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미국 대중문화계에는 EGOT이라는 약칭으로 불리는 4개의 유명 시상식이 있다. TV 프로그램 부문 시상식 에미상(Emmy Awards), 음악 부문 시상식 그래미상(Grammy Awards), ‘오스카’(Oscar)라는 애칭으로도 유명한 영화 부문 시상식 아카데미상(Academy Awards), 그리고 연극이나 뮤지컬을 비롯한 극 공연 중심의 시상식 토니상(Tony Awards)이다. 길게는 약 90, 짧아도 약 7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이들 4개 시상식은 미국의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시상식이자, 미국을 넘어 전세계적으로 명성과 인지도를 지닌 시상식으로 자리잡아왔다. 상대적으로 한국에서 인지도가 낮은 토니상과 에미상을 제외하면, 오랜 시간 한국에서는 아카데미상과 그래미상은 그 자체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특히 시상식 운영의 특성상 각 국가별로 국제영화상’(외국어영화상’, 2020년부터 이름을 변경하였다.) 후보작을 추천받는 아카데미상에 대한 열망이 무척이나 강했다. 영화진흥위원회의 작품 지원과 관련된 기준이나, 심지어는 1990년대 후반 제한적으로 일본 문화 개방이 이뤄질 때 극장에 걸 수 있는 일본 영화의 기준으로 칸, 베니스, 베를린의 국제영화제 수상작에 더해 아카데미상 수상작을 내걸 정도로 아카데미 시상식은 오랜 시간 한국에서 우러러 본 압도적인 문화 권력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도한 동경에 대한 비판도 적지 않았다. 아카데미 시상식은 분명 미국을 넘어 세계 각국에서 생중계할 정도로 큰 영향력을 지니고 있지만 어찌되었든 후보에 오를 수 있는 작품은 반드시 미국에서 개봉한 영화로 한정되는, 자국 영화계를 위한 시상식이다. 마치 한국의 청룡영화상이나 대종상영화상처럼 아카데미상 역시도 본래는 그러한 상이다. 2차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며 확고하게 굳어진 미국의 영향력은 미국 헐리우드를 위한 시상식으로 하여금 미국 밖으로도 권위를 지니게 만들었지만, 일각에서는 그런 국내용시상식에 목숨을 거는 모습을 비판을 가하는 움직임도 적지 않았다. 결국 2020년 봉준호의 영화 기생충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영화상까지 4개 부문의 상을 받으며 한국이 아카데미상에 가진 열망은 어느 정도 충족하게 되었지만, 어떤 점에서는 문화 종속적인 모습이라 봐도 과언이 아닌 움직임이 오랜 시간 벌어져 왔던 것이다.

▲미국 'Variety'에서 봉 감독과 기생충의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장면.
▲미국 'Variety'에서 봉 감독과 기생충의 배우들을 인터뷰하는 장면.

그리고 아카데미상이 본래 미국 영화계를 위한 상이라는 특성은 상이 지니는 한계와도 결코 무관치 않았다. ‘인종의 용광로’, 또는 인종의 샐러드볼이라 불릴 정도로 미국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살고 있지만 모두가 완벽하게 평등하게 살고 있다고 말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누구나 인식하고 있다시피, 미국은 어찌되었든 본래 아메리카 대륙에 살던 원주민을 총칼로 내쫓아 탄생한 백인 중심의 사회이다. 시간이 지나 여러 평등을 위한 노력으로 이전보다는 상황이 나아졌다고 하지만, 여전히 이미 오랜 시간 강력한 기반을 쌓은 백인에게 어느 정도 권력이나 영향력이 치우쳐진 점을 부정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은 아카데미상을 비롯한 ‘4대 대중문화 시상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1929년 시상식이 처음 시작되어 90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이래, 근래 들어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하더라도 대다수의 수상자나 수상 작품은 백인과 관련되어 있다는 점은 변치 않는다. 이는 단순히 인종의 문제에서 그치는 것은 아니다. 아카데미 시상식이 지닌 오랜 역사의 뒷면에는 성별을 비롯한 젠더 정체성, 장애 여부, 또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주제를 가지는 작품들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가 끊임없이 제기되었다.

