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코로나 바이러스 오미크론 변종의 기세가 한국에서 기승을 부리고 있다. 2020년 처음 코로나가 유행을 하기 시작할때만 해도 이렇게 몇 년씩이나 코로나의 공포 속에서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공교롭게도 같은 2022년 초, 누구도 쉽게 예상하지 못했던 열풍이 한국에서 불붙고 있다. 오랜 시간 삼립과 샤니라는 브랜드로 ‘공장에서 만든 빵’의 명성이 높았고, 이후 던킨도너츠·배스킨라빈스·파리바게뜨·셰이크쉑 같은 프랜차이즈로도 알려진 SPC의 ‘포켓몬스터 빵’(이하 포켓몬 빵)이 전국 각지의 마트와 편의점에서 매진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 코로나의 기세도 포켓몬 빵에 대한 열기를 누그러 뜨리지 못할 정도다. 이번에 재출시 된 포켓몬빵은 발매 1주만에 150만개, 4주만에 600만개의 누적 판매량을 기록했다.

1990년대 학창 시절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알다시피 ‘포켓몬 빵’이 한국에 나온 것도, 멈출 줄을 모르는 인기도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본래 1996년 일본에서 닌텐도 사의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로 첫 작품이 발매된 ‘포켓몬스터’는 한국에서는 1999년 SBS가 애니메이션을 방송하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수많은 연관 상품이 발매되던 중, 현 SPC의 전신 중 한 곳인 샤니가 포켓몬스터의 캐릭터를 활용한 빵을 내기로 결정하면서 ‘전설’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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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출시된 포켓몬빵. 

‘포켓몬 빵’이 나왔던 1999년은 유난히도 캐릭터 빵이 많이 나왔던 시기였다. 포켓몬 빵이 본격적으로 출시되기 전, SPC의 또 다른 전신인 삼립식품은 현재도 MBC ‘라디오 스타’에 나오고 있는 당대의 인기 코미디언 김국진의 캐릭터를 활용한 ‘국찐이빵’으로 큰 선풍적인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여러 유행어로 큰 인기를 모으던 김국진의 이미지는 빠르게 ‘국찐이빵’의 판매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IMF 직후로 어려운 상황에 놓였던 삼립식품이 잠시나마 숨통을 틀 수 있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자 제빵 업계는 캐릭터 빵에 주목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삼립과 샤니가 한 회사가 아니라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던 시기, 샤니는 뒤이어 골프선수 박세리와 함께 IMF 시기 주목받은 야구선수 박찬호를 기용한 ‘박찬호 빵’을 출시한다. 그리고 몇 달 뒤 지금까지도 계속 회자되는 ‘포켓몬 빵’을 낸 것이다. 이전에도 ‘아기공룡 둘리’처럼 인기 애니메이션을 활용한 식품이 없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포켓몬 빵’이 이전과는 차원이 다른 인기의 원동력이 될 수 있던 것은 다름아닌 ‘띠부띠부씰’이 아니었을까.

‘떼고 붙이고 떼고 붙일 수 있는 씰’의 줄임말인 이 띠부띠부씰은 이전의 종이 스티커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혁명같은 존재였다. 한 번 붙이면 다른 곳으로 옮길 수 없는 일반 스티커와 달리, 띠부띠부씰은 비닐류의 소재로 인쇄가 되어 있어 한 번 붙인 뒤에 다시 떼서 다른 곳에 붙이는 것이 가능했다. 기분에 따라 내가 원하는 곳 어디나 붙일 수 있고, 특히 수집에 최적화된 형태의 스티커였다. 본래 ‘포켓몬 빵’의 원조격인 1998년 일본의 대형 제빵회사 ‘다이이치빵’(第一パン)에 동봉된 ‘데코캐릭터씰’을 벤치마킹한 이 ‘띠부띠부씰’은 포켓몬 빵이 등장하기 몇 년 전 오리온프리토레이(현, 오리온)의 과자 ‘치토스’가 북미판과 비슷하게 플라스틱 딱지 ‘따조’(Tazos)를 낸 것과 더불어 1990년대 식품 동봉 캐릭터 상품을 상징하는 존재가 되었다.

