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지난해 4·7 재보궐 선거 직전 국민의힘 오세훈·박형준 후보 의혹을 제기하는 익명의 제보자 5명 인터뷰를 90분 동안 내보내 논란이 됐다. 지상파 라디오 방송이 반론·검증을 생략한 채 일방의 주장을 유포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제20대 대통령 선거에서도 김어준씨는 상대 진영에 대한 네거티브에 주력했다. 그는 지난 1일 방송에 라마다호텔 전직 직원 A씨라는 인물을 출연시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 배우자 김건희씨에게 ‘쥴리 의혹’을 제기했다. 김건희씨가 과거 유흥업소에서 쥴리라는 접대부로 활동했다는 주장으로 지난달 8일 방송에는 김건희씨에 관한 ‘쥴리’ 증언을 하겠다며 총 4명의 게스트가 섭외됐다.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 사진=TBS 제공
▲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 진행자 김어준씨. 사진=TBS 제공

김어준씨의 검증 잣대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앞에선 엿가락처럼 휜다. 지난달 8일 방송에 출연한 김재원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김건희씨를 둘러싼 무속 논란만 물고 늘어지는 김어준씨에게 “김혜경(이재명 민주당 대선후보 아내)씨 이야기를 물어봐라”고 했다.

그러자 김어준씨는 “아 시간이 다 됐다. 그건 다음주에 하자”고 방송을 마무리했다. 경기도 법인카드 및 공무원 사적 유용 정황이 드러난 김혜경씨에 대한 의혹 제기는 ‘김어준의 합리적 추론’ 대상이 아니었던 것. 김씨는 지난해 10월 유튜브 방송에서 “(이재명 후보는) 혼자서 여기까지 온 사람”이라며 “이제 당신들이 좀 도와줘야 한다”고 공개 지지를 호소했다. 그가 이 후보를 검증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이유다. 대신 이 후보의 경쟁 상대는 검증 대상이다.

레거시 미디어 가운데 김어준 방송이 친여 편향성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면 유튜브 방송에선 열린공감TV가 선봉에 있었다. 열린공감TV는 ‘쥴리’ 의혹을 최초 주장한 매체로 알려졌다. 이 매체도 주로 이낙연·윤석열 등 이 후보 경쟁자들을 겨냥해 각종 의혹을 제기해왔다.

이들은 선거 전날인 지난 8일에는 김건희씨와 관련한 무당들이 특정 장소에 모여 대통령 당선 기원 굿을 하고 있다는 제보가 있다며 방송을 켰으나 허탕을 쳤다. 지난 7일에는 윤 당선인이 건설업자로부터 향응 및 성접대를 받았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지난달 10일에는 “친절한 건희씨, 양재택 사무실까지 가서 출장안마?!”라는 이름으로 익명의 제보자 인터뷰 영상을 업로드했다.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8일 오후 마지막 유세 현장인 홍대에서 열린공감TV 제작진과 잠시 마주쳐 덕담을 나눴다. 사진=열린공감TV 화면 갈무리.
▲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8일 오후 마지막 유세 현장인 홍대에서 열린공감TV 제작진과 잠시 마주쳐 덕담을 나눴다. 사진=열린공감TV 화면 갈무리.

