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하지 않고 특정 의견이나 주장을 객관적 사실인 양 각색해 기사 제목을 단 언론사들에 제재가 내려졌다.

언론사들의 자율규제기구인 한국신문윤리위원회는 지난달 회의를 열고 서울경제와 대구신문, 조선일보 등에 ‘주의’ 제재를 내렸다. 이들 언론은 각각 △문재인 정부는 지난 5년 동안 노동개혁이 없었다는 내용 △익명의 1인이 홍준표 의원에 대해 ‘도(度) 넘었다’고 발언한 내용 △국민의힘 주장을 바탕으로 민주당의 검수완박 추진 이유를 단정한 내용 등을 가지고 기사 제목을 단정적으로 썼다.

▲지난 2일자 동아일보 4면.
▲지난 2일자 동아일보 4면.

신문윤리실천요강 ‘보도준칙’ ‘보도기사의 사실과 의견 구분’ 조항을 보면 보도기사는 사실과 의견을 명확히 구분해 작성해야 한다. 또 편견이나 이기적 동기로 보도기사를 고르거나 작성해서는 안 된다. ‘편집지침’ ‘제목의 원칙’ 조항을 보면 제목은 기사의 요약된 내용이나 핵심 내용을 대표해야 하며 기사 내용을 과장하거나 왜곡해서는 안 된다.

지난 3월24일 조선일보는 1면 ‘민주, 문(文)퇴임 전 ‘검찰 무력화’ 대못 박나’ 제목의 기사에서 “더불어민주당은 23일 문재인 대통령 퇴임 전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이른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마무리하겠다고 밝혔다. 범죄 수사는 기존 경찰이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또는 중대범죄수사청 등 제3의 수사기관을 신설해 맡기고 검찰은 기소만 전담토록 하자는 것으로, 사실상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없애겠다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3월24일자 조선일보 1면.
▲지난 3월24일자 조선일보 1면.

조선일보는 이어 “이재명 전 경기지사도 최근 ‘검수완박’ 추진에 동의한다는 뜻을 주변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은 ‘공공 기관 인사 ‘알박기’에 이어 검찰에는 수사를 못 하도록 ‘대못 박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고 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 추진에 대해 국민의힘 측이 “특히 월성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 울산시장 선거 개입 사건 등 현 정권 관련 수사와 이재명 전 경기지사 관련 대장동 의혹 수사를 사전에 차단하려는 시도로 의심하고 있다”고 조선일보는 기사에서 해석했다.

이 해석을 바탕으로 조선일보는 이어지는 4면 기사 제목을 ‘민주당, 대장동·원전·울산 검(檢)수사 원천봉쇄 시도’라고 달았다.

이와 관련 신문윤리위는 “조선일보는 더불어민주당이 검찰의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는 이른바 ‘검수완박’ 법안을 처리하려는 움직임과 국민의힘 반응을 전하는 기사를 1면과 4면에 나눠 실으면서 4면 기사의 제목을 ‘민주당, 대장동·원전·울산 검(檢)수사 원천봉쇄 시도’로 달았다. 민주당이 ‘검수완박’ 법안으로 대장동, 원전, 울산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를 원천봉쇄하려고 시도한다고 단정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지난 3월24일자 조선일보 4면.
▲지난 3월24일자 조선일보 4면.

신문윤리위는 이어 “‘민주당의 검찰 수사 원천봉쇄 시도’는 국민의힘 주장이거나 의심일 뿐 객관적으로 확인된 사실이 아니다. 기사 본문에도 ‘민주당의 검찰 수사 원천봉쇄 시도’를 단정할 만한 근거는 제시되지 않았다”고 짚은 뒤 “이러한 기사는 객관적 보도의 범주를 벗어나 주관적 의도나 편견에 따라 사실을 과장, 왜곡했다는 의심을 살 소지가 있으므로 기사의 객관성과 공정성을 해치고 나아가 신문에 대한 신뢰를 훼손할 우려가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3월15일 서울경제는 1면 ‘5년간 노동개혁 전무… “노동 유연성 시급한 과제”’ 제목의 기사에서 “윤 정부는 친(親) 노동 정책을 밀어붙이며 5년 동안 노동 개혁의 구호가 사라졌던 문재인 정부와 다른 길을 갈 것으로 전망된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15일자 서울경제 1면.
▲지난 3월15일자 서울경제 1면.

이와 관련 신문윤리위는 기사 제목과 내용에 대해 “문재인 정부에서는 노동개혁이 없었다는 뜻이다”고 설명한 뒤 “그러나 이는 지나친 확대해석이다. 문재인 정부가 재계가 줄곧 요구한 ‘노동 유연성 증진’에 무게중심을 두지 않은 것은 사실이나, 기사에 거론된 주 52시간 근로제, 최저임금제, 중대재해법 외에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공공기관 노동이사제 등 여러 가지 노동개혁 정책을 시행했다”고 설명했다.

신문윤리위는 이어 “이러한 정책들이 산업계를 중심으로 ‘친(親) 노동정책’, ‘친(親) 노조정책’, ‘반(反) 기업정책’ 등의 비판을 받는다고 해서 ‘노동개혁이 전무했다’고 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지난 3월16일 대구신문은 1면 ‘총선·대선 이어 대구시장 출마 선언 “홍(洪), 자기식 정치 도(度) 넘었다”’ 제목의 기사에서 “오는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의 행보가 새삼 지역민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대선 경선에서 패배한 홍 의원이 사실상 대구시장 출마를 선언하면서 대구시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자기식 정치’가 도를 넘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3월16일자 대구신문 1면.
▲지난 3월16일자 대구신문 1면.

대구신문은 이어 지역 정치권의 한 관계자가 홍 의원에 대해 “현재 지지율이 높아 홍 의원이 대구시장에 당선될 수도 있겟지만 공정하고 투명한 경선 과정을 통해 공천 후보자를 선출해야 할 것이다. 높은 지지율을 등에 업은 홍 의원의 자기식 정치가 도를 넘은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한 것을 기사에 담았다.

이와 관련 신문윤리위는 “익명의 1인, 그것도 홍 의원과 이해관계가 상충될 가능성이 있는 지역 정치인의 ‘자기식 정치가 도를 넘었다’는 일방적 주장을 여과 없이 그대로 기사 전체를 아우르는 큰 제목으로 인용한 것은 지나치게 자의적이라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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