물론 부작용이 없던 것은 아니다. 포켓몬 빵의 핵심은 결국 빵 그자체가 아니라 빵에 같이 동봉되어있는 ‘띠부띠부씰’이다. 그것도 한 종류가 아닌 ‘포켓몬스터’에 등장하는 최소 150개 이상의 ‘포켓몬’의 일러스트가 제각기 담겨져 있고, 빵을 뜯기 전까지는 어떤 띠부띠부씰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도록 만들었다. 마치 복권이나 모바일 게임에서 원하는 캐릭터를 뽑는 느낌을 당시의 어린 아이들은 일찌감치 느낄 수 있었다. 원하는 포켓몬 캐릭터 띠부띠부씰을 얻기 위해 용돈을 긁어 모아 포켓몬 빵을 사는 한편, 띠부띠부씰만 꺼내고 빵은 통째로 버리는 일도 생겨났다. 심지어는 가게 주인 몰래 포켓몬 빵의 포장지를 몰래 뜯어 띠부띠부씰만 빼내는 사건도 있었다. 당시의 인기 시트콤이었던 SBS ‘순풍 산부인과’에서 관련 에피소드가 나올 정도 였으니 포켓몬 빵의 열기와 부작용이 낳은 사회적 파장이 어느 수준인지 짐작할만 하다.

▲포켓몬빵에 들어있는 띠부띠부씰. 사진출처=삼립 홈페이지.
▲포켓몬빵에 들어있는 띠부띠부씰. 사진출처=삼립 홈페이지.

1999년 포켓몬빵을 보던 언론의 시선은 

식을 줄 모르는 열기에 언론도 달려들었다. ‘포켓몬스터 세계 캐릭터시장 석권’(동아일보, 199년 11월 16일 기사)이나 ‘트윈세대를 잡아라’(한겨레신문, 1999년 11월 29일 기사)처럼 산업 분석의 측면에서 접근한 기사가 있던 한편, ‘음식 버리게 하는 얄팍한 상혼’(한겨레신문, 1999년 11월 9일 기사), ‘초등생들 스티커수집 열풍 폐해심각 포케몬이 뭐기에…’(경향신문, 1999년 11월 26일 기사)처럼 근엄한 자세를 취하며 포켓몬 빵 인기의 부작용을 지적하는 기사도 적지 않았다. 특히 후자의 경향신문 기사에서는 일부 초등학교가 포켓몬 빵의 지나친 인기를 이유로 가정 지도를 부탁하는 ‘특별 가정통신문’을 보내기도 할 정도였다는 점에서는, 지금보다 더욱 아동 문화를 부정적으로 바라보았던 일면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후로도 제2의 포켓몬 빵이 되고자 하는 수많은 캐릭터 빵들이 출시되었다. 지금도 몇몇 이들에게는 추억일 ‘핑클 빵’, ‘디지몬 빵’은 포켓몬 빵보다는 인기가 낮아도 당시로서는 톡톡한 주목을 받았던 빵 시리즈였다. 하지만 2000년대 초반이 서서히 끝나면서 끝날 줄 몰랐던 포켓몬 빵의 열기도 서서히 죽기 시작했다. 유행이 서서히 끝나갈 시점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문제는 더 이상 이전처럼 애니메이션을 아이들이 보기 좋은 상황이 아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평일 오후 6시 시간대는 한동안 모두가 약속한 듯 애니메이션이 방송되었던 시기지만, KBS ‘VJ특공대’ 같이 VJ를 활용한 8mm 카메라 촬영 프로그램이 서서히 인기를 얻자 방송사들은 일본 애니메이션 수입 비용보다 더 값싼 제작비로, 정규직 노동자보다 더욱 싼 인건비로 후려 칠 수 있는 VJ를 기용한 프로그램의 ‘가성비’에 주목을 하게 된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지상파 방송 3사는 경쟁적으로 해당 시간대를 KBS ‘무한지대 큐’나 MBC ‘화제집중’, SBS ‘생방송 투데이’ 등의 VJ 촬영 프로그램으로 대체하게 된다. 설상가상으로 이 시기를 전후하여 초등학생들의 방과후 학원 활동이 더욱 보편화되었던 상황까지 등장하며 주 시청자들마저 TV 앞에서 사라졌다. 한동안 애니메이션을 비롯해 어린이 프로그램이 주로 편성되던 오후 6시 시간대는 빠르게 어른들을 위한 프로그램으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캐릭터 빵’이 갑자기 세상에서 전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2006년에는 오리온 산하 온미디어(현, CJ ENM)의 애니메이션 전문 채널 ‘투니버스’에서 방영한 인기 애니메이션 ‘개구리 중사 케로로’를 활용한 샤니의 ‘케로로 빵’이 하루 판매량 80만개를 돌파하며 긴 공백기를 깨고 새로운 캐릭터 빵으로 활약해왔다. 비슷한 시기 2001년 이후 시장에서 모습을 감춘 ‘포켓몬 빵’을 샤니가 새롭게 다시 발매하여 이전 전성기만은 못해도 꾸준한 판매량을 보였다. 이후에도 2012년 ‘원피스 빵’, 2014년 ‘카카오프렌즈 빵’, 2015년 ‘라인프렌즈 빵’, 2016년 ‘오버액션토끼 빵’, 2018년 ‘BT21 빵’, 2021년 ‘브레이브걸스 빵’ ‘쿠키런 킹덤 빵’ 등 꾸준히 캐릭터나 인기 가수를 활용한 빵 시리즈가 출시되었다. 포켓몬 빵 역시도 2017년까지 꾸준하게 계속 발매를 이어나갔다.

