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이후 가장 뜨거운 이슈는 청와대를 없애고 대통령 집무실을 옮기는 문제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자는 집무실을 광화문 정부청사로 옮기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당선 일주일도 안돼 광화문 이전이 여의치 않자 용산 국방부 건물을 비워 대통령 집무실로 쓰겠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을 없애기 위해서다.

국민의힘 대선 공약집을 보면 “일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며 “‘제왕적 대통령’은 궁궐식 청와대 구조의 산물,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방식의 국정운영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에 “청와대를 해체하고 대통령실 광화문 이전으로 제왕적 대통령 잔재 청산”을 공약하며 “청와대는 명칭까지 완전히 폐지”하겠다고 했다. 

청와대라는 공간 자체가 제왕적 권력의 원흉인지도 의문이지만 이 공약은 과거에도 검토가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후보시절 공약했지만 집권 후 검토했다 폐기한 정책인데 이를 또 내걸었다면 다른 해결책이 있을 거라 기대할 수밖에 없다. 윤 당선자는 문 대통령처럼 광화문 이전에 실패했다. 

▲ 청와대. 사진=민중의소리
▲ 청와대. 사진=민중의소리

중요한 건 청와대라는 명칭과 서울시 종로구에 있는 청와대 공간이 제왕적 대통령을 만든 근본 원인이 아니란 점이다. 윤 당선자 측 주장대로 문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들이 청와대가 아닌 다른 공간에서 일했다면 더 나은 국정운영을 했을까?  

황당한 원인분석으로 혼란스러운 대안이 등장해 안보와 경호, 비용문제까지 논란이 커지자 세간에는 ‘청와대의 풍수지리가 안 좋다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까지 떠도는 실정이다. 집무실과 관저가 분리되면 출퇴근은 물론 대통령 이동 때마다 이미 혼잡한 용산 일대의 교통은 더 혼잡해질 전망이다. 언론사들은 앞다퉈 대통령실을 어디로 옮길지 단독보도를 쏟아내며 ‘제왕적 대통령’ 해소방안이라는 윤 당선자 측 주장을 그대로 옮기고 있다. 

문재인에겐 4대권력기관장 인사권 내려놓으라던 언론

시계를 4년 전으로 돌려보자. 2018년 3월 문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분산해야 한다며 개헌안을 내놨다. 당시 언론은 4대 권력기관장 인사권을 내려놓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같은달 22일 매일경제 “제왕적 대통령 내려놓겠다더니…4대 권력기관 인사권은 ‘노터치’”에선 “권력 핵심 기관인 검찰, 국세청, 경찰, 국가정보원 등 4대 권력기관에 대한 대통령의 인사권에는 손대지 않아 제왕적 대통령제에 대한 근본적 변화 의지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 2018년 3월24일자 동아일보 기사
▲ 2018년 3월24일자 동아일보 기사

같은달 24일 동아일보도 “문재인 대통령이 26일 발의할 예정인 헌법 개정안 전체 조문 공개 직후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선하는 데 부족하다는 지적이 정치권과 전문가 사이에서 제기된다”며 “무엇보다 대통령 권력의 원천인 인사권, 그 가운데서도 4대 권력기관장 인사권이 여전히 대통령 손에 쥐여져 있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시선이 많다”고 비판했다. 그 외에도 국무총리 권한을 보장하기에 부족하다며 동아일보는 “‘대독 총리’ 권한이 그대로”라고 비판하는 등 현재 대통령이 가지고 있는 권한을 적극 덜어낼 것을 주장했다. 

▲ 2018년 3월30일자 문화일보 기사
▲ 2018년 3월30일자 문화일보 기사

그러면서 당시 야당이던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이 내놓은 개헌안을 긍정 평가했다. 같은달 30일 문화일보 “대통령 인사권 더 덜어낸 한국당 改憲案(개헌안)”에서 “정부 개헌안에 대통령이 헌법재판소장 임명권을 내려놓는 방안이 담겨있지만 한국당은 한발 더 나아가 검찰총장·경찰청장·국가정보원장·국세청장 등에 대한 임명권도 내려놓아야 한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줄이기 위해 현행 헌법에서 보장한 인사권까지 내려놓으라고 하는 중 여야나 언론 모두 청와대 이전 필요성을 말한 쪽은 없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력을 줄이겠다고 청와대 해체까지 내건 현 상황과 대비되는 모양새다. 

