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전 인터넷에서 알게 된 지인과 이야기를 하다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가수 문주란이 작년 흥미로운 신곡을 냈는데 그다지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아쉽다는 말이었다. 1949년에 태어난 문주란은, 1966년 ‘동숙의 노래’를 통해 18세 어린 나이로 데뷔했다.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보기 드문 경로로 음악에 발을 내딛은 가수였다. 1961년 6살의 나이로 데뷔한 하춘화에 비하면 늦게 데뷔한 편이겠지만, 하춘화나 문주란이나 보수적으로 대중 문화를 대하던 1960년대 드문 경우라는 점은 다르지 않다.

문주란이 신곡을 발표한 2021년은 그가 데뷔한지 55년을 맞이하는 해이다. 겉으로 보기엔 그저 화려해 보이지만 사실은 어두운 부분들도 잔뜩 많기에 문주란의 55년에 달하는 활동 경력 동안 여러 사건사고도 적지 않았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데뷔곡인 ‘동숙의 노래’를 비롯해 ‘돌지 않는 풍차’, ‘남자는 여자를 귀찮게 해’ 등의 노래로 세간에 화제가 된 노래도 적지 않게 발표하며 한국의 대중 가요 역사를 말함에 있어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가수이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문주란은 가요사를 말할 때에는 바라볼 수 있어도, 딱히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지 않는 전형적 중견 트로트 가수가 된 상황이 아닌가 싶었다. 노래를 상당히 깊게 즐기는 지인이 왜 문주란의 노래를 언급했을까. 궁금해서 유튜브에서 노래를 검색했다. 노래를 듣고 난 후 난 잠시 어안이 벙벙했다. 노래가 생각했던 이상으로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문주란의 PAS. 사진출처=유튜브 영상 갈무리.
▲문주란의 PAS. 사진출처=유튜브 영상 갈무리.

‘노래’가 아닌 ‘예능’으로 소비되는 가수와 음악들

문주란이 2021년 4월에 발표한 디지털 싱글 ‘파스’(PAS)는 현재 문주란하면 떠오르는 일반적 트로트 형태의 노래가 아니다. 국악기를 연상하게 하는 사운드를 활용해 경쾌한 탱고 스타일의 노래로 구성된 이 작품은 평소 문주란에게 가지던 일종의 편견을 한 순간에 날려주기에 충분했다. 가사 또한 독특했다. 특정한 사물에 빗대는 식의 노래는 여타의 트로트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지만, “파랗게 멍든 가슴에”, 그리고 “나조차 몰랐던 상처”를 찾아 “영원히 후끈거리는 파스”를 “거기 밑에”, 그리고 “한 뼘씩 짚어가며” 붙여달라는 부탁하는 어조의 가사는 실제 일상 생활에서 파스를 붙일 때 하는 모습을 제대로 잘 짚어가며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는 한편, 이제는 어느덧 70세를 훌쩍 넘긴 문주란이 자신의 영광과 굴곡이 모두 감싼 자신의 지난 활동을 자신만의 방법으로 회고한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노래를 다 듣고 나서는 한편으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듣기도 괜찮았고, 여러모로 많은 이야기를 할 법한 작품을 왜 이렇게 늦게 알았던 것인가? 아무리 생각해도 작년 문주란의 ‘파스’에 대해서 별 다른 언급을 한 기사는 보이지 않았다. 실제로 검색을 해봐도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자신의 노래를 홍보하기 위해 지난 4월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출연하고, 이를 다시 인용한 수많은 연예 기사가 나온 것을 제외하면 노래에 대한 짤막한 수준의 단신 조차도 없었다.

매체들이 외면한 노래기에 2022년 현재 한국 음악의 가장 중요한 창구 중 하나가 된 유튜브의 조회수도 형편이 없었다. 뮤직비디오 조회수는 13000여회에 지나지 않았다. 음원 그 자체를 조회한 수는 그 보다 훨씬 적은 3817회였다. TV조선 ‘스타다큐 마이웨이’에 등장한 영상 클립은 최고 조회수가 53만회로 훨씬 높았지만, 그 관심이 음악에 대한 이야기로 흐르지는 않았던 듯 하다.

애당초 TV조선의 해당 프로그램은 문주란의 노래를 다루기 보다는, 가십거리로 쓰이기 좋은 굴곡진 삶에 초점을 맞추고 시청자들도 딱 그 정도의 이야기에 만족했던 덕분일 것이다. 정작 그 이후 TV조선이 JTBC의 ‘싱어게인-무명가수전’과 비슷하게 신인부터 무명 가수까지의 노래를 다룬다는 명목으로 새롭게 런칭한 ‘내일은 국민가수’를 방송한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역설적인 모습이었다. 노년의 나이에도 활동한 가수가 익숙하지 않은 장르에 도전하고 나름대로의 성과를 거두었지만, 정작 그런 노래에도 큰 주목을 하지 않는 상황에서 ‘새롭게 국민가수를 발굴하겠다’는 것은 일종의 자기모순이다.

▲TV조선 '스타타큐 마이웨이' 문주란 편. 
▲TV조선 '스타타큐 마이웨이' 문주란 편. 

