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의 새 교양·예능 프로그램 ‘요즘 것들이 수상해’가 한 유튜브 채널을 표절했다는 문제 제기에 휩싸였다. 프로그램 제호 디자인부터 기획의도 문구, 일반인 출연자 섭외에 이르기까지 프로그램 전반에서 6년 차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과 동일하거나 유사하다는 누리꾼들 지적이 나오면서다. 크리에이터 당사자도 문제 제기에 나섰지만 KBS는 현재까지 “‘표절 의혹’은 사실이 아닌 오해”라는 입장이다.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요즘사)’을 운영하는 크리에이터 이혜민 씨와 정현우 씨는 지난달 25일 KBS ‘요즘 것들이 수상해’ 첫 방송을 보고는 가슴이 내려앉았다. 지인들이 “KBS 예고편이 두 사람이 운영하는 채널과 비슷한데 콜라보(협업)한 것이냐”고 물어와 확인해보니, 실제로 두 사람이 2017년부터 손수 기획, 섭외, 촬영, 편집하며 일궈온 유튜브 채널 ‘요즘사’와 여러 면에서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KBS2TV에서 지난 5월25일 첫 방영한 ‘요즘 것들이 수상해’ 홍보 화면 캡쳐
▲KBS2TV에서 지난 5월25일 첫 방영한 ‘요즘 것들이 수상해’ 홍보 화면 캡쳐

우연이라기엔 비슷한 점이 많았다. KBS 첫 방송에 나온 일반인 출연자는 해당 유튜브 채널에서 가장 많은 조회수를 기록한 영상에 나온 인터뷰이였다. ‘요즘사’ 유튜브에 나왔던 다른 인터뷰이들로부터도 “KBS로부터 섭외 제안을 받았다”고 밝히는 제보가 쏟아졌다. 이들은 KBS의 섭외를 받았지만 거절했거나, 사전 인터뷰에 임했거나, 이미 촬영을 마친 인터뷰이까지 다양했다. 프로그램 이름과 제호 디자인에 쓰인 특유의 요소들도 겹쳤다.

KBS 제작진이 프로그램 공식 홈페이지에서 밝힌 기획 의도에도 낯익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두 크리에이터는 ‘요즘사’를 “세상이 말하는 정답이 아닌, 다양한 선택지를 찾는 요즘 것들의 이야기” “정해진 트랙을 벗어난 요즘 것들의 이야기” 등의 슬로건으로 2017년부터 소개해왔다고 전했다. 유튜브 내용을 엮은 인터뷰집도 두 권 출간하고 방송과 신문, 잡지 인터뷰로도 ‘요즘사’ 기획을 소개해왔다. KBS는 프로그램을 “세상이 정한 길을 벗어나 자신만의 꽃길을 찾아나선 요즘 것들의 이야기”, “MZ세대라 불리는 요즘 것들이 살아가는 방식과 다양한 가치들을 들여다본다”고 밝혔다.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은 지난 4일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요즘사’ 채널과 KBS 프로그램 ‘요즘 것들이 수상해’ 유사성 문제를 공론화했다. ‘요즘사’ 유튜브 갈무리
▲유튜브 채널 ‘요즘 것들의 사생활’은 지난 4일 유튜브 콘텐츠를 통해 ‘요즘사’ 채널과 KBS 프로그램 ‘요즘 것들이 수상해’ 유사성 문제를 공론화했다. ‘요즘사’ 유튜브 갈무리

참고 안 했다지만 “제작진, ‘요즘사’ 인터뷰집 들고 사전 인터뷰”


두 크리에이터는 ‘요즘사’ 인스타그램을 통해 이 같은 고민을 담은 글을 올렸다. 이후 KBS 제작진이 연락을 해왔다. 조아무개 KBS PD는 이메일로 “만나서 오해를 풀고 싶다”고 했다. 이씨가 ‘먼저 어떤 오해인지를 이메일로 밝혀 달라’고 답신하자, 조 PD는 “MZ세대를 이해하려는 의도는 다양한 매체의 관심사”라며 “‘요즘 것’이라는 명칭도 다양한 곳에서 사용되고 있다”는 입장을 전했다. ‘요즘사’를 참고한 적 없고, 섭외를 결정한 뒤에야 해당 출연자의 ‘요즘사’ 출연 사실을 알았다고도 했다. 

이씨는 이를 두고 “헛웃음이 나왔다”며 “요즘사에 출연했던 인터뷰이 한 분은 KBS 프로그램 섭외를 받았다며, 기획 당시 사전 인터뷰에서 KBS 제작진이 ‘요즘사’가 발행한 인터뷰집 복사본을 들고 질문했다고 말해주기도 했다”고 반박했다. 