이 문제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수상자를 정하는 심사위원의 구성 문제와도 연관이 있다. 아카데미 시상식의 영광을 누릴 수상자는 영화인들의 모임인 미국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cademy of Motion Picture Arts and Science, 이하 AMPAS) 회원의 투표를 통해서 결정된다. 100년 가까운 역사를 지닌 만큼 이 AMPAS에는 영화하면 흔히 떠오르는 직책인 감독이나 배우, 극작가 외에도 애니메이션이나 다큐멘터리 영역의 영화인, 음악, 편집, CG 등의 시각효과, 분장 및 스타일리스트, 마케팅, 또는 영화사의 경영진 등까지 다양한 영역의 영화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AMPAS의 영역별 구성은 다양할지 몰라도, 결국 회원 상당수가 미국인-백인-남성이라는 비판은 2010년대까지 꾸준히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2010년대 중반 이후 한국에서도 배두나, 이창동, 임순례, 봉준호, 임권택 등이 AMPAS 회원으로 위촉될 정도로 미국을 넘어 다양한 국가와 젠더 정체성을 지닌 영화인을 회원으로 영입하려는 움직임이 계속되고 있지만, 여전히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이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EGOT를 이루는 4개 시상식 중에서는 아카데미 시상식이 상대적으로 변화를 위해서 노력한다는 평가도 적지 않다. 특히 아카데미상처럼 지속적으로 인종-장르 편향 논란을 받던 그래미상이 2020년에 발매되어 대중과 평단 모두에게서 좋은 평가를 받던 더 위켄드(The Weekend)4집 정규 앨범 ‘After Hours’2021년 시상식에서 단 한 부문에도 오르지 못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며 큰 지탄을 받으며 아카데미상은 상대적으로 낫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다.

동시에 EGOT라 불리지는 않지만 그에 못지 않은 인지도와 역사를 지닌 영화와 TV를 아우르는 시상식 골든 글로브’(Golden Globe Award)도 그래미상에서 논란이 벌어지던 같은 2021년 흑인 감독의 연출작은 물론 흑인 배우의 출연작이 단 한 작품도 후보에 오르지 않는 일이 발생하자 아카데미는 더욱 좋은 상대평가를 받는 상황이 되었다. 또한 한국계 미국인의 이민사를 다룬 리 아이삭 정의 미나리가 대사의 절반 이상이 영어가 아니라는 이유로 분명 미국인이 미국 자본으로 만든 영화임에도 골든 글로브 시상식의 주요 부문에 하나도 오르지 못하고 외국어영화상에만 후보에 오르는 일이 발생하는 일까지 있었다. 이 여파로 인해 골든 글로브는 2021년 시상식을 끝으로 방송사의 생방송 중계가 중단되고, 그로 인해 중계권 수입을 받지 못하는 등 많은 피해를 받은 상황이다.

▲영화 ‘미나리’ 한 장면.
▲영화 ‘미나리’ 한 장면.

이렇게 2021년 단 한 해에만 아카데미상 보다는 인지도가 낮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명성을 지닌 미국 대중문화 분야의 시상식 두 개가 편향성과 차별을 문제로 쉽게 회복하기 어려운 피해를 받았다. 이런 상황에서 많은 언론들은 2022년 아카데미 시상식이 어떤 행보를 걸어갈 것인지를 주목했다. 아직 코로나가 완전히 가시지는 않았지만, 3년 만에 다시 유관객으로 진행되는 점으로도 관심을 받았던 지난 328일에 열린 제94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어떤 모습들이 관찰되었을까.

