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체크’라는 말이 일상적인 언어가 됐다. 한때 낯설었던 용어지만 현재는 광고, 예능 프로그램 등에서도 널리 쓰이게 됐다. JTBC 등 언론사가 ‘팩트체크’ 전담 조직을 꾸리고 정기적으로 팩트체크에 나선 게 시작점이라면 ‘언론 전반의 활성화’에는 SNU팩트체크 서비스가 기여한 공을 무시할 수 없다. 

서울대 언론정보연구소가 운영하는 SNU팩트체크는 언론사의 팩트체크 결과를 한 눈에 볼 수 있게 모아 놓은 서비스다. 기사에는 근거 자료를 링크와 함께 제시해야 하고 결과를 5가지 척도로 구분한다. 다른 언론사가 같은 사안을 팩트체크했을 경우 한 눈에 비교해준다. 상반된 결과가 나오면 ‘논쟁 중’ 표시를 띄운다. 출범 당시 14개 언론사가 제휴를 맺었고, 2022년 현재 31개 언론사가 제휴를 맺고 있다. 

5년 전 SNU팩트체크 출범 기자회견 때 ‘단순히 팩트체크 기사를 모아놓은 서비스’가 아니냐는 질문이 나왔다. 5년 후 그간의 데이터를 짚어보면 ‘질적 변화’가 입증됐다. 팩트체크 기사에서 사용한 근거자료 수가 2017년 평균 0.45개에서 2021년 4.36개로 늘었다. ‘실명 취재원’을 드러내는 경향도 늘고 있다.

▲ SNU팩트체크 로고
▲ SNU팩트체크 로고

SNU팩트체크 서비스를 총괄하는 정은령 SNU팩트체크 센터장을 지난 4일 서울대에서 만났다. 그는 “언론사 간의 ‘직접적인 협업’은 아니지만 서로 의식하고 학습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며 “같은 사안을 두고 여러 언론이 팩트체크를 해 비교해주는 교차검증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어 글로벌 팩트(팩트체크 국제 컨퍼런스) 행사에서 사례 발표를 한 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20대 대선을 앞두고선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과도하게 치우치지 말고 다양한 후보 주장 검증할 것’ 등을 주문하는 권고문을 내기도 했다. 정은령 센터장은 “왜 진보는 보수만 팩트체크하느냐, 보수는 진보만 팩트체크하느냐는 식의 지적을 받는다. 이래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해 권고문을 냈다”고 밝혔다.

정은령 센터장은 팩트체크에 나선 언론인들을 인터뷰한 논문을 두 차례 쓰기도 했다. 그는  출입처 장벽을 넘지 못한 언론인들의 고민을 전했다. “JTBC가 오랫동안 팩트체크를 해올 수 있었던 건 손석희 사장 시절 ‘팩트체크팀이 하는 건 무조건 도우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팩트체크를 할 때 각 부서가, 나아가 조직 전부가 도와야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다음은 일문일답. 

- 한국에서도 ‘팩트체크’ 기사가 보편화됐다.
“‘팩트체크’ 단어 자체는 대중적인 표현이 됐다. 광고에도 ‘팩트체크’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언론에서 팩트체크를 하는 사람이 많아졌다고 볼 수 있을까. 기자들이 말하는 ‘팩트’에는 두 가지 층위가 있다. 발화자가 그 말을 한 건 사실이니 이를 ‘팩트’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발언 내용은 사실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받아쓰기 기사를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1보는 일단 받아 쓰더라도 이후 팩트체크를 해야 한다. 시민들은 기사가 나왔으니 내용까지 팩트체크를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결과 발언의 주체가 아닌 언론에 불신을 갖게 되는 것 같다.”

▲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
▲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

- 언론이 속보경쟁에 매몰돼 있다.
“뉴스 가치에 대해 다시 생각을 해야 한다. 트래픽 때문에 속보 경쟁을 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속보만을 좇는 게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옳은 방향인가. 언론 뿐 아니라 온갖 플레이어들이 소셜미디어에 글을 올리는 상황에서 언론의 경쟁력이 더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언론의 고유한 장점을 어디서 찾아야 할까. 언론이 ‘레퍼런스’ 기능을 해줘야 하는데, 정확성과 맥락성이 담보되지 않으면 이 역할을 하기 힘들다. 한국이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 조사에서 뉴스 신뢰도 순위가 최하위 수준이었는데 코로나19 이후 순위가 올랐다. 위기 상황에서 언론을 레퍼런스 삼는 사람들이 있다는 의미다.”