▲포켓몬빵 이미지. 사진출처=삼립 홈페이지.
▲포켓몬빵 이미지. 사진출처=삼립 홈페이지.

그러다 약 5년 간의 공백을 깨고 다시 나온 ‘포켓몬 빵’이 무척이나 큰 인기를 끌게 된 것이다. 5년이라는 제법 긴 공백기가 분명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켓몬 빵은 2006년 재출시 이후 꾸준히 발매되었던 캐릭터 빵이었다. 그러나 동시에 전국 각지에서 품귀 현상을 일으킬 정도로 인기를 지니던 시리즈는 아닌, 안정적인 판매량을 유지하는 스테디셀러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마치 해태가루비 ‘허니버터칩’이나 오리온 ‘꼬북칩 초코츄러스맛’의 인기를 연상시키는 포켓몬 빵의 열기는 그야말로 1999년 포켓몬 빵의 첫 출시 당시의 인기와 맞먹거나, 그 이상의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

포켓몬빵 유행이 미래가 중단되고 있어서라고?

이에 맞춰 언론들도 이 열풍에 비상한 관심을 드러내고 있다. 마치 포켓몬 빵이 인기몰이를 하던 1999년 당시의 모습처럼 언론들의 접근법도 크게 ‘포켓몬 빵이 거둔 상업적 성과’와 ‘포켓몬 빵이 드러내는 어떤 부정적인 일면’으로 나뉘고 있다. 그 중에서는 문화연구자 김내훈의 지난 3월 19일 한겨레 기고문 ‘포켓몬빵 열풍의 역설…“미래가 서서히 중단되고 있어서”’와 같이 문화비평가 마크 피셔의 논의를 인용하며 포켓몬 빵의 인기가 과거에 탐닉하고, 변화와 성장을 멈추는 한국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강력한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분명 이번 포켓몬 빵의 인기에는 이전 캐릭터 빵에 지녔던 열기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 드러난다. 이전에도 띠부띠부씰만 빼내고 빵을 버리거나, 띠부띠부씰만 빼내는 문제적 부작용은 있었지만 빵 자체를 구하기 어려운 품귀 현상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지금의 품귀 현상은 마치 앞서 언급한 ‘허니버터칩’의 품귀 현상이나, 또는 명품 브랜드나 명품은 아니지만 ‘나이키’나 ‘슈프림’을 비롯해 브랜드 가치를 공고하게 유지한 상품들의 한정품을 구하기 위해 매장이 문을 열기 전부터 줄을 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원하는 물건을 바로 구하기 위해 여러 비용을 아끼지 않는 측면이 더욱 강하게 드러나고 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어떤 이들은 김내훈의 지적과 비슷하게 ‘YOLO’나 ‘소확행’, ‘하울’(Haul) 같은 신조어에 빗대며 미래나 노후 대비를 위한 자산 축적에 실패한 청년 세대들이 지금 자신이 좋아하는 것에 돈을 마음껏 쓰는 것이라며 비관적 시선으로 들여다보기도 한다. 분명 20-30대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소비 현상에 이러한 면모가 아예 없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포켓몬 빵을 비롯한 매 시기마다 이뤄지는 특정 브랜드, 특정 상품에 대한 강한 소비 집중 현상은 사회적 증상으로서의 사건으로서만 볼 수 있을까. 비슷한 시기 막 성인이 되어 어떤 식으로든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 수 있고, 자신의 뜻대로 돈을 쓸 수 있게 된 청년 세대들은 아직 자신들이 ‘어린이’나 ‘청소년’일 시절 열광했던 여러 대중문화들에, 또는 서서히 형성되기 시작한 각자의 ‘취향’에 대해서 돈을 쓰기 시작했다. 그 결과 이전까지는 감히 기대도 할 수 없었던 소비의 현상이 드러나게 되었다.

