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대통령 선거를 계기로 윤석열 ‘당선인’이 아닌 ‘당선자’로 호칭을 바로잡아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금 나오고 있다. 지금은 두 표현 경계가 흐릿해졌지만 언론이 너무 쉽게 특별한 권위를 허락했다는 지적을 새길 필요가 있다.

현재 대통령에 당선된 이를 부르는 주된 호칭은 ‘당선인’이 사용되고 있다. 12일 기준 8개 종합일간지 중 한겨레만이 ‘당선자’라는 표현을 고정적으로 사용한다. 경향신문, 국민일보, 동아일보, 세계일보, 조선일보, 중앙SUNDAY, 한국일보 등은 ‘당선인’을 사용했다. 간혹 한두 건 기사에 ‘당선자’가 등장한 경우도 있지만 ‘당선인’ 비중이 절대적이다.

방송사의 경우엔 ‘당선자’라는 표현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있다. 11일 지상파 3사(KBS·MBC·SBS), 종합편성 4사(JTBC·TV조선·채널A·MBN), 보도전문 2사(YTN·연합뉴스TV) 메인 뉴스프로그램에선 앵커와 기자들 모두 ‘당선인’ 호칭을 썼다.

▲12일자 동아일보, 한겨레 기사 제목
▲12일자 동아일보, 한겨레 기사 제목

사전적 의미로 ‘당선인’과 ‘당선자’는 큰 차이가 없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도 ‘당선인’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고, 국립국어원도 두 용어를 섞어 써도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당선인’ 용어 자체가 언론이 권력을 부여한 언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정치권 요청을 큰 문제의식 없이 받아들인 맥락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당선인’ 표현이 활발하게 사용된 계기는 이명박 대통령 후보가 당선된 직후였다. 2008년 1월 주호영 당선자 대변인이 언론에 “‘당선자’가 아니라 ‘당선인’으로 표현해 달라”고 요청하면서다.

당시 인수위 주장은 인사청문회법, 공직선거법, 대통령직인수법 등에서 ‘당선인’이란 표현을 사용한다는 것이었다. 표면적 주장 이면에 ‘놈 자(者)’자를 사용하는 것이 불편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2008년1월2일 조선일보 기사
▲2008년1월2일 조선일보 기사

반면 헌법재판소는 최상위법인 헌법이 ‘당선자’로 표기하고 있으니 ‘당선자’가 맞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럼에도 이동관 당시 대통령직인수위 대변인은 “헌법을 제외한 대부분 법률은 당선인이란 용어를 쓰고 있고 중앙선관위가 수여하는 증명서도 당선인증이라고 불린다”면서 ‘당선인’ 표현을 거듭 촉구했다.

언론은 빠르게 ‘당선인’으로 표현을 바꾸기 시작했다. 한겨레, 경향신문 등 진보지부터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보수지까지 대부분 신문이 ‘당선자’를 지우기 시작했다. 조선일보만이 헌법을 근거로 한동안 ‘당선자’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이에 비판적 시각을 전했던 미디어오늘 역시 ‘당선인’을 쓰기 시작했다. 2008년 1월4일 ‘당선자 ‘입’·‘귀’ 자임한 언론인 출신들’ 기사까지도 ‘당선자’를 썼지만, 1월11일자 신문엔 ‘당선인 ‘경제’만으로 잘 될까’라는 제목처럼 ‘당선인’으로 변경된 표기를 확인할 수 있다.

▲2008년 1월 미디어오늘 기사
▲2008년 1월 미디어오늘 기사

물론 지금의 ‘당선인’ 사용 자체가 권력에 굴복하는 행위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을 수 있다. 다만 대중 인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언어 사용을 정치권 요구에 따라 언론이 아무런 설명 없이 바꿨다는 점은 짚고 넘어갈 부분이다. ‘유권자’ ‘후보자’ ‘노동자’ 등 누군가 지위를 나타내는 용어에 모두 붙는 ‘자(者)’가 왜 대통령 당선자에게만 예외가 될 수 있느냐는 질문은 선거 때마다 스쳐가는 소리로 치부되고 있다.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언론이 이제라도 ‘당선인’ 대신 ‘당선자’를 쓰라고 지적하고 있다. 그는 11일 페이스북에 “대통령에 당선된 자는 헌법 제67조 2항과 68조 2항에 ‘당선자’라고 지칭돼 있다. 취임 시 헌법 제69조에 근거해 헌법을 준수한다는 선서를 해야 하는 사람”이라며 “제발 언론은 헌법에 반하는 명칭으로 부르지 말아 달라”고 촉구했다.

▲2021년 7월4일 KBS '질문하는기자들Q'에 출연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KBS
▲2021년 7월4일 KBS '질문하는기자들Q'에 출연한 신지영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KBS

신 교수는 지난해 7월 KBS ‘질문하는기자들Q’에서 언론이 권력을 부여한 언어 사용을 비판하면서 “후보자나 유권자 때는 괜찮다가 당선자가 되니 갑자기 자가 들어간 당선자가 싫다니 어이가 없는 노릇이 아닐 수 없다”며 “‘자’가 비하의 표현이니 ‘인’으로 바꿔야 한다면 민주주의 국가에서 당선자를 바꾸자고 하기 이전에 유권자부터 바꾸자고 해야 맞지 않을까”라고 꼬집은 바 있다.

언론 매체 입장에서 이제껏 큰 문제 없이 사용해온 ‘당선인’을 갑자기 바꿔야 할 중대한 이유는 없다고 판단할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당선자’로 바꾸는 것 역시 어려운 일은 아니다. 무엇보다 유권자, 독자에게 언론이 대통령 당선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감시하고 있는지 선언하는 차원에서라도 ‘당선인’이 아닌 ‘당선자’를 사용해달라는 호소를 고민해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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