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사전은 ‘마녀’(witch)를 “①유럽 등지의 민간 신앙에서, 사람에게 해악을 주는 마력을 가졌다는 여자 ②성질이 악하고 사나운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첫 번째 뜻은 지역·역사적 기원을 가리키고 두 번째 뜻은 상태와 특징을 지칭한다. 두 번째 의미는 요녀, 요희, 요부, 독부, 악녀, 악처 등의 한국어로 대체 가능할 것 같다. 다만 첫 번째 뜻을 담는 한국어를 찾기는 불가능하다. 언뜻 무당, 무녀 등이 떠오르지만 유럽이라는 공간의 고유성과 경험의 특수성을 포괄할 수 없다.

최근 10년 간 한국 대중문화에 유난히 ‘마녀’가 자주 찾아왔다. 강풀의 웹툰 ‘마녀’(2013)를 필두로 드라마 ‘전설의 마녀’(2014, MBC), ‘마녀의 성’(SBS, 2015), ‘마녀의 법정’(2017, KBS), ‘착한 마녀 전’(2018, SBS)과 예능 ‘마녀들’(wavve, 2020), ‘마녀체력농구부’(JTBC, 2022)가 선보였다. 곧 2편을 개봉하는 영화 ‘마녀’(2018)도 빠질 수 없다. 이 정도면 한국인의 ‘마녀’ 사랑이 각별한데, ‘마녀’가 아니면 대체할 수 없는 어휘가 없어서였을까 싶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그렇지는 않다. 나열한 작품들 속에서 ‘마녀’의 첫 번째 뜻에 해당하는 지리적 기원이나 역사적 경험이 명시적으로 언급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영화 ‘마녀’가 미국이 제3세계에 외주한 인간병기 실험을 암시했지만 이조차도 설정 수준이다.

▲ wavve ‘마녀들’ 포스터.
▲ wavve ‘마녀들’ 포스터.

잦은 ‘마녀’ 소환에 짐작 가는 바가 없지는 않다. ‘마녀’를 끌어 옴으로써 2010년대 페미니즘 리부트의 영향을 받아 “성질이 악하고 사나운 여자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을 전유해 이를 긍정적 의미로 바꾸고 여성에 가해졌던 사회적 낙인에 대한 인식 전환을 꾀하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만일 그런 의도였다면 아예 ‘전설의 요녀’, ‘요희의 성’, ‘요부의 법정’, ‘착한 독부 전’, ‘악녀들’, ‘악처체력농구부’ 등으로 작명하는 편이 더 날카로웠다. 우리의 말, 습관, 의식에 뿌리내려 ‘습속화’하거나 익숙하게 ‘자연화’한 용어들을 비틀어서 말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는 부담스러웠는지 외국으로부터 수입한 ‘마녀’가 이들 어휘를 대체했다. 그 결과 ‘마녀’는 도발적이고 전복적인 느낌을 주지만 그럼에도 한국의 현실로부터는 접점이 사라져 급진적 현실의 전환까지는 못 이르는 상투어로 전락한다.

‘마녀’가 유럽에서 어떤 식으로 관리됐고 이로부터 야기된 사회적 결과가 무엇인지를 따지면 한국 대중문화의 ‘마녀’ 오용은 모욕적이다. 마녀사냥이 극심했던 15세기와 16세기 동안 유럽에서 ‘마녀’로 지목되어 고문당하고 화형당하거나 교수형에 처한 이가 수십만 명이다. 흔히 ‘마녀’로 연상되는 이들은 사타구니에 빗자루를 끼고 날며 매부리코와 주걱턱이 특징적인데, 독초와 마법으로 독약을 만들어 사람을 홀리는 추하면서도 성적으로 문란한 불임의 노파로 묘사되곤 한다.

하지만 실제 ‘마녀 재판’을 받은 이들 중에서 진짜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마법을 부린 이는 전무했다. 대신 ‘마녀’는 원치 않은 임신을 한 여성들에게 임신중단 시술을 한 산파이거나 가부장적 가족 제도 바깥에서 성을 팔았던 이들, 혹은 과부가 되어 홀로 살거나 여성들끼리 무리를 지어 자신만의 공동체를 꾸렸던 이들이다.

실비아 페데리치는 그의 저서 ‘캘리번과 마녀’(2004/2011)에서 유럽의 대마녀사냥은 자본주의가 태동되는 필수 조건이었다고 주장한다. 아이를 낳지 못하거나 제거하는 여성에 대한 탄압, 홀로 사는 과부의 재산 탈취, 여성의 성적 유희를 가로막고 가부장 질서로 편입시킨 대마녀사냥을 거친 뒤에야 비로소 가부장적 자본주의가 만들어질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마녀’는 자본주의의 전사(前史)이자 끊임없이 재발견되어 현재의 체계를 유지시키는 희생양이다.

▲ 실비아 페데리치의 저서 ‘캘리번과 마녀’
▲ 실비아 페데리치의 저서 ‘캘리번과 마녀’

그렇다면 ‘마녀’는 단순히 유럽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우리라고 ‘대마녀사냥’이 없었을 리 없다. 성별 감별로 태어나지도 못한 숱한 여아들과 결혼 및 임신·출산으로 경력 중단된 여성들, 구조적 성 차별로 불이익을 받는 이들의 서늘한 시선 속에 생각보다 일찍, ‘마녀’는 우리 곁에 서 있었다. 한국 대중문화의 ‘마녀’ 강림이 여기까지 이야기할 수 있을지. 그들을 환대하고 이들의 이어질 이야기에 귀를 기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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