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의 새로운 시도는 쏟아지고 있지만, 살아남는 콘텐츠는 흔치 않다. 야심차게 시작한 기획도 성과 부진을 이유로 몇 달 만에 폐지되는 일이 다반사다. 환경이 열악한 지역언론에선 더더욱 그렇다. 이런 상황에서도 이례적으로 시사 프로그램, 뉴스레터,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브랜드를 확장해내는 사례가 있다. 일희일비하는 대신, 장기간 서비스를 통해 지역에서 입지를 다지고 있다.

‘빅벙커’, 이례적인 시사프로 런칭, 부산·대구 협업까지 

부산MBC에서 시작한 예산추적 프로젝트 ‘빅벙커’는 여러 측면에서 ‘흔치 않은’ 사례다. 예산을 감시하고 분석하는 콘셉트의 프로그램으로 2018년 파일럿방송으로 시작해 현재까지 방영하고 있다. 지역에서 이처럼 뚜렷한 콘셉트를 갖춘 시사 프로그램을 신규 런칭한 경우가 흔치 않고, 이처럼 장기간 방영한 사례도 찾기 힘들다. 2021년 5월부터 대구MBC와 협업을 통해 두 방송사가 함께 방송을 제작하는 점 역시 이례적이다.

▲ '빅벙커' 홈페이지 갈무리
▲ '빅벙커' 홈페이지 갈무리

원혜영 부산MBC PD는 “여러차례 파업을 했는데, 파업 이후 시청자를 위해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할지 고민을 많이 했다”며 “시사 프로그램을 제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역을 감시하고 견제할 수 있는, 지역에서만 할 수 있는 내용을 담으려 기획했다”고 설명했다.

예산과 인력이 많이 드는 시사 프로그램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다. 원혜영 PD는 “지역을 견제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데는 모두 동의를 하지만, 시사 프로그램은 인력과 예산이 많이 필요해 지역에서 하기 어렵다며 반대하는 분들도 있었다”며 “시민사회의 좋은 반응과 학계 등의 평가, 예산 삭감과 조례 신설 등 가시적 변화가 있어 ‘효용성’을 느끼며 유지가 된 것 같다”고 했다.

지난해부터 대구MBC와 공동 제작 체제로 전환했다. 이는 서로에게 ‘윈윈’이 됐다. 전에는 부산MBC의 두 팀이 격주 간격으로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했는데, 4팀이 교대로 제작하게 됐다. 원혜영 PD는 “지역방송 여건상 인력적으로 너무 힘들었던 상황”이라고 전했다.

▲ '빅벙커' 갈무리
▲ '빅벙커' 갈무리

대구MBC 입장에선 인력 문제 외에도 ‘검증된 포맷’과 노하우를 활용해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었다. 박귀영 대구MBC PD는 “대구MBC는 별도의 시사 프로그램이 없었다. 필요성이 계속 제기된 상황에서 이미 검증된 포맷인 부산MBC 빅벙커를 공동제작을 할 수 있어 의미가 있었다”며 “부산팀이 잘 닦아놓은 정보공개청구 방식, 취재 방법 등 노하우가 쌓인 상태였다”고 했다.

두 방송사의 공동제작 시스템이 안착하면서 브랜드가 강화된 것은 물론 콘텐츠도 풍성해졌다. 원혜영 PD는 “단순히 교대로 제작하는 게 아니라 아이템 회의도 같이 하고, 공동 취재를 하거나 보조를 하는 등 함께 논의하며 제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귀영 PD는 “부산은 제 2도시이고, 대구는 제3도시라 비교를 했을 때 유의미한 경우가 있다. 부산시는 특정 예산이나 조례가 있는데 대구는 없는 점을 비교해서 지적할 수 있다. 비교하면서 지자체의 경쟁심을 자극하는 면도 있었다”고 했다. 

‘지역 공통의 과제’에도 함께 주목한다. 박귀영 PD는 “지자체가 지역인구 소멸, 청년 이탈 문제 등이 공통적으로 있다. 지역 대학 문제 등을 공동으로 조명했다”고 말했다. 빅벙커는 지난해 100회 특집으로 경상도 지역 대학을 중심으로 지역 대학의 위기를 조명했다. 

‘뭐라노’, 포털에서 밀린 지역뉴스 강화한 뉴스레터

온갖 뉴스레터의 런칭과 폐지가 반복되는 가운데 꾸준히 발행되는 뉴스레터가 지역에 있다. 부산 국제신문이 2019년 런칭한 ‘뭐라노’는 지역 현안 뉴스와 전국 뉴스를 큐레이팅하면서 세줄 요약으로 쉽게 전하는 콘셉트로 출발했다. 구독자가 지속적으로 늘고 있고, 지난해엔 오프라인 독자 행사를 열기도 했다.

그간 국제신문은 ‘뭐라노’를 여러차례 개편했다. ‘세줄요약’이라는 핵심 정체성은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추가 콘텐츠를 마련했다. 주말판에는 영상 콘텐츠, 평일에는 그래픽 사진 등을 중심으로 한 비쥬얼픽, 부문장의 칼럼 등을 함께 넣었다. 젊은 독자를 위해 ‘라노’라는 캐릭터를 만들기도 했다. 