2010년대부터 가시화된 수상작의 변화 경향, 더욱 확대되다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의 영광을 받은 작품은 다름 아닌 션 헤이더의 코다였다. 매년 아카데미상의 작품상으로 선정된 작품에 대해 상을 받을 자격이 있냐는 논란은 발생하듯, ‘코다가 시상식으로 결정된 것에 대해 불만을 가진 사람들도 적지 않게 드러나고 있다. 28TV조선의 아카데미상 생중계에서 해설을 맡던 영화평론가 이동진이 코다의 수상 직후에 이 작품이 수상을 할 만한 영화였냐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지 모르겠지만이라 운을 띄운 것은 그러한 심리들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어떤 차원에서는 예견된 불만이었을지도 모른다. 매년 아카데미상 작품상에는 쟁쟁한 작품들이 후보로 오르지만, 올해 시상식은 어떤 작품이 받아도 이견이 없는 작품들이 후보에 대거 등재되었기 때문이다.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트로이 코처. 한국의 윤여정 배우가 시상을 맡았다. 사진출처=오스카 홈페이지. 
▲영화 '코다'로 남우조연상을 받은 트로이 코처. 한국의 윤여정 배우가 시상을 맡았다. 사진출처=오스카 홈페이지. 

올해 작품상 후보에는 코다외에 1993피아노로 자신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렸지만 여성 감독에 대한 편견 속에서 저예산 영화나 독립 영화에 집중하다 30여년 만에 넷플릭스와 함께 인상적으로 복귀한 제인 캠피온의 파워 오브 도그’, 전세계 영화제에서 오랜 시간 명성을 가지고 있는 폴 토마스 앤더스(PTA)리코리쉬 피자와 기예르모 델 토로의 나이트메어 엘리’, 일본 영화이자 아시아권 영화로서 수많은 영화제와 시상식에서 상을 받으며 봉준호의 기생충과도 비교되었던 하마구치 류스케의 드라이브 마이 카’, 셰익스피어의 헨리 5를 스타일리쉬하게 재해석하는 등 연극과 영화를 넘나들며 활동한 케네스 브레너의 벨파스트’, ‘그을린 사랑컨택트를 통해 독특한 미장센으로 주목받은 드니 빌뇌브의 신작이자 이제는 고전이 된 동명 SF 소설 원작 이 작품상 후보였다.

어디 그뿐인가. 윌 스미스의 성공적인 복귀작이자 세계적인 테니스 선수 비너스-세레나 윌리엄스 자매와 이들을 테니스의 길로 이끈 아버지의 실화를 다룬 킹 리차드’, ‘빅 쇼트로 주목받은 아담 맥케이가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로 만든 지구 멸망 직전을 블랙 코미디로 그린 돈 룩 업’, 심지어는 대중 영화와 작가주의 영화를 넘나들며 두 영역 모두에서 명성을 얻는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가 동명 뮤지컬을 영화로 만든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까지도 후보에 있었다. 이들 작품에 비하면 본래 프랑스 영화 미라클 벨리에의 리메이크 작품이고, 장편 커리어도 적으며 유명한 작품도 많지 않았던 션 헤이더 연출의 코다가 작품상을 타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그렇게 많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애시당초 아카데미 시상식은 소위 유수 영화제는 물론 씨네필들의 선택과는 다른 길을 자주 택했던 시상식이라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006브로크백 마운틴뮌헨등을 제치고 작품상을 받은 크래쉬’, 2011블랙 스완’, ‘인셉션’, ‘소셜 네트워크대신 작품상을 받은 킹스 스피치에도 비슷한 논란은 계속 제기되었다. 아무리 심사위원에 다양한 국적과 특성을 지닌 이들을 가입시킨다 하더라도, 오랜 시간 아카데미 시상식 작품상의 선택은 상대적으로 가족적이고 전통적인 보수의 가치를 강조하는 작품이 받아왔던 것이 현실이다.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코다가 상을 받은 것도 어찌보면 그런 경향의 연속이다.

