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없어져서 남편이 남편답게 평가 받을 수만 있다면 차라리 그렇게라도 하고 싶습니다.”

지난해 12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의 ‘리스크’로 지목된 김건희 코바나컨텐츠 대표는 자신과 윤 후보를 분리해서 봐달라며 대국민 사과를 했다. 윤 대통령이 취임한 지 40여일이 지난 지금, 대통령 배우자인 김건희 여사는 홀로 언론 인터뷰를 하고 추모 연설을 하기에 이르렀다. ‘조용한 내조’ 한다던 김 여사가 ‘광폭 행보’를 이루기까지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조용한 내조’라는 수식어와 달리 실제 김 여사의 대외 활동은 윤 대통령 취임 전부터 시작됐다. 취임식 일주일 전인 5월3일 충북 단양 구인사에 ‘윤 대통령을 대신해 재방문’하면서 사실상 대통령을 대신하는 역할로 등장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보다 앞선 4월30일 서울 마포구의 유기견 거리 입양 행사에 참석한 일은 대통령 배우자로서의 주 활동 분야를 예고한 셈이었다.

▲12월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한 김건희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 배우자. 사진=유튜브 'KBS 뉴스' 생중계 갈무리
▲12월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중앙당사에서 대국민 사과문을 낭독한 김건희 당시 윤석열 대선 후보 배우자. 사진=유튜브 'KBS 뉴스' 생중계 갈무리

수개월 전 사과와 달라진 김 여사의 행보에는 출처불명 사진과 패션 보도가 한 몫을 했다. 4월 초 김 여사가 후드티를 입고 경찰견과 찍은 사진은 ‘김건희 슬리퍼 완판’ 보도로, 5월 김 여사의 구인사 방문은 ‘5만 원대 쇼핑몰 치마 주문 폭주’ 보도로 이어졌다. 이는 때마침 벌어진 김정숙 여사(문재인 대통령 배우자) 옷값 공방과 맞물려 더 많은 관심과 가십 기사로 이어졌다.

5월10일 윤 대통령 취임식 및 기념행사 이후로는 김 여사의 대외 활동이 꾸준히 이어졌다. 지난 20일 윤 대통령 임기 42일차, 주말을 제외하면 약 30일간 김 여사 일정이 공개된 날이 12일에 달한다. 김 여사가 윤 대통령의 공개 일정에 동석했거나, 대통령실이 사후 정확한 날짜와 자료(사진·브리핑·설명)를 제공한 김 여사의 일정을 추려서 이 정도 수준이다.

그럼에도 한동안 김 여사에 대한 대표 수식어는 ‘조용한 내조’였다. 한미정상회담 당시 김 여사가 윤 대통령에게 굽이 있는 구두를 신도록 권했다는 대통령 관계자의 전언, 김 여사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관람에서 뒤따라 걸었다는 보도가 대표적이다. 김 여사가 대통령실 비공개 회의 참석자들에게 제공한 샌드위치 사진이 단독 보도로 나오기도 했다.

▲6월17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ㆍ보훈가족 초청 오찬을 앞두고 전사자 명비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6월17일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국가유공자ㆍ보훈가족 초청 오찬을 앞두고 전사자 명비 앞을 지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그러나 한미 정상과 관련한 일정에서 김 여사는 단지 얼굴만 비추지 않았다. 김 여사는 양국 정상과 함께 박물관 전시를 관람했을 뿐 아니라, 바이든 대통령 부부를 위한 방한 선물을 골랐다. 선물 중에는 김 여사가 기획했던 전시회(‘마크 로스코’전)의 도록이 포함됐다.

국내 사안 관련 행보도 정치적 의미를 띄고 있다. 6일 현충일 추념일과 6·25전쟁·월남전 참전 유공자 만남, 17일 국가유공자 보훈가족 오찬간담회, 18일 고 심정민 소령 추모 음악회 등 국가안보 분야에 집중된 김 여사 일정을 현 정부의 국정 운영방향과 떼어놓을 수 없다.

