 월북이나 북한 관련한 내용이 없었다. 이씨의 유품에도 월북 정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 없었다. 동아일보 보도와 종합하면 증거에 입각한 수사가 아닌 정치적인 결정이었다는 정황이다. 

▲ JTBC 20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 JTBC 20일자 보도화면 갈무리

 

언론은 피해자인 당사자와 유족들 입장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실제 어떤 정부에서 피해를 당했는지에 따라 유족들에게 정치적 색깔을 씌우거나 여야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리고 언론도 정파 논리에 따라 비슷한 사건을 다른 잣대로 보도한다. 천안함, 세월호 등 사건을 보면 그렇다. 

정쟁보다 진상규명 집중했던 언론

사건이 다시 주목받은 건 지난 14일 대통령실에서 해당 사건 항소 취하를 검토 중이라고 밝히면서다. 유족들이 사망 경위 관련 정보공개를 청구했는데 문재인 정부가 이를 거부하면서 진행한 소송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정보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했고 최근 기록 공개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다. 해경은 지난 16일 월북을 단정할 수 없다며 수사결과를 뒤집었고, 국방부도 자진월북으로 추정한 것에 대해 사과했다. 

▲ 윤석열 대통령. 사진=JTBC
▲ 윤석열 대통령. 사진=JTBC

 

그러자 언론에선 진상규명 필요성을 강조했다. 한겨레는 지난 17일 사설 “‘피살 공무원 월북 단정 못해’, 정쟁 아닌 진상규명을”에서 “전 정부의 정책을 공격하기 위한 소재로 과도하게 이용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면서 “애초 이 사건의 본질은 비무장 민간인을 사살한 북한군의 비인도주의적 행위였는데 국내에선 월북이냐 실종 표류냐가 과도하게 쟁점이 됐다”고 지적했다. 다른 신문들도 비슷한 논조였다. 

여당은 문재인 정권 책임론을 주장하며 대통령기록물을 공개하라고 주장하고 야당은 국회에 보고된 내용을 공개하면 된다고 맞서고 있다. 보수진영 입장에서 이번 사건은 진상규명을 주장하는 것만으로 전 정권의 치부를 비판하며 정치적 이득을 얻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진상규명을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주장이면서 동시에 윤석열 정부의 이해관계에 부합한다. 언론이 현 정부를 옹호하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이번 사건뿐 아니라 비슷한 다른 사건도 같은 잣대로 접근하면 된다. 문제는 여야와 상당수 언론사들이 피해사실과 진상규명보다는 어느 정부에서 피해를 입었는지에 따라 정치적으로 다르게 해석하고 있다는 점이다. 

문화일보 20일자 사설을 보면 “민주당 정권은 세월호에 대해선 572억원을 들여 9차례나 진상조사를 했다”며 “월북몰이 진상규명은 민생과 배치되지도 않는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같은날 사설에서 세월호 진상규명에 대해 “사실상 정치적 목적의 조사였다”고 했다. 억울하게 시민이 사망했고 국가는 진상조사에 실패했을뿐 아니라 사건을 은폐했다는 점에서 세월호 참사와 공무원 피살사건은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에서 벌어진 세월호를 조사하는 것을 폄훼하면서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진 사건만 조사하라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그렇기에 보수정부에 대해서도 그 의도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초반부터 경향신문은 이 관점에서 사건을 바라봤다. 현실적으로 진상규명이 어려운데 이를 이용해 윤석열 정부가 정쟁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다. 

▲ 경향신문 17일자 사설
▲ 경향신문 17일자 사설

 

경향신문은 17일자 사설 “‘노무현 NLL 포기’ 공세 연상시키는 서해 공무원 피살”에서 “이씨 월북 상황을 밝히려면 군의 SI(특별취급첩보)를 공개해야 하는데, 이는 법적으로 금지돼 있다”며 “문재인정부 청와대 관련 자료도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15년간 봉인됐고 북한과 공동조사를 해야하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21일 기자들과 대화에서 “SI공개가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라며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경향신문은 같은 사설에서 “윤석열 정부의 사정이 시작되는 시점에 정부가 이씨 피살 경위에 대해 말뒤집기에 나선 것이 찜찜하다”며 “만약 여권이 실체적 진실을 규명하기 어렵다는 점을 이용해 신구 정권 간 갈등을 의도했다면 그 후과에 대해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점점 정쟁으로 치닫는 피살사건 

사건이 다시 쟁점화한 지 일주일가량 지나면서 점차 정쟁으로 소모되는 양상이다. 대통령실은 자신들은 대통령실 홈페이지에 정보공개 관련 내용을 모두 삭제하고 소소한 정보공개청구조차 비공개로 대응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정보공개소송에 대해 전수조사에 착수하겠다고 한다. 여야는 서로를 탓하고 있다. 공수만 교대해 비슷한 갈등이 반복되고 있다. 언론의 경우, 일부는 문재인 정부 공격에 몰두하고 나머지는 정쟁을 그만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 21일자 한국일보 만평
▲ 21일자 한국일보 만평

 

조선일보는 21일자 “서해 공무원 아들의 울부짖음에 文 정권 누구라도 답해야 한다”란 사설에서도 문재인 정부가 월북 프레임을 씌웠다며 이 지점을 비판했다. 시종일관 전 정부 비판에만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같은날 타사의 사설과 대조해보면 이러한 모습이 두드러진다. 

일부 언론은 정쟁에 진상규명이 뒷전으로 밀려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한겨레는 이날 사설에서 “민주당 쪽도 20일 당시 사건 정황이 담긴 비공개 국회 회의록 공개에 협조할 뜻을 밝혔다”며 “국회 회의록 공개에 협력할 의사가 있음을 밝힌 민주당 역시 유가족의 고통을 외면하는 듯한 발언을 멈춰야 함은 물론이다”라고 주장했다. 

경향신문도 이날 사설 “‘복합위기’ 외치면서 언제까지 과거사 다툼만 할 건가”에서 국민의힘이 ‘월북공작’으로 비판하고 민주당이 ‘신색깔론’으로 반격하는 것에 대해 “국정을 이끈 정부·공당으로서는 제기된 의구심은 함께 푸는 게 책임있는 자세”라며 “여야는 자기 유리한 대로 공세만 펼 것이 아니라 국민들이 보고 판단할 수 있도록 진상을 드러내는 데 힘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 언론처럼 여당 의원들 입장을 확대재생산하며 갈등을 증폭할 게 아니라 해결책을 제시한 한국일보 사설이 가장 돋보인다. 한국일보는 같은날 사설 “‘월북 단정’ 의혹, 국회가 군 정보 열람해 규명을”에서 “소모적 논쟁을 끝낼 확실한 방법은 정부가 사건 자료를 공개하는 것”이라면서 법에서 공개하지 못하는 부분의 경우 국회 국방위나 정보위에서 자료를 비공개 열람하는 방법으로 의혹을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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