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11월, ‘월트 디즈니’가 한국에 새롭게 모습을 등장했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작년 10월, 그리고 올해 4월 ‘월트 디즈니’는 다시 한국에서 모습이 사라졌다. 뭔가 이상한 소리처럼 느껴지겠지만 어느 정도는 맞는 이야기인 건 분명하다. 작년 11월, 월트 디즈니 전세계 차원에서 추진하는 OTT 서비스 ‘디즈니 플러스’가 한국에서 서비스를 시작되었지만, 그 직전인 작년 10월에는 기존 월트디즈니코리아가 서비스하던 채널 ‘디즈니 채널’과 ‘디즈니 주니어’의 송출이 중단되었기 때문이다. 해당 채널들을 운영하던 월트디즈니코리아의 자회사 ‘디즈니채널코리아’를 LG유플러스의 자회사인 ‘미디어로그’에 매각하며 해당 채널들은 ‘더 키즈’라는 신생채널로 탈바꿈하게 되었다.

그나마 이러한 흐름은 이해할 수 있는 여지라도 있었다. 미국의 월트디즈니 본사가 강력하게 디즈니플러스를 전세계에 마케팅하기 위해 큰 공을 들였고, 어떻게든 시청자를 기존 케이블TV나 IPTV에서 끌어내 OTT로 옮기기 위하여 한국 뿐만 아니라 다수의 국가에서 디즈니채널 송출 중단은 이미 공표한지 오래였다. 한국에서는 작년 8월 디즈니채널코리아의 매각 소식이 들려오며 기존 운영 채널의 폐국과 타 채널로의 변경이 가시화되었다. 아쉽지 않은 사람이 없진 않았겠으나, 그래도 뒤에서 말할 사례들에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준비된 이별’을 한 셈이 되었다.

하지만 화제성은 이보다 낮지만, 무게의 경중으로 따지면 디즈니 채널의 폐국보다 더 큰 사건이 있었다. 바로 지난 4월 7일, 월트 디즈니의 한국 내 실물 2차 매체(DVD, 블루레이, 4K UHD 블루레이)의 발매가 3월 30일에 출시된 ‘엔칸토: 마법의 세계’를 끝으로 이미 중단한지 오래였으며, 앞으로는 월트 디즈니 계열 모든 영상 타이틀의 발매를 종료한다는 발표였다. 그 소식은 제대로 보도자료를 통해 각 매체에 뿌려진 것도 아니고, 월트디즈니코리아 차원의 발표도 아니었다. 한국에서 월트디즈니 계열 영상의 실물 2차 매체 발매를 위탁받고 있는 ‘SM라이프디자인그룹’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서 발표된 이야기였다.

▲월트디즈니 컴퍼니 산하 홈 엔터테인먼트 모든 타이틀 출시 종료를 알리는 알림글. 
▲월트디즈니 컴퍼니 산하 홈 엔터테인먼트 모든 타이틀 출시 종료를 알리는 알림글. 

어찌하여 본사가 아니라 뜬금없이 SM엔터테인먼트의 자회사가 이 소식을 공표하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월트디즈니를 비롯해 한국에 진출한 모든 미국 할리우드 직배사(소니픽쳐스,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픽쳐스, 파라마운트픽쳐스)는 2000년대 중반이 되어 서로 발을 뺀 시기만 달랐을 뿐, 결과적으로는 모두 실물 2차 매체 사업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대신 자신들이 직접 실물 2차 매체를 발매하지는 않아도 지속적으로 작품이 발매될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이들 기업은 자신들 대신 자사 영화의 실물 2차 매체를 발매해줄 기업들을 물색해 대리인으로 세웠다. 2022년 현재 월트 디즈니의 실물 2차 매체를 SM라이프디자인그룹이 맡고 있었다면 소니픽쳐스의 영화는 최근까지 2인조 그룹 ‘노라조’가 소속되어 있던 것으로 유명한 연예기획사 ‘마루기획’이, 워너브러더스, 유니버설픽쳐스, 파라마운트픽쳐스의 영화는 ‘해리슨앤컴퍼니’라는 실물 2차 매체 전문 발매사가 대행하고 있다.

