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인수위는 약 50조 원 규모의 추경을 편성하고자 한다고 한다. 많은 언론은 재원을 궁금해한다.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활용할 수 있는 전년도 잉여금 규모를 추산하기 바쁘다. 그리고 지출 구조조정을 통해 줄일 수 있는 적자국채 발행량을 추산하는데도 열심이다. 그러나 잉여금 규모도, 적자국채 발행 규모도 문제의 핵심은 아니다.

▲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사진=대통령직인수위원회
▲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 사진=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추경을 할 때, 그 재원을 따지면 무언가 분석적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작년에 쓰고 남은 돈을 활용하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남은 돈을 활용하면 재정건전성을 해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추경을 하고자 적자국채를 발행한다면 그건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굳이 빚까지 져가면서 추경을 하면 재정건전성에 문제가 생길 것 같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 전년도 잉여금을 활용하는 추경이나, 국채 발행 추경은 경제적 실질은 동일하다.

전년도 초과세수가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남은 돈인 잉여금이 발생했다. 전년도 국세 일반회계 초과세수는 2차 추경 대비 약 28조 원 발생했다. 불용액 8조 원까지 생각하면, 잉여금은 28조 원보다 훨씬 더 많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일반회계 잉여금은 18조 원에 불과하다. 아니 왜 더 걷힌 돈은 28조 원 인데 남은 돈은 18조 원에 불과할까?

이는 초과세수가 많이 발생하자 계획된 국채 발행량을 줄였기 때문이다. 계획보다 국채발행 등을 축소하여 세외수입(공자기금 예수금) 규모는 16조 원 감소했다. 작년에 이미 계획했던 국채를 발행하지 않아 초과세수에 비해 잉여금 액수가 줄었다. 즉, 작년에 많은 빚을 갚았기 때문에 올해 추경에 쓸 잉여금이 별로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만약 만약에 작년에 계획했던 국채를 모두 발행했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올해 추경에 쓸 잉여금이 더 많이 남았을 것이다.

정리하면 작년에 쓰고 남은 돈의 규모는 작년 국채 발행량에 따라 결정된다. 조삼모사란 얘기다. 작년에 국채를 많이 발행했다면, 올해 추경에 쓸 잉여금이 많이 남게 된다. 반대로 작년에 국채를 계획보다 덜 발행해서 올해 추경에는 그만큼 국채를 발행해야 한다.

비유해보자. “내가 올해 집을 샀는데 대출 없이 100% 현금만 가지고 샀어”라고 말하니 옆의 친구가 “와, 현금이 그렇게나 많았어? 그 현금은 어디서 났어?”라고 묻는다. 나는 “내가 현금이 어디 있겠어 작년에 대출 받고 남은 돈이지”  자 어떤가? 작년에 대출받고 남은 돈을 쓰나 올해 대출 받나 경제적 실질은 다르지 않다. 이 둘을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 하다. 추경할 때마다 재원을 묻는 버릇은 이제 바뀌어야 한다.

더 정확히 말하면, 작년에 대출을 많이 받고 남은돈으로 올해 지출을 하는 것보다 올해 대출을 하는 것이 더 좋다. 그만큼 불필요한 이자비용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 정부는 작년에 일반회계에서 발생한 초과세수를 활용하여 국채 발행 양을 축소했다. 결국, 잉여금 18조 원 중, 국가재정법에 따른 의무조항인 지방교부세 정산 및 국채상환을 하고 남은 추경재원은 약 3조 원에 불과하다. 다시 말해서 잉여금을 활용할 수 있는 추경재원이 3조 원에 불과한 이유는 작년에 국채를 덜 발행했기 때문이기에 올해 국채를 새롭게 발행하나 작년에 남은 잉여금을 활용하나 본질적으로는 동일하다.

▲ 사진은 1월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 사진은 1월7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에서 직원이 5만원권을 펼쳐보이고 있다. ⓒ 연합뉴스

둘째, 적자국채 발행 규모도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적자국채’가 아니라 ‘국채’ 발행 규모다. 언론들이 국채를 언급해야 할 부분에 왜 ‘적자국채’라는 잘못된 개념을 쓰는지 모르겠다. 무언가 국채를 더 나쁜 뉘앙스를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심리적 이유가 아니기를 빈다.

적자국채는 일반회계가 공자기금에서 빌려 쓰는 자금을 뜻한다. 공자기금이 돈을 마련하는 방식은 크게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국채를 발행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기금의 여유재원을 활용하는 것이다. 기금의 여유재원을 활용하여 마련한 돈을 일반회계에서 빌려 쓰면 국채는 발행하지 않고도 적자국채만으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다. 재정의 칸막이를 줄여서 국채를 발행하지 않고 적자국채만으로 자금을 마련할 수 있다면 그리 나쁘지 않다. 결국, 이번 추경의 재원 관련 기사에서 가장 많이 보이는 ‘잉여금 활용 규모’와 ‘적자국채 발행 규모’ 모두 별로 의미 있는 지점이 아니다. 그럼 이번 추경 재원 마련의 핵심은 무엇일까?

재정의 트릴레마를 정확히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재정의 트릴레마는 지출을 늘리고자 한다면, 증세를 하거나 부채를 늘릴 수밖에 없다는 삼중 모순을 의미한다. 윤 당선자는 유의미한 증세 공약을 제시하지 않았다. 오히려 감세 공약을 제시했다. 그렇다면 본질적으로 감세 액수와 지출증대 액수만큼 부채가 증가하게 된다는 사실은 정확히 인식해야 한다. 그러나 여기에 예외가 있다. 바로 인수위가 강조하는 지출 구조조정이다. 증세나 부채 없이도 기존 지출을 줄인다면 그만큼 새로운 지출을 창출할 수 있다. 그런의미에서 지출구조조정에 힘쓰겠다는 인수위의 노력에 찬사를 보낸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 한계는 명확히 인식해야 한다. 지출 구조조정만으로 마련할 수 있는 자금의 규모는 10조원을 넘기기는 매우 어렵다. 그렇다면 이제 필요한 것은 재정 현실을 솔직하게 국민들에게 말하고 국민의 동의를 구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소상공인을 위해 지출을 늘리고자 한다면 불가피하게 국채를 발행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국민에게 밝히자. 지출 구조조정 뿐만 아니라 ‘공약 구조조정’도 필요할 때다. 모든 공약을 다 지킬 수는 없다. 공약의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불가피하게 우선순위가 아닌 공약이 무엇인지 솔직하게 밝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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