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넘게 단식 농성 중인 파리바게뜨 제빵사가 있다. 영화 ‘삼진그룹 영어토익반’ 자영(고아성 역) 모델로 알려진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이다.

임종린 지회장은 지난달 28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에서 단식을 시작했다. 2017년 제빵사 불법파견과 임금체불 등 논란이 이어진 SPC그룹이 이듬해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를 선언해놓고 4년째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당시 고용노동부는 파리바게뜨가 제빵사 5378명 불법파견을 시정하지 않았다며 162억 원의 과태료 부과를 예고했으나 사회적 합의를 이유로 관련 조치를 유예했다.

SPC는 지난해 4월 ‘사회적 합의 이행 완료’를 선언했지만 노조는 이를 일방적인 ‘셀프 선언’이라면서 규탄해왔다. 제빵·카페 기사들의 저임금, 휴식시간 미보장 등 기본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노동자들의 처우·근로환경 개선을 위한 노사 간담회나 협의체가 운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집합금지 기간 집회 머릿수를 채워준 강아지 인형들이 오른쪽에 놓여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집합금지 기간 집회 머릿수를 채워준 강아지 인형들이 오른쪽에 놓여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노동자가 택할 수 있는 ‘최후 수단’으로서의 단식은 쉽지 않은 결정이다. 27일 농성장에서 만난 임종린 지회장은 단식을 미룰 수 없었던 계기로 한 녹취를 떠올렸다. 노조 조합원이 한 상급자로부터 ‘회사에서 올해 안에 민주노총 조합원을 와해시키려고 했다. 이제 남은 조합원들에 대해 회유하지 않고 괴롭혀서 퇴사시키려 한다. 그러니 빨리 (노조) 탈퇴하라’는 회유와 압박을 들은 내용이었다.

임 지회장은 “그 연락을 받은 조합원은 굉장히 불안해했고, 그걸 집에 얘기했더니 가족들도 다 불안해했다고 한다. 그런 것들이 너무 화가 났다”면서 “조합원들이 현장에서 불안감을 느끼면서 일하게 하는 게 노조 활동도 아닐뿐더러 방관하는 회사의 문제 등이 겹치면서 ‘이제 괴롭히지 마, 더 이상 좀 괴롭히지 마’ 하면서 시작한 거였다”고 전했다.

파리바게뜨 노조 탄압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지난해 7월 한 파리바게뜨 중간관리자의 내부 고발로 회사 경영진이 중간관리자들을 불러 민주노총 탈퇴 현황을 보고 받으면서 포상금을 지급하고, ‘민주노총 가입인원 0%’를 목표로 제시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행정·수사기관에서 부당노동행위가 인정된 사례도 이어져왔다. 올해 1월 경기지방노동위원회는 지난해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들이 차별적으로 승진하지 못했다는 부당노동행위 구제신청을 인정했다. 비슷한 시기 성남중원경찰서는 파리바게뜨지회 조합원의 노조 탈퇴서를 위조한 혐의로 파리바게뜨의 중간관리자 A씨를 검찰에 송치했다.

그러나 이 소식을 전하는 언론은 많지 않다. 임 지회장이 단식에 돌입한 3월28일부터 4월26일 빅카인즈(뉴스빅데이터 분석시스템)로 수집한 54개 중앙일간지·경제지·지역종합지·방송사·전문지의 ‘SPC삼립’ 관련 기사는 216건, ‘SPC’와 ‘파리바게뜨’를 다룬 기사는 55건, 절대 다수는 제품·프로모션이나 기업 실적·수상 등 홍보 관련 기사였다.

▲7일 SPC그룹의 노조 탄압을 규탄한다면서 삼보일배를 진행한 시민단체들과 임종린 지회장. 사진=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7일 SPC그룹의 노조 탄압을 규탄한다면서 삼보일배를 진행한 시민단체들과 임종린 지회장. 사진=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SPC 파리바게뜨’ 기사 중 기업 홍보성 기사가 전체의 58%(32건), 단일 사안별로는 ‘상생 양파빵’ 출시 소식이 12건으로 가장 많다. 파리바게뜨 운송 파업으로 화물연대 위원장에게 구속영장이 청구됐다는 소식이 11건으로 뒤를 이었는데, 영장청구 기사가 7건인데 반해 영장이 기각됐다는 보도는 3건에 그쳤다. 임 지회장의 단식 관련 기사는 8건에 불과하다.

임 지회장 단식을 보도하는 매체가 한정된 경향도 확연하다. 같은 기간 네이버를 기준으로 ‘파리바게뜨 단식’을 보도한 매체(단순 일정 공지 제외)는 MBC, 한국일보, 한겨레, 오마이뉴스, 한겨레21, 시사인, 민중의소리, 프레시안, 여성신문, 월간노동법률, 노동과세계, 대전일보, 매일노동뉴스가 전부였다. 진보 성향으로 분류되는 매체나 노동전문매체가 아니면 임 지회장의 단식 소식을 볼 수조차 없는 상황이다.

