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회대학교가 지난 16일 국내 대학 중 처음으로 성중립 화장실 ‘모두의 화장실’을 설치했다.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나이·성 정체성·장애 유무 등과 관계없이 누구나 사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많은 반대에 부딪혀 긴 시간의 설득의 과정을 통해 합의를 이룬 사안인만큼 다수의 언론이 주목했지만, 여전히 ‘합의’보다는 ‘논란’을 앞세운 보도가 다수였다. 

1인 화장실인 ‘모두의 화장실’은 성별 이분법에 구분 받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성중립화장실’보다 더 확대된 개념의 공간이다. 트랜스젠더, 남녀로 정의되지 않는 성소수자를 비롯해 휠체어 장애인, 보호자가 필요한 어린이와 어르신 등 평소 공중화장실 이용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사진=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트위터 제공.
▲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사진=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트위터 제공.

모두의 화장실은 안에서 닫힘 버튼을 누르면 '사용중' 표시가 켜지고 밖에서 열 수 없는 구조다. 성범죄 가능성 관련 우려에 대해서 성공회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와 학생들은 사람이 있으면 문이 열리지 않는 구조인 1인용 화장실이기 때문에 타인을 마주칠 일 없다고 전한 바 있다.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은 5년의 논의 끝에 설치됐다. 2017년 성공회대 총학생회가 설립을 추진했으나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고, 지난해 성공회대 비대위가 다시 공론화에 나선 후 기자회견과 1인시위 등 비대위의 지속적인 설득의 노력이 있었다. 지난해 10월 21일 관련 대토론회 후 마침내 11월 학교 처장단 회의에서 모두의 화장실 설치가 확정됐다.

‘논란’에 주목해 부정적 여론 앞세운 다수 언론

성공회대 성중립 화장실 설치는 강한 반대 여론에 부딪혀 5년 만에 합의를 이룰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언론은 ‘합의’보다는 ‘논란’에 주목했다. 

뉴시스는 ‘성별 구분없는 성중립 화장실 대학에 첫 설치…논란 다시 도마에’(2022.03.17.)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논란’을 부각했다. 제목과 달리 기사 내용에서 논란이 언급된 부분은 “트럼프 전 대통령 취임 후 정치적 올바름 논란 속에 해당 지침을 폐기했지만,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정책이 복원됐다”는 내용이 전부였다. 기사는 대체로 성중립 화장실의 의미를 설명하고 해외와 국내 설치 사례를 소개했다. 

▲ 뉴시스 기사 갈무리.
▲ 뉴시스 기사 갈무리.

뉴시스는 곧이어 3시간 이후 ‘기독교계 반발 속 모두를 위한 화장실 개소…네티즌들도 우려’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노골적으로 기독교계의 반발과 일부 네티즌들의 우려를 앞세운 기사였다. 기사는 “기독교계와 일부 네티즌들이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성공회대 기독교NGO단체의 부정적 논평 내용을 인용했다. 

이어 “성공회대에 성중립 화장실 설치가 완료된 현재, 기독교계 뿐 아니라 일부 네티즌들의 반발도 거세다”며 이들은 “성범죄 무서워서 이용하지 못할 것 같다”,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 아니라 오직 성소수자만을 위한 화장실 아니냐” 등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전했다. 기사 말미에 몇몇의 찬성 의견을 덧붙였지만, 전체적으로 부정적인 입장 전달에 주목한 기사였다. 

▲ 뉴시스 기사 갈무리.
▲ 뉴시스 기사 갈무리.

이외에도 디스패치는 17일 ‘“남·여 간판 뗐다” 대학교 성중립 화장실 설치에 엇갈린 반응’ 제목의 기사를 내어, “대부분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으나, 인권 보호의 가치를 증진하는 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는 반응도 있었죠”라고 했다. ‘기독교 대학에 국내 첫 성중립화장실 설치…우려 목소리도’(동아닷컴, 3월 17일), ‘남여 간판 뗀 성중립 화장실 논란…“차별 금지 도움” vs “범죄 우려”’(아주경제, 3월 17일) 등 다수의 언론사들이 논란을 부추기는 제목의 기사를 내놓았다. 

과거에도 성중립 화장실 논의 ‘논란’으로 규정한 보도…“부정적 감정 촉발해”

성중립 화장실을 다루며 논란을 부추기는 보도는 과거부터 반복됐다. 2018년1월4일 뉴데일리는 ‘밤엔 여자·낮엔 남자 성중립화장실, 아시나요’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부제목은 ‘EBS·서울시 제안…국내 몰카범죄 등 性 문제 감안하면 제2의 범죄 양산 우려’였다. 기사는 “성중립 화장실이라는 개념이 최근 공론화되면서 역차별 논란과 성범죄 양산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는 문장으로 시작해 시민사회 내의 부정적 여론과 전문가의 입장을 인용했다. 

▲ 뉴데일리 기사 갈무리.
▲ 뉴데일리 기사 갈무리.

공용화장실 불법 촬영 범죄 처벌 내용에 성중립 화장실 이슈를 이어붙인 기사도 있었다. 2018년 1월4일자 인사이트 기사 ‘지하철 화장실 등서 여성 104명 몰카 찍은 남성에 집행유예 준 법원’은 “공용화장실에서 100회가 넘는 불법 촬영을 시도한 30대 남성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됐다”며 판결 내용을 소개한 후, “한편 지난해 11월 29일 서울시는 공청회를 열어 성중립 화장실 시범 운영 사업 계획을 밝혔다”고 했다. 