이씨는 “그 동안 ‘요즘사’가 구축해온 세계관과 정체성을 빼앗긴 심정에 참담하다”며 “아무런 자본도 인력도 없이 독립 창작자로 ‘요즘사’를 하나 하나 쌓아왔다. 인터뷰이도 제 주변 일반인부터 범위를 조금씩 넓히며 한 분 한 분 모시고 꾸려온 콘텐츠다. 영세한 개인들이 구축해온 오리지널리티를 거대 방송사가 한 순간에 너무 쉽게 가져간 것”이라고 주장했다. 

▲‘요즘 것들의 사생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콘텐츠 목록 갈무리
▲‘요즘 것들의 사생활’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콘텐츠 목록 갈무리

“영세 개인이 구축한 오리지널리티 쉽게 가져간 거대방송사”


‘요즘사’ 운영진에 따르면 누리꾼들은 이 문제에 대해 KBS 시청자 청원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민원을 제기한 상태다.

이씨는 “이 방송 프로그램의 폐지를 원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이씨는 “KBS가 ‘요즘것들이 수상해’를 기획하고 제작하면서 ‘요즘사’의 많은 부분에 모티브를 얻고 영향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미리 허락을 구하지 않은 점을 방송을 통해 사과해 주길 요청했다”며 “KBS는 오해라 밝혔지만, KBS라는 거대 방송사의 영향력을 생각할 때, 오히려 ‘요즘사’를 몰랐던 시청자들이 저희 채널에 대해 ‘요즘 것들이 수상해’를 도용했다는 오해가 쌓일지 걱정된다”고 했다.

이씨는 “제작진이 이 문제를 인정하고 사과하느냐와 별개로 이 문제를 ‘요즘사’의 방식대로 풀어가려 한다”며 “방송계에서 이런 표절 시비가 계속되는 이유와 방송 제작 과정의 문제에 대해 제보를 받아 직접 콘텐츠로 만들어보려 한다”고 밝혔다.

KBS, “고유한 창작물, 표절은 사실 아냐”


KBS 제작진은 브랜드마케팅 팀을 통해 미디어오늘에 보내온 입장문에서 “‘표절 의혹’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MZ세대를 연구하는 다양한 기관과 전문가들을 만나 정식으로 자문하는 과정을 거치는 등 오랜 기간 복잡한 절차를 통해 단계별로 기획이 이뤄졌다”며 “방송을 통해 표현되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는 수많은 스태프의 끈질긴 취재와 각고의 노력 끝에 만들어진 고유의 창작물”이라고 했다.

▲KBS2TV에서 지난 5월25일 첫 방영한 ‘요즘 것들이 수상해’
▲KBS2TV에서 지난 5월25일 첫 방영한 ‘요즘 것들이 수상해’

KBS 제작진은 “‘요즘것들’이라는 단어는 이미 수많은 책, 신문과 방송에서 관용적으로 사용된다”고 밝힌 뒤 “로고 디자인의 경우 전문 디자이너에 의뢰해 제작했”고, “프로그램에 출연한 주인공 중에는 이미 여타의 방송 프로그램, 유튜브 등의 웹콘텐츠, 여러 출판물 등을 통해 소개된 인물들이 포함되어 있다. 위에서 언급한 여러 매체, 다수의 콘텐츠를 바탕으로 기본 조사했으며 그중 저희 프로그램에 적합한 인물들을 오랜 기간 찾고 취재했다”고 했다.

이에 이씨는 “여러 흩어져 있는 요소들을 하나씩 보면 우연이라 말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것들이 하나의 프로그램으로 연계돼 있다면 의도와 무관하게 단순 오해로 치부할 수 없다고 본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만에 하나 도용하고 표절할 의도가 없었다 치더라도, 영향력이 큰 지상파 방송사라면 방영에 앞서 콘텐츠에 오해의 소지는 없을지 검토하고 미리 연락이라도 취재해줬다면, 함께 상생할 수 있는 구조를 고민해볼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성상민 문화평론가는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지상파 방송 위상이 낮아져가는 상황에서 ‘KBS가 낮은 수신료라도 잘 사용하고 있는 것이 맞느냐’는 문제 제기가 지속돼왔다. (이번 사건은) 공영방송으로서 보도와 프로그램 제작 과정과 그 질에 대한 문제 제기”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사건은 방송사들이 유튜브 채널이 지닌 문화 권력을 점점 인지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한데, 방송사보다도 자본과 인력이 부족한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협업하고 함께하는 방향을 찾지 않고, 표절 의혹 문제 제기에 적당히 뭉개려는 방식으로는 장기적으로 KBS에도 자충수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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