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과거사 진상규명 언급이 나온 이후 국회가 과거사 진상규명을 위한 기구 설치를 논의하고 있는 가운데 정부는 지난 1980년 언론인 강제해직과 언론통폐합 사건 등 언론사 과거사 진상규명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문화부·기무사 조사 추진= 문화관광부는 지난 80년 언론인 강제해직 당시 문화공보부와 보안사령부(현 국군 기무사령부)가 5·18 광주항쟁을 전후로 계엄사의 보도검열 거부에 나선 기자를 포함한 해직 대상 언론인 명단을 언론사에 내려보내는 등 강제해직을 주도한 사건에 대한 진상조사에 착수했다.

   
▲ 계엄사 ·보안사·검열단·문화공보부가 80년 언론인 해직사태 당시 작성한 문건들.
문화부 관계자는 24일 “지난 15일 대통령의 언급 이후 당시 문화공보부 문서 등 자료를 수집하고 있다”며 “문화공보부가 공보처로 바뀌었다가 다시 분리됐고, 당시 보안사도 간여를 했기 때문에 관련문서가 국정홍보처와 기무사 등으로 많이 흩어져 있다. 자료가 수집되는 대로 문화관광부 차원에서 본격적인 진상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밝혔다.
구 보안사령부였던 국군 기무사령부도 언론 분야 과거사 진상규명을 한다는 게 결정되면 모든 자료를 공개한다는 방침이다.

기무사 관계자는 24일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구체적인 조사 대상이 결정되면 한치의 망설임없이 모든 자료를 공개할 것이고, 자료가 없으면 전·현직 인사를 증언대에 세울 것”이라며 “자료 보존의 가능성은 장담하기 어렵지만 보안사 시절 발생된 사안은 적극적으로 조사에 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재홍 열린우리당 의원은 23일 “언론 탄압의 과거사도 민주화운동 탄압이나 민간인 학살 등과 같은 수준에서 조사돼야 한다”며 “조선·동아일보의 친일 부역행위는 친일진상규명법에 포함시키면 되지만, 유신체제하의 조선·동아 강제해직 사건, 5·16쿠데타 이후의 부산일보·부산MBC로부터 정수장학회 소유를 포기토록 한 과정, 80년 신군부의 내란과정에서의 강제해직 등 탄압행위 등에 대해서는 국회가 논의하고 있는 과거사 진상규명 기구에 하나의 ‘언론분과’로 포함시켜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보안사·계엄사·문공부 조직적 개입= 80년 언론인 강제해직과 관련, 본지가 입수한 보안사령부, 계엄사령부, 문화공보부 문건에 따르면 당시 신군부는 조직적으로 언론통제를 통해 강제해직 작업에 나선 것으로 확인됐다.

80년 5월14일 계엄사령부 보도검열단 언론반(이상재 반장)이 작성한 ‘각사 언론자유결의 동대분석 및 보도검열완화건의’라는 문건에는 4월17일부터 5월13일까지 각 언론사의 제작거부 동향이 상세하게 파악돼있다.

또한 같은 해 7월 작성돼 전두환 당시 계엄사령관의 직인까지 찍혀진 ‘중진언론인 접촉순화계획’이라는 문건은 주필과 논설위원을 분류해 △시국관 정립 촉구 △국보위 정책 이해촉구 △군부의 절대안정 및 단결 고시 △상임위장의 이미지 부각에 주력할 것 등을 주문했다.

노태우 보안사령관의 직인이 찍힌 ‘정화언론인취업허용건의’(80년 9월 작성)라는 문건에 따르면 재취업 제한 기준을 임의로 적용해 국시를 부정하거나 제작거부주동자 등을 A급으로, 제작거부에 뇌동하거나 부조리 관련자 등을 B급으로, 단순제작거부 동참자 등을 C급으로 분류해 각각 ‘영구 취업불가’, 1년, 6개월 취업불가 등의 조치를 내리도록 했다.

문화관광부의 ‘언론정화 중간보고’(8월11일 작성), ‘언론인정화보고’(8월16일 작성), ‘정화언론인 취업문제’(9월10일 작성) 문건에는 해직대상 언론인 선정부터 해임까지, 그 뒤 해직 언론인들의 취업 필요성에 대한 내용까지 담고 있다.

▷언론사, 보안사 명단에 불만세력 ‘끼워넣기’= 신군부가 해직대상 언론인으로 통보한 명단 외에도 언론사가 직접 ‘끼워넣기’식으로 추가한 사례도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본지가 입수한 ‘방송인 자체정화 대상자 명단’(80년 8월)이라는 방송협회 문건에 따르면 전국의 방송사 해직대상자는 모두 343명이었다.

이 중 KBS의 경우 대상자 134명 가운데 29명 만이 보안사가 내려보낸 명단이었고, 나머지 105명은 KBS가 자체적으로 ‘무능’ ‘무사안일’ ‘고령’ 등 임의적인 사유로 해직대상자 명단에 포함시켰다.
이 같은 불만세력 끼워넣기식 명단 작성은 KBS 등 방송사 뿐만 아니라 신문사에도 있었다는 게 당시 해직 언론인들의 설명이다.

신군부는 언론인 해직을 마친 뒤 남아있는 언론인들에 대한 내부통제를 위해 국가안전기획부, 보안사령부, 정보사령부, 대통령 경호실 출신자 등을 KBS 등 언론사에 대거 채용시키기도 했다.

KBS 박동영 해직기자회장은 “지난 88년 노조가 집계한 바에 따르면 81년부터 88년 9월말까지 KBS에 모두 368명의 특별채용이 있었는데, 이중 안기부 출신이 4명, 대통령 경호실과 비서실 출신, 보안사, 국군 정보사령부, 계엄사 보도검열단 방송반 출신이 각각 1명씩, 호국단 간부 출신이 42명이 포함 돼 있었다”며 “당시 이들에 대한 인적 청산을 추진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고 이 중 일부는 보도본부장 등 고위직까지 오르기도 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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