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규모 선거국면에서 부각된 ‘젠더갈등’ 보도가 시민의 공감을 얻지도, 유권자를 제대로 대변하지도 못했다는 평가가 잇따른다. 조각난 통계들로 특정한 ‘상’을 만들어낸 기사들이 ‘갈라치기 정치의 밑거름’으로 활용됐다는 분석이다. 6월 지방선거에선 담론을 위한 담론 보도가 되풀이되어선 안 된다는 요구가 높다.

‘이대남’ 표심에 주목한 대표적 계기로는 지난해 4월 지방자치단체장 재보궐선거가 꼽힌다. 당시 대선 전초전이라 불렸던 선거의 출구조사에서 20대 남성 유권자 72.5%가 국민의힘 후보를 지지했다고 밝히면서 캐스팅보터로서의 ‘이대남’이 떠올랐다.

그러나 이보다 앞선 ‘이대남 담론’의 시작으로 2019년 문재인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의 ‘20대 남성 지지율 하락 요인 분석 및 대응 방안’ 문건 전후를 꼽기도 한다. 2018년 12월 리얼미터 여론조사 등에서 20대 남성이 문 대통령에게 등을 돌렸다는 분석이 주류화된 시점이다.

그리고 ‘20대 남성이 여성우대 정책으로 인한 역차별로 문 대통령 지지율을 철회한다’는 주장이 담긴 기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초기의 기사는 2019년 1월 △조선일보 ‘[아무튼, 주말] 이대남의 항변 “우리를 여성 혐오자라고 착각하지 마라”’ △세계일보 ‘“여성우대 정책 오히려 역차별”…정부에 등 돌린 ‘20대男’’ 등이다.

▲2019년 1월 '이대남' 관련 초기 보도들
▲2019년 1월 '이대남' 관련 초기 보도들

이후 언론 보도는 특정 연령대, 성별이 어떤 정당을 지지하느냐에 치중한 경향을 보인다. 김수아 서울대 언론정보학과 부교수는 16일 한국여성커뮤니케이션학회 봄철학술대회에서 2021년 5월 KBS의 ‘세대인식 집중조사’ 보도를 주요 기점으로 봤다. 50대 이상 세대나 여성 등에 비해 20대 남성은 주관적 계층 인식이 상층일수록 타인을 돕겠다는 답변이 낮아졌다는 통계 자료를 다룬 보도였다. 이후 조선일보가 이를 ‘20대 남성 악마화’라 비판하면서 조사결과 왜곡 논란이 대두됐다.

김 교수는 “20대 청년 남성들에게서 나타나는 사회에 대한 관점과 그 의미는 충분한 사회적 논의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만, 오히려 보수 언론의 의제화가 더 중요하게 작동하면서 결국 현 정권에 대한 찬성과 반대, 지지 여부라는 방식으로만 청년의 목소리가 동원되는 방식이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이어진 언론 보도들도 이런 프레임을 지속시켰다. 지난 1월 중앙일보 기사(이대녀는 40대만큼 진보인데… 이대남은 대한민국 최강 보수)의 경우 남성의 보수 성향이 전체적으로 여성보다 높게 나타나고, 20대 여성은 국민 평균에 비해 진보적이라는 분석 결과를 보도했다. 같은달 시사인 기사(‘20대 여자 현상’, 기후위기 감수성에서도 나타났다)는 기후 위기의 책임을 나 스스로에게 돌리는 경향은 남성이 여성보다 낮다는 특성을 전했다.

김 교수 성별 ‘인성론’을 부각하는 해석을 두고 “특정한 20대 남성과 여성의 상”을 만드는 결과로 이어졌다고 지적한다. 그는 “조사들은 이 특징을 단순히 성별의 차이로 귀인하여, 더 많은 설명을 할 수 있는 공간을 남겨 두지 않는다”며 “인식 차이가 발생하는 요인은 다양할 수 있다는 점을 먼저 인식해야 하는데, 현재의 언론 보도가 성별을 단일 요인으로 부각하는 양상”이라 꼬집었다. 

▲지난해 지자체장 보궐선거가 있었던 4월7일부터 올해 3월9일 대선까지 '이대남' 관련 보도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분석
▲지난해 지자체장 보궐선거가 있었던 4월7일부터 올해 3월9일 대선까지 '이대남' 관련 보도 키워드. 자료=빅카인즈 분석

대선 들어서는 민생이 아닌 정치적 논쟁의 영역에서 이대남 구호가 반복됐다. 텍스톰(textom) 빅데이터 분석 도구를 통해 지난 대선 기간(2021년 10월1일~2022년 2월28일) ‘이대남’ ‘2030세대’ 관련 키워드를 분석한 결과 ‘후보, 생각, 윤석열, 이재명, 국민의힘, 민주당, 대선, 선대위, 선거, 청년, 이준석 대표, 김종인, 지지, 지지율, 갈등, 여론조사, 페미니즘’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김 교수 표현에 따르면 “세대 논의가 여론조사, 지지율의 문제로 환원되어 표상된 것”이다.

