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사가 타블로이드화됨에 따라 기자들의 인식이 변하고 있다. 작년에 국회출입기자 심층인터뷰를 해보니 조회 수로 인해 기자들 인식이 변화하고 있었다. 10여년 전부터 알던 훌륭한 기자가 있다. 모 정당의 의원이 청담동에서 파는 초코파이를 각 의원실에 돌렸는데, 이를 기사화하면서 초코파이에 붙은 해당 의원의 사진, 초코파이 가격, 파는 곳 등을 상세히 소개했다. 기자는 스스로 ‘내가 이런 기사를 왜 쓰고 있지?’라고 생각하면서 썼는데, 조회 수가 엄청 나왔다고 하더라. 주요 매체들도 줄줄이 받아썼다. 이런 상황에 놓이면 기자들의 인식이 변한다. 사명감을 갖고 일하는 게 쉽지만 않다. 회사원으로 변해간다. 의식 있고 똑똑한 기자들이 언론 현장을 떠나는 측면에서 우려된다.” (김창숙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교수)

한국언론학회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세미나에는 김창숙 이화여대 연구교수, 이나연 연세대 교수가 발제를 맡았다.

발제를 맡은 김창숙 이화여대 연구교수는 지난해 12월7일자 조선일보와 중앙일보 네이버 모바일 구독 페이지 메인 화면에 걸린 기사들을 예로 들며 “자세히 살펴보면 비아냥거림, 갈등을 조장하고 따옴표 인용 중계 방식의 제목들이다. 내용도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사건들이다. 대선 후보자 부인 간 대결 구도 조장 등이다. 전통을 가진, 최고부수를 지닌 언론사들의 대표 기사라고 하기엔 부적절하다”고 설명했다

▲한국언론학회 발표 자료집. 사진=한국언론학회.
▲한국언론학회 발표 자료집. 사진=한국언론학회.

지난해 네이버 언론사별 랭킹뉴스 중 전체 조회수 1위부터 50위 기사 현황을 보도한 기자협회보의 통계자료를 보면 ‘이혼 후 ‘자연인’된 송종국, 해발 1000m 산속서 약초 캔다’(중앙일보 213만), ‘[법알못] 대구 상간녀 결혼식 습격 사건... 스와핑 폭로 논란’(한국경제 196만), ‘한혜진, 코로나 확진 뒤 후유증 호소 “호흡 60%만 올라왔다”’(중앙일보 192만), ‘‘“나는 유인촌의 아들, 배우로서 편하지도 부끄럽지도 않다”’’(중앙일보 186만), ‘‘전신 피멍’ 아옳이, 대학병원 검사 결과는 ‘반전’’(조선일보 181만) 순이었다.

김창숙 연구교수는 “물론 이용자들이 많이 읽은 기사”라면서도 “순위에 오른 기사들이 조선과 중앙, 한경, 매경 등 주요 언론사들의 기사라는 점이 눈에 띈다”고 했다. ‘타블로이드화’가 주요 언론사를 중심으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

이 같은 경향은 연구를 통해서도 확인됐다. 연구팀은 총 14개 언론사의 1317개 기사를 한국 모바일 포털 뉴스의 문제를 타블로이드화 관점에서 분석했다. 지난해 기준 네이버 구독자 400만 이상인 5개 언론사(조선일보와 중앙일보, 한겨레, 한국경제, 매일경제 등)와 300만 이상인 9개 언론사(동아일보와 한국일보, 경향신문, 국민일보, 헤럴드경제, 아시아경제, 서울경제, 뉴스1, 머니투데이 등) 들을 살폈다.

▲한국언론학회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한국언론학회는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그 결과 기사 ‘제목’에서 타블로이드 속성이 가장 심한 매체는 중앙일보(79.8), 한국경제(72.9), 머니투데이(71.4), 헤럴드경제(69.6), 매일경제(67.5) 순으로 나타났다. 평균치는 61.9였다. 기사 ‘주제’에서 타블로이드 속성이 가장 심한 매체는 중앙일보(44.9), 머니투데이(43.8), 아시아경제(40.8), 조선일보(38.5) 순이었다. 평균치는 30.4였다. 타블로이드화 관련 총 4개 항목에서 연구가 이뤄졌는데 중앙일보는 3개 부문에서 1위였다.

