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언론사를 떠나는 일들이 많아지고 있다. 기존 직군에 대한 메리트가 떨어져 다른 곳으로 이직하는 것은 보통의 일이다. 다만, 최근 두드러진 ‘탈기자화 현상’은 언론사 조직의 혁신 유무, 한국 사회의 언론 신뢰 등과 직결돼 있어 언론계에서 여러모로 심각하게 고민해볼 문제다.

조선일보에서 최근 10년간 입사한 기자 106명 가운데 40명이 퇴사했다는 노동조합의 조사 결과가 나왔다. 신뢰도와 별개로 조선일보는 영향력면에서 높은 곳으로 통하지만 정작 기자들 목소리만 듣자면 ‘업계1위’라는 말이 무색하다. 노동 여건도 그렇게 좋지 않은데 뒤떨어진 조직 문화에 대해 실망하고 조직 혁신에 대한 기대도 많지 않다는 것이다. 스펙쌓기의 용도로써 ‘이직 사관 학교’가 됐다는 자조섞인 냉소는 언론계 전체를 향한 말이기도 하다.

정보 수용면에서 기성 언론보다 뛰어난 플랫폼이 넘쳐나면서 정통 저널리즘 관점에서 기자직이 전문직이라는 평가도 옛말이 됐다. 아침신문 1면 의제설정력도 예전만큼 강력하지 않다. 소위 ‘이슈몰이’가 통할 때도 있지만 당파적으로 폄훼되고 그 논증력도 간파당하기 일쑤다.

특히 선배 세대와 후배 세대 기자의 가치관이 충돌하는 현상이 나타나는데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의 견제 기구로써 언론과 다양한 가치를 조명하면서 여러 관점 저변을 넓히기 위한 눈으로써 언론 가치가 대립되는 양상도 나타난다.

연공서열 중심의 기수 문화, 순환보직 제도로 인한 전문성 확보 문제, 출입처를 중심으로 한 보도 등 기존 조직 시스템은 취재 기자의 자율성을 포함해 조직 전반 활력을 떨어뜨리는데 잘 바뀌지 않는다.

단독 보도에 대한 욕심은 기자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지만 그 과정에서 수반되는 저널리즘 윤리에 눈을 감으면서 나쁜 성과주의가 되기도 한다.

▲ 취재 기자. 사진=gettyimagesbank
▲ 취재 기자. 사진=gettyimagesbank

젊은 기자들은 이런 조직 문화를 바꾸지 못하고 고민할 바에야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린다. 독자층을 넓히기 위해 버티컬 채널을 만들고 디지털 혁신 실험을 하는 매체도 생겼지만 젊은 기자들의 기획력과 창의력을 수용하는데 여전히 인색하다. 기업의 혁신을 보도해놓고 언론사 조직은 80~90년대에 머물러 있는 역설적인 상황에 놓여 있다.

기자 직군 익명 게시판에 올라온 글을 보면 조직 내부 ‘낯부끄러운 일’도 탈기자화 현상의 주요 요인이다. 힘든 일을 하소연하고 치부를 드러내는 공간이라고 감안하더라도 익명 게시판만 보면 한국 기자사회는 ‘무간지옥’에 가깝다.

속보 기사와 온라인 대응에 치여 정작 취재다운 취재를 못하고 있다는 내용에 누가 더 힘든지 경주를 벌인다. 하루 발제 기사 하나에 보도자료 수십개를 처리하고 있는 내용엔 ‘그나마 낫다’는 댓글이 달린다.

점심 때 술 마시고 취재원으로부터 ‘쪼가리’ 정보 얻고 하루종일 지라시를 보고 있는 자신을 보며 ‘현타’(현실자각타임)가 온다는 얘기, 워라벨은 진작에 포기했고 영업부담이 크고 회사 구조도 보수적이라서 출입처 한곳으로 탈기자했다는 얘기, 화천대유 대주주 기자출신 김만배씨를 언급하면서 ‘기자를 하면 뭐하냐’라는 냉소가 올라온다.

“자기 권력을 사적 목적으로 또는 경제적 이익을 목적으로 남용하는 집단이 언론 말고 또 있을까 싶다”라는 게시물에 자포자기 심정으로 호응하는 댓글을 보면 비참할 정도다.

각종 SNS에서 ‘현직 기자’라면서 언론 비평을 하는 사례가 늘고 있는 건 역설적이다. 익명화 형태로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고, 언론 문제를 지적하는 ‘콘텐츠’가 생긴 건 2022년 한국 언론의 자화상이라도 부를만하다.

플랫폼 다변화에 따른 경쟁도 심화되면서 기자들이 설 자리도 좁아졌다. 한 영상 기자는 “텍스트 기사와 달리 영상 콘텐츠는 바로 조회수가 성과 지표가 되는 현실”이라며 “제대로된 콘텐츠를 만들고 싶지만 조직 내 눈치보기를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콘텐츠 분량을 채우기 위해 영상 자료 받아쓰기에 주력할 수밖에 없는데 현장을 찾은 유튜버들이 오히려 뉴스 가치가 있는 소스를 확보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 퇴사. 사진=gettyimagesbank
▲ 퇴사. 사진=gettyimagesbank

젊은 기자들이 떠나면 언론사는 낡은 조직으로 남아 미래를 꿈꿀 수 없다. 젊은 기자들을 붙잡는 일은 언론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기도 하다. 위기라고 떠들기만 하지 바뀌지 않은 문제가 탈기자화 현상의 본질이다. 언론계에서 탈기자화 현상을 심도있게 분석하는 것부터 실마리를 풀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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