특히 보수언론의 보도는 ‘여성 관련 정책으로 인한 남성의 상대적 박탈감’이라는 전제에 더해, 갈등과 논쟁에 집중했다는 분석이다. 홍지아 경희대 미디어학과 교수가 학술대회에서 공개한 2021년 보수언론의 ‘젠더갈등’ 보도 분석 결과다.

홍 교수는 2021년 ‘조중동’으로 꼽히는 3대 보수신문의 ‘젠더갈등’ 관련 기사가 정치 영역의 갈등중계에 치중됐다고 분석했다. 해당 매체의 젠더갈등 기사를 분석한 결과 동아일보는 기사 20개 중 17개, 조선일보는 48개 중 42개, 중앙일보는 58개 중 38개가 ‘갈등중계’ 유형으로 나타났다. 이는 ‘젠더갈등’으로 검색되는 보도 중 ‘젠더갈등’이 단편적으로 언급되거나, 대선 공약 가운데 선언적으로 등장하거나, 인터넷 댓글이나 여론조사를 단순 나열하는 기사 등을 제외한 결과다.

젠더갈등 유발과 관련해 책임을 묻는 인물로 등장한 경우는 세 신문 모두 정치인이 가장 많았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의 경우 정치인 다음으로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등장이 잦았다. 젠더갈등 관련해 논쟁적 스피커의 입을 빌린 경우가 많았다는 의미다.

이는 청년세대의 삶에서 정치가 필요한 영역을 가렸다. 뉴스데이터 분석플랫폼 빅카인즈로 지난해 4월7일부터 올해 4월18일까지 ‘이대남’ ‘이대녀’의 연관어를 분석한 결과, 윤석열 당선자가 성별 갈라치기 논쟁을 불렀던 ‘여성가족부 폐지’ 공약에 이어 ‘정치권’ ‘이준석 대표’ ‘젠더갈등’이 상위 키워드로 나타났다. 청년 문제 하면 늘 따라붙었던 일자리 이슈마저 밀어낸 형국이다.

선거를 기점으로 터져나온 20대 남성 청년들의 정서를 쉽게 무시해서 안 된다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정작 당사자들 역시 ‘이대남’ 프레임을 중심으로 한 보도에는 공감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새겨봐야 한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3월10일~14일 진행한 설문조사에서 20대 남성 스스로도 자신이 언론에서 말하는 이대남에 해당되는지에 대해선 37%가 ‘아니다’, 40%는 ‘잘 모르겠다’고 답했고 ‘맞다’는 응답자는 23%에 그쳤다. 응답자 83%는 ‘이대남’에 대해 ‘세대·성별 갈라치기 프레임’이라 답했다. 무엇보다 소위 ‘이대남’ 현상으로 인해 선거 공약이 ‘더 자극적이게 됐다’는 응답자가 절반을 훌쩍 넘는 66%로 나타났다. 그 책임이 언론에 있다고 답한 응답자는 82%에 달했다.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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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현업인들 사이에서도 지난 선거 국면에서의 젠더갈등 프레임 보도에서 벗어날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학술대회에서 토론에 참여한 이지상 중앙일보 기자(‘듣똑라’진행)는 “실제 콘텐츠를 만들어보고 구체적 사례를 좇다보면 ‘이대남’ 혹은 ‘이대녀’라고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며 “이제는 꾸준한 흐름으로 이렇게 분류된 통계들이 존재해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그게 보도나 정치적으로도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박다해 한겨레21 기자의 경우 언론의 ‘논란 보도’ 관행을 언급했다. 논란 또는 갈등이 되면 일단 쓰고, “기계적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강박에 모든 이슈를 ‘VS’로 보도하고, 커뮤니티발 여론에 대한 검증이 실종된 상황, 정파적 보도 등이 정의조차 불분명한 ‘공정’을 가장 중요한 ‘이슈’로 만들어버린 격이라는 것이다. 그는 “젠더 갈등’, ‘영끌’, ‘공정’ 등 많은 이슈들이 각각 다른 논의처럼 표상되긴 했지만 결국 문제의 근본 원인은 같다”면서 “부의 재분배, 불평등 해소, 사회적 안전망 등을 포함한 복지체계 재정비 등을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수아 교수는 “갈등을 전혀 보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청년이 무엇을 원하는가, 우리나라가 어떤 사회가 되어야 하는가를 둘러싼 담론 경합은 철저하게 분석될 필요가 있다”며 “다만 이러한 담론 경합의 구조가 언론에 의해 특정한 틀, 이대남과 같은 세대 호명에 의해 이루어지게 되면 누락되는 목소리와 청년의 다중 정체성 위치가 드러날 수 없기에, 언론이 청년 세대를 동원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이 요구되는 것”이라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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