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기 청와대 특수활동비 공개를 둘러싼 보도가 ‘영부인 옷값 논쟁’으로 점철되고 있다. 수년간 특수활동비 공개를 요구해온 시민단체 마저 ‘특수활동비 폐지운동을 변질시키지 말라’고 목소리를 냈지만 가십을 퍼나르는 보도행태는 잦아들지 않고 있다.

청와대 특수활동비는 이미 오랜 기간에 걸쳐 공개가 요구되고 있는 대상이다. 특활비는 외교·안보·수사 등 업무용 이유를 들어 증빙 없이 쓸 수 있고,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면 내역을 공개하지 않을 수 있다. 국민 세금으로 만들어진 예산을 주머닛돈처럼 사적으로 써도 검증받지 않는다는 비판이 제기돼 온 이유다.

그리고 지난 2월10일 청와대 특수활동비 정보공개 소송이 제기된 지 3년 만에 청와대의 특활비 사용내역을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한국납세자연맹이 2018년 청와대에 특수활동비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거부당하자 이를 취소해달라면서 2019년 제기한 행정소송 결과다. 재판부는 공개 이익을 인정하기 어려운 일부 개인정보 부분을 제외한 대부분의 정보가 공개돼야 한다고 판단했다.

▲2018년 6월1일~2022년 4월4일 빅카인즈를 통해 산출한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보도량 추이
▲2018년 6월1일~2022년 4월4일 빅카인즈를 통해 산출한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보도량 추이

의미가 깊은 선고였지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된 지점은 따로 있었다. 지난 26일 변호사 신평씨가 SNS를 통해 “김정숙 씨가 청와대 특수활동비를 사용하여 남편의 임기 내내 과도한 사치를 하였다고 한다”고 주장한 일이 계기였다. 이후 청와대 특활비 공개 논의는 영부인의 옷값과 사치에 대한 가십성 보도에 뒤덮였다.

이는 실제 보도량을 통해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납세자연맹이 청와대에 특활비 정보공개 청구를 했던 2018년 6월부터 이달 4일까지 보도량을 살펴본 결과 신 변호사 SNS가 기사화되면서 가장 많은 양의 특활비 관련 보도가 쏟아진 것이 확인됐다. 2018년 7월 ‘MB집사’로 불렸던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의 국정원 특활비 상납 관여 혐의에 대한 1심 무죄 선고, 2020년 11월 당시 추미애 법무부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 갈등으로 불거진 검찰 특수활동비 논란이 불거졌을 때보다도 한층 많은 양이다.

그중에서도 청와대가 특활비 공개가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지난달 29일 관련 보도량이 정점을 찍었다. 내용 면에서는 ‘특활비 보도’라기보다 ‘김정숙 옷값’ 보도에 가까웠다. 김정숙씨가 착용했던 호랑이 형태의 브로치를 두고 명품, 가품 논쟁이 불거지면서 ‘논란의 김정숙 여사 브로치, 까르띠에 공식답변은?’이라는 보도가 여러 언론사에서 쏟아졌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김씨를 비꼬면서 사용한 표현들이 정치인 입을 통해 기사화되는 일도 가속화했다. 이학재 전 국민의힘 의원이 “일부에서는 김 여사를 ‘김멜다’라고 부른다”고 말하면서, 기사 제목에도 ‘김멜다’라는 제목이 거리낌 없이 사용됐다. 사치스러운 명품수집광으로 알려진 필리핀 독재자 페르디난디 마르코스의 배우자 이름을 빗댄 것이다.

