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대 강준만 교수가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에 신랄한 비판을 가한 데 대해 유시민 열린우리당 의원이 "열린우리당을 기회주의 집단으로 규정한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하나 강 교수의 시선이 닿지 않은 다른 구석도 있다"는 응답을 했다. 

강준만 교수는 국내 정치에 대한 한동안의 침묵을 깨고 '월간 인물과사상' 9월호에 <조중동의 음모에 휘둘리는 노무현: 2004년 7월의 한국정치>라는 글을 실어 반향을 일으켰다. 이와 관련해 유시민 의원은 24일 '참여정치연구회' 홈페이지(www.kkida.net)에 <우리는 정당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존경하는 강준만 선생님께>라는 편지 형식의 글을 올렸다.

강준만 교수는 220장 분량에 달하는 장문의 기고문을 통해 노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 행보, 대통령 탄핵 사태와 4.15 총선, 민주당의 운명과 '호남 민심' 등 여러가지 사안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밝혔다. 유시민 의원은 이 가운데 주로 열린우리당 비판과 관련해 정당개혁운동적 의미를 강조하는 답변을 했으며, '민주당의 운명'에 대해 간단히 언급했다.

유시민 의원은 글머리에서 "(강준만) 선생님은 노무현 대통령을 독선에 사로잡힌 '어설픈 마키아벨리'로, 열린우리당을 '기회주의 정치집단'으로 규정했다. 저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낄 능력조차 없는 '멸사봉공 정신 중독자'라고 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준만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아프다"며 운을 뗐다.

유 의원은 "재작년 민주당의 소위 반노파가 공공연한 후보 교체 책동을 벌이던 시절, (강준만) 선생님은 '정당으로 쳐들어가자'고 외쳤다. 우리는 그 말을 했을 때 선생님이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뜻을 품고 정당으로 쳐들어왔다"며 "다른 정당보다는 열린우리당에서 그 뜻을 실현하는 것이 현실적 의미가 크기도 하고, 또 여기서 그 뜻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기에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유 의원은 "만약 최근 한화갑 대표가 말한 것처럼, 민주당이 '당비 내는 당원이 중심이 되어 새롭게 변화'하려는 노력을 2년 전에 했더라면, 아마도 저는 지금 민주당 당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의 다수파는 그러한 혁신에 대한 요구를 거절했다. 그 결과가 분당이었다고 저는 생각한다"며 "그런데 이 소박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쏟은 그 모든 노력이, 겨우 '기회주의 정치세력'의 승리를 도운 결과가 되었다니,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열린우리당을 기회주의 집단으로 규정한 선생님의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한다. 말씀하신 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에 그런 면이 폭발적인 양상으로 노출될 수도 있다고 본다"며 "그러나 열린우리당에는 선생님의 시선이 닿지 않는 다른 구석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려고 한다"고 덧붙였다.

유 의원이 당내 기회주의의 산물로 꼽은 것은 "당비를 내지 않아도 당 행사나 교육에 한두번 참여하면 기간당원으로 인정해주자는" 당헌 개정안. 그러나 유시민 의원은 이러한 당헌 개정안에 대해 항의 단식과 집회가 벌어지고 있다면서 "우리는 지금 열린우리당 안에서 정당개혁운동을 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유 의원은 또 "민주당의 몰락에 대해서 너무 안타까워하지 말라"며 "민주당은 자기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를 다한 뒤 소멸하는 중"이라고 말했다. 그는 "열린우리당에 대한 선생님의 부정적 평가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이것이 제가 당원으로서 해야 할 일"이라며 글을 맺었다.

강준만 교수도 개혁당 당원이었다

흥미로운 일은 "정당으로 쳐들어가자"고 했던 강준만 교수 자신도 한 동안 유시민 의원과 같이 개혁당 당원이었다는 사실이다. 2002년 대선 이전 노무현 후보 지지 논리를 설파하고 개혁당 창당에도 적극적인 지지를 표명했던 강준만 교수는 2002년 10월 개혁당에 입당했다. 그러나 강준만 교수는 대선 이후 민주당 신주류 진영과 개혁당 인사들의 '신당 전략'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고 결국 민주당 분당 사태 이후 개혁당을 탈당했다.

그렇게 보면 "우리는 정당으로 쳐들어왔다"고 말한 유시민 의원과 강준만 교수의 차이가 '정당 참여'와 '비참여' 자체에 있는 것은 아닌 셈이다. 예전에는 노무현 후보를 지지하는 입장에 같이 섰으나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 행보에 대한 상이한 시각으로 인해 이제는 " '적대적 긴장관계'를 당분간은 견뎌나가야 할"(유시민 의원) 상황이 됐다.