나아가 김 여사는 언론과 ‘동물권’ 주제로 단독 인터뷰를 갖는 등 개인 활동 분야까지 예고하고 나섰다. 13일 서울신문 기사에 따르면 김 여사는 90분간 인터뷰를 통해 “동물학대와 유기견 방치 문제, 개 식용 문제 등에서 구체적 성과가 나오길 바란다”며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동물에 대한 인식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구체적 ‘구상’까지 밝힌 것이다.

▲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김건희 여사의 주요 행보. 그래픽=안혜나 기자
▲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 김건희 여사의 주요 행보. 그래픽=안혜나 기자

김 여사의 연이은 행보는 윤 대통령이 폐지한다던 영부인 전담 제2부속실 기능을 되살리라는 요구로 이어졌다. 여기엔 김 여사 팬클럽 ‘건희사랑’ 역할을 빼놓을 수 없다. 지난달 용산 대통령 집무실에서의 대통령 부부 사진, 대통령 부부의 사전투표 사진, 대통령 부부가 영화를 관람하면서 팝콘을 먹는 사진 등 미공개 사진 유출 논란이 끊이지 않은 덕이다. 대통령실은 공약을 유지한다면서도, 이미 김 여사를 보좌할 담당자를 관저에 배치하기로 했다. 김 여사가 운영했던 코바나컨텐츠 출신 세 명이 대통령실 직원이 됐다.

일련의 ‘광폭 행보’ 흐름은 언론의 보도량 추이에서도 확인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뉴스데이터 분석시스템)에서 ‘김건희’ 검색어로 5월10일~6월20일 보도된 3764건의 기사를 수집해 주간 단위로 분류한 결과 보도량이 급증한 시기는 5월31일~6월6일,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의 집무실 사진이 팬클럽에서 공개된 이후다. 이후 김 여사 관련 보도량은 6월7일~6월13일 563건, 6월14일~6월20일엔 1047건까지 늘었다.

이는 ‘윤석열’로 검색되는 기사가 감소세인 것과 대비된다. 윤 대통령 관련 보도량은 취임 첫주 8981건에서 8436건, 6000건, 4941건, 5551건, 5129건으로 주마다 줄었다. 윤 대통령 관련 기사 중 김 여사가 언급된 비중도 적지 않다. 전체 기사 4만966건 중 8.6%(3528건), 10건 중 1건 수준이다. 문재인 전 대통령 관련 취임 6주치 기사(5만6898건) 중 김정숙 여사 언급은 2.2%(1300건)에 그친 것과 확연히 대비된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추출한 '김건희' 언급 기사 연관어. 위에서부터 5월10일~5월16일, 5월31일~6월6일, 6월14일~6월21일.
▲한국언론진흥재단 '빅카인즈'로 추출한 '김건희' 언급 기사 연관어. 위에서부터 5월10일~5월16일, 5월31일~6월6일, 6월14일~6월21일.

문제는 김 여사에 대한 높은 관심이 비판으로 옮겨가고 있다는 것이다. 대통령 취임 첫주 김 여사 관련 보도 연관어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 ‘박근혜’ ‘문재인’ ‘현충원 참배’ 등 특이점이 없었다. 보도량이 급증한 5월31일주엔 ‘반려견’ ‘건희사랑’ ‘팬클럽’ 등이, 6월7일주엔 김 여사가 만난 과거 영부인들을 비롯해 김 여사와 연관된 단어 비중이 늘었다. 최근 일주일간은 ‘광폭행보’, ‘비선 논란’ ‘무속인’ ‘비선’ 등의 키워드가 유입되기 시작했다. 실제 일부 언론은 윤 대통령 부부와 연이 있다고 알려진 역술인을 거론하며 ‘무속인이 제기한 영부인 역할론’을 보도하고 있다.

