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의 단톡방에는 ‘202X년 기자 이직 업데이트’라는 정보지가 분기별로 업데이트된다. 기자들의 ‘탈기자’ 현상이 몇 년 전부터 지속되고 있으며 그 속도도 빨라지고 있다.

최근에도 기자 10여 명이 대기업 홍보팀, 최근 뜨고 있는 신산업이나 스타트업 홍보팀으로 이직했다는 정보지가 돌았다. 한 방송사 기자는 대기업 홍보팀으로, 경제지 기자들은 제약회사나 보험사 홍보팀으로, 일간지에서 IT 분야를 맡고 있던 기자는 스타트업 홍보팀으로, 경제지 기자는 포털 관계사로 이직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탈기자’ 현상이 하루이틀 일은 아니다. 언론 업계 자체의 가치가 낮아지고 복지와 처우도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이 대부분 이직 사유다.

경제지에서 기업 홍보팀으로 이직한 전직 기자 A씨는 직설적으로 ‘처우 문제’ 때문에 이직했다고 밝혔다. 기자 생활에 불만이 많던 상황에서 처우 문제가 겹치니 이직과 퇴사를 한다는 것이다. A씨는 “다녔던 경제지 역시 복지가 나쁘지 않다고 들어서 입사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언론사는 타격이 없거나 오히려 광고비가 늘었는데 내 처우는 코로나19를 핑계로 더 안 좋아졌다”며 “기자라는 직업 자체는 매력적이지만 이런 식으로 이해되지 않게 통제하니 퇴사했다”고 말했다.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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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직을 한 직장에서는 대략 월 실수령 기준 100~150만 원 이상을 더 받는다고 한다. A씨는 “타 언론사로 가면, 이 정도 처우 개선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며 “기자를 하면서 이런 방면에 더 ‘현타’(현실자각 타임)가 올 수밖에 없는 것이 대기업과 증권업계 등 취재원으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기자보다 훨씬 좋은 처우를 받고 있다”고 전했다. 매일 취재원으로 만나는 사람들과 자신의 처우가 직접적으로 비교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기자 생활에서 느낀 불만에 대해 A씨는 “경제지에서 포럼 등을 열며 기업에 협찬을 바라는데 ‘정당하게 번 돈인가’ 현타가 왔고 회의감이 들었다”, “온라인팀에서 쓰는 기사를 두고 외부에서 ‘기레기’라고 비난하는데 회사에서 제동을 걸지 않으니 괴로웠다. 업계 전반이 선정적 기사를 보도하는 쪽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고, 내가 다니는 회사 역시 마찬가지였다”고 말했다.

노력해서 취재해도 기사 가치는 저평가

최근 많은 기자들이 이직을 희망하는 신사업 분야에 새 둥지를 튼 전직 기자 B씨. 그는 달라진 디지털 환경에서 기사를 송고하면서 실망을 느낀 사례다. B씨는 “몇 개월 동안 취재해 단독 기사를 썼고 다른 경제지에서 내 단독을 받아썼다. 그런데 출입처 사람들은 내가 속한 매체가 아닌 경제지 이름을 언급하며 기사 이야기를 하더라. 내가 쓴 단독보다 그것을 똑같이 베껴 쓴 다른 매체 기사가 더 높은 평가를 받은 것”이라며 “노력해서 취재해야 하는 이유가 뭘까 싶었다”고 전했다.

B씨는 “이제는 기자들이 유튜브나 각종 전문가들의 뉴스레터 등과도 경쟁해야 하는데 그만큼 전문성이 있고 메리트가 있는 직업인지 모르겠다”며 “경제지가 어떤 기업이나 주식을 분석할 때, 프로 의식을 갖고 쓰는 기자들도 있지만 우리 회사에 협찬을 해주는 기업이면 긍정적으로 보도하거나 홍보팀과 친하면 잘 써주는 등 신뢰도가 떨어지는 기사를 작성하는 사례를 봤다. 내가 독자래도 전문가 유튜브나 블로그 등을 통해 정보를 얻지 기사를 통해 정보를 얻을까 싶다”고 말했다.