▲포켓몬빵의 인기로
▲포켓몬빵의 인기로 빵을 구매하기 어려워지자 삼립이 낸 입장문. 사진출처=삼립 홈페이지. 

한국에서 10만 관객을 넘으면 다행이라 여겼던 매니악한 경향의 일본 애니메이션들이 2017년 ‘너의 이름은.’ 379만 관객, 2019년 ‘날씨의 아이’ 73만 관객, 2021년 ‘귀멸의 칼날 무한열차편’ 215만 관객, 2022년 2월 개봉해 현재도 상영 중인 ‘극장판 주술회전 0’이 3월 현재 51만 관객을 동원하는 등의 모습이 드러났다. 웹툰에 대한 소비가 몰리는 것은 물론, ‘웹소설’이 점차 시장으로서의 구축을 이어나가며 인기 웹소설이 다시 웹툰으로 재탄생하고, 더 나아가서는 애니메이션으로도 기획되는 일이 점차 등장하게 되었다. 현재는 코로나로 인해 오프라인 행사가 주춤한 상황이지만 여러 음악 페스티벌이나 ‘서울인기’ 같은 매니악한 경향의 행사들도 기획된 것, 2010년대 중후반부터 출판의 불황 속에서도 서서히 독립출판물이나 독립서점이 작지만 순환하는 생태계를 점차 형성하게 된 것도 이러한 ‘취향의 형성’이라는 지점과 무관하지 않다.

동시에 이러한 일은 비단 지금 갑자기 일어나게 된 것 역시도 아니다. 1970년대 포크송이 주목받고, 1980년대 ‘코리안 뉴웨이브’라는 명명으로 신진 영화 감독들이 대거 등장한 것은 물론 음악이나 출판, 공연 등 모든 영역에서 신진 작가들이 주목받았던 상황들, 비록 IMF와 서브 프라임 모기지 사태라는 두 차례의 타격을 입고 주춤거렸지만, 1990년대 중후반부터 2000년대 후반에 이르기까지 서서히 홍대 등을 중심으로 ‘인디 음악’의 씬이 형성되었던 상황들, 비슷한 시기 초기적인 독립출판물의 움직임이 벌어지고 신촌-홍대 등을 입지로 택한 ‘대안 공간’들이 출몰했던 모습들은 결코 이와 무관하지 않다. 비록 지금은 다시 나이를 먹으며 ‘기성 세대’가 되고, 과거의 모습들은 기틀을 정착할 틈도 없이 마구 휩쓸리기 좋은 한국 사회의 무자비한 속도와 맞물리며 자취를 감춘지 오래지만 지금의 소비나 취향이 형성되는 과정은 어느 순간이나 계속 있었다.

이러한 주목의 순간들은 이전에 익숙한 것들과는 너무나도 달랐고, 그 문화 자체에 대해 접근을 하는 것보다는 ‘이색 현상’ 또는 ‘문제적 현상’으로서 언론이 쉽게 접근하는 것도 지금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런 장기적인 흐름 위에 ‘포켓몬 빵’의 열풍도 존재하는 것은 아닌가. 물론 일각의 지적대로 이 현상에 문제나 부작용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 모든 현상 역시도 긍정적인 일면만 존재할 수 없으며, 참으로 복합적인 일면을 지니기도 쉽다.

비판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그 현상이 어떻게 시작되어, 어떤 현상들과 중첩되어 퍼져나가는지를 바라보고, 다시 그 현상들의 집합이 어떠한 ‘세대’나 ‘집합’을 형상하며 나아갈 수 있는지를 생각하는 것이 아닐까. 그 시기의 일면을 면밀히 응시해야지만 우리는 그 시대를 명확히 인지하고, 더 나아가 언젠가 찾아올 새로운 시기를 반가롭게 맞이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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