한국이 유난히 실물 2차 매체 시장의 추락 속도가 빨랐을 뿐 VOD 시장의 증가세, 그리고 결정적으로 OTT 시장이 대두되며 일부 열정적인 콜렉터를 제외하면 전세계적으로 실물 2차 매체 시장은 감소세인 것은 분명하다. 월트 디즈니 계열 실물 2차 매체의 발매 중단도 그런 점에서는 언젠가 찾아올 일이긴 하다. 그러나 한국과 비슷한 경제 규모의 국가에서 월트 디즈니 계열 실물 2차 매체의 완전 철수는 결코 흔하지 않은 사건이다. 동시에 한국 내에서의 월트 디즈니 실물 2차 매체 사업은 이제는 쉽게 볼 일도 없는 VHS 규격의 비디오테이프가 대세이던 1990년대부터 30년 가량 지속된 흐름이었다. 어차피 사라질 운명이었다고 하더라도, 지사 차원에서 결코 짧지 않은 역사를 회고하고 그에 대한 경의를 바치는 것은 어려운 것이었을까?

올리브 채널 사라지고 tvN스포츠가 생기고

물론 이런 일은 비단 월트디즈니코리아만의 문제는 아니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월트 디즈니의 2차 매체 발매 중단 소식이 알려지지 2주도 지나지 않아 비슷한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이번 소식의 주인공은 CJ ENM이다. 이들은 곧 다가올 5월 20일부터 ‘tvN SPORTS’(이하 tvN 스포츠)라는 채널을 신규 개국할 것임을 선언했다. 물론 새로운 채널이 그냥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근래 케이블/IPTV 채널 사업에 뛰어든 미디어 사업자들의 전략은 각 케이블/IPTV 서비스 사업자와 협상해서 채널을 추가하며 밑바닥부터 새롭게 알리는 길 대신, 앞서 ‘디즈니 채널’이 ‘더 키즈’가 된 것처럼 기존에 운영 중인 채널을 탈바꿈해 채널 접근성을 높이는 전략을 택하고 있다.

▲CJ ENM 로고.
▲CJ ENM 로고.

그렇다면 무슨 채널이 사라지는 것일까. 바로 ‘올리브 채널’이 사라진다. 올리브는 본래 아직 CJ ENM이 규모도 위상도 훨씬 작았던 ‘CJ미디어’였던 시절인 2000년 ‘채널F’라는 이름으로 개국한 요리 전문 케이블 채널이었다. 이후 2002년에는 ‘푸드 채널’로 채널 이름을 변경했지만 요리 전문 케이블 채널이라는 정체성은 한동안 잘 유지를 해왔었다. 그러나 당시는 지금처럼 ‘쿡방’(요리 전문 방송)이나 다양한 요리 영상을 보려는 수요가 그렇게 크지 않았을 때이다. 도무지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던 건지 당시 CJ미디어는 이 ‘푸드 채널’을 전면적으로 갈아엎을 계획을 세우게 된다.

그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올리브’라는 이름은 2005년 처음으로 등장했다. 그것도 본래 ‘푸드 채널’이 지니고 있던 요리 전문 채널이라는 정체성을 모두 엎고, ‘여성 라이프스타일 채널’로 새롭게 탈바꿈한 모습이었다. 이는 누가 봐도 명백히 2000년대 중반부터 2010년대 중반을 풍미한 20-30대의 여성 시청자를 타깃으로 한 케이블 채널 ‘온스타일’을 노린 행보였다. 당시 온스타일은 전설이 된 로맨틱 코미디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나 ‘가십걸’을 비롯해 ‘도전! 슈퍼모델’이나 ‘프로젝트 런웨이’를 비롯한 해외 패션 계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방송하며 인지도를 쌓고 있었다. 이렇게 쌓은 명성을 바탕으로 다시 ‘도전! 슈퍼모델 코리아’나 ‘프로젝트 런웨이 코리아’ 같은 한국판 서바이벌을 만들며 계속 세를 확장해 나간 채널이기도 하다.

올리브는 당시로서는 막강하게만 보였던 온스타일에 맞서 2006년에 첫 방송을 시작한 ‘Get it Beauty’(겟 잇 뷰티) 등의 프로그램으로 맞섰지만, 올리브의 인지도는 온스타일을 쉽게 넘지 못했다. 하지만 얼마 안가 그럴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다. 당시 온스타일을 운영하던 모회사는 오리온그룹 계열의 온미디어였다. 한때는 멀티플렉스 극장 체인 메가박스, 영화 투자/배급사 쇼박스, 그리고 대형 케이블PP 온미디어를 모두 소유하며 본업인 제과 사업 뿐만 아니라 미디어 사업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하던 오리온그룹은 기업 내 구조조정에 착수하며 차츰 회사들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2007년 메가박스를 호주의 사모펀드인 맥쿼리에(현재는 중앙그룹이 소유하고 있다.) 매각하더니, 2009년 12월에 온미디어를 CJ그룹에 매각을 한 것이다. 그 결과 기존 CJ그룹이 소유하던 CJ미디어와 온미디어는 한 가족 회사가 되었다. (이후 2011년 온미디어 법인은 CJ미디어를 비롯한 CJ그룹 계열 미디어 계열사들과 합쳐져 CJ ENM이 된다.)