- 언론에 대한 팩트체크도 늘고 있다.
“검증 대상에 ‘언론 보도’라는 카테고리를 두고 있다. YTN은 탈레반이 온건통치 하루만에 부르카를 입지 않은 여성을 총살했다는 내용을 검증했다. 미국 폭스뉴스 보도를 한국의 많은 언론이 받아 써 국내에 퍼졌지만 사실이 아니었다. 왜 폭스뉴스에서만 보도가 나오고 다른 미국 언론은 보도하지 않은 건지 고민이 필요했다. 팩트체크는 항상 ‘원출처’를 중시한다. 외신이 썼으니 맞겠지라는 생각을 하면 안 된다. MBC는 젠더 갈등을 부추기는 보도를 팩트체크했다. ‘지하철에서 쓰러진 여성을 돕지 않았다’는 언론 보도를 검증했는데, 커뮤니티 내용을 갖다 쓴 것이다. 이처럼 사실이 아닌 정보를 확산하는 데 언론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런 팩트체크는 언론이 스스로 언론을 경계하는 차원에서 의미가 있다.”

- 팩트체크를 적극적으로 하려면 팩트체크 ‘조직’은 어떻게 구성돼야 하나.
“팀 체제로 운영하는 곳도 있고, 각 부서에서 돌아가면서 쓰는 곳도 있다. 별도의 팀을 구성하고 기자, 리서처 등이 함께 있는 언론이 팩트체크의 질이 훨씬 좋다. 팩트체크는 기본적으로 (부서 간)  협업이 돼야 하는데, 한국 언론사에선 협업이 어렵다. JTBC가 오랫동안 팩트체크를 해올 수 있었던 건 손석희 사장 시절 ‘팩트체크팀이 하는 건 무조건 도우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 팩트체크를 할 때 각 부서가, 나아가 조직 전부가 도와야한다는 마인드가 있어야 한다. 기자 혼자서는, 특히 연차가 낮은 기자가 팩트체크를 전담하게 되면 출입처의 벽을 넘기 힘들다.” 

▲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 모습. 기사 내용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습니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팩트체크 업무를 한 기자들을 인터뷰한 논문을 두 편 썼다. 기자들의 고충은 어떤 게 있었나.
“인터뷰를 할 때 많이 들은 얘기가 있다. 해당 출입처 기자가 기삿거리가 안 될 거라고 생각해서 안 썼는데 팩트체크 담당 기자가 썼을 때 기분 나빠하는 일이 있다고 한다. ‘내가 짚지 못한 걸 네가 짚어줘서 고맙다’는 반응과 ‘내가 쓰지 않은 걸 왜 네가 쓰느냐’는 반응을 다 듣고 있다. 팩트체크 업무를 맡으면 (기사 수가 줄어드니) 다른 기자들 입장에선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팩트체크를 담당하는 기자들은 아이템이 안 나와서 많은 고민을 한다. 취재를 하다가 엎어지는 경우도 많다.”

- 팩트체크를 경험해본 기자들은 팩트체크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나.
“누가 말할 때 받아서 속보 쓰는 것과 팩트체크를 해보는 것은 취재의 경험 자체가 다르다. 기자들이 속보 쓰기를 하다 보니 취재 역량을 갖추기 어려워진다고 본다. 언론의 기사량이 전보다 늘었지만 정작 본인이 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는가, 전문성을 쌓아나가는가에 대해선 의문을 갖게 되는 상황이다. 한 팩트체크 기자는 팩트체크 기사를 쓰기 전에는 정치인 발언을 노트북에 받아치기 바쁘다보니 ‘취재수첩을 써본 적 없다’는 말을 한 적 있다. 취재수첩을 쓰면서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이 없었던 거다. 취재수첩을 쓰지 않는다는 건 ‘합리적 의심’ 단계가 없었다고 봐야 한다. 대선 공약이 나오면 일단 받아쓰고, 정말 이걸 실현할 수 있는 것인지 질문을 하지 못하고 있다.”

▲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 2021년 8월26일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이 사회자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미디어오늘
▲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 2021년 8월26일 저널리즘의 미래 컨퍼런스에서 정은령 SNU팩트체크센터장이 사회자 질문을 받고 있는 모습. ⓒ미디어오늘

- 지상파, 종편, 보도채널 등 방송사의 팩트체크 코너들이 안착했다. 하지만 비교적 주요 신문사들의 팩트체크는 양이 많지 않다.
“방송에서는 적극적으로 하고 있다. 방송이 아닌 경우엔 연합뉴스가 다소 늦게 시작했지만 ‘보도의 질을 높이겠다’는 목표의식을 갖고 부서를 마련한 걸로 안다. 이런 판단을 내리고 조직 정비를 해야 한다. 반면 신문에서는 팩트체크 조직을 찾기 어렵다. 신문의 경제적 어려움이 투영된다고 본다. 여력이 없어서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렇기에 소비자가 그 언론을 선택하지 않는 것일 수 있다.”

- 지난 대선 때 SNU팩트체크의 의사 결정기구인 팩트체크위원회에서 ‘팩트체크 원칙 준수’ ‘특정 정당이나 후보에 과도하게 치우지지 말고 다양한 후보 주장 검증’ 등을 골자로 한 권고문을 냈다. 효과가 있었나.
“권고문을 낸 배경은 팩트체크가 불편부당성을 가져야 하는데 정당이나 정부부처에서도 ‘팩트체크’라는 이름으로 무언가를 하는 경우가 늘었다. 언론의 경우 왜 진보는 보수만 팩트체크하느냐, 보수는 진보만 팩트체크하느냐는 식의 지적을 받는다. 이래서는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판단해 권고문을 냈다. 회원사 보도가 정말 문제가 되면 위원회에 회부하는 방안까지 검토했지만 그 정도로 문제가 되는 보도는 없었다. 우리는 진보, 보수 언론이 다 포함돼 있다. 처음 SNU팩트체크 원칙을 만들 때 원칙에 다들 동의해줬고, 이 합의가 이어지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고 본다.”