▲제79회 작품상을 받은 영화 '파워오브도그.'
▲제79회 골든글로브 작품상을 받은 영화 '파워오브도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다의 수상이 지닌 의미도 결코 적지 않다. 코다는 아카데미 시상식의 100년 가까운 역사에서 최초로 극장에서 제대로 개봉하지 않은 작품이, 더 정확히는 ‘OTT 오리지널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케이스이다. 한국에서는 작년 8월 아직 애플TV가 서비스를 하지 않아 극장에서 개봉을 했지만, ‘코다는 미국을 비롯한 애플TV 서비스 국가에서는 극장이 아니라 애플TV 오리지널로 공개한 OTT 전용 작품이었다. 2018년 알폰소 쿠아론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로마2020년 아론 소킨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트라이얼 오브 더 시카고 7’이 작품상을 노리기 위해 공공연히 홍보에 공을 들였지만 성과를 거두지 못했었다. 넷플릭스가 이루지 못한 OTT의 작품상 수상에 대한 열망을 코다로 애플TV가 성취한 것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코다의 수상은 아카데미 시상식 역사 중 최초로 비영어권 영화의 리메이크 작품이 작품상을 받은 사례이자 2010년 캐서린 비글로우 허트로커와 바로 작년인 2021년 클로이 자오 노매드랜드에 이어 여성 감독이 연출한 영화가 작품상을 받은 사례가 되었다. 또한 남우조연상을 받은 트로이 코처는 1986작은 신의 아이들의 말리 매들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이후 30년이 훌쩍 지나 두 번째로 청각 장애인이 아카데미 배우상을 받는 기록까지 달성했다.

분명 코다자체의 유명세는 같은 작품상에 오른 쟁쟁한 후보들에 비하면 덜했다. 하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은 작품상을 선정함에 있어 상대적으로 보수적인 경향, 그리고 시의성을 상당히 중요하게 여기는 선택의 경향도 함께 담겨 있다. 특히 2014년 이후의 작품상 수상작은 이러한 경향성이 더욱 두드러지는 모습이 역력했다. 2014노예 122017문라이트를 통해서는 흑인의 자기 정체성과 인종 차별 문제의 중요함을, 2020기생충2021노매드랜드를 통해서는 아시아계 감독의 작품에 방점을 짚었다. 그리고 2018셰이프 오브 워터 : 사랑의 모양이 청각 장애인과 여성, 퀴어를 비롯한 다양한 특성을 지닌 이들을 담아내었던 것처럼 장애가 영화 제작과 출연의 결코 걸림돌이 될 수 없음을 보여주기 위해 코다를 작품상으로 골랐다고 봐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영화 ‘노매드랜드’ 스틸컷.

이런 변화의 국면은 작품상에서만 드러나지 않았다. 비록 작품상 수상에는 실패했지만, 앞서 언급했던대로 1993피아노를 통해 1994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감독상에 노미네이트되고 각본상을 받으며 신진 여성 감독으로 주목받았던 제인 캠피온이 이후 여러 부침과 어려움을 견디며 만든 작품 파워 오브 도그를 통해 감독상을 받았다. 이는 아카데미 시상식 감독상의 역사에서 2010허트로커의 캐서린 비글로, 그리고 2021노매드랜드의 클로이 자오에 이어 3번째로 여성 감독이 감독상 수상자로 선정된 결과였다. 2021미나리로 여우조연상을 받으며 한국 국적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배우상을 받은 윤여정은 남우조연상의 시상자로서 트로이 코처를 위해 수상자를 수어로 호명하는 모습을 보였고, 많은 이들에겐 엘렌 페이지라는 이전 이름과 여성이라는 이전 성별로 알려져있지만 2020년 자신이 FtM 트랜스젠더(Female to Male, 생물학적 여성이나 남성 정체성을 지닌 이들을 일컫는 표현)임을 커밍아웃한 엘리엇 페이지가 각본상 시상자로 나서는 모습 또한 변화의 과정을 상징하는 모습들이었다.

변화의 뒷면에는 여전히 적지 않은 과제가 있다

그러나 아카데미 시상식이 이러한 변화의 모습으로 주목만 받은 것은 아니다. 몇 년전부터 아카데미 시상식은 방송사의 한정된 중계 시간에 맞추는 등을 이유로 분장상 등 상대적으로 주목도가 낮은 부문의 시상식이 생중계하지 않기 시작했고 이번 시상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이후 별도로 촬영한 수상 장면을 내보내는 등 완전히 무시한 것은 아님을 어필하긴 했지만, 아카데미 시상식의 TV 중계가 이뤄진 이후 시상식을 100% 생중계하지 않은 것은 결코 작은 변화는 아니다.