이재명 민주당 후보는 8일 마지막 유세 현장인 홍대에서 잠시 이들과 마주쳐 덕담을 나누기도 했는데, 열린공감TV에서 활동하는 강진구 기자는 “우리가 마지막 유세 현장에서 시민 후보 이재명 후보와 함께” 했다며 “‘열린공감 강진구입니다’라고 하니까 아주 격하게 포옹했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이 후보는 강 기자에게 “이 정도 취재라면 나도 잡겠다”고 농담을 건넸는데, 이 후보도 열린공감TV 방송을 인지·시청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선 기간 이 후보 지지자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던 열린공감TV 제작진은 10일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라고 하시면서 현재 열린공감TV 후원 취소 문의가 줄을 잇고 있다. 죄송하다. 부족했다”며 “열린공감TV는 이말만 하겠다.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라고 했다. 이 후보가 대선에서 패배하자 지지자들 실망이 열린공감TV 후원 중단으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이 후보를 공개 지지했던 친여 인플루언서들도 이번 대선에 입길에 오르내렸다. ‘나꼼수’ 멤버였던 시사평론가 김용민씨는 지난 2일 SNS에 윤석열 당선인이 배우자 김건희씨로부터 성상납을 받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다가 십자포화를 면치 못했다. 홍정민 민주당 선대위 대변인마저 “정치가 지켜야 할 선을 무너뜨리고 선거를 진흙탕에 밀어 넣으려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YTN 시사라디오 ‘이동형의 뉴스 정면승부’ 진행자인 이동형씨도 이 후보를 지지하는 대표 인플루언서다. 그는 자신의 유튜브 방송 ‘이동형TV’에서 선거 기간 윤 당선인 홍보 포스터를 제작했던 반이재명 성향의 친문 트위터리안 ‘더 레프트’를 공개 저격하며 “더레프트에 대해 제보가 들어왔다. 누군지 몰라서 찾고 다니고 있다. 조만간 정체가 드러날 것”이라고 했다. ‘누리꾼 신상 털기’라는 비판이 뒤따랐다. 

▲ 사진=열린공감TV 화면 갈무리.
▲ 사진=열린공감TV 화면 갈무리.

민주당 대선 패배 요인을 팬덤 정치에 기반한 친여 방송과 인플루언서에서 찾는 이들도 있다. 김준일 뉴스톱 대표는 9일 자신의 SNS에 “누가 돼도 팬덤 정치와는 결별하길 바란다. 민주화 이후 처음으로 과반을 넘긴 박근혜 정부가 탄핵된 것도, 역대 어느 정부보다 좋은 여건에서 출발한 문재인 정부가 이 상황이 된 것도 과도하게 팬덤에 의존해서다”라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10일 통화에서 “김건희씨와 관련한 의혹 중 ‘허위 이력’ 논란은 언론사들이 확인 과정을 거치고 반론도 담아내는 등 게이트 키핑과 검증이 구비된 사례다. 그 결과 김씨가 직접 사과까지 하게 됐다”며 “허위 이력 검증 보도는 지지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레거시 미디어들의 검증 보도가 유권자 알 권리를 충족한 사례”라고 평가했다.

김 대표는 “그러나 ‘쥴리’ 의혹은 지르고 보자는 식 보도가 적지 않았다. 진영과 팬덤을 위한다고 쏟아낸 보도였으나 저널리즘적으로 어떤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며 “무속 논란도 결과적으로 큰 영향은 없다고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대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했던 검찰개혁 사례를 보면 특정 인물(조국)에 대한 호불호, 즉 팬덤정치에 휘둘려 검찰의 막강한 권한을 약화시킨다는 당초 명분이 일관성을 잃게 됐다”며 “문재인 대통령을 지키겠다는 일념 하에 벌어진 팬덤정치는 중도층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선거 패배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치인은 진영의 스피커들에 좌우되지 말고 할 말을 해야 한다. 윤석열 당선인도 그런 함정에 빠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MBC 출신 최승호 뉴스타파 PD는 민주당 대선 패배 원인에 “대통령을 감싸고 도는 팬들과 그들을 움직이는 인플루언서들이 굳이 대통령이 나서지 않아도 될 정도로 여론을 휘어잡고 방어하며 민주당 내부의 일말의 이견, 진보진영 내부의 일말의 비판도 제압해버리는 행태를 보였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고 진단했다.

그는 “문 대통령 입장에서는 그런 방어 군단이 든든한 상태에서 지지율이 항상 일정 이상 나오는 안온한 환경을 즐겼겠지만, 그 결과 정부 잘못을 인식하고 개선하는 능력이 제약됐다”며 “결국 정권 행보에 답답함을 느끼던 중도층은 점점 떨어져 나가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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