- SNU팩트체크가 지난 5년 간의 팩트체크 통계를 공개했다. 평균 팩트체크 기사 길이가 길어졌고, 기사에서 사용한 근거자료 수가 2017년 평균 0.45개에서 2021년 4.36개로 늘었다.
“팩트체크의 중요한 원칙이 ‘불편부당성’과 ‘투명성’이다. 투명성은 ‘실명 취재’만을 떠올리기 쉽지만 폴리티팩트(미국의 팩트체크 매체)는 ‘네가 이 일을 어떻게 했는지, 네 일을 보여주라’고 한다. 팩트체크 과정에서 내가 어떤 증거를 썼는지, 증거를 드러내서 시민들이 따라갔을 때 같은 결론을 내게 되면 그것이 신뢰성이 된다. 그래서 검증을 할 때 근거의 출처와 링크를 남기게 했다. 이 과정을 보여주는 것 자체가 시민들을 팩트체크 과정에 초대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인용 자료 수가 늘어 의미가 있다고 본다. ‘실명 인용’이 늘어나고 있다는 점도 긍정적인 면이다. 5명에게 얘기를 들었으면 그들의 이름을 다 쓰는 식이다. 올해부턴 시상 기준에도 투명성을 주요하게 보겠다고 했다.” 

- ‘SNU팩트체크’ 플랫폼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여러 언론사들이 팩트체크 기사를 올리다보니 ‘타사는 어떻게 했는지’ 보게 된다. 타사는 무엇을 했는지, 어떤 증거자료를 썼는지 서로 학습하는 효과가 있다. 우리 플랫폼이 언론사 간의 ‘직접적인 협업’은 아니지만 서로 의식하고 학습하게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같은 사안을 두고 여러 언론이 팩트체크를 해 비교해주는 교차검증은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어 글로벌 팩트(팩트체크 국제 컨퍼런스) 행사에서 사례 발표를 한 적도 있다. 비슷한 결론이 나오지 않고 극과 극의 차이가 날 경우 ‘논쟁 중’ 표시를 띄운다.”

▲ SNU팩트체크 서비스 갈무리
▲ SNU팩트체크 서비스 갈무리

- 전보다 정치 분야의 팩트체크 기사가 줄어들고 있다. 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전반적으로는 정치 팩트체크 기사가 줄어들고 있다. 정치인 발언을 팩트체크하기 보다는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대한 팩트체크가 많아졌다. 코로나19 이후 이 같은 경향이 더욱 강해졌다. 정치인 발언의 중요성도 크지만 발화자가 누구라고 특정할 수 없는 시민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제기하는 주장의 영향이 커지니 이를 주요하게 보게 되는 것 같다. 특히 코로나19 이후로 전세계적으로  과학 보건 이슈의 정치화, 혐오문제가 중요한 팩트체크의 주제가 됐다. 그렇다보니 ‘사회이슈’라고 분류될 수 있는 부문의 비중이 커진 면도 있다.”

- 한국에선 대선 토론 때 실시간 팩트체크를 하지 않고 있다. 
“실시간 팩트체크는 데이터가 좌우한다. 폴리티팩트는 스프레드 시트를 만들어 대통령 후보자의 발언이 나오면 어떤 발언을 어디에서 했는지, 사실인지 아닌지를 다 정리해놓는다. 후보들은 한 번만 얘기하지 않는다. 같은 얘기를 반복한다. 그래서 토론 때 그 발언이 나오면 과거에 만든 데이터를 찾아서 이를 뷔페에서 고르는 것처럼 선택해 전달하는 거다. 실시간 팩트체크를 하는 언론사들은 데이터를 늘 백업해놓고 있다고 보면 된다. 한국에서도 이 작업을 하고, 축적해나가야 한다. 데이터저널리즘과 연계되는 영역이기도 하다.”

- IFCN(국제 팩트체킹 네트워크)이 주최하는 ‘글로벌팩트’ 국제컨퍼런스 행사에 매년 참가하고 있다.
“SNU팩트체크 차원에서 ‘글로벌팩트’ 행사에 매년 기자들을 보내고 있다. 내년에는 IFCN과 SNU팩트체크가 공동으로 ‘글로벌팩트’ 행사를 한국에서 개최할 계획이다. 아시아 지역에서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게 된다. 시기는 6월말~7월초로 논의하고 있다. 여전히 갈 길이 멀지만  SNU팩트체크의 활동을 보며  아시아 지역 가운데 한국의 팩트체크가 비약적 성장을 했다고 판단하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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