▲ 올리브 네트워크 ‘밥블레스유’.
▲ 올리브 네트워크 ‘밥블레스유’.

이제 더 이상 올리브 채널이 온스타일에 맞서 경쟁을 하지 않아도 된 것이다. 동시에 이미 온스타일이 확고하게 지니고 있던 ‘젊은 여성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채널’이라는 이미지를 애써 그대로 따라가지 않아도 되었다. 올리브는 이때부터 다시 초창기 ‘채널F’나 ‘푸드 채널’이 지향했던 요리 전문 채널로 돌아가게 된다. 여기에 운이 좋게도 2010년대는 서서히 요리 전문 프로그램이 대두되던 시기기도 했다. 올리브의 채널 성격 변경은 이때까지만 해도 완벽히 성공한 것으로 보였다. 일식 요리사 최강록을 비롯해 수많은 스타 요리사를 배출한 요리 서바이벌 ‘마스터 셰프 코리아’, 한식 중심이자 이미 오랜 시간 경력이 쌓인 요리 장인들을 중심으로 펼쳐진 요리 서바이벌 ‘한식대첩’, 마치 일반적인 토크쇼처럼 가벼운 느낌으로 유명 셰프의 요리를 만나보는 컨셉의 ‘올리브쇼’, 20-30대 여성을 본격적인 타깃으로 삼은 맛집 소개 프로그램 ‘테이스티 로드’, 신동엽과 성시경이 진행한 요리 버라이어티 ‘오늘 뭐 먹지?’ 등의 인기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고 배출되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상황은 다시 바뀌었다. 요리 전문 프로그램의 열기가 식어가던 것도 있지만, 급속도로 확대되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같은 스트리밍/OTT 서비스들은 케이블/IPTV 채널의 영향력을 빠르게 갉아먹었다. 요리 프로그램은 다시 어렵겠다고 생각한 것이었을까. 2017년 CJ ENM은 올리브 채널의 로고를 바꾸는 동시에 다시 채널의 성격을 2010년 이전처럼 ‘라이프스타일 채널’로 성격을 변경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새로운 프로그램을 전방위로 배치한 것도 아니었다. 같은 CJ ENM 계열의 종합 엔터테인먼트 채널 tvN의 프로그램이 동시방송되거나 재방송되는 일이 늘어났다.

설명 한마디 없이 사라지는 채널들

2019년에는 ‘맛있게, 올리브’라는 슬로건을 내걸었지만 그렇다고 딱히 요리 채널임을 선언한것도, 요리 프로그램을 늘린 것도 아니었다. tvN DRAMA(구, 스토리온 / OtvN), tvN SHOW(구, XTM / XtvN) 같은 tvN 계열 채널들과 하나도 다를 바 없이 구색 맞추기로 오리지널 프로그램을 한두개 넣은 것을 제외하면 tvN 프로그램을 무한히 재방송하는 것 이상을 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2022년 4월, 올리브 채널은 이번 CJ ENM의 보도자료를 통해 채널의 폐국과 전환이 선언되며 22년의 파란만장한 역사를 마치게 되었다. 딱히 올리브 채널이 어떤 성격의 채널이었으며, 그 채널을 통해 어떤 프로그램들이 사랑을 받았는지에 대한 이야기는 한 마디도 없었다. 그저 올리브 채널을 없애고 최근 CJ ENM이 다시 집중하는 ‘스포츠’ 프로그램을 살리기 위해 ‘tvN 스포츠’를 개국한다는 이야기가 주가 되는 보도자료였다.