대신 아카데미 시상식은 올해 최초로 대중들이 직접 수상자를 선정하는 부문, 다시 말해 인기상과 비슷한 시상 부문을 만들었다. 바로 오스카 팬 페이버릿’(#OscarsFanFavorite, 오스카 팬들이 좋아하는 영화)오스카 치어 모먼트’(#OscarCheerMoment, 오스카에서 뽑은 최고의 영화 장면)이다. 이 두 부문은 아카데미 시상식 사상 최초로 AMPAS 소속 회원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이 트위터 해시태그를 통한 투표로 수상자를 선정했다. 작품상이나 감독상 같은 메인 시상 부문은 아니지만, 어찌되었든 아카데미 시상식이 인기상과 유사한 시상 부문을 만든 것은 많은 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심지어는 투표에 참여한 트위터 이용자 중 3명을 무작위로 추첨하여 시상식에 초대하는 등의 움직임까지 펼쳤다.

한국은 물론 전세계 시상식이 대중과 유리되었다는 비판에서 마냥 자유롭지 않은 가운데, 아카데미 시상식도 비슷한 처지에 놓여있다. 게다가 사람들이 TV를 떠나는 가운데, 전세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아카데미 시상식도 예외는 아니다. 최근 10년 사이에 아카데미 시상식의 미국 현지 시청률은 계속 감소해왔다. 100년에 가까운 역사 동안 철저히 내부 회원으로 심사위원을 한정했던 아카데미가 관심이 점차 주는 경향을 타파하기 위해 어떤 식으로든 문을 연 것에 많은 이들이 놀라운 시선을 감추자 못했다. 그 결과 오스카 팬 페이버릿에서는 잭 스나이더의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아미 오드 더 데드, ‘오스카 치어 모먼트에는 본래 2017년 극장 개봉 당시에는 큰 비난을 면치 못했지만 감독이 직접 관여한 편집판으로 다시 재평가를 받은 HBO MAX 오리지널 영화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에서 히어로 플래시가 등장하는 장면이 상을 받았다. 평단에서는 썩 좋은 평을 받지 못하는 잭 스나이더가 인기상에 가까운 두 부문 모두의 최초 시상자로 등극한 아이러니한 모습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이야기들은 뒤이어 말한 논란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아카데미 시상식 사상 최초로 시상식 참석자가 시상자의 뺨을 때리는 폭행 장면이 전세계에 생중계로 전해진 것이다. 그것도 폭력을 행사한 가해자는 유명 배우 윌 스미스에, 피해자는 코미디언이자 1990년부터 2000년대 영화계를 풍미한 배우 크리스 락이었다. 왜 윌 스미스는 수많은 카메라가 지켜보는 와중에도 크리스 락에게 폭력을 행사한 것일까. 다름 아닌 크리스 락이 다큐멘터리 부문 시상자로 나서는 과정에서 상당히 문제적인 농담을 했기 때문이다.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후 얼마 후 남우주연상으로 호명돼 상을 받고 있다. 사진출처=오스카 홈페이지. 
▲윌 스미스가 크리스 록의 뺨을 때린 후 얼마 후 남우주연상으로 호명돼 상을 받고 있다. 사진출처=오스카 홈페이지. 

