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여사가 내조(아내가 남편의 일이 잘되도록 도움)를 그것도 조용하게 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쏟아진다. ‘조용한 내조’라는데 이렇게 시끄러울 수 없다.

최근 언론 보도를 보면 김건희 여사의 일거수일투족에 의미를 부여한 뒤 ‘조용한 내조’라고 강조하는 대통령실 관계자 말로 끝을 맺는 패턴을 보이고 있다. 대통령 배우자의 동정 역시 중요한 뉴스 가치가 될 수 있지만 정권 초반 언론과 밀월기간이라 하더라도 과하다.

특히 가십성 얘기마저도 ‘조용한 내조’로 포장해 국정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식의 보도는 윤석열 정부와 일부 언론의 ‘짬짬이’를 보고 있는 듯해서 불편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이 평소 굽이 없는 편한 신발을 선호했지만 한미정상회담이라는 격식 있는 자리에서 굽이 있는 구두를 신으라고 김건희 여사가 조언했다는 내용을 공식 브리핑에서 발표했다. 언론은 이를 ‘구두 내조’라고 칭했다.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 윤석열 대통령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5월21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 집무실에서 소인수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홈페이지

김건희 여사 측이 3월10일 윤 대통령 당선 다음날과 5월10일 취임식 이후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 그리고 통화에서 ‘조용한 내조’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전하자 언론은 김 여사 행보에 ‘조용한 내조’라는 타이틀을 붙이기 시작했다.

2월23일부터 5월23일까지 석 달 동안 전국일간지, 경제 및 지역일간지, 방송사 등 54개사 매체에서 ‘김건희 내조’라는 키워드가 포함된 보도는 303건에 이른 것으로 나타났다.

가령 언론은 바이든 미국 대통령 영부인 질 바이든 여사가 정상회담에 동행하지 않아 상호원칙에 따라 김건희 여사도 공식 석상에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예고하고 ‘조용한 내조’에 힘쓸거라고 하더니 21일 저녁 한미 정상의 국립중앙박물관 전시 관람에 동행하자 “직접 전시를 안내하지 않고 뒤따라 걸으며 ‘조용한 내조’에 주력했다”고 보도했다.

옛 유물에 대한 안내는 당연히 전문가가 맡는 게 맞아 보이지만 김 여사가 ‘전문가 역할을 존중’했다는 관계자의 말에 따라 조용한 내조가 되는 식이다. 해석이야 자유라지만 ‘조용한 내조’를 쥐어짜내 김건희 여사를 돋보이게 하려는 의도를 배제할 수 없다.

아주경제는 아예 “이주의 김건희”이라는 코너를 만들었다. “尹 못지않은 이슈메이커 ‘김건희’… 데뷔전부터 퍼스트레이디 ‘새장’ 열었다”,“취임 만찬장 ‘레이저 눈빛’의 진실과 전문성 살린 코디 내조 정치” 등 제목만 보더라도 사실상 띄우기에 가깝다.

지난 10일 취임식에서 윤 대통령이 샴페인을 들이키자 김건희 여사가 이를 지켜보는 영상은 ‘김건희 레이저’라는 키워드로 보도가 쏟아졌다. 저널리즘 가치를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보도였다. 취임식날 김건희 여사의 드레스코드에 주목하며 흰색 원피스엔 대해선 스스로 드러내지 않은 색이라는 설명과 함께 내조에 전념하겠다는 해석으로 이어졌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5월21일 저녁 공식 만찬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5월21일 저녁 공식 만찬이 열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사진=대통령실 제공

새로운 영부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라고 강조하면서 김 여사가 신고 있던 슬리퍼, 입고 있던 청바지와 치마를 소재로 다루고, 완판됐다는 후속까지 시끌벅쩍한 보도에 띄우기라는 행간이 읽힌다.

‘조용한 내조’ 언론 보도에 배후를 의심하는 사례도 나왔다. 이데일리는 지난 12일자 “‘국정내조’김건희 여사, 12일 비공개 회의에 샌드위치 대접” 제목으로 단독 보도했다. 내용은 아침밥을 거른 수석 보좌관 회의 참석자들에게 샌드위치와 당근주스가 제공됐는데 음식을 준비한 사람이 김건희 여사라는 것이다. 이데일리는 회의 참석자들이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전했다. 샌드위치 사진까지 등장했다.

해당 보도는 다른 언론으로부터도 외면을 받았다. 대통령실 용산 청사 내 보안구역에서 찍힌 사진이면서 비공개 회의 모습을 담고 있어 유출 문제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실 전속 사진사가 찍었다면 대통령실 제공으로 다른 언론에도 제공돼야 하는데 이데일리는 단독 보도를 내면서 사진 출처도 밝히지 않았다. 언론이 마치 단독으로 사실을 발굴한 것처럼 보이지만 정부 관계자 ‘협조’ 없이는 불가능한 미담 기사로 받아들여졌다.

김건희 여사가 샌드위치와 당근주스를 만드는 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라고 되묻는다. 김건희 여사의 ‘조용한 내조’를 시끄럽게 떠드는 언론이 저널리즘 가치를 갉아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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