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사장 출신 현직 법무부장관을 검찰이 재수사할 수 있을까.
민주언론시민연합이 2020년 ‘채널A 검언유착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지난 4월6일 한동훈 검사장을 혐의없음으로 불기소처분하자 4월20일 서울고등검찰청에 항고장을 냈다. 이후 한동훈 검사장은 5월17일 법무부 장관이 됐다. 민언련은 지난 10일 홈페이지에 공개한 항고이유서를 통해 “검사의 불기소 결정에는 의도적인 수사미진으로 인한 사실오인 및 공범 성립 여부에 관한 법리 오해의 위법이 있다고 판단된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2020년 4월7일 이동재 채널A 기자와 훗날 한동훈 검사장으로 드러난 ‘성명불상 검사’를 협박죄로 고발한 바 있다.
민언련은 항고이유서에서 “이 사건 공소사실 요지는 (채널A 기자) 이동재와 백승우가 피해자(이철)에게, 자신들이 검찰고위층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어 유시민 등 여권 인사의 비리정보를 진술하지 않으면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취지로 협박하고 이에 겁을 먹은 피해자로 하여금 여권 인사들의 비리 정보를 진술하게 하려고 했으나 미수에 그쳤다는 것”이라고 밝힌 뒤 “공소사실에 기재된 검찰고위층은 한동훈으로 이동재가 범행 과정에서 계획이 무산될 상황에 처하거나 일의 진행이 원활하지 않을 때 바로 피의자 한동훈에게 연락해 상의하거나 조언을 구하고 한동훈은 이동재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범행이 다시 계획대로 진행되도록 했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동일한 사실관계를 바탕으로 강요의 실행행위를 각자 분담했는데 이동재와 백승우는 강요미수로 기소하고 피의자 한동훈은 조사조차 제대로 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되물으며 “이 사건 불기소처분의 바탕에는 검찰의 의도적인 수사미진이 자리 잡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검찰은 범행에 깊숙이 개입하고 있던 피의자 한동훈에 대해, 이동재의 범행을 처음 인식한 시점은 언제인지, 이동재에게 어떤 도움을 주거나 이동재의 범행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동재의 범행 과정에서 수많은 연락을 주고받은 이유는 무엇인지, 검찰 고위직으로 이동재의 행위가 강요죄에 해당함을 알면서도 범행에 개입하여 문제를 해결해 준 이유가 무엇인지 등을 철저히 조사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민언련은 “채널A 진상조사보고서에 기재된 이동재와 백승우 사이의 대화 내용에 따르면 이동재는 스스로 ‘(지아무개씨) 녹음파일 들려주고 싶다고 하면, 다 들려, 내가 녹음했어’라고 말하는 등 녹음파일의 존재를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피의자가 이동재 등과 공모한 정황이 발견된 이상 신속히 수사를 진행해 추가 증거를 확보했어야 하지만 수사기관에서는 이동재가 통화 녹음파일 삭제 등 증거 인멸을 끝낸 이후에야 관련 증거들을 압수했고, 피의자의 스마트폰에 대해서는 포렌식 분석조차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이동재의 녹취록이 재전문 진술에 해당하고 피의자가 부인하고 있어 증거능력이 없기 때문에 공모사실을 입증할 수 있는 증거를 찾을 수 없다는 이유로 불기소 결정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민언련은 “본 사건은 검찰이 언론과 함께 정치에 개입하고 사건을 조작해서 민주주의의 근간이라 할 수 있는 선거의 공정성을 해치려 했다는 오명을 쓰게 된 심각한 사건”이라며 서울고검에 재기수사명령을 요청했다. “원처분검사는 시간과 비용상의 이유 또는 기술적 역량 부족을 내세워 가장 핵심적인 증거에 대한 분석도 하지 못한 상태에서 피의자에 대한 불기소 결정을 내렸는바, 이러한 불기소 결정에는 ‘수사미진’에 해당하는 위법이 있음은 물론 국가의 형사사법권 행사를 담당하는 수사기관에서 충분한 조사를 통해 피의자의 범죄혐의를 밝혀내야 하는 의무를 방기한 것이고, 스스로의 수사역량 부족을 대외적으로 자인한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나아가 “2020년 3월10일 이동재와 백승우의 통화내용 및 2020년 3월22일 이동재와 피의자의 대화 녹취록 등을 살펴보면 피의자는 이동재에게 지속적으로 ‘그래도 만나보라’, ‘자기가 손을 써주겠다’는 등 적극적으로 범행을 부추기는 듯한 언행을 보였고, ‘자신보다 범정을 연결하는 게 낫겠다’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밝히기도 하는 등 범행 방법 모색에도 주도적으로 개입한 것으로 보이는 사정이 발견된다”며 “피의자의 행위는 강요미수죄 공범 내지는 방조범으로서 죄책이 충분히 인정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설령 피의자의 행위가 공범의 성립을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가정하더라도, 최소한 이동재 등의 범죄에 대한 방조에는 해당될 수 있을 것이므로 피의자들에 대한 원처분 검사의 결정은 여전히 위법하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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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언련은 또한 “피의자는 MBC 보도 직후 ‘신라젠 사건 관련 (채널A 기자와) 대화가 녹음된 녹취록이 존재할 수 없다’며 이동재와의 대화 사실 자체를 포괄적으로 부인하고 있었는데, 이러한 피의자 주장대로라면 이동재와 채널A는 자신을 사칭해 취재를 진행하고 명예를 훼손시킨 것이다. 그러나 피의자는 이동재나 채널A에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오히려 사건 초기인 2020년 3월23일 경 채널A 관계자들로부터 ‘이동재와의 대화를 녹음한 파일이 없다’는 내용을 전달받은 이후 입장을 정리하는 등 상호 긴밀히 협의해 공동으로 대응방안을 논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정황도 발견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이 같은 항고이유서로 검찰이 검사장 출신의 현직 법무부장관을 재수사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앞서 한동훈 장관은 지난 4월 불기소처분 직후 “‘없는 죄’ 만들어 뒤집어씌우려 한 ‘검언유착’이라는 유령 같은 거짓선동과 공권력 남용이 최종적으로 실패했다”며 “민언련 등 어용단체의 허위 선동과 무고 고발 등에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