물론 이런 일들은 단지 문주란만이 겪은 일들은 아니다. 오랜 음악 활동을 통해 한때는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전성기를 맞이했어도, 새로운 시도를 드러내는 모습에 매체는 이 노래가 가진 의미를 깊게 다뤄내는 적은 많지 않았다. 스탠다드 팝으로 데뷔해 트로트와 오갔던 이은하가 자신의 대표곡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의 리메이크를 비롯해 재즈를 시도했던 2012년 ‘My Song My Jazz’, 2013년 나미가 오랜 공백을 깨고 제법 하드한 일렉트로니카를 시도한 ‘Voyeur’(보여), 신중현의 프로듀싱으로 인기를 구가하던 김주차가 긴 휴식 끝에 사이키델릭한 록을 새롭게 다시 선보인 2014년 ‘It's Not Too Late’ 등등이 각각 상황은 달라도 매체의 대응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이은하의 경우가 살짝 상황이 나아 YTN 등을 비롯한 몇몇 매체가 관련 기사를 내기도 했지만, 그것이 전부였다.

그나마 30년 이상의 공백을 깨고 2016년 ‘37년’을 시작으로 다시 본격적으로 가수 복귀를 선언한 정미조, 비슷하게 2010년대에 다시 복귀해 한동안 SBS ‘불타는 청춘’ 등에 출연해 예능을 기반으로 활동 중인 김완선 정도가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은 경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의 상대적으로 높은 주목도 역시 곰곰이 뜯어봐야 할 점이 있다. 정미조는 복귀하고 나서 약 1년 뒤인 2017년 아이유가 발표한 리메이크 앨범 ‘꽃갈피 둘’에 자신의 대표곡 ‘개여울’이 리메이크되며 그 시너지를 꾸준히 받아온 점을 짚어야 한다. 김완선의 경우에는 이전 신중현, 이장희나 손무현 등 록 아티스트의 프로듀싱을 받으며 활동했듯 초기에는 ‘슈퍼스타’로 유명한 이한철이 작곡한 노래로 활동하다, 현재는 일렉트로니카 스타일에 더욱 뚜렷하게 빠져든 상황이지만 결국 ‘노래’가 아닌 ‘예능’으로 계속 소비되고 있는 상황은 매체가 무엇에 집중하는지를 더욱 고민하게 만드는 대목이다.

오디션을 통해서만 다양성을 운운하는 음악 프로그램들

물론 매체로서도 할 말이 없지는 않을 것이다. 2000년대 후반 다시 부흥해 2010년대를 거쳐, 이제는 트로트나 힙합 등 일부 간신히 살아남은 장르를 제외하면 ‘아이돌 팝’이 한국 대중음악 그 자체이자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에서 아이돌도 아니며, 그렇다고 지금의 트렌드에 완벽하게 부합하지 않고, 딱히 수익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이들을 다루는 것이 매체의 존속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JTBC ‘싱어게인’이나 TV조선 ‘국민가수’에 많은 이들이 환호했던 모습에서 드러나듯 시장은 커졌지만 역설적으로 향유의 틀은 비좁아진 상황에 대한 일정한 반감은 계속 존재하고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메이저 매체는 오로지 ‘오디션’을 통해서만 다양성을 운운하고, 전문적인 음악 및 문화 매체는 생존 자체가 버거운 상황에서 기묘한 엇갈림만 게속 되는 셈이다.

▲JTBC의 '싱어게인'.
▲JTBC의 '싱어게인'.

내부의 다양성은 억압, 외부의 다양성은 자양분으로

이렇게 국내에서는 문화의 다양성이 점점 협소해지는 반면, 정작 작년 한국 대중문화를 말함에 있어 결코 빼놓을 수 없고, 한국인들의 ‘애국심’을 자극한 것은 물론 최근 대선에서 양대 보수 정당의 후보들이 모두 ‘문화 수출 증대’를 말할 정도로 정치권까지도 고양되게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을 해외 매체들은 ‘넷플릭스 등 OTT가 수행한 문화 다양성 전략’의 한 상징으로 보는 것은 무척이나 아이러니한 일이다.

해외 영상 산업 매체인 ‘버라이어티’(Variety)나 ‘TBI’(Television Business International) 등은 ‘오징어 게임’의 예상치 못한 성공에는 기존에는 세계적으로 유통되기 용이한 작품이 미국에 기반을 둔 헐리우드 작품이 대다수인 반면, OTT가 서서히 비중이 늘어난 뒤에는 스페인 드라마 ‘종이의 집’, 프랑스 드라마 ‘뤼팽’ 등을 비롯해 비영어권 작품을 더욱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며 ‘오징어게임’이 함께 시너지 효과를 냈음을 언급하는 기사를 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K-컬쳐의 위대함’을 말하며 취기에 오르고, 분명 산업은 커져가지만 다양한 문화예술을 시도하고 존속가능하며 알릴 수 있는 길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오징어게임’을 비롯한 한국의 여러 문화 창작물이 낳은 유의미한 성과는 점차 영어 이외, 서구권 이외의 문화에도 관심을 지니는 문화 다양성 확대의 국면과 떼어놓고 볼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내부의 다양성을 여러모로 억압하고, 외부의 다양성을 자양분으로 쓰는 이 기묘한 양극화의 지속은 언제까지 지금의 구조를 유지할 수 있을까. 새로운 정부가 만드는 문화예술 정책은 이 상황을 제대로 짚을 수 있을까. 그저 현재의 산업적 성과에만 만족한다면, 점점 커져오는 마찰음은 어느 순간 귀를 막아도 피할 수 없는 거센 충격음으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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