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단은 사건 기사였다. 14일 중앙일보 등 언론은 한 남성이 부인인 여배우를 흉기로 살해하려 한 혐의로 경찰에 붙잡혔다고 보도했다. TV조선은 ‘단독’ 보도를 통해 피해자의 과거 직업을 언급했다. 

첫 보도 이후 누리꾼들은 인터넷 커뮤니티, 기사 댓글, 소셜미디어 등 공간에서 ‘여배우가 누군지’ 추정하기 시작했다. 언론에 공개된 가해 남성과 피해자 연령대를 토대로 한 추정이 이어졌다.

‘온라인 공간의 화제 이슈’가 나올 때마다 언론이 기사를 쏟아냈고, 이 과정에 ‘2차 가해’가 우려되는 기사가 다수 나왔는데 이번에도 마찬가지다. 사건 첫 보도 후 나흘째인 17일 기준 포털 다음에서 ‘피습 여배우’ 키워드를 검색하면 353건의 기사가 뜬다.

신상 추정 가능케 한 후속보도

보도 양상을 짚어보면 언론 기사가 이어지면서 피해자 신상이 조금씩 수면 위로 드러났다. 사건을 다루는 차원의 보도는 필요하지만 피해자와 가해자 연령, 피해자의 이전 직업 등 피해자와 가해자 정보를 경쟁적으로 공개하면서 추정이 이뤄지게 했다.

▲ 사진=Gettyimages
▲ 사진=Gettyimages

일간스포츠는 ‘40대 여배우, 알고 보니 극비 재혼…두번째 남편에게 피습’이라며 재혼한 사실을 제목을 통해 강조해 보도했다. MBN은 ‘40대 여배우 ‘별거 중’ 연하 남편에 집앞서 흉기 피습당해’ 기사를 통해 남편과 별거 중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TV조선은 16일 온라인 기사를 통해 가해자가 ‘분노 조절 장애’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기사에는 ‘단독’ 머리말이 붙었다.  JTBC는 온라인 기사를 내고 “(피해자가) 지인들에게도 피해 사실을 숨기며 입원 치료를 받았다”며 피해자가 자신이 당사자가 아니라고 지인에게 전한 내용까지 기사에 다뤘다.

피해 배우 특정되자 억지 근황 기사

피해자가 추정된 상황에서 언론이 피해자 실명을 직접 거론하는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대신 피해 배우를 재조명하는 억지 근황 기사를 썼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피해자 A씨는 최근 언론 조명을 받지 않았다. 그런데 사건이 벌어진 직후인 15일부터 17일까지 사흘 동안 A씨 실명을 언급한 기사가 포털 다음에 27건이 올라왔다. 

이데일리는 ‘XXX 근황 주목..XX가수 도전 이후는?’ 기사를 냈다. 기사는 “XXXX 출신 가수 겸 연기자 XXX의 근황에 궁금증이 높아지고 있다”며 “XXX은 지난해 8월 10일 (중략) XX가수로 변신했지만 현재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지난해 이후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아 근황이 없다는 사실은 뉴스 가치가 있다고 보기 힘들지만 ‘근황 뉴스’가 됐다.

▲ 피해자가 특정되자 나온 '억지 근황' 보도들. 이들 언론은 포털 다음에서 가장 제휴 등급이 높은 '콘텐츠 제휴'사들이다.
▲ 피해자가 특정되자 나온 '억지 근황' 보도들. 이들 언론은 포털 다음에서 가장 제휴 등급이 높은 '콘텐츠 제휴'사들이다.

피해 배우가 2년 전 한 방송에 출연해 남편에 관해 한 발언은 갑자기 ‘재조명 받는다’며 기사화가 이어졌다. 사건 자체를 언급하지 않으면서 뜬금 없이 2년 전 방송에서 남편에 대해 한 말을 부각한 것이다.

일례로 스포츠경향은 ‘XX대 여성배우 XXX ‘내가 남편 발로 찼다’’ 기사를 통해 “XXX 출신 40대 여배우 XXX이 과거 고백한 사연이 수면 위로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이 배우가 2년 전 MBN 예능 프로그램 ‘동치미’에 출연해 남편과의 부부싸움 이력을 고백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기사화한 것이다. ‘여성배우’라는 표현과 나이 언급 등 기사 제목과 리드문을 통해 이번 사건이 연상되게 했다.

