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지방선거 직전 제기한 주요 당 혁신안 가운데 하나는 ‘폭력적인 팬덤 정치의 청산’이었다. “건전한 토론 문화 정착을 위해 당원의 해당 행위와 언어폭력에 엄격히 대처하겠다”고 한 부분이다.

팬덤 정치 부작용이 어떻게 나타나고 있을까. 박 비대위원장은 지난달 27일 “일부지만 팬덤정치가 우리 당원을 과잉 대표하고 있다”며 “이들을 정치적 자양분으로 삼는 일부 사람들 때문에 그 목소리는 더욱 거칠어지고 당의 선택지를 좁게 만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하루에 문자 폭탄 1만통을 받아봤다고도 했다. 극단적인 목소리를 내는 당 내 일부 강성 지지층이 이견과 반대 목소리를 내는 이들을 상대로 극단적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설명이다. 사안별로 벌어질 수 있는 격렬한 논쟁의 하나로 치부하기엔 이 같은 문제가 문재인 정부 이후 계속돼 왔고, 그다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만 있는 것일까. 미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비슷한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면 극단적으로 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어 주목된다. 대표적으로 캐스 선스타인(Cass R. Sunstein)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는 20여년간 ‘집단 극단화 현상’을 주로 연구해왔다. 선스타인 교수는 지난 1999년 ‘집단 극단화 법칙’(The Law of Group Polarization)이라는 논문에서 “숙의를 하면 그룹을 구성하는 개인을 숙의 이전보다 더 극단적으로 이동시킨다”며 “최저 임금에 반대하는 사람들은 서로 대화를 나눈 후에도 여전히 더 반대할 가능성이 높고, 총기 규제를 지지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은 논의 후 상당한 열정으로 총기 규제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

선스타인 교수는 지난 2011년 국내에 번역된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Going to extremes : 이정인 옮김, 도서출판 프리뷰)에서 이 같은 본인의 연구 논리를 총정리했다. 그는 “사회 생활에서 벌어지는 최선의 일과 최악의 일은 집단 활동의 산물인 경우가 많다”며 “이런 현상들 사이에 나타나는 공통점은 ‘사람은 서로 생각이 같은 집단 속에 들어가면 극단으로 흐를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누면 서로 의견을 좁혀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는 사람들이 집단으로 모이면 극단으로 나아간다는 설명이다.

선스타인 교수는 이런 현상을 두고 “특정 시기나 국가, 문화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미국과 프랑스, 아프가니스탄, 뉴질랜드, 대만, 독일을 포함해 수십 개 국에서 실시한 수백 건의 연구 결과에서 입증됐다”며 “정치적 극단주의는 집단 극단화의 산물인 경우가 많고, 사회적 격리는 이런 극단화를 유발”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이 책에서 민주주의에 관한 본인의 실험 결과를 제시했다. 2005년 60여명의 주민을 모아 동성결혼, 인종차별 시정 조치인 어퍼머티브 액션(Affirmative Action)을 채택, 지구온난화 서명 등을 놓고 15분에 걸친 집단 토의를 한 뒤 입장 변화를 조사했더니 거의 모든 그룹 구성원들이 토론 전에 비해 더 극단적인 입장을 보였다. 토론 전 진보 성향의 볼더 주민들 거의 대부분이 지구온난화 국제조약 체결을 지지했는데, 토론 후에는 지지 강도가 더 세졌다. 토론 전 보수 성향의 콜로라도 스프링스 주민들 대부분은 국제조약 체결에 중립적 입장을 보였는데, 토론 후에는 반대 입장이 강해졌다. 다른 사안도 마찬가지였다.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쓴 책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표지. 사진=조현호 기자
▲캐스 선스타인 교수가 쓴 책 우리는 왜 극단에 끌리는가 표지. 사진=조현호 기자

그렇다면 왜 이 같은 집단 극단화가 발생하는 것일까. 선스타인 교수는 “가장 중요한 이유이자 핵심 요소는 새로운 정보의 교환”이라며 “집단 극단화는 사람들이 자기가 알고 있는 내용을 서로 이야기하고 말하는 내용이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진행돼 나아갈 때 흔히 일어난다”고 분석한다.

그는 “구성원들이 극단적인 경향을 가진 상태에서 확신에 찬 사람들이 집단을 지배하면 그 집단의 성향은 극단화로 나아갈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정치학자 러셀 하딘의 말을 빌려 극단주의자들이 ‘극단주의의 절름발이 인식’(crippled epistemology-자신의 생각과 다른 관점이나 정보는 배제하고 일치하는 내용만 받아들여 기존 입장을 강화하는 성향)에 빠진다고 전했다. 이 현상은 아주 미미한 수준의 정보를 습득한 다음, 그것으로 자신의 극단주의를 뒷받침하려고 드는 것을 말한다.

이 밖에도 집단 구성원들의 소속감과 유대감이 강한 경우 극단화가 더 심해진다고 했다.

균형있는 의견을 접한 뒤에도 더 심화하는 경향을 보이는 특징에 대해서도 선스타인 교수는 강조한다. 예를 들어 구성원 가운데 절반은 사형제도를 찬성하고 나머지 절반은 반대한다고 할 때, 양쪽 주장을 균형있게 적은 글을 구성원 모두가 읽고 나면 찬성과 반대 입장이 더 강화되는 실험 결과를 제시한다. 그는 이런 현상을 ‘편향 동화(biased assimilation)’라 규정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다른 글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치부하고, 자신의 생각과 같은 주장은 현명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받아들여 결국 자신의 기존 입장을 더 강화시킨다”고 썼다.

그는 극단화 현상이 이뤄지는 과정을 ‘폭포현상’으로 설명한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아는 정보를 근거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근거한다는 개념이다. 집단의 결정이 구성원들 각각의 정보의 합이 아니라, 개개인이 자기 보다 먼저 의견을 낸 사람들의 뒤를 따라가다 보니 집단 전체가 아주 극단적인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설명이다. 서브프라임 위기 역시 이런 폭포현상의 산물로, 사람들이 경제의 펀더멘털이 아닌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하고 생각하는가’에 의존한 결과였다고 분석했다.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 후보의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현 페이스북
▲박지현 더불어민주당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이 31일 이춘희 세종특별자치시장 후보의 지원유세를 하고 있다. 사진=박지현 페이스북

반대로 여성문제, 성소수자 문제, 인종차별 문제 등 약자들에게는 이런 집단 극단화 현상이 억눌려 있던 신념과 희망을 끄집어내 준다는 점에서 아주 바람직한 수단인 측면도 있다고 해석했다.

극단주의를 막는 길로 선스타인 교수는 표현의 자유가 보장된 시스템과 언론의 역할을 제시했다. 그는 “언론인들이 같은 생각을 가진 집단에게 그들의 입장에 거슬리는 정보,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생각을 재고하게 만드는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부당한 극단주의를 견제한다”며 “민주사회에서 인쇄매체나 방송매체, 웹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에게 맡겨진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는 정치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서 벌어지는 자기격리 현상과 맞서 싸우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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