여론조사에서도 김 여사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확인된다. 지난달 6일 공개된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여론조사에서 김 여사가 ‘조용히 내조에만 집중해야 함’이 66.4%, ‘기존 영부인처럼 적극적인 역할에 나서야 함’이 24.2%로 나타났다. 지난 10일 SBS·넥스트리서치가 공개한 김 여사 행보 관련 여론조사에선 ‘대통령 내조 집중’ 60.6%, ‘대통령 부인 공적 활동’이 31.3%로 나타났다. 최근 윤 대통령에 대한 부정평가 상승에 김 여사 행보가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이어지고 있다.

이를 두고 김 여사의 행보가 공식화되기까지 언론의 견제 역할이 충분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봉우 미디어인권연구소 ‘뭉클’ 객원연구원은 “18일 김 여사가 비공개 개인 일정이라면서 참석한 음악회에서 연설을 한 일은 굉장히 기만인데, ‘광폭행보’라든지 ‘조용한 내조’ 끝났나라는 수준의 보도만 나오는 상황이 굉장히 아쉽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2부속실을 만들라는 보도에 비해 비선이나 사적 채용을 비판하는 보도는 적다. 대통령실에서 2부속실 부활 안 한다면서 전담 직원을 관저팀으로 보낸다면 이것도 기만이라 할 수 있는데, 더불어민주당 비판을 중계하거나 방관하는 보도들이 나온다”며 “그동안 김 여사 행보에 대한 비판이 체면치레는 아니었는지 앞으로의 보도를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했다.

▲6월1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열린 고 심정민 소령 추모음악회에서 김건희 여사가 남긴 방명록. 사진=허행일 시인 페이스북
▲6월18일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서 열린 고 심정민 소령 추모음악회에서 김건희 여사가 남긴 방명록. 사진=허행일 시인 페이스북

김 여사를 둘러싼 의혹 가운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문서(모친 잔고증명서) 위조, 허위 이력 기재 관련 의혹은 수사가 진행 중이다. 논문 표절 의혹과 관련해선 국민대, 숙명여대가 각각 논문을 검토했지만 관련 결과가 공개되지 않고 있다.

권수현 젠더정치연구소 여세연 대표는 “배우자로서 활동 영역을 인정하기엔 법적 문제가 해소되지 않았기에 ‘권력을 주는 게 아닌가’ 의구심을 갖고 있는 듯하다”고 짚었다. 권 대표는 “(여론조사 결과) ‘내조를 해야 한다’고 하는 건 그에 대한 법적·윤리적 책임에 대한 처벌이 이뤄지지 않고 있고, 제대로 이뤄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며 “배우자의 범죄 사실이 있을 때 대통령이라는 살아 있는 권력과 분리해서 어떻게 수사를 진행할지,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을지 논의해야 부정적 시선을 거두고 합리적 활동 영역을 보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한 “‘내조’ ‘외조’ 구분은 사실상 어렵고 내조에 집중한다는 것이 오히려 비공식 채널을 활성화하는 측면도 있다. 대통령 배우자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면 제도적 기준을 만드는 논의를 해야 한다”며 “개인 역량에 따라 그 제도를 어떻게 활용하느냐는 다를 수 있지만 방치할 경우 해악이 더 크다. 개인 비용을 사용하는 부분이나 공적 지원이 필요한 부분을 논의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 여론조사 개요

△뉴스토마토·미디어토마토: 5월 3일~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5명 대상, 휴대전화 가상번호(안심번호) 활용한 무선ARS, 표본오차 95% 신뢰수준 ±3.1%p, 3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 성·연령·지역별 가중값 산출 및 셀가중 적용

△SBS·넥스트리서치 여론조사: 6월 8일~9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0명 대상, 전화면접조사(무선86%·유선14%), 표본 오차 95% 신뢰수준 ±3.1%p, 5월말 행정안전부 주민등록인구 기준 성·연령·지역별 가중값 산출 및 셀가중 적용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및 각 언론사 홈페이지에서 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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