윌 스미스의 아내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근래 원형탈모로 고생하다 머리를 짧게 삭발한 모습으로 남편과 함께 시상식에 참석했다. 그 모습을 보고 크리스 락은 친애하는 제이다가 어서 ‘G.I. 제인’ 2편에 등장했으면 한다”(“Jada, I love you. G.I. Jane 2, can’t wait to see you.”)는 말을 남겼다. ’G.I. 제인은 리들리 스콧이 1997년 연출한 해군에 입대한 여성의 이야기를 그린 작품으로, 데미 무어가 삭발한 모습으로 등장해 주목을 받았던 영화기도 하다. 크리스 락의 입장에서는 제이다 핀켓 스미스가 삭발한 모습이 ‘G.I. 제인속 데미 무어와 비슷해 보여서 던진 농담이겠지만, 문제는 제이다 핀켓 스미스는 단순히 패션을 위해 삭발을 한 것이 아니라 질병 때문에 삭발을 했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크리스 락의 농담에 따라 웃던 윌 스미스는 아내가 정색한 표정을 짓자, 웃음을 멈추고 시상식 무대 위로 올라가 크리스 락의 뺨을 치고 거친 욕설을 남겼다. 모두가 윌 스미스의 행동에 당황해하는 가운데, 어정쩡한 상황 속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은 계속 진행되었다. 이후 윌 스미스가 킹 리차드로 커리어 최초로 남우주연상을 받는 영광을 안게 되었지만, 마냥 기뻐할 수 없게 된지 오래였다.

윌 스미스와 크리스 락의 행동에 대한 평가는 글을 쓰는 331일 현재까지도 분분하다. 누군가는 크리스 락이 상당히 무례한 농담을 남겼다며 맞아도 싸다는 반응을 보내는 이도 있지만, 크리스 락처럼 코미디언 경력을 지닌 짐 캐리가 크리스 락을 옹호하고 윌 스미스를 비판하는 모습처럼 윌 스미스가 그저 농담에 지나치게 분노했다는 의견도 존재한다. 한편으로는 크리스 락의 농담이 적절치 못했어도 윌 스미스가 폭력으로 대응한 것 역시도 부적절하며, 오히려 그의 행동이 폭력의 지니는 무게를 가벼이 만들고 크리스 락을 표현의 자유의 수호자로 만들었다고 지적하는 의견까지도 존재한다.

허나 어떤 식으로 평가하냐를 떠나 이 사건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현장을 넘어, 오랜 시간 북미나 유럽에서 중요한 명제로 여겨진 표현의 자유를 단순히 중요하다고 반복하는 것을 넘어서 표현의 자유가 지니는 여러 면모를 숙고해야만 순간이 도래한 것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한국의 지난 독재 정권 시기처럼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보장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표현의 자유는 표현에 대한 책임까지 자유로움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2010년대 중후반 이후 Black Lives Matter(BLM) 운동으로 상징하는 인종 차별 반대 움직임에서 당시 대통령인 도널트 트럼프를 비롯한 극우적인 인사의 온갖 문제적 언행으로 논란이 된 상황에서도, 이들 발언 상당수는 표현의 자유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크리스 락의 농담보다는 이러한 혐오적 발언보다는 훨씬 정중해도, 이제는 표현의 자유에 대한 세부적인 논의를 피할 수 없는 국면이 되었음을 보이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윌 스미스가 다시 이에 폭력으로 대응한 것은 일각의 지적대로 폭력을 다시 폭력으로 맞서는 한계와 무관하지 않다. 일부에서는 BLM이 극우-백인우월주의자나 네오 나치의 폭력과 비교하며 이들도 폭력을 행사했다며 비난하지만, 단 한 차례도 평화나 반폭력의 메시지를 명확하게 제시하지 않았던 혐오주의자들의 준동에 비하면 계속 폭력을 반대하고 평화의 움직임을 BLM은 보이고 지키려 했었다. 물론 폭력에 다시 폭력으로 맞서는 것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말처럼 확실한 보복으로 오래 사용되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크리스 락이 문제적인 농담을 했음에도 다시 물리적 폭력의 피해자가 되는 바람에 그의 문제가 희석되는 것처럼, 폭력의 연쇄는 문제의 핵심에 다가서는 것을 결국 방해할 수 밖에는 없다. 그렇게 2022년의 아카데미 시상식은 변화의 국면과 함께 미국 영화계나 미국 사회, 더 나아가 이를 실시간으로 지켜본 전세계 모두가 여전히 산적한 과제가 있믐을 보이는 하나의 상징적 행사로 마무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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