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커뮤니티를 인용해 베트남의 한 고등학생이 CCTV가 설치된 집에서 아버지의 관리·감독을 받으며 공부를 하던 중 숨졌다는 소식을 자극적으로 보도한 언론들에 ‘경고’ 제재가 내려졌다.

신문사들의 자율규제 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신문윤리위·위원장 김소영 김앤장 변호사, 전 대법관)는 뉴스1, 한경닷컴, 세계일보, 조선닷컴, 헤럴드경제, 서울경제 등 기사들에 문제가 있다며 ‘경고’ 제재를 결정했다고 지난 1일 밝혔다.

▲사망한 베트남 학생의 소식을 다룬지난 4월 보도들. 사진=네이버화면 갈무리.
▲사망한 베트남 학생의 소식을 다룬지난 4월 보도들. 사진=네이버화면 갈무리.

이들 매체는 지난 4월 ‘레딧’이라는 해외 커뮤니티 발로 기사를 썼다. 대부분은 베트남 학생이 사망 전 거실에 있는 모습을 담은 커뮤니티에 올라온 영상을 캡처해 보도했다. 일부 매체는 CCTV 영상 속 학생이 사망하기 직전의 비극적 장면을 캡처해 보도하기도 했다. 제목에 ‘투신’ ‘부 보는 앞에서 뛰어내려’ 등의 표현을 쓰기도 했다. 베트남어로 된 유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선정보도 금지’에 따르면 범죄·폭력·동물학대 등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표현을 사용해서는 안 되며 저속하게 다뤄서도 안 된다. ‘자살보도의 주의’를 보면 자살보도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신중해야 한다. 자살의 원인과 방법 등을 구체적으로 묘사해 대중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보도를 해서는 안 된다. 특히 표제에는 ‘자살’이라는 표현을 삼간다. ‘유해환경으로부터의 보호’를 보면 폭력·음란·약물사용·도박 등을 미화하거나 지나치게 상세히 보도해 청소년과 어린이가 유해환경에 노출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지난 4월4일 뉴스1은 ‘공부 감시 부친 보는 앞에서... 28층서 투신한 명문고생’ 기사를 가장 먼저 보도했다. 기사는 “베트남 하노이의 유명 학교 남학생이 자신을 감시하는 아버지 앞에서 극단적 선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며 그가 어떻게 숨졌는지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유서 내용도 기사에 자세히 담아 보도했다.

뉴스1과 서울경제는 베트남어로 쓰인 고교생의 유서 내용을 사진으로 게재했다. 세계일보는 아들의 투신 직전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을, 조선닷컴은 고교생이 투신한 직후 부친이 달려가는 장면을, 헤럴드경제는 투신하는 순간을 영상 캡처해 보도했다.

▲지난 1일자 신문윤리위 제재 결정문.
▲지난 1일자 신문윤리위 제재 결정문.

이와 관련 신문윤리위는 “뉴스1 등 6개 언론사는 외신을 인용해 베트남에서 부친의 감시와 압박을 받던 고교생이 부친에게 유서를 남기고 28층 아파트 베란다에서 뛰어내린 사건을 보도했다”며 “이들 매체는 사건이 발생한 아파트 내부 사진을 싣고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고 했다.

신문윤리위는 “이들 매체는 고교생이 ‘아빠, 내 노트 봐바’라고 말한 뒤 아버지가 ‘뭔데? 뭐라고 썼는데’라며 노트를 보는 중에 ‘의자에 한 발을 올리고 난간 위로 몸을 내던졌다’라고 보도하는 등 충격적인 장면을 그대로 묘사했다”고 지적한 뒤 “게다가 뉴스1과 서울경제는 베트남어로 쓰인 고교생의 유서 내용을 사진으로 게재했다. 베트남어로 쓰였다 하더라도 망자의 유서 전문을 공개하는 것은 신중하지 못한 보도 태도”라고 지적했다.

신문윤리위는 이어 “특히 세계일보는 아들의 투신 직전 두 사람이 대화(아버지의 꾸중) 장면을, 조선닷컴은 고교생이 투신한 직후 부친이 달려가는 장면을, 심지어 헤럴드경제는 고교생이 투신하는 충격적인 순간을 영상 캡처한 사진을 실었다”고 비판했다.

‘제목’에 대한 지적도 이어졌다. 신문윤리위는 “이들 언론사는 제목에서도 ‘투신한 명문고생’ ‘명문고 아들의 마지막’ ‘부(父) 앞 뛰어내린’ 등의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해 선정 보도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했다.

신문윤리위는 “이러한 노골적인 자살 묘사와 해당 장면을 담은 사진 등은 비슷한 처지에 놓엳있는 사람들이나 특히 청소년과 어린이의 정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제재 이유를 밝혔다.

신문윤리위 위원은 총 12명이다. 황진선 독자불만처리위원, 김석종 경향신문 사장, 황수정 서울신문 편집국장, 김영희 한겨레 논설위원장실 남궁창성 강원도민일보 서울본부장, 이재성 한겨레 경제에디터,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 하윤수 부산교육대 교수, 정선구 중앙일보 광고사업총괄 상무, 하영춘 한경닷컴 대표, 김영 한국문인협회 이사, 윤호영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등이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은 국회 추천 몫으로 얼마 전까지 윤리위원으로 있었으나, 현재는 명단에서 볼 수 없다.

[관련 기사 : 베트남 고등학생의 사망 직전 모습 사진, 기사에 써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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