김 교수는 “타블로이드는 20세기 초반 런던에서 기차와 버스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신문의 크기(판형)를 가리키는 말인데, 미국에서 타블로이드 크기의 신문에 스포츠와 엔터, 삽화와 선정적인 면을 강조하는 섹션 등 많은 독자를 유인하는 내용을 담으면서 타블로이드라는 용어에 부정적인 의미가 포함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이나연 연세대 교수는 “한국 모바일 포털 뉴스의 타블로이드화 관점에서 분석해봤더니 적지 않은 선정적 기사가 SNS, 커뮤니티, 해외 매체 등으로부터 생산됐다”며 “비주류 언론이 생산한 뉴스를 그대로 베끼거나 유명인의 SNS 요약에 머물렀다. 기자의 핵심적인 업무가 취재와 보도, 사실 확인 등이라고 봤을 때 그 어떤 것도 지켜지지 않은 보도”라고 지적했다.

▲김창숙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김창숙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연구소 연구교수가 19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교육원에서 ‘모바일 포털 저널리즘의 타블로이드화’를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이나연 교수는 “결론적으로 언론사들이 팔리는 뉴스인지 더 따지고 있다. 공공이익보다 사익을 추구하는 상업주의인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들었다. 민주 사회에서 언론의 역할을 수행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사회자로 참석한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도 “언론이 타블로이드화되는 게 실증 연구를 통해 뒷받침됐다. 한국의 주류 언론을 대표하는 조선과 중앙이 앞장서고 있다는 게 허탈하다. 또 경제지 역시 경제 전문뉴스가 아닌 타블로이드 뉴스로 독자를 끌려고 한다”며 “(포털 환경에 놓인 언론들의) 구조적인 여건이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19일 한국언론학회 주최 세미나 사회자로 나선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19일 한국언론학회 주최 세미나 사회자로 나선 배정근 숙명여대 미디어학부 교수. 사진=한국언론학회 유튜브채널 화면 갈무리.

언론사 실무자들은 구조적인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권태호 한겨레 저널리즘책무 실장은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는 옐로저널리즘과 정론지가 구분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엔 선데이서울과 조중동이 구별이 됐다. 옐로우와 정론지가 뒤섞일 때 문제가 된다”며 “뉴스의 타블로이드화는 돈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기자와 언론사를 비판해도 아무 소용없다. 기자는 구성원일 뿐이다. 포털의 생태계를 바꾸지 않으면 이런 상태로 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권태호 실장은 이어 “조선과 중앙도 저널리즘 지향점이 있다. 그러나 계약직 등을 동원해 인력을 충원한다. 그러나 한겨레와 경향신문에서 타블로이드화 수치가 낮은 이유는 내부에서 제동이 걸린다. 그런 기사를 작성할 기자도 없다. KBS와 MBC, 연합뉴스 등은 타블로이드화 수치가 낮을 텐데 오너십이 약하기 때문이다. 조선과 중앙, 매경 등 오너십이 강한 회사는 가속화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선영 한국일보 디지털뉴스 부장은 “방송사는 시청률, 신문사는 트래픽 말고 다른 지표가 없다. 매일 기사를 쏟아내는데 읽히지 않으면 고민을 한다. 그런데 베껴 쓰거나 5분 만에 작성 가능한 기사가 일반적인 기사보다 읽히면 현장에서 사기가 떨어진다”며 “매체별로 전략은 다 다르지만, 홈페이지로 유인하기 위한 도구로 쓴다면 저런 패턴이 합리적일 수도 있다. 여력도 안 되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박재영 고려대 미디어학부 교수는 “한국 주류 언론들이 잘못하고 있다는 분명한 메시지가 나왔다”며 “뉴욕타임스가 혁신보고서를 발표한 이후 디지털퍼스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는데, 뉴욕타임스는 유료 구독 1000만을 달성했지만, 한국언론은 타블로이드화가 가속화되고 있다”며 “어떤 산업에서든지 리딩기업이 모범을 보여야 산업이 성장한다”고 지적했다.

박재영 교수는 이어 “최근 여당이 추진하는 법안을 보면 포털의 뉴스 편집을 전면 금지하겠다고 했다. 모든 기사를 아웃링크화 시킨다고 한다. 만일 이런 상황에 놓일 때 현재 타블로이드화가 강화될까. 약화될까. 이게 실현된다면 현재 타블로이드화가 강화될 것이다. 인력이 많은 언론사는 이런 기사를 집중 쏟아 낼 것”이라고 우려하며 “포털이 그나마 무게추를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최근엔 심층기획 코너도 만들었다. 새 법안이 만들어지면 이런 안이라도 있겠나. 전 비관적”이라고 말했다.

이날 개회사를 맡은 김경희 한국언론학회장(한림대 미디어스쿨 교수)은 “포털 환경이 좋은 뉴스는 가려지고 질 나쁜 뉴스들을 떠오르게 한다. 기자와 언론사 등 생산자뿐 아니라 이용자와 플랫폼, 학자 등 모두의 책임이 크다. 언론의 퇴행적 구조를 어떻게 해야할지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