다음은 유 의원이 강준만 교수에게 답한 편지 전문.

우리는 정당으로 쳐들어왔습니다
-존경하는 강준만 선생님께-

존경하는 강준만 선생님. 유시민입니다.

'존경하는'이라는 말을 저는 헤프게는 쓰지 않습니다. 선생님은 월간 <인물과 사상> 9월호에서 노무현 대통령을 독선에 사로잡힌 '어설픈 마키아벨리'로, 열린우리당을 '기회주의 정치집단'으로 규정했습니다. 저에 대해서는 부끄러움을 느낄 능력조차 없는, '멸사봉공 정신 중독자'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사람도 아닌 강준만 선생님에게 이런 말을 들으니 마음이 많이 아픕니다. 오늘의 한국정치를 보는 시각이 저와는 너무나 크게 다릅니다. 그렇지만 지식인으로 조사연구하고 발언하는, 선생님 나름의 방법과 진지한 자세에 대한 저의 존경심은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먼저 말씀드립니다.

우리의(여기서 우리란, 저를 포함하여, 노무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함께 열린우리당의 열성당원으로 참여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욕심이 지나친 것일까요? 재작년 민주당의 소위 반노파가 공공연한 후보 교체 책동을 벌이던 시절, 선생님은 "정당으로 쳐들어가자"고 외쳤습니다. 기억하시리라 믿습니다. 우리는 그 말을 했을 때 선생님이 생각했던 것과 똑같은 뜻을 품고 정당으로 쳐들어왔습니다. 다른 정당보다는 열린우리당에서 그 뜻을 실현하는 것이 현실적 의미가 크기도 하고, 또 여기서 그 뜻을 이루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었기에 열린우리당 창당에 참여했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사실 무척이나 소박합니다. 

우리의 첫 번째 소망은 깨끗한 정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 또는 이미 되어 있는 사람들이 선거구의 당원조직을 관리하는 데 큰돈을 쓸 필요가 없고, 당 안팎의 중요한 선거가 있을 때 당원들에게 봉투를 돌리지 않아도 되고, 그래서 불법 정치자금을 만질 필요가 없는 그런 깨끗한 문화를 가진 정당을 원합니다. 그래야만 우리 국민도 흠 없는 지도자를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남이 해주지 않기에 우리 손으로 하려고 열린우리당에 들어왔습니다.

우리의 두 번째 소망은 헌법이 규정한 주권재민의 원리에 따라 당원이 주인 노릇을 제대로 하는 민주적인 정당을 만드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입니다. "열린우리당의 당권은 당원에게 있다. 모든 당내권력은 당원으로부터 나온다." 우리는 열린우리당이 이것을 기본정신으로 삼는 정당으로 발전하기를 바랍니다. 공직선거 후보 선출도 대의원과 당지도부 선출도 모두 당원들 손으로 하는 정당을 절실하게 원합니다.

존경하는 강준만 선생님.