이를 다룬 대부분의 기사는 ‘방송 내용’만 언급하고 끝이 나지만 스포츠경향은 ‘사건’도 함께 언급했다. 스포츠경향은 해당 기사에서 방송 내용을 다룬 다음 “XXX과 별개로 40대 여성 배우가 30대 연하 남편에게 흉기로 목을 찔린 사건이 최근 발생해 세간의 화제로 떠올랐다”고 부연했다. ‘별개’라고 썼지만, 연관 지어 해석할 수밖에 없는 구성이다. 피습 사건과 배우 실명을 기사에 함께 담으면서 포털에서 피해 배우 이름과 피습 관련 키워드를 검색할 때 주목을 받게 되는 기사였다.

가세연 등 유튜브 스피커 역할

누리꾼 주목을 받는 사건이 되자 어김 없이 유튜버들이 나섰다. 가로세로연구소는 피해 현장을 방문해 취재했다. 피해자 이름을 익명 처리도 없이 지속적으로 언급하며 피해자가 누구인지를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문제는 언론이 가세연의 확성기 역할을 한 점이다. 가세연의 해당 영상을 다룬 기사만 41건에 달한다. 가세연 콘텐츠가 문제가 있기 때문에 비판적 표현을 쓰거나 ‘논란’이라고 언급하더라도 내용 대부분이 콘텐츠 소개에 그친 경우가 많았다.

▲ 서울경제 기사 갈무리. 내용을 보면 논란으로 다루긴 했지만 영상을 단순 소개하며 궁금증을 유발하는 기사다.
▲ 서울경제 기사 갈무리. 내용을 보면 논란으로 다루긴 했지만 영상을 소개하며 궁금증을 유발했다.

‘40대 피습 여배우 실명 밝힌 가세연 ‘안 밝히면 2차 피해’’(브레이크뉴스) 기사처럼 가세연 입장을 그대로 제목에 쓴 경우가 있고, ‘40대 여배우 실명·주소 밝히고 찾아간 가세연’(아주경제) ‘‘흉기피습 여배우 ○○○ 아시나요?’..가세연, 입주민에 질문’(서울신문) ‘‘흉기피습 여배우는 OOO’ 실명 밝히고 집까지 찾아간 가세연’(중앙일보) ‘흉기피습 여배우는 OOO’’…가세연, 실명 밝히고 집 찾아가’(서울경제) 등 소개하는 듯한 제목을  쓴 기사들도 있다. 

유튜버 이진호의 콘텐츠도 받아 쓴 기사가 많았다. 그는 ‘피해가 우려된다’며 실명 공개를 하지 않았는데, 이를 보도한 일부 언론은 그의 발언 가운데 자극적이거나 궁금증을 유발하는 대목에 주목했다. ‘XXXX 출신 40대 피습 여배우, 정체 알아…예상 밖 인물’(이데일리) ‘‘피습 40대 여배우=톱스타 NO, 극비리에 재혼…밝혀져선 안 돼’’(OSEN) 등이다.

‘인턴’ ‘디지털팀’ 바이라인, 주류언론도 가세

조선일보는 ‘별거 중 남편에 흉기 피습 여배우…최지우 아니다’ 기사를 네이버 구독 첫 화면 중에서도 메인이 되는 자리에 배치했다. 지면에선 관련 기사를 쓰지 않았지만, 온라인에선 ‘중요 기사’로 배치했다. 이 기사가 종합일간지 조선일보가 가장 부각해야 할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기 힘들다.

억지 근황, 유튜브 받아쓰기 등 관련 기사들의 ‘바이라인’(작성자)을 보면 온라인 대응 기사라는 점이 여실히 드러난다. 일간스포츠와 서울경제는 ‘인턴기자’가 관련 기사를 썼다. MBN은 기자 이름 없이 ‘디지털뉴스부’ 이름으로 기사를 냈다. 한국경제는 온라인 담당 조직인 ‘한경닷컴’, 조선일보는 온라인 트래픽을 늘리기 위해 만든 조선NS 소속 기자가 작성했다. 

▲ 6월15일 조선일보 네이버 구독판 화면. 피습 배우에 대한 루머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는 보도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주요 뉴스로 배치할 정도인지 의문이 남는다. 조선일보는 지면에선 이 기사를 싣지 않았다. 
▲ 6월15일 조선일보 네이버 구독판 화면. 피습 배우에 대한 루머가 확산되는 상황에서 이를 바로잡는 보도는 의미가 있다고 볼 수 있지만, 주요 뉴스로 배치할 정도인지 의문이 남는다. 조선일보는 지면에선 이 기사를 싣지 않았다. 

지난 4월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 세미나에서 발제를 맡은 김창숙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타블로이드화 지수) 순위에 오른 기사들이 주요 언론사들의 기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며 ‘타블로이드화’가 주요 언론사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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