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 스미스가 향후 10년간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할 수 없게 됐다. 지난달 27일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 도중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의 탈모를 소재로 농담한 코미디언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결과다. 이번 아카데미의 조치는 윌 스미스가 받은 오스카 트로피를 박탈한다거나, 앞으로 후보로 지명될 권리까지 빼앗은 것은 아니다. 시상식 직후 윌 스미스의 트로피를 박탈해야 한다며 들끓었던 미국 내 여론을 생각해본다면, 비교적 유한 조치가 내려졌다고 볼 수도 있겠다.

이번 사건에 대한 미국 대중의 반응은 분명하다. 미국 연예 매체인 TMZ가 진행한 온라인 설문조사에 따르면, 전체 응답자의 83%가 윌 스미스의 행동을 폭행으로 규정하고 비판했다. 스포츠 도박 회사 BetOnline.ag는 트위터에 게재된 관련 해시태그를 조사했는데, 미국 50개 가운데 41개 주에서 크리스 록을 지지하는 의견이 우세했다고 한다.

‘그 어떤 이유에서건 물리적 폭력은 허용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는 미국적 사고 아래, ‘흑인 여성의 탈모는 인종적이며 사회적인 문제인 만큼 조롱의 대상이 되어선 안 된다’는 논리도 힘을 잃는다. 2015년 JTBC <비정상회담>은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나’라는 주제로 토론한 일이 있는데, 이날 방송에서 미국 국적의 방송인 타일러 라쉬의 발언을 떠올려보자. 당시 타일러는 ‘혐오 표현도 표현의 자유’라는 데 동의하며 “표현의 자유는 케이크처럼 한 조각만 잘라서 ‘이것만 안 된다’고 할 수 없다. 미국에서 표현의 자유는 절대적인 가치다. 혐오 표현은 당연히 있어서는 안 되지만, 법으로 대응하는 순간 표현의 자유는 사라진다”고 말했다. 혐오 발언에 대한 법적 처벌 여부에 대한 의견이었지만, 수정 헌법 제1조에 명시된 표현의 자유를 금과옥조로 여기는 미국인들의 인식을 엿볼 수 있다.

약자에 대한 혐오 발언에 대한 의견도 이러할 진데, 할리우드 톱스타 부부인 윌 스미스와 제이다 핀켓 스미스를 향한 조롱은 말해 무엇할까. 더군다나 대중의 관심을 기반으로 막대한 부와 명예를 누리는 스타들인 만큼, 사생활이나 인격 역시 (어느 정도는) 대중의 즐길 거리로 제공해야 한다 생각하는 미국인들도 많다. 한국 기준 범죄에 가까운 파파라치들의 사생활 취재, 아카데미나 그래미 같은 시상식에서 오가는 수위 높은 조크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 연합뉴스 유튜브 “윌 스미스에게 뺨맞고 처음 입 뗀 크리스 록 “아직 처리 중”” 갈무리.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 연합뉴스 유튜브 “윌 스미스에게 뺨맞고 처음 입 뗀 크리스 록 “아직 처리 중”” 갈무리. 사진=연합뉴스 유튜브

조크가 업인 크리스 록이 그날의 주인공 유력 후보인 윌 스미스와 그 아내를 주제로 던진 조크. 농담을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윌 스미스의 격분은 유명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절대로 허용될 수 없는 물리적 폭력으로 크리스 록의 표현의 자유, 미국 대중들의 조크를 즐길 자유까지 침해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한국 대중 반응은 조금 다르다. 공식적으로 진행된 여론 조사가 없기에 단정할 순 없지만, SNS나 온라인 커뮤니티 반응, 인터넷 뉴스 댓글 등에서는 윌 스미스에 우호적인 의견이 우세한 것으로 보인다. ‘아픈 가족에 대한 모욕을 참으란 말이냐’, ‘나라도 한 대 때렸다’며 윌 스미스의 분노에 적극 이입하는 이들부터, ‘왜 미국인들은 윌 스미스의 물리적 폭력만 비판하고, 크리스 록의 언어폭력에 대한 비판은 하지 않나’, ‘하비 와인스타인의 트로피도 박탈하지 않은 아카데미가 (결국 박탈되진 않았으나) 윌 스미스의 트로피 박탈 운운하는 것이야말로 코미디다’ 등 윌 스미스만을 향하고 있는 미국 내 비판 여론을 공감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누군가는 이 차이를 두고 ‘한국인이 미국인보다 폭력 감수성이 둔해서’라고 해석했다. 교사들은 교권 추락의 이유를 체벌 금지에서 찾고, 국가가 규격을 정해 준 ‘사랑의 매’로 ‘국가가 허락한 폭력’이 행해지던 야만적인 학창 시절을 보낸 대한민국 30대로서 딱히 부정하기도 어렵다. ‘어떤 이유에서건 물리적 폭력은 정당화될 수 없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대외적으로도 떠들지만, 최근만 해도 상간녀의 머리채를 잡은 부인, 여자친구를 성폭행한 범인을 감금 폭행한 남자에게 내 마음속 법원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자꾸만 윌 스미스에게 기우는 마음을 다잡으며, 내 안의 폭력 감수성을 끌어올리려는 이유는, 폭력을 합리화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기 때문이다. 아내의 명예를 위한 가장의 폭력을 용인하면,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한 명예 살인도 용납해야 한다. 약자에 대한 조롱이나 혐오 발언을 폭력으로 응징하기 시작하면 우리 사회에 매로 다스려야 할 이들이 어디 한둘이겠는가.

물리적 대응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한다. 윌 스미스의 폭력은 그의 생애 첫 오스카 트로피의 영광을 퇴색시켰을 뿐 아니라, 크리스 록을 향했어야 할 비판의 화살을 모두 자신에게 돌리고 말았다. 이번 사건에서 유일하게 온전한 피해자인 제이다가 지워졌음은 물론이다. 아내를 지키기 위해 휘둘렀다는 손바닥이, 아내가 사과받을 기회를 앗아간 것이다.

윌 스미스 덕분에 크리스 록은 언어폭력의 가해자가 아닌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로만 남게 됐다. 아카데미 시상식 이후 크리스 록의 공연이 모두 매진되고 기립 박수까지 받았다는 기사를 접하니, 앞으로도 ‘선을 넘는’ 그의 조크가 멈출 일은 없을 것만 같다. 제이다에게 사과하기는커녕, 윌 스미스의 폭력을 너그럽게 이해한 ‘프로’, ‘대인배’ 이미지까지 얻었다고 한다.

이쯤 되면 아무리 둔한 폭력 감수성을 가진 나라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윌 스미스는 없고 크리스 록은 있을 아카데미를 10년쯤 시청하다 보면 더 절절히 깨닫게 될 것이다. ‘봐, 이래서 폭력이 안 된다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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