'정당으로 쳐들어가자'고 한 2년 전의 말씀을 돌이켜 보십시오. 선생님도 우리와 같은 소망을 가지셨던 게 아닌가요?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민주당으로 '쳐들어가서' 이 뜻을 펴려고 했다면 오늘날 선생님이 이번 글과 같은 것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 최근 한화갑 대표가 말한 것처럼, 민주당이 "당비 내는 당원이 중심이 되어 새롭게 변화"하려는 노력을 2년 전에 했더라면, 아마도 저는 지금 민주당 당원이 되어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당시 민주당의 다수파는 그러한 혁신에 대한 요구를 거절했습니다. 그 결과가 분당이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소박한 소망을 이루기 위해 쏟은 그 모든 노력이, 겨우 '기회주의 정치세력'의 승리를 도운 결과가 되었다니, 저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선생님의 주장을 반박하려고 이 글을 쓰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열린우리당을 기회주의 집단으로 규정한 선생님의 견해에 부분적으로 동의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노무현 대통령의 임기 말에 그런 면이 폭발적인 양상으로 노출될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에는 선생님의 시선이 닿지 않은 다른 구석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최근 언론은 기간당원 자격에 관한 당헌 조항 개정 여부를 둘러싼 갈등을 당권투쟁의 전초전이라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당비를 내지 않아도 당 행사나 교육에 한두 번 참여하면 기간당원으로 인정해 주자는 것이 개정안의 요지입니다. 이 개정안을 내놓은 것은 정치를 오래 한 국회의원들입니다. 반면 창당 때부터 참가해 당비를 냈고 총선 때 열렬한 자원봉사를 했던 당원들은 이것을 '도로옛날당'으로 돌아가자는 주장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단호하고 맹렬하게 반대합니다. 그래서 얼마 전에는 중앙당사에서 열흘 가까이 항의 단식을 했고, 수백 명의 평당원들이 당사에 모여 항의집회를 열기도 했습니다. 젊은 열혈당원 가운데 옛 개혁당 당원이었던 분들이 제법 많아서 그런지, 당 안팎에서는 마치 제가 이 평당원 운동을 배후조종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비난하는 소리도 들립니다. 개혁당 출신이 당을 접수하려고 한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저는 이 당헌개정안을 기회주의의 산물로 평가합니다. 총선 전에 기간당원이 주인 노릇 하는 깨끗한 정당을 만들어 잘해 보겠노라고 약속해 놓고, 여기에 동의하는 세력을 모두 모아 창당해 놓고서, 이제 와서는 국회의원이 직접 '관리'하는 사조직과 같은 당원조직을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국회 과반수 정당이 되었고, 게다가 자기는 국회의원 배지까지 달았으니, 그렇게 하는 게 편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기자들이 자꾸 당헌 개정 논란을 당권투쟁으로 보도하면서 저에게 당의장 출마 여부를 묻기에,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약 내가 혹시라도 소위 당권을 탐낼까 걱정이 되어서 당헌의 기간당원 규정을 그렇게 고치려고 하는 분이 있다면, 그리고 그분들을 안심시켜서 현행 당헌 규정을 지킬 수 있다면, 그렇다면 나는 내년 2월 전당대회에서 당의장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입니다.

존경하는 강준만 교수님.

우리는 지금 열린우리당 안에서 정당개혁운동을 하는 중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이 훌륭한 대통령이든 '어설픈 마키아벨리'든, 그에 상관없이 우리는 이 일을 합니다. 열린우리당에 기회주의자들이 많이 있든 적게 있든 상관하지 않고 이 일을 할 것입니다. 한화갑 대표 말씀처럼 열린우리당이 대통령 임기가 끝나면 사라질 정당인지, 아니면 오래도록 한국사회를 책임지는 정당이 될지, 아직은 아무도 모릅니다. 만약 우리의 정당개혁운동이 실패한다면 한 대표의 예언이 들어맞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노무현 대통령 임기 말까지 기다리지 않아도, 열린우리당이 오래 존속할 수 있는 건강한 정당이 될지 여부는 얼마든지 판단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어쩌면 올 여름의 이 늦더위가 다 가시기도 전에 그 판단을 할 수 있는 상황이 도래할 수도 있습니다.

민주당의 몰락에 대해서 너무 안타까워하지 마십시오. 민주당은 자기에게 부여된 역사적 과제를 다한 뒤 소멸하는 중입니다. 그 소멸이 재창조를 통해 이루어졌더라면 훨씬 아름다웠겠지만, 그렇지 않다고 해서 민주당의 소멸을 추하게 만든 사람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선생님이 '인간관계' 때문에 민주당의 분열과 몰락을 안타까워하는 게 아닌 것처럼, 저도 노무현 대통령과의 인간관계 때문에 정당개혁 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은 인정해 주셨으면 합니다.

존경하는 강준만 선생님.

선생님은 지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노무현과 열린우리당에 관련된 정치현상을 분석하고 예측하고 평가하고 비판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제 정치인입니다. 언제까지 정치를 할지는 모르겠으나, 정치를 하는 동안만큼은 제가 지지하는 대통령의 성공과 제가 속한 정당의 발전을 실현하는 데 전력을 기울일 것입니다. 열린우리당에 대한 선생님의 부정적 평가가 너무 성급했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 이것이 제가 당원으로서 해야 할 일입니다. 이 글을 여기 참여정치연구회 홈페이지( www.kkida.net)에 올리는 것은, 이곳이 정당개혁의 꿈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일을 해내는 데 실패한다면 오늘 선생님의 평가와 비판이 옳다는 것을 입증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이 피할 수 없는 '적대적 긴장관계'를 우리 두 사람 모두 당분간은 견뎌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늦더위 건강 조심하시고
늘 건필하십시오.

2004년 8월  24일
열린우리당 국회의원 유시민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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