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언론단체들이 언론 불신을 벗어나고 윤리적·독립적 언론을 지속하기 위한 새로운 제안들을 제시했다. 언론인에 대한 법적 소송 남용 금지, 미디어 소유권 투명성 증진, 디지털 플랫폼의 책임 강화 등 현재 한국 언론 상황에서 주목할 만한 제안들도 다수 눈에 띄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은 지난 3일 2022년 미디어정책리포트 3호 ‘독립적이고 다원적인 정보를 위한 프랑스 언론의 새로운 제안’ 보고서에서 프랑스 대선에 발맞추어 프랑스의 주요 언론단체가 새 정부에 제시한 언론 관련 제안을 소개하고, 이들 제안이 한국 언론에 시사하는 바에 대해 정리했다. 

언론 자유 제한 법률, 폭력 일상화 등 열악한 노동환경

프랑스의 언론 환경은 상당히 열악하다. 보고서는 “프랑스 내 언론인에 대한 증오가 극에 달하면서 이들을 향한 폭력과 모욕이 심각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2018년에서 2020년 사이 총 200명 이상의 언론인이 경찰에게 폭행이나 성추행 또는 업무 방해(장비 압수)를 당하거나 체포당한 사례가 있었고, 2021년 여름 백신패스에 반대하는 시위가 진행되는 동안 또 다시 언론인에 대한 모욕, 폭행 등 공격이 재개되기도 했다.

▲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제압당하고 있는 기자. 출처=Sénéjoux (2020.12.07)
▲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 현장에서 경찰에 의해 제압당하고 있는 기자. 출처=Sénéjoux (2020.12.07)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언론의 자유를 제한하는 다양한 법률이 등장했다. 대표적으로 ‘포괄적 보안법’에는 경찰관의 얼굴이나 신원을 확인할 수 있는 정보가 담긴 사진과 영상을 악의적으로 배포하면 형사 처벌을 받게 된다는 조항이 담겨 있다. 이에 공권력 남용을 견제하는 언론 기능을 축소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2018년 공포된 ‘업무상 비밀보호법’에 따르면 기업 내부 고발자 등이 공익적 목적으로 언론에 제보하는 행위조차 처벌될 수 있어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전략적 봉쇄소송을 통해 언론에 침묵을 강요하는 문제도 심각하다. 

디지털 미디어 출현으로 인한 저널리즘 관행의 변화, 불안정한 노동 환경, 소득수준의 하락 등으로 이 직업을 이탈하는 언론인들도 늘고 있다. 2019년 프랑스 정규직 기자들의 급여 수준은 2000년에 비해 거의 증가하지 않았고, 프리랜서와 계약직 기자들의 급여 수준은 오히려 줄어들었다. 기사증발급위원회(CCIJP, Commission de la carte d’identité des journalistes professionnels)의 통계에 따르면 프랑스의 전체 기자 수는 꾸준히 줄고 있지만, 프리랜서 기자 수는 늘어나고 있다. 

▲ 프랑스 기자들의 2000년과 2019년 월평균 급여. 출처=CCIJP.
▲ 프랑스 기자들의 2000년과 2019년 월평균 급여. 출처=CCIJP.

 

‘언론 소유주 영향력 행사 범죄화’, ‘윤리적 언론에 정부 지원’ 등 제안 이어져

이러한 상황에서 지난 4월 24일 프랑스 대선에서 엠마뉘엘 마크롱이 재선에 성공했고, 인터넷 독립 언론 노조(Syndicat de la presse indpendante d’information en ligne, 이하 SPIIL), 국경 없는 기자회(Reporters sans fronti res, RSF), 전국기자노동조합(Syndicat National des Journalistes, 이하 SNJ) 등 프랑스의 주요 언론 단체들은 새 정부에 다양한 언론 관련 제안을 내놓았다.

특히 RSF는 언론 소유주 혹은 경영진이 자신 혹은 제3자의 이익을 위해 뉴스 생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범죄화할 것을 제안했다. 이해의 충돌과 콘텐츠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제안이다. 

▲ 국경 없는 기자회(RSF) 로고. 출처=RSF 공식 홈페이지.
▲ 국경 없는 기자회(RSF) 로고. 출처=RSF 공식 홈페이지.

