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공식 추도사에서도 “대선 패배 이후 뉴스도 보기 싫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는 푸념이 나와 주목된다.

‘우리 주제에 무슨 균형자론이냐’던 보수언론의 비아냥에도 이제 약소국에서 벗어나 균형자 역할을 할 힘이 생겼고, 선진국이 됐다는 평가도 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은 23일 오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 추도식 공식 추도사에서 지방선거를 앞둔 민주당의 상황을 우려하며 이같이 진단했다. 그는 “최근 대선 패배 이후 ‘기운이 나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적지 않다. 뉴스도 보기 싫다는 분들도 많다. 현실적으로”라며 “그럴수록 더 각성을 해서 민주당을 더 키워나갈 수 있는 힘을 모아달라”고 요청했다.

정 전 장관은 “‘그러나 물길은 평지에서도 곧게만 흐르는 것이 아니지 않느냐. 강물은 구불구불 흐르면서도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생전의 당신 말씀처럼 우리 정치도 늘 깨어있는 강물처럼 바다로 바다로 향해서 나갈 것이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그는 “깨어있는 시민들이 아직 숨쉬고 있는 시민들이 마저 그 꿈일 이루고저 한발한발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우리를 이끌어주기 바란다”고 추모했다.

정 전 장관은 특히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3년 4월말 평양에서 열릴 제10차 남북장관급 회담을 앞둔 대면보고에서 자신에게 ‘우리가 북한을 돕는 것은 인도주의도 아니고 동포애도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해서 자신이 놀라서 ‘그럼 뭐냐’고 하자 “도리, 이것저것 따질 것없이 남한이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 북한 돕기”라는 말씀이었다고 전했다. 정 전 장관은 “이건 의식수준이 보통높지 않고서는 할 수 없는 말”이라며 “툭하면 ‘퍼주기다’ ‘끌려다니기다’ 이렇게 말들하는 사람이 많은 이 세상에 의식수준이 높지 않고서는 도저히 할 수 없는 말이 도리론”이라고 소개했다.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23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SBS 영상갈무리
▲정세현 전 통일부장관이 23일 오후 봉하마을에서 열린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3주기 추도식에서 추도사를 하고 있다. 사진=SBS 영상갈무리

 

정 전 장관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한국이 균형자 역할을 하고자 했던 노 전 대통령의 ‘동북아 균형자론’을 두고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우리나라가 그들에게 휘둘리기만 할 일이 아니라 스스로의 운명을 주도적으로 개척해 나가려고 애썼다”며 “그러나 반발이 만만치 않았다. 보수진영, 보수언론으로부터. 예컨데 ‘우리 주제에 무슨 균형자냐’, ‘한미동맹이나 잘 챙겨라’ 비난과 비아냥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런데 문재인 정부 5년을 거치는 동안 대한민국은 세계 10위 경제 대국, 세계 6위 군사 강국으로 우뚝 서게 됐다”며 “우리는 약소국 의식에 꽉 차 있고, 발전도상국 중진국정도로 자평하고 있었지만, 이제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정치·경제·사회·문화적으로도 선진국 반열에 들어서게 됐다”고 평가했다. 문재인을 연호하는 목소리가 나오자 이날 참석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일어나 참석자들을 향해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 정 전 장관은 “이제부터는 우리나라도 노 대통령의 생전의 꿈이었던 줏대있는 외교철학을 되살려서 동북아 국제정치에서 능히 균형자 역할을 할 수 있는 힘이 생겼다”며 “이제는 우리나라도 약소국 의식을 버리고 자국 중심성이 있는 외교를 해나갈 수 있게 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민주당은 지방선거 판세가 불리하게 돌아가는 것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의 검찰공화국론, 문재인 이재명에 대한 자객론을 거론하며 노무현 전 대통령 13주기를 지지 호소의 기회로 삼았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3일 오전 서면브리핑에서 “노무현 정신이 우리 마음속에 여전히 살아 있는데도 윤석열 정부는 대한민국 역사에서 일찍이 경험하지 못한 검찰공화국을 향해 속도를 내고 있다”며 “강물이 바다를 포기하지 않듯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인 깨어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으로 다시 한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힘을 하나로 모아 나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 대변인은 “윤석열 정부의 오만과 독주에 맞설 수 있는 지방정부를 세워 우리 민주주의에 힘의 균형을 맞춰야 한다”고 호소했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서울시장 후보로 나선 송영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3일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정적 제거에 혈안이 된 이명박과 검찰의 칼끝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면서 “13년 전의 일이 반복될까 봐 두렵다”고 검찰 보복수사론을 폈다. 송 후보는 “윤석열 대통령 취임식이 끝나자마자 검찰은 기다렸다는 듯 전직 대통령 수사에 착수했다”며 “윤 대통령은 같은 당에서 경쟁했던 대선 후보들에게 정치적 자객을 보내 제거하는 비정한 모습”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이재명 전 대선후보에 대한 음해와 공격, 수사가 이어지지 않으리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라고 우려했다.

이날 노무현 13주기 추도식에는 문 전 대통령을 비롯해 윤호중·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 박홍근 원내대표, 이재명 총괄선거대책위원장, 이낙연·이해찬 전 대표, 정세균 전 국회의장 등 민주당 주요 인사가 총집결했으며,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와 한덕수 국무총리 등 여권인사들도 다수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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