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공영방송 EBS의 역할을 강화하고 공적재원 비중을 개선하자는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현재 TV수신료에서 EBS 몫을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수신료 논의 자체가 멈춘 상황에서 이를 제도적 한계를 모색하자는 요구도 나온다.

코로나19 팬데믹은 교육분야의 공적 인프라 중요성을 여느 때보다 강하게 체감하게 했다. 28일 EBS 후원,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이뤄진 세미나(교육공영방송 재도약을 위한 진단과 전망)에서 주재원 한동대학교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는 영국 BBC 사례를 들어 “OTT 서비스가 여전히 따라갈 수 없을만큼 차별화된 BBC만의 킬러 콘텐츠 영역은 바로 교육 콘텐츠”라고 강조했다.

주 교수는 BBC 온라인 학습 지원시스템 ‘바이트사이즈(Bitesize)’에 대한 재평가를 소개했다. 영국 정부와 BBC는 지난 팬데믹 국면에서 국가교육과정 바탕으로 ‘바이트사이즈 데일리’를 긴급 편성해 영국 최고 수준의 강사, 유명인사를 섭외했다. ‘BBC 교육 다양성 및 포용 가이드라인 2021’에 따르면 초·중·고 학생들의 80%가 바이트사이즈로 학업에 도움을 받았다고 답했고, 79%의 학부모들은 BBC가 자녀들의 학습을 효과적으로 돕는다고 응답했다.

▲28일 EBS 후원,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이뤄진 '교육공영방송 재도약을 위한 진단과 전망'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EBS
▲28일 EBS 후원,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이뤄진 '교육공영방송 재도약을 위한 진단과 전망'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EBS

변화환 미디어 환경이 교육 콘텐츠의 새로운 시도로 이어지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BBC의 어린이전문채널 CBBC에서 가장 오래된 청소년 대상 저널리즘 프로그램인 ‘뉴스라운드’(Newsround) 사례가 대표적이다. 뉴스라운드의 2012~2018년 시청률은 29만 명 수준으로 이전 대비 반토막이 났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온라인 접속자는 90만 명으로 두 배 이상 늘었다. BBC는 이런 시청 패턴 변화에 맞춰 2020년 교육 프로그램의 모바일 퍼스트 전략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주 교수는 한국 교육공영방송인 EBS의 경우 새로운 미디어 환경에 맞는 법·규제 재정비와 더불어 안정적 재원 마련을 위한 새로운 모델이 필요하다고 봤다. 우선 전체 수신료 수입 중 최소 15%, 수신료 인상시 증액분의 25% 이상은 EBS에 의무 할당하는 방안이다. 그는 “KBS가 추진 중인 수신료 인상안 관련 교육공영방송인 EBS에 파격적으로 지원해 공교육 복지에 가여하겠다는 약속을 한다면 국민들을 설득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주장했다. 사교육 기관 납세액의 2~3%(2020년 기준 약 6200원)를 의무적으로 EBS에 할당하자는 제안도 했다.

다만 지금의 EBS는 교육시장에서의 역할과 기능수행 면에서 불완전하다는 평가도 있다.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미디어영상홍보학과 겸임교수는 일례로 학교 교사들이 온라인수업을 EBS의 학년별 강의수강으로 대체했지만, 평가는 사교육 시장의 기출문제은행에 의존하는 기형적 현상을 언급했다.

▲28일 EBS 후원,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이뤄진 '교육공영방송 재도약을 위한 진단과 전망'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EBS
▲28일 EBS 후원,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이뤄진 '교육공영방송 재도약을 위한 진단과 전망'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EBS

심 교수는 “(BBC가) 바이트사이즈처럼 보편적 학습권 보장 수단으로 온라인학습지원시스템을 구축할 경우 실질적인 정보격차·지식격차 완화의 수단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지만, 한국의 경우에는 사교육 시장의 온라인학습지원시스템과 EBS가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EBS 교육 내용과 사교육 시장에서 만든 기출문제은행이 경쟁해야 하는 구조에서는 바이트사이즈와 같은 효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EBS가 예산 안정성을 보장받지 못하는 문제도 지적했다. 현재 수신료에서 EBS 몫은 2.8%, EBS 예산은 70%가 상업적 재원으로 이뤄져 있다. 심 교수는 “1981년부터 동결된 수신료에서 EBS의 비중을 늘리자는 의견은 실현가능성이 낮다”며 “사교육 영역에서 공적인프라 구축을 위한 분담금을 신설해 납세액에서 영상교육인프라와 온라인학습시스템 구축을 위해 별도 기금을 마련하는게 더 현실적”이라 주장했다. 

박성우 우송대 글로벌미디어영상학과 교수도 “그동안 교육공영방송이 자체 재원을 상대적으로 많이 확보했다는 점은 분명 칭찬받을 수 있지만, 이는 동시에 과도한 상업적 접근 등에 대한 우려의 비중도 크다는 의미”라며 “EBS의 재원 구조는 자체 재원의 비중은 좀 줄고 공적재원과 수신료의 비중이 확대되어 적어도 50%대 50% 정도의 상시적 균형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여라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의 경우 “KBS의 수신료 수입 할당 비율이 인상되면 좋겠지만 이마저도 수신료 인상을 전제로 하고 있고, 얼마만큼 충분할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라며 “확실한 것은 현재와 같은 수신료 배분으로는 어렵고, 광고는 상업성에 대한 우려가 있어 허용되기 쉽지 않으며, 구독 모델은 양질의 콘텐츠가 기반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재원에 대한 해결책을 쉽게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한계를 언급했다.

▲28일 EBS 후원,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이뤄진 '교육공영방송 재도약을 위한 진단과 전망'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EBS
▲28일 EBS 후원, 한국언론학회 주최로 이뤄진 '교육공영방송 재도약을 위한 진단과 전망'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EBS

나아가 그는 EBS가 교육방송으로서의 주도적인 역할과 혁신 전략을 먼저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OTT서비스 등을 포함하는 새로운 시청각미디어에 관한 법률 등 기존의 방송법과 교육방송법 등 법제도 정비가 필요하고, 지배구조 등 거버넌스에 있어서 변화도 요구된다. 그러나 이러한 법제도가 정비되지 않는다고 교육방송의 존재 의미와 목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라며 “교육방송으로서의 완전히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 제공(브랜드화),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의 주도적 역할 찾기, 국가의 정체성과 고유한 문화를 살린 창의적인 콘텐츠 강화, 어린이 및 청소년, 노인,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책임 등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정미정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도 EBS의 적극적 역할을 주문했다. 그는 “EBS에 대한 시선은 둘로 나뉜다. 무관심과 호감”이라며 “규제기관은 여러 제도상의 문제에 눈감았고 마땅히 해야 할 여러 가지 일에서 합당한 논의를 일구거나 노력하지 않았다. 국민들에게는 공교육의 보완이라는 교육방송으로서 좋은 이미지가 구축되어 있지만 적극적으로 무엇을 해주어야 할 정도에 이르지는 못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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