이와 관련해 SNJ은 신문·방송, 민영·공영 미디어에서의 자본 이동의 가속화가 언론인의 독립성을 약화시키는 상황을 우려해 편집국 구성원들이 소유권 변경에 집단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는 법적 지위를 부여할 것을 제안했다. 보고서는 “특별히 주주, 회사 경영진/간부, 심지어 광고주나 미디어 ‘파트너’의 행동에 의해 언론의 독립성이 심각하게 타격을 받을 수 있는 경우에는 이 조치가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윤리적이고 독립적인 언론을 판별해 지원하는 방식으로 언론 지원 제도를 변화해야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SNJ는 언론지원의 혜택을 받고자 하는 언론사에 ‘언론의 혐오 댓글 확산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마련할 것’, ‘뉴스 보도에서 남성과 여성 대표성의 균형을 지킬 것’. ‘프리랜서로 급여를 받는 기자에 대한 법적 및 계약상의 의무를 준수할 것’ 등의 의무 사항을 준수하도록 할 것을 제안했다. 

▲ 전국기자노동조합(SNJ) 로고. 출처=SNJ 공식 트위터.
▲ 전국기자노동조합(SNJ) 로고. 출처=SNJ 공식 트위터.

언론인의 자유로운 취재 활동 보장도 촉구했다. SNJ는 언론인 및 내부 고발자에 대한 범죄 은폐 또는 업무상 비밀, 공적인 인물의 사생활 또는 통신의 비밀을 은폐하는 행위에 대한 법적 소송을 금지할 것을 권고했다. 아울러 모든 언론사에 취재원의 비밀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를 확대할 것을 요구했다. RSF도 언론인을 침묵시키기 위한 법적 소송 남용에 대처하기 위한 절차적 보호 장치 및 예방 조치의 도입과 피해자를 보상하기 위한 징벌적 조치의 적용을 촉구했다. 

RSF는 디지털 플랫폼의 정보에 대한 책임 강화를 위해 ‘저널리즘 트러스트 이니셔티브(JTI)’라는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JTI는 좋은 언론에 일종의 ‘인증서’를 주고 나쁜 언론의 경우 징벌적 조치까지 고려하는 프로젝트다. 저널리즘 방식을 구현하고 윤리적 규칙을 존중한다는 것을 입증해야 하는 플랫폼, 광고주, 투자자 및 미디어 규제 기관 측에도 혜택을 제공할 수 있다. 

▲ 저널리즘 트러스트 이니셔티브 로고. 출처='독립적이고 다원적인 정보를 위한 프랑스 언론의 새로운 제안' 보고서.
▲ 저널리즘 트러스트 이니셔티브 로고. 출처='독립적이고 다원적인 정보를 위한 프랑스 언론의 새로운 제안' 보고서.

단체들은 뉴스 생산뿐 아니라, 비판적 뉴스 소비의 필요성에도 주목했다. SPIIL은 미디어 교육 정책 강화와 플랫폼 알고리즘 투명성 증진을 통해 허위 정보를 근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체적으로 미디어 교육에 할당된 예산을 늘리고, 미디어 교사, 강사의 교육을 개선해야 함을 강조했다. 아울러 플랫폼에 콘텐츠 순위 알고리즘의 투명성을 높이고, 플랫폼이 사용자를 다양한 의견에 노출시켜 세상에 대한 복수의 관점을 보장하고, 자신만의 관점에 직면할 수 있도록 선호도를 설정할 수 있는 가능성을 제공할 것을 제안했다. 

▲ 인터넷 독립 언론 노조 SPIIL 로고. 출처=SPIIL 공식 홈페이지.
▲ 인터넷 독립 언론 노조 SPIIL 로고. 출처=SPIIL 공식 홈페이지.

보고서는 “프랑스와 한국 사회의 언론 환경은 상당히 다르지만, 프랑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언론과 언론인에 대한 불신이 심각하다”며 “프랑스 언론단체들의 제안을 살펴보면, 이들은 이러한 불신을 벗어나기 위해 윤리적 언론의 존재 조건과 독립적이고 다원적인 정보의 생산조건의 마련이 급선무라고 판단한 듯하다”고 했다.

아울러 “특히 언론 소유자 혹은 경영진이 자신 혹은 제3자의 이익을 위해 뉴스 생산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관행을 처벌한다거나 언론인에 대한 법적 소송 남용 금지, 미디어 교육 정책 강화 및 디지털 플랫폼의 참여를 통한 허위 정보 근절 조치 등은 우리에게도 필요한 조치들”이라며 “우리 사회의 언론단체들 역시 언론이 불신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새 정부에 어떤 제안을 해야 할지에 대해 치열한 고민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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