서운하지 않을까 묻자 임 지회장은 고개를 저었다. “어딘가에서도 단식을 하거나 준비를 하고 계신 곳이 분명 있고, 천막 농성이라든지 1인시위라든지 투쟁하는 사업장들이 굉장히 많다. 저도 다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는 “감사하게도 2017년도부터 다른 투쟁 사업장보다는 주목을 받아와서 저희한테 호의적인 기사도 많이 나왔다. 많이 도움을 받은 부분도 있다”고 말했다.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에서 단식 농성 중인 임종린 민주노총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장

다만 이른바 ‘노노갈등’ 프레임의 보도의 문제는 거듭 지적했다. 한국노총 계열 노동조합이 교섭대표노조 지위를 확보하자 민주노총 계열이 집회를 벌인다는 식의 보도 이야기다. 그는 “예전에도 어떤 기자님이 전화를 해서 계속 ‘노노 갈등 있냐’고 물어봐서 노노 갈등이 아니라 얘기했는데 결국 ‘노노갈등으로 SPC가 망해 간다’고 기사를 쓰셨더라”며 “지노위, 중노위, 고용노동부에서 회사가 부당노동행위를 했다고 인정 받고 있다. 노노 갈등이 아니라 노조 탄압”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7월 ‘파리바게뜨 양대노총 기싸움에…애꿎은 가맹점주들 피해’라는 TV조선 보도 관련해 언론중재위원회에 갔던 경험도 전했다. 그는 “언론중재위원회에서 느꼈던 게 ‘아니면 말지’ 이런 느낌이었다. 기사 밑에 ‘언론중재위원회에서 조정을 받았고 이 내용을 이렇게 한다’는 주석을 단다는 거였다. 그런데 저는 그게 다 무슨 의미인가 싶더라”며 “이슈가 뜨거울 때 거짓 뉴스를 뿌려버리고 한 달, 다섯 달 뒤에 그 기사를 누가 보겠나. 그건 이미 죽은 기사인 거 아닌가. ‘아니면 말고, 그냥 이렇게 하면 되지’ 이런 태도가 굉장히 많구나 생각을 했다”고 꼬집었다.

언론 보도가 활발하지 않은 반면 SNS에선 자발적으로 단식에 관심을 갖는 시민들이 있다. 단식 하루에 한 장씩, 임 지회장의 단식일지 이미지가 트위터 등에서 공유되면서 그의 이야기를 접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전국에 있는 파리바게뜨 조합원들에게 소식을 전할 방법을 고민하다, 그림을 그리는 친구의 도움을 받아 단식일지를 쓰게 됐는데 예상보다 많은 관심이 돌아왔다고 한다. 일부 시민들은 자발적으로 ‘파리바게뜨 불매’에 동참하겠다면서, 파리바게뜨를 비롯한 SPC계열 브랜드를 공유하고 있다.

임 지회장은 “사실 노조는 불매운동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저희 일자리이기도 하고, 가맹점주와 척을 질 이유도 없고. 그래서 안 하는데 관심을 갖고 지지를 해주시는 거니까 감사했다”면서 “언론에 나가면 좋긴 하겠지만 이렇게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연대하는 투쟁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의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단식농성장. 천막에 연대 메시지들이 붙어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의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단식농성장. 천막에 연대 메시지들이 붙어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그러나 막연한 고마움과 희망으로 단식을 지속할 수는 없다. 임 지회장 단식은 한 달을 넘겨 32일차에 접어들었다. 통상 단식 30일이 넘어가면 신체기능을 회복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제는 앉아 있는 것도 힘들어 하루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상태에 이르렀다. 의료연대에서는 2~3일에 한 번씩 임 지회장의 몸 상태를 살피고 있다. 지난해 8월 38개 노동·청년·시민단체가 출범한 ‘파리바게뜨 시민대책위원회’, 정의당 등은 SPC가 즉각 적극적인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임 지회장은 무엇보다 현장에서 하루하루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이 좌절감을 갖지 않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임신했을 때 최대한 모성권 보호를 받도록, 산업재해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도록 지원을 요청하도록 돕고 있다는 것이다. 노동조합 설립 이후 근골격계 질환 등에 대한 산업재해 인정 사례가 늘었다는 점도 전했다.

그는 “사회적 합의를 처음 했을 때에는 정말 근무 환경이 싹 바뀌겠구나, 진짜 기사들이 적정 급여 받고 대우 받으면서 일하겠구나 희망이 있었다. 이쯤되니 저희도 악만 남아서 투쟁하는데 일반 조합원이나 기사들은 ‘해도 안 되는 거야’라는 좌절감 같은 게 생기는 것”이라며 “그것 때문에라도, 그것 때문에라도 이 약속은 이행이 제대로 돼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의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단식농성장. 천막에 연대 메시지들이 붙어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7일 서울 양재동 SPC그룹 사옥 앞의 임종린 파리바게뜨지회장 단식농성장. 천막에 연대 메시지들이 붙어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날 농성장엔 휴일에 맞춰 임 지회장을 응원하러 온 김예린 파리바게뜨지회 대전분회장이 함께 자리를 지켰다. 인터뷰가 끝날 무렵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김 분회장은 조심스럽게, 천천히 입을 뗐다.

“우리가 밥 먹을 때 ‘감사해요’ 하고 먹고, 학교 다닐 때도 간식 같은 거 먹을 때 ‘감사합니다’라고 하잖아요. 저희한테 감사까지는 아니더라도 빵을 먹을 때, 커피를 마실 때, 그 뒤에 가려진 노동자가 있다는 걸, 이만큼 있다는 걸 알아주시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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