B씨는 “또래 기자들과 이야기하면 ‘언론 업계에만 있으면 바보가 되는 것 같다’는 말을 자주 한다”며 “자기 분야에 대해 글을 쓰는 것 외에는 자격증이라든지 스킬을 갖춘 전문가가 적을 뿐더러 연차가 쌓인다고 해서 전문성이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일부 데스크들을 보면 알 수 있다”고 전했다.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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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기자’ 하고 싶지만 ‘바이라인’ 아쉬움 느끼기도

업계 환경에 실망해 떠나는 기자 사례는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비슷한 이유로 ‘탈기자’를 하고 싶지만 미련이 남는다는 사례도 적지 않다. ‘바이라인의 가치’ 때문이다.

이직을 희망하면서도 여전히 언론계에 남아있는 한 방송사 기자 C씨는 “저연차 때부터 내 이름을 달고 내 성과를 알리고, 궁금한 점이 있으면 명망있는 전문가에게 인터뷰를 요청할 수 있다는 점에서 기자라는 직업은 여전히 매력적”이라며 “이직을 한다면 이런 부분은 포기해야 한다. 이 때문에 기자직에 미련을 가진 이들이 많다”고 말했다.

C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일명 ‘스타 기자’도 많았지만 디지털 환경이 변화하면서 그런 사례가 줄고 있다. 회사에서도 기자 전문성을 키워줄 생각보다는 쉽게쉽게 사람을 끼워넣고 빼는 식으로 인사를 한다”며 “‘바이라인의 가치’를 키워주는 환경이 아닌 것 같다”고 지적했다.

C씨는 “아마 바이라인 가치는 점점 떨어질 것 같다”며 “기자라는 네임밸류가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지금 이직하지 않으면 지금의 가치도 인정받지 못하고 더 낮아진 대우를 받으며 이직할까봐 우려스럽다”며 “언론계 가치가 더 낮아지기 전에 이직하려는 것이 ‘탈기자’ 현상의 핵심”이라고 짚었다.

잘 쓴 기사, 사회 변화 이끄는 것은 여전
“변화 이끄는 기사 쓰는 환경 돼야”

이직한 기자들도 ‘바이라인 가치’에는 동의했다. 전직 기자 A씨는 “매체가 늘어나고 기자 영향력이 과거 만큼은 아니지만 제대로 된 기사를 썼을 때 그 파급력은 여전하다”며 “여론을 움직이거나 법안이 발의되거나 하는 큰 변화가 기사 한 방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다. 이런 기사를 쓸 수 있는 기자는 여전히 ‘언론 권력’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올바르게 기사를 보도했을 때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은 아무리 플랫폼과 환경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라고 말했다.

▲사진=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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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차 일간지 기자였던 D씨는 얼마 전 퇴사했다. D씨는 “기자를 하면서 좋았던 점은 의미 있는 기사를 쓰고, 내 기사를 통해 변화를 이끌었을 때”라며 “반면 좋지 않았던 때는 기자를 하면서 마주하는 사건 대부분이 부정적 이슈였기 때문에 정서적 탈진이 심했고 좋은 사건을 마주해도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하는 일 특성상 감정 소모가 컸다는 점이다. 또한 연차가 쌓이면서 의미 있는 기사보다는 ‘처리해야 하는 기사’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아졌고 그런 기사에 큰 의미를 느끼지 못했다”고 퇴사 이유를 밝혔다.

D씨에게 ‘기자들이 여전히 이직을 망설이는 데에 바이라인의 가치가 있다는 것에 동의하냐’고 물었다. D씨는 “물론 저연차일 때는 내 바이라인이 기사에 박혀 있다는 것만으로도 굉장히 보람을 느끼고 뿌듯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면서 진짜 뿌듯함은 내 기사가 무언가를 바꿔냈을 때 왔다”며 “내 기사가 국감에서 회자된다거나 이에 정부가 실질적 조치를 내놓는다거나 해당 조직에 감사가 시작되는 등 다른 직업에서는 느낄 수 없는 변화를 만들 수 있는 게 기자”라고 말했다.

D씨는 “결국 매체는 기자들에게 ‘만족감을 충분히 느낄 기사’를 보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며 “바이라인을 통해 뿌듯함을 느끼는 저연차 시절을 넘어, 고연차가 될수록 기획·단독 기사, 관점이 들어간 인터뷰 등을 보도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줘야 한다. 그런 매체가 있다면 처우가 크게 개선되지 않더라도 다시 기자로 돌아갈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

‘바이라인 가치’가 낮아진 시대, 외려 ‘바이라인 가치’를 넘어서는, 기사 고유의 영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제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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