더 확실한 탈권위 방법은 공공기관 인사권 포기

대통령실 용산 이전의 후폭풍이 만만치 않아 보인다. 언론보도를 보면 국방부 본관을 대통령 집무실로 쓰면 국방부와 합참, 방위사업청이 줄줄이 이동해야 한다. 구체적으론 10개층의 직원 1000여명이 이사하고 리모델링을 실시해야 한다. 최근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는 등 안보 태세를 강화해야 하는 시점에 난데없이 공약에도 없던 정책을 밀어붙여 군 당국 내부의 불필요한 부담도 발생하게 된다. 

일각에선 대통령실 이전이 보여주기식 쇼라는 비판이 나오는 가운데 탈권위주의를 위한 훨씬 손쉬운 방식이 있다. 불필요한 ‘낙하산 인사’ 논란을 야기하는 공기업과 공공기관 인사권을 포기하는 일이다. 

▲ 2017년 12월11일자 조선일보 기사
▲ 2017년 12월11일자 조선일보 기사

조선일보 2017년 12월11일자 “32곳 기관장 사표 받아놓곤, 논공행상 덜 돼 무더기 공석”을 보면 “현 정부 들어 임명된 30명 공공기관장 가운데 이미 23명이 캠코더(문재인 대선 캠프, 코드 맞는 인사, 더불어민주당 출신 인사)인사로 의심된다”며 “정부 일각에선 캠코더 인사 배치에 시간이 걸리면서 기관장 인사가 늦어지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비판했다. 

조선일보는 해당 기사에서 “전문성 없는 낙하산 인사를 내려보내는 관행이 이번 정권에서도 되풀이 되고 있다”, “이럴 바엔 차라리 낙하산 전용 자리를 지정해놓고, 나머지 기관들은 철저히 전문성 있는 사람을 뽑는 제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는 한 국책연구원 관계자 발언도 전했다. 조선일보는 “공공기관장 전리품 관행 언제까지?”란 소제목을 달았다. 

윤 당선자와 문 대통령의 16일로 예정된 회동이 취소됐다. 공공기관장 인사권을 두고 갈등이 벌어졌다는 윤 당선자 측 주장이 다수 언론에 보도가 됐다. 보수매체에선 문 대통령의 알박기 인사가 문제라는 비판이 나왔다. 문 대통령 개헌안을 두고 4대권력기관장 인사권을 내려놓으라고 한목소리를 냈던 보수언론과 한국당(현 국민의힘)이 이번엔 문 대통령 인사권을 ‘알박기 인사’라고 비난하는데 입을 모으고 있다. 

보수진영이 문 대통령의 공공기관장 인사권을 막으면 그 다음 벌어질 일이 뭘까? 윤 당선자 측 인사들이 ‘낙하산’ 논란을 일으키며 그 자리로 향하는 일이 아닐까? 대통령이 공기업이나 공공기관장 인사권에서 손 떼는 일은 비용도 들지 않고 조직개편이나 국회의 동의나 헌법개정도 필요 없다. 청와대 해체와 낙하산 논란을 없애는 일 중 더 쉽게, 더 효과를 발휘할 탈권위주의 정책은 후자다. 

▲ 청와대 국무회의 모습. 사진=청와대
▲ 청와대 국무회의 모습. 사진=청와대

문재인 정권 초 조선일보가 지적했던 대선 캠프 인사나 대통령 측근에게 ‘공공기관장을 전리품’처럼 나눠주는 악습을 끊어내자는 주장은 지면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대신 윤 당선자와 문 대통령이라는 신구 권력이 인사권을 두고 갈등하느라 협치 정신이 훼손된다는 보도들이 이를 대신하고 있다. 언론보도만 보면 문 대통령이 마치 부당한 권력을 행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규정상 현재 인사권은 문 대통령에게 있다. 제왕적 권력을 내려놓겠다는 윤 당선자가 자신의 임기를 넘어선 인사권을 행사하겠다는데도 이에 대한 비판을 찾기 어렵다. 

2018년 3월15일자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잘 요약했다. “한국 대통령은 정책 면에서는 국회의 견제를 지나치게 받고 있는 반면 인사권·검찰권 등 권력 행사는 거의 왕(王)처럼 하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윤 당선자의 제왕적 대통령 탈출과 탈권위주의 행보에 대한 언론보도도 부당한 인사권이나 검찰권 행사 여부에 초점을 둬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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