▲ '뭐라노' 뉴스레터 갈무리
▲ '뭐라노' 뉴스레터 갈무리

가장 큰 특징은 ‘지역뉴스’가 늘었다는 점이다. 하송이 국제신문 디지털부문 디지털콘텐츠팀장은 “지역에 방점을 찍고 지역성을 드러내는 게 우리의 변별력”이라고 강조했다. “코로나19 국면 때는 전국적 코로나19 사안도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 전국 뉴스를 함께 넣다가, 지금은 다시 지역 뉴스 중심으로 돌아왔다. 지역뉴스를 정리해주는 게 좋다는 반응이 많다. 네이버엔 남의 동네 얘기만 전진배치되며 우리 지역 뉴스가 묻히기 때문이다. 부산이 고향인데 서울에 사는 분들도 고향 소식이 궁금해 지역 뉴스를 챙겨보더라.”

하송이 팀장은 “밖에서도 반응이 좋고, 경영진분들이 만나는 분들이 ‘뭐라노’가 재밌다고 반응해주시기도 한다”며 “‘뭐라노’가 돈을 벌어다주진 않지만 국제신문과 별도로 ‘뭐라노’라는 이름으로 브랜딩을 해서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 있는 가능성을 체감한다”고 했다. 

‘격파남’, 지역언론 유튜브 선거 콘텐츠의 안착

선거 때마다 지역에선 유튜브를 활용한 선거 콘텐츠에 경쟁적으로 나서지만 주목을 받고 ‘브랜드’를 남긴 사례는 드물다. 경기·인천지역 신문 중부일보의 ‘격파남’(격전지 여론조사를 파헤지는 남자)은 2020년 총선 때 런칭해 세부적인 지역별 여론조사 현황과 판세를 해설해 주목을 받았다. 조회수가 기본 5만 회 이상에 10만을 넘은 경우도 있다. ‘격파남’은 일회성에 그치지 않고 올해 지방선거 때 ‘격파남 리턴즈’로 돌아왔다.

지난 3월 유튜브에 올린 ‘격파남 리턴즈’ 1편 댓글에는 “영상 퀄리티가 왜 이렇게 좋아졌나요ㅠㅠ격파남 이번 지방선거도 잘 부탁드려요!” “와우~ 격파남이 스마트해졌네요 이번에도 활약을 기대합니다!!!” “격파남 환영합니다” 등 댓글이 붙었다. 정기 코너가 아니지만 독자들이 ‘격파남’을 기억하고 있었다.

이한빛 중부일보 디지털뉴스부 기자는 “처음엔 총선을 앞두고 부서 차원에서 여론조사를 정리해 전달하자는 취지로 기획했다”며 “상상도 못할 높은 조회수를 기록하며 주목을 받으며 선거 콘텐츠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이 기세를 이어가 다시 한번 콘텐츠를 만들게 됐다”고 했다. 

▲ '격파남' 갈무리
▲ '격파남' 갈무리

중부일보가 분석한 격파남의 성공 요인은 ‘지지자들의 관심’이다. 지역의 격전지 개별 지역을 별도로 콘텐츠로 만들어 판세 분석을 하는 경우가 흔치 않았고, 양측의 판세를 짚으면서 관심이 있는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주목도를 높였다.

2020년에는 검은 바탕에 자막을 넣고 더빙을 입힌 다소 투박한 콘텐츠였다면 ‘리턴즈’는 AI를 접목해 캐릭터를 만들고 다양한 ‘짤’들을 넣었다. 일반 유튜브 영상 외에 짧은 분량의 세로 영상인 ‘쇼츠’를 통해서도 선보였다. 이한빛 기자는 “올해 지방선거 콘텐츠의 조회수는 다소 아쉽지만, 시도 자체는 만족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격파남이라는 중부일보만의 콘텐츠를 안착시켰다“며 “다음 선거 때도 시도할 계획이다. 이 외에도 지역 이슈, 정치 현안 등 콘텐츠와 접목을 시켜 격파남 콘텐츠를 확장하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성과로 판단하지 않고, 조직 모두의 업무로 여겨” 

실험을 지속하기 위해선 조직 안팎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송이 팀장은 “저희는 이걸로 돈을 벌지 않았고, 벌라고 하지도 않는다. 기자들에게 ‘돈 벌어야 하니 기사 쓰라’고 말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그래서 성과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는 “처음엔 한 사람이 전담했지만 현재는 디지털 콘텐츠 팀원들이 다 붙어서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며 “누구의 일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이것이 하나의 원동력이 아닐까 싶다”고 했다

이한빛 기자 역시 “좋은 반응을 얻으며 회사 차원에서도 기획을 고민하게 되고, 격려와 취재지원 등이 있었다”며 “회사 차원의 지원이  큰 기여가 됐다”고 말했다.

지역방송에는 정책 지원이 확대될 필요가 있다. 빅벙커는 전파진흥협회, 한국언론진흥재단 등 지원을 받아 제작에 나서고 있다.

원혜영 PD는 “지역에선 시사프로그램을 유지하는 게 부담이고, 생존이 어려운 현 상황에서 ‘그만해야 할 1순위’로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거시적으로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오히려 생존을 위해 필요한 프로그램”이라고 했다. 원혜영 PD는 “전보다 지역 프로그램에 대한 제작 지원이 늘고 있다”면서도 “보다 지원이 강화 돼야 지역에서 시사를 제작하는 데 있어 장애물들을 없앨 수 있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