누군가는 미디어 기업들의 이러한 행보는 지극히 당연한 ‘사업 구조조정’의 일환이며, 너무 지나치게 쌍심지를 켜고 달려드는 것이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디즈니 채널이 더 키즈로 바뀌고, 올리브 채널이 tvN 스포츠로 바뀐 것 이외에도 이미 수도 없이 채널의 매각과 폐국, 신규 채널로의 변경 개국이 계속 있었다. 그런 차원에서 이는 그저 일상적인 기업의 ‘선택과 집중’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채널을 계속 존속하고, 어떤 채널에 종언을 선고하여 새로운 채널로 탈바꿈할 것인지는 기업 고유의 경영 행위라 하더라도 그 미디어 채널이 지닌 역사가 10년은 훌쩍 넘는 2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면, 사라지는 미디어의 역사를 최소한으로라도 회고하고 기억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기는 것이 오랜 시간 이 미디어를 사랑한 수많은 시민과 미디어를 통해 방송하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고생했던 미디어 노동자를 위한 예의가 아닐까.

▲온스타일의 로고.
▲온스타일의 로고.

온스타일 역시 그렇게 사라졌었다

이미 CJ ENM은 제대로 된 작별 인사도 없이 많은 시청자를 지녔던 채널들을 없앤 바가 있다. 앞서 언급한, 한때 올리브 채널의 영원한 라이벌이었던 온스타일이 그 예시다. 201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온스타일은 ‘나답게 나로서기’라는 캠페인 슬로건을 내걸며 당시 막 불붙은 ‘페미니즘 리부트’와 연계해서 다양한 여성 시청자를 위한 프로그램을 기획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렇게 되는 일은 없었다. ‘나답게 나로서기’ 문구가 등장한 2017년 그 해 8월부터 12월까지 방송한 ‘뜨거운 사이다’ 이후, 온스타일은 더 이상 그런 경향의 프로그램을 방송하지 않았다. ‘뜨거운 사이다’에 아무리 여성혐오적인 공격이 잇달았다고 하더라도, 멋드러진 슬로건을 내세웠으면서 이에 대한 어떠한 후속 조치가 없는 것은 참으로 이상한 모습이었다.

이후 올리브가 그랬던 것처럼 온스타일 역시 서서히 자체 프로그램이 급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2021년을 끝으로 기존 온스타일 채널은 tvN의 드라마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재방송하는 자매채널 ‘tvN STORY’로, 온스타일 브랜드는 CJ ENM의 홈쇼핑 채널 및 플랫폼 ‘CJ오쇼핑’에 이어져 ‘CJ온스타일’로 재탄생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딱히 온스타일의 실질적인 폐국을 회고하는 일은 한 번도 없었다. 한때 CJ ENM의 경쟁사가 처음 만든 채널이라고 하지만 한국 대중문화사에 한 획을 그었던, 심지어 폐국 이전에는 시대의 흐름과 발맞춤하려고 했던 채널이 갑자기 사라지고 그 이름은 철저히 상업적인 성격의 홈쇼핑 채널로 이어졌다. 어떤 점에서는 참으로 상징적인 행보였다.

▲온스타일.
▲온스타일.

2022년 현재 사실상 운영이 중단되었다고 봐도 무방한 CJ ENM의 e스포츠 전문 채널 ‘OGN’(구, 온게임넷)도 마찬가지다. 2000년에 개국해, 온스타일처럼 본래 온미디어 소유였던 이 채널은 CJ ENM이 인수한 이후로도 ‘게임 전문 채널’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일세를 풍미한 블리자드의 게임 ‘스타크래프트’의 리그전에 이어 지금도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라이엇게임즈의 게임 ‘리그 오브 레전드’(LoL)과 블리자드의 새 게임 ‘오버워치’의 새 리그전을 재빨리 만들며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었다.

하지만 e스포츠의 주도권이 방송사에서 게임 개발/배급사로 무게 중심이 바뀌기 시작하자 상황은 빠르게 바뀌었다. 2010년대 이후 OGN를 대표하던 프로그램이자 이벤트인 LoL과 오버워치의 공식 리그전은 더 이상 OGN이 개최하지도 못하고, 방송할 수도 없게 되었다. 야심차게 OGN이 입주했던 상암 DMC 에스플렉스센터의 ‘서울 OGN e스타디움’도 서서히 비는 날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급하게 새롭게 인기를 얻던 ‘배틀그라운드’ 등 여러 게임의 리그전을 도입하고, 온라인 전용 프로그램을 만들기도 했지만 그다지 큰 수익이 나지는 않았던 듯 싶다.

