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시로 겪는 경영의 불안정에 대응하고 전환기의 투자에 대비할 수 있는 자력갱생의 길을 닦아야 한다. 무엇보다, 수익성 높은 사업체를 발굴하고 육성해야 한다.”

지난 1월 김현대 한겨레 사장 신년사의 한 대목이다. 한겨레가 혁신과 수익성 개선을 위해 투자에 나선다. 한겨레는 ‘사업체 발굴 육성’ 차원에서 스타트업 투자사인 소풍벤처스의 ‘클라이밋 피크닉(Climate Picnic) 투자조합’에 2년간 최대 15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이 투자조합은 기후 변화에 대응하는 기술을 가진 스타트업과 미디어·콘텐츠 스타트업에 투자하기 위해 조성된 임팩트 펀드(특정 분야에 투자하는 펀드)로 직접 투자가 아닌 간접 투자 형식이다. 펀드의 규모는 총 100억~120억 원이고, 8년 만기로 운영될 예정이다. 목표 수익률은 10%로 제시됐다.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서울 공덕동에 위치한 한겨레 사옥. 사진=미디어오늘.

지난 7일 고경태 한겨레 이노베이션랩실장이 구성원들에게 보낸 ‘벤처투자조합 출자’ 제목의 메일에서 “한겨레신문사가 벤처투자조합에 출자한다. 4월 초 소풍벤처스의 ‘클라이밋 피크닉 투자조합’에 투자를 결정했다”며 “이 투자조합은 기후 관련 솔루션을 제시하는 기술 기업과 혁신적인 저널리즘 및 미디어 생태계 활성화를 위한 초기 미디어·콘텐츠 기업 등에 투자한다”고 알렸다.

한겨레는 지난해 8월31일 이노베이션랩 준비팀을 만들고, 같은 해 11일 말 이노베이션랩실로 승격시켰다. 이번 투자도 이노베이션랩실이 전담한다.

‘사내벤처 제도와 외부 펀드 투자 이유’에 대해 고경태 한겨레 이노베이션랩실장은 “지난해 8월 사장 직속으로 이노베이션랩실이 생겼다. 사내 임원진 워크숍에서 아래서부터 제기되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수렴할 수 있는 통로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어 사내벤처 제도를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한 뒤 “그런데 사내벤처 제도만 운영하는 건 한계가 있다. 혁신을 안에서 찾는 것도 필요하지만, 외부와의 협업 투자를 통해 영감과 자극을 받는 것도 중요하다고 봤다”고 말했다.

왜 한겨레는 ‘클라이밋 피크닉’ 펀드에 투자하기로 했을까. 고경태 이노베이션랩실장은 “처음엔 한겨레가 앵커 투자자(주요 투자자)가 되고 소풍벤처스가 운용사로 뉴미디어 쪽에 주로 투자하는 50억 원의 펀드를 만들기로 했다. 그러나 추진 과정 중 사내에서 이런저런 비판들이 있었다. 뉴미디어에 많은 투자를 하는 것이 리스키한 부분이 있다는 지적이었다”며 “리스크 분산을 위해 뉴미디어와 기후 테크 기업 투자를 함께 하게 됐다. 기후 테크가 시대정신과 사회적 가치 창출 측면에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다. 두 분야를 합쳐 펀드 규모를 두 배로 키우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이효석 소풍벤처스 디렉터는 “올해 중요한 사회적 가치가 기후위기 이슈에서 나온다고 봤다. 한 투자사가 기후 문제에 투자하는 건 처음”이라며 “그 과정에서 미디어에 대한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봤다. 단순히 기후 테크에만 투자하면 되는 게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면 별다른 변화가 이뤄지지 않을 수 있기에 사회 변화를 더 촉진하려면 새로운 미디어 정보전달 방식에 대한 투자도 병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소풍벤처스 로고.
▲소풍벤처스 로고.

한겨레의 스타트업 투자 펀드 출자 결정은 순탄하게 이뤄지지는 않았다. 투자 소식이 사내에 전해지자, 사내게시판에는 “10억 원이라는 돈은 ‘미디어 생태계 활성화’가 아니라 ‘한겨레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먼저 쓰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겨레 디지털 인프라에 더 힘써달라는 것이다. 한겨레 노동조합(언론노조 한겨레지부)은 “주먹구구 투자 사업 추진에 반대한다”며 “두 건의 투자 사업을 구두 설명하기 위한 PPT 파일이 이사진에게 제공됐을 뿐, 회사 차원의 사업성·리스크 판단을 담은 객관적 분석 보고서가 전혀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반대 이유를 밝혔다.

이에 한겨레 경영진 측은 노동조합과 우리사주조합에 설명회를 제안했다. 회사는 지난 1월 12일과 13일 이틀간 투자 사업에 대한 집중 설명회를 진행했고, 이 같은 과정을 거친 뒤 지난 2월 말 최종 투자가 결정됐다.

‘투자 과정에서 제기된 내부 비판과 우려’와 관련 고 실장은 “한겨레는 ‘투자’라는 것 자체가 생소하다. 벤처투자는 더 생소하다. 한겨레는 보통 보유금을 예금한다. 이자가 1% 정도밖에 안 된다. 어떻게 보면 보수적으로 자금 운용을 하고 있다. 또 유동성 위기에 대한 공포감도 크다”고 말했다. ‘정작 내부 디지털 인프라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지적에는 “우선순위를 두기보다는 내부 디지털 인프라 개선과 외부 혁신 투자는 같이 가야 하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고 실장은 “이사회에서 최종 부의가 돼서 의결됐다. 반대하는 분도 있고, 새로운 일을 해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분위기가 있었다”며 “잘 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겨레 노동조합(언론노조 한겨레지부) 관계자는 “처음에 직접 투자가 아닌 간접 투자 방식으로 돈을 태우는 것이 한겨레의 외연 확장, 혁신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모호했다. 아직도 미진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한겨레 사내벤처와의 연계성이라든지 투자를 선별하는 역량 부분은 미지수”라며 “그러나 투자나 이런 부분은 고도의 경영적 판단이다. 투자 결정을 받아들이면서도 미진한 부분에 대한 감시와 비판을 이어나가는 게 노조의 몫”이라고 말했다.

이노베이션랩실은 ‘외부 투자’ 뿐 아니라 ‘내부 혁신’도 전담한다. 지난해 12월 사내벤처 공모를 시작해 지난 3일 사내벤처팀 ‘그리너팀’을 최종선발해 2억 원을 지원할 예정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리너팀은 대중을 위한 논문 큐레이팅 서비스인 소통형 연구 플랫폼 ‘초록’을 서비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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