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하면서 첫 대국민 메시지로 내놓은 취임사에서 통합 보다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불렀다고 비난하고 나서 누구를 그 대상으로 놓고 한 얘기인지 주목된다.

대통령 후보 출마 때부터 전임 정권을 ‘약탈 정권’ ‘무도한 정권’이라고 비난했던 점에 비춰볼 때 퇴임한 문재인 정권을 민주주의 위기를 낳은 반지성주의로 규정한 것 아니냐는 추측을 낳는다. 통합과 화합의 메시지를 내놓는 취임사와 달리 ‘반지성’ ‘민주주의 위기’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갈등’ 등을 강조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초청한 자리에서 한 취임사여서 더욱 논란이다.

윤 대통령은 이날 오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지금 전 세계는 팬데믹 위기, 교역 질서의 변화와 공급망의 재편, 기후 변화, 식량과 에너지 위기, 분쟁의 평화적 해결의 후퇴 등 어느 한 나라가 독자적으로, 또는 몇몇 나라만 참여해서 해결하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며 “우리나라를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국내적으로 초저성장과 대규모 실업, 양극화의 심화와 다양한 사회적 갈등으로 인해 공동체의 결속력이 흔들리고 와해되고 있다”고 진단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한편,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해야 하는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라고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한다”며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국가 간, 국가 내부의 지나친 집단적 갈등에 의해 진실이 왜곡되고, 각자가 보고 듣고 싶은 사실만을 선택하거나 다수의 힘으로 상대의 의견을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을 해치고 있다”며 “이러한 상황이 우리가 처해있는 문제의 해결을 더 어렵게 만들고 있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들이 그동안 이런 위기를 지혜롭고 용기있게 극복해왔다면서 “저는 이 순간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책임을 부여받게 된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당당하게 헤쳐 나갈 수 있다고 확신한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는 취임연설(취임사)을 하고 있다. 사진=SBS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취임식에서 반지성주의를 비판하는 취임연설(취임사)을 하고 있다. 사진=SBS 영상 갈무리

 

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보편적 가치로 윤 대통령은 ‘자유’를 들어 “우리는 자유의 가치를 제대로, 그리고 정확하게 인식해야 한다. 자유의 가치를 재발견해야 한다”며 “어떤 개인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 방치된다면 나와 우리 공동체 구성원의 자유가 위협받게 된다”고 했다. 그는 자유가 결코 승자독식이 아니라면서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일정한 수준의 경제적 기초, 그리고 공정한 교육과 문화의 접근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떤 사람의 자유가 유린되거나 자유 시민이 되는데 필요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다면 모든 자유 시민은 연대해서 도와야 한다”고 진단하면서 “모두가 자유 시민이 되기 위해서는 공정한 규칙을 지켜야 하고, 연대와 박애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은 다시 한국사회를 두고 자유와 민주주의가 위협을 받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우리나라는 지나친 양극화와 사회 갈등이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협할 뿐 아니라 사회 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그 해법으로 “이 문제를 도약과 빠른 성장을 이룩하지 않고는 해결하기 어렵다고 생각한다”며 빠른 성장으로 많은 국민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을 수 있고, 사회 이동성을 제고함으로써 양극화와 갈등의 근원을 제거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말하는 반지성과 반지성주의는 누구와 누구의 이데올로기를 말하는 것인지, 문재인 정부나 586 세력, 민주당을 지칭해 위기를 불러온 대상으로 낙인찍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산다.

민주당도 반지성주의가 무엇을 뜻하는 것이냐고 반문했다. 조오섭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10일 오후 내놓은 서면브리핑에서 윤 대통령 취임사를 두고 “대한민국이 나아갈 방향, 국민의 삶을 내리누르는 위기를 헤쳐나갈 구체적인 해법은 보이지 않아 아쉽다”며 “그토록 강조했던 ‘공정’은 형용사로 남았고, ‘상식’은 취임사에서 사라졌다는 점도 안타깝다”고 지적했다.

조 대변인은 “윤석열 대통령이 민주주의 위기의 최대 원인으로 지목한 반지성주의가 무엇을 지칭하는지 모르겠다”며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통합과 협치의 정치가 필요하다는 고언을 드린다”고 지적했다.

조 대변인은 “도약과 빠른 성장은 당연히 필요하나 이를 통해 양극화와 사회갈등을 풀겠다는 해법은 지나치게 단선적이고, 과거에 실패한 신자유주의로의 회귀는 아닌지 묻는다”며 “무엇보다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최우선적으로 갈라진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의 국정운영을 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조 대변인은 집무실 이전까지 강행한 오만과 독선의 우려를 불식해달라며 “이를 위해서는 검찰공화국에 대한 우려를 지우고 삼권분립에 대한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과정에서 국민께 했던 약속을 다시 한번 되새기며 국민이 바라는 나라를 만드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시기를 바란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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