▲빅카인즈로 추출한 26일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보도 일부 제목
▲빅카인즈로 추출한 26일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보도 일부 제목

이를 둘러싼 정치권 논쟁이 기사화되면서 갈등이 확산되는 상황도 나타났다. 전형적인 따옴표 중계, 공방 보도들이다. 옷값 논란을 지적하는 스피커로는 주로 과거 ‘나는 꼼수다’(나꼼수) 멤버인 방송인 김어준, 김용민씨와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등판했다. △‘김정숙 옷값’ 연일 엄호한 김어준 “개인 카드로 산 걸 왜 공개? 尹 특활비가 더 수상”(세계일보) △‘김정숙 ‘옷값’에 문재인 ‘금괴’ 꺼낸 탁현민…“홍위병 자처하나”’(이데일리) △‘나꼼수’ 김용민 “김정숙 의혹 제기, 나올 것 없는 文 대신 보복”(중앙일보) 등이다. 이는 대척점에 선 국민의힘측 발언이 더해지면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비서관이 김정숙 여사 옷값 논란을 문 대통령이 200톤 금괴를 보유했다는 과거의 루머에 빗대자, 허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이 “홍위병이 되길 자처하는 것인가”라고 지적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여성 정치인이나 정치인의 여성 배우자를 둘러싼 논란이 가십으로 활용되는 고질적 양상도 확인된다. 지속적으로 김정숙과 김건희(윤석열 당선자 배우자)를 대비하는 프레임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29일 이데일리의 ‘“김정숙 여사, 옷값으로 수억” 5년만에 또…10년 된 재킷 꺼낸 김건희’ 보도가 대표적이다. 제목에 쓰인 “김정숙 여사, 옷값으로 수억”은 2017년 고 정미홍 전 대한애국당 사무총장이 SNS로 주장했던 내용을 끌어온 것이다. 김건희씨에 대해선 최근 입은 옷이 수년 전 언론 인터뷰에서 입은 옷과 같다는 내용을 두고 온라인에서 갑론을박이 벌어지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매체는 지난 5일에도 ‘김정숙 옷값 논란 속…김건희 3만원 슬리퍼 ‘품절 대란’이라는 보도를 이어 갔다. 김씨가 찍은 3만원대 흰색 슬리퍼가 화제가 됐다면서 일부 온라인 판매 사이트에서 품절 사태를 빚고 있다는 대목은 어떠한 공익적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대목이다. 여론이 들끓는 사안에 대한 키워드를 뽑고, 현 영부인과 차기 영부인의 대결 구도를 만들어 관심을 유도하는 기사로 보인다.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일부 보도 제목 갈무리
▲청와대 특수활동비 관련 일부 보도 제목 갈무리

이런 가십성 보도가 생산되는 동안 정작 특활비 공개 여부를 결정할 청와대, 법·제도를 논의할 책임이 있는 입법부 등의 이야기는 뒷전에 밀려났다. 특활비 공개운동을 해온 납세자연맹이 “특수활동비 폐지운동을 ‘개싸움’으로 변질시키지 말라”면서 강한 어조의 성명을 낸 이유다.

납세자연맹은 지난달 30일 “언론들과 정치권은 한국 사회에 매우 의미가 있는 판결인 특수활동비 공개 승소가 아닌 김정숙 여사 옷값 의혹에 촛점을 맞추며 사회진보를 위한 납세자들의 선의를 진영싸움이나 문재인 대통령 공격으로 호도하고 있다”며 “투명한 정보공개가 ‘언론의 자유’와 ‘표현의 자유’의 밑바탕이 되는 점은 특활비 문제의 핵심인데, 한국의 언론들이 정보공개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개인을 공격하는 수단으로 언론의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런 논쟁이 일어나는 동안 청와대는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납세자연맹이 특활비 비공개 근거인 대통령기록물법에 대해 4일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문 대통령은 조만간 임기를 마치게 된다. 지금 언론에 필요한 역할은 정치권이 특활비를 투명하게 공개할 수 있는 방법을 탐색하고, 실천에 옮기도록 만드는 일이다.

납세자연맹은 4일 “국정원을 제외한 모든 부처의 특활비는 차기 정부에서 바로 폐지해야 한다”며 “윤석열 당선인은 앞서 검찰 재직 당시 사용한 특활비에 대해서도 정보를 공개하고, 이런 특권을 누린데 대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임기 시작 후 올해 책정된 특활비 예산부터 영수증을 첨부하도록 해야 한다. 법률을 바꿀 필요도 없이 감사원과 기획재정부 특활비 예산지침만 바꾸면 가능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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