기사는 이어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모토를 담은 이것은 소위 성소수자를 통칭하는 ‘LGBTQ’를 위한 화장실”이라며 “그러나 이같이 여성을 대상으로 한 각종 범죄 우려가 높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어 공용화장실의 설치를 반대하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고 기사를 마무리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장은 이러한 기사들에 대해 “불안을 촉발하여 논란을 지속시키는 방식의 제목의 기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성중립 화장실을 남녀공용 화장실로 착각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2016년 강남역 살인사건 이후 남녀공용 화장실 안전 문제가 사회적으로 대두된 바 있다”며 “보통 상인들이 이용하는 상업시설 중 시설이 좋지 않은 곳에 남녀공용 화장실이 유지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화장실 환경이 있는데, 이 환경에서 성중립 화장실이 마치 남녀공용 화장실과 같은 것으로 착각하여 받아들여지는 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성중립 화장실은 사회적으로 10·20대 여성들에게 민감하게 받아들여지는 문제”라며 “당연히 불편, 불안하고 나의 불안을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 때문에 거부감부터 드는 경우를 많이 봤다. 이러한 상황에서 부정적 제목만 보고 사람들의 부정적인 감정과 오해가 증폭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들은 부정적으로 자기 감정을 표출하게 되는데, 언론 보도가 이러한 부정적 반응에만 초점을 두면, 자기가 옳았는데 문제가 잘못됐다는 감정을 계속 갖게될 수 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정확한 사실관계 담지 않은 제목, 반대 여론 불러일으킬 수 있어”

반대 여론 이후 결정된 사안인 만큼, 오해를 불러일으키지 않게끔 정확한 사실관계와 분명한 전달 방향에 유의해 제목을 달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긍정적인 보도이더라도 불명확한 제목은 자칫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경향신문은 16일 ‘대학 화장실에 남·여 간판을 뗐다…우리 모두를 위해’라는 제목으로 성중립 화장실 설치 이슈를 다뤘다. 권김현영 소장은 “경향신문 기사 제목은 가장 성중립 화장실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성중립 화장실에 대한 세간의 오해를 적극적으로 재생산한다”고 했다. 마치 모든 대학 화장실에 남녀 구분 표식을 없애기라도 한 것처럼, 실제 사실 관계도 다르고 반대여론을 더 모아오는 제목이라는 것이다.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 경향신문 기사 갈무리.

그는 “경향신문 기사에 훨씬 부정적인 댓글이 많이 달리는 이유가 이러한 부분 때문”이라며 “긍정적으로 쓰려고 노력한 기사 중 하나이지만, 이 제목을 보고서는 부정적인 감정을 갖고 있는 사람들이 ‘우리 모두를 위한 건데 왜 그런 이기적인 결정을 했냐’는, 존중받지 않는다는 생각을 훨씬 더 많이 가지게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뉴시스의 기사 같은 식으로 갈등을 노골적으로 조장하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경향신문 같은 제목이다. 소수자가 만들어낸 저항의 언어는 목표와 방향이 정확하지 않으면 부메랑이 되어 돌아오기 십상이다. 언론에서는 부디 좀 더 고민해주었으면 한다”고 했다. 

“설득과 합의 과정에 초점 맞춘 보도 필요…구성원들 목소리 주목해야 해”

권김현영 소장은 중요한 지점을 가장 잘 포착한 제목으로 한겨레 기사 ‘갈등 녹인 설득의 힘…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5년 만에 설치’를 꼽았다. 기사는 본문에서도 성중립 화장실 설치를 둘러싼 5년 간의 학내 토론과정에 초점을 맞췄다. “학생들에게 5년이라는 시간이 왜 필요했는지, 합의의 과정을 돌아보는 보도가 필요하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기사는 “모두의 화장실 설치 논의가 시작된 것은 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17년 성공회대 총학생회가 설립을 추진했으나 학내 구성원들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됐다. 지난해 성공회대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가 다시 공론화에 나섰다”며 논의의 시작부터 다뤘다. 

▲ 한겨레 기사 갈무리.
▲ 한겨레 기사 갈무리.

이어 “그러나 비대위는 더 많은 설득을 통해 합의에 이를 것이라고 굳게 믿었다. 지난해 여름부터 카드뉴스와 인터뷰 영상 제작, 학내 부스 설치 등 홍보를 진행했고, 기자회견과 1인시위 등을 열었다”며 반대 여론을 설득해나간 학생들의 노력을 소개했다. 지난해 10월21일 열린 모두의 화장실과 관련한 대토론회 내용도 담았다. 

권김현영 소장은 “실제로 성중립 화장실을 설치하기까지 학내 갈등도 계속 있었고, 성공회대 학생들은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설득했다”며 “설치가 되고 난 후에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사람들이 어떻게 설득됐는지, 합의의 과정에 초점을 맞추고, 남은 과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이 문제가 진전될 수 있는지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사진=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제공.
▲ 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사진=성공회대 모두의 화장실 제공.

이어 “갈등 이후에 내려진 결정이라면, 언론이 그 갈등을 의식해 좁혀주려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직접 화장실을 이용하는 대상은 학교 공동체 구성원들인데, 지속적으로 불편한 감정을 갖고 이용할 구성원들과는 어떠한 논의를 통해 해결할 지 언론 보도에서 같이 다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승리 중심으로 보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동안 문제 제기된 사안들이 어떠한 과정으로 풀렸는지 주목해야 한다”며 “우려를 불식하기 위한 과정들에 대한 얘기에 초점을 맞춘다거나, 학생들에게 5년이라는 시간이 왜 필요했는지 돌아보는 충분한 취재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트랜스젠더 인권단체 트랜스해방전선에서 활동했던 활동가 꼬꼬도 “오랫동안 대학 내에서 숙의 과정을 거친만큼, 대학 구성원들, 특히 설치에 노력한 학생들 대상으로 인터뷰를 포함한 많은 취재를 하면 당연히 더 좋은 기사가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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