결국 OGN은 2020년을 끝으로 사실상 운영이 중단된 상태가 되었다. 올리브나 온스타일과 달리 채널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니 완전한 중단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2021년 갑작스럽게 방영된 신 프로그램 ‘돌아온 G-맨’을 제외하면 단 하나의 새 프로그램도 나오지 않는 상황에서 이미 이 채널의 실질적인 수명은 끝이 났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2020년 11월에는 여러 매체를 통해 폐국설이 나왔지만 CJ ENM을 이를 공식적으로 부정했다.

▲MBC게임이 사라진다는 안내문. 
▲MBC게임이 사라진다는 안내문. 

그러나 채널은 간신히 남아 있어도 OGN은 기존에 입주하던 서울 에스플렉스센터에서 모두 철수해 인근 CJ ENM 본사로 옮기고, 서울 OGN e스타디움의 구조물도 모두 철거하며 채널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없음은 완전한 기정 사실이 되었다. (이후 서울 OGN e스타디움은 2022년부터 아프리카TV가 운영권을 새로 획득해 ‘상암 콜로세움’으로 재개장하였다.) 이후로 OGN은 계속 수많은 매각설이 들려오고 있지만 확실한 소식은 하나 없는채, 그렇다고 CJ ENM 차원에서 OGN에 대한 제대로 된 회고의 움직임도 없는 상황이 계속 되고 있다.

채널이 사라지더라도 최소한의 예우는 있어야 한다

분명 미디어 사업은 자선 사업이 아니고, 제대로 수익이 나지 않으면 결국 매각하거나 철수할 수 밖에 없는 운명인 사업이다. 그러나 짧게 시도하고 중단하는 것이 아니라 한때는 많은 사랑을 받아 지금도 꾸준한 팬층을 유지하고, 최소 20년은 넘는 역사를 지닌 미디어를 중단하는 것의 무게는 결코 가볍지가 않다. 최소한 이 미디어가 지닌 사회문화적인 의미는 무엇이었는지, 이 미디어를 위해 시간을 비롯해 자신의 많은 것을 바친 시청자와 제작진, 미디어 노동자에게 있어 이 채널은 무엇이었는지 돌아볼 여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라지는 것은 사라지더라도, 최소한의 ‘예우’ 없이 채널에 새로운 프로그램을 주지 않고 몰락 직전으로 몰아가며 한 줌의 남아있던 시청자를 남김 없이 털어내는 이 방식은 참으로 무례하기 짝이 없는 모습이다.

그런 점에서 한때 OGN의 라이벌 채널이었던 MBC플러스 산하의 e스포츠 채널 ‘MBC GAME’이하 MBC 게임)의 2012년 1월 페국은 그나마 ‘헤어질 기회’를 주는 이별이었다. MBC 게임의 폐국과 해당 채널 슬롯을 활용한 ‘MBC MUSIC’(현, MBC M)의 개국도 무척이나 급하게 진행되며 수많은 e스포츠 채널의 원성을 샀다. 그러나 최소한 MBC 게임은 갑작스럽게 채널의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에서 ‘아듀! MBC GAME’ 같은 고별 방송을 통해 채널의 역사를 회고하는 순서를 마련했다. 역설적으로 지금 간신히 목숨만 유지하는 OGN이나 이미 사라진 온스타일, 곧 사라질 올리브 채널의 상황을 생각하면 이 고별 인사는 그나마도 친절한 이별이었다.

물론 새로운 채널의 등장은 이들 채널의 퇴장을 단숨에 덮을 가능성이 높다. MBC 게임을 기어하는 사람들이 이제 그리 많지 않듯 온스타일, 올리브를 기억하는 사람도 서서히 감소할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쉽게 미디어의 문을 닫는 것은, 결국 새로이 등장하는 미디어도 그렇게 될 가능성을 높음을 뜻한다. 마치 MBC 게임이 뒤를 이어 개국한 MBC MUSIC도 개국 10년도 안 되어 바로 다른 채널로 바뀐 것처럼, 심지어는 CJ가 tvN 스포츠 개국 전에 소유했던 스포츠 채널 ‘엑스포츠’를 쉽게 SBS에 매각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SBS CNBC’(현, SBS Biz)가 되었던 것처럼 말이다.

제대로 회고의 절차도 없이 오래된 것을 그저 없애는 상황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것은 얼마나 그 뿌리를 잘 다질 수 있을 것인가. 그렇게 각각의 미디어가 지닌 역사도, 맥락도 모두 쉽게 사라지는 세상이 도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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