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은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과방위) 위원장이자 더불어민주당 선거대책위원회 조직본부장인 이원욱 의원의 19일자 페이스북이었다. “과방위원장으로서 엄중히 경고한다. 종편의 태생이 이명박 정권이라 하더라도 다양성은 존중되어야 하기에 늘 종편을 응원했다. 어느 정도의 편향성도 언론의 성격상 인정했다. 그런데 이 정도 편향이면 편향을 떠나 노골적 ‘대선개입’이다.”

이 의원이 언급한 ‘이 정도 편향’은 대선미디어감시연대 소속 민주언론시민연합이 지난 18일 발표한 종편 모니터 보고서에 담겼다. “김혜경 의혹 172분 VS 김건희 의혹 17분, 종편 ‘10배 차이’”란 제목의 보고서는 2월9일부터 15일까지 종편 4사 시사 대담프로그램 4편에서 각 후보 별 배우자 의혹을 다룬 방송시간 집계결과를 내놨는데 TV조선은 김혜경 71분 김건희 11분, 채널A는 김혜경 52분 김건희 3분, MBN은 김혜경 40분 김건희 0분으로 나타났다. JTBC는 김혜경 10분 김건희 3분이었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배우자 김혜경씨.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왼쪽)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배우자 김혜경씨.

2월9일은 김혜경씨가 기자회견을 열고 경기도 공무원 및 법인카드 사적 유용에 대해 사과한 날로, 이후 여론의 주목도가 높아 수일간 많은 언론이 김씨 의혹을 다룬 시기였다. 뉴스 분석 시스템 ‘빅카인즈’에 따르면 9일~15일 ‘김혜경’ ‘이재명’이 들어간 기사는 973건으로 나타났으며, 주요 키워드는 “과잉 의전”, “법인카드 유용 의혹”, “기자회견” “동문서답식 사과” 등이었다. 같은 기간 ‘김건희’ ‘윤석열’이 들어간 기사는 740건으로 나타났으며 주요 키워드는 “대선후보”, “주가 조작”, ”김혜경“, ”도이치모터스 주식“ 등이었다.

대선미디어감시연대 소속 전국언론노동조합 포털 뉴스 모니터링팀이 1월17일부터 2월13일까지 28일간 네이버 랭킹뉴스에서 ‘언론사별 많이 본 상위 5개 기사’ 중 대선 관련 기사 1934건을 수집‧분석한 결과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 분포에서 김건희씨는 10.4%, 김혜경씨는 6.1% 비율을 보였다. 이 같은 경향성에 비춰보면 민언련 조사 기간 중 김혜경씨 관련 기사량이 전에 비해 특별히 많았고, 종편 역시 이에 비례해 김씨 이슈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것은 납득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이런 대목을 감안해도 172분과 17분의 차이는 지나치다는 게 이원욱 의원의 입장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의원은 “종편이 그동안 보인 방송으로서의 편향성 등에 대해 방통위도 어느 정도는 너그러웠다고 생각한다”면서 “칼 같은 잣대를 들이대면 여기 종편들은 모두 재승인 탈락 대상이다. 대선개입 그만할 것을 촉구한다”고 경고했다. 종편 재승인 허가 권한을 가진 방송통신위원회를 피감기관으로 둔 국회 상임위원장의 발언으로, 기존 방통위 재승인 심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뉘앙스까지 담겨 파장은 불가피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원욱 의원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원욱 의원실

 

▲동아일보 2월21일자 사설.
▲동아일보 2월21일자 사설.

동아일보는 21일자 사설에서 “집권 여당 과방위원장이 방송사의 존폐와 직결된 재승인 문제까지 위협하고 나선 것은 언론자유 측면에서 묵과할 수 없다”면서 “과방위원장이라 해서 종편 재승인 심사 및 허가 과정에 직접 개입할 수는 없고 해서도 안 된다. ‘재승인 탈락 대상’, ‘과방위원장으로서 엄중 경고’ 운운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자 월권”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방송 보도의 편향성 여부는 선거방송심의위원회가 따지면 될 일이다”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이원욱 의원은 23일 선대위 본부장단 회의에서도 ‘김혜경 172분, 김건희 17분 방송’ 보고서를 언급하며 종편을 가리켜 “황색 저널리즘의 완성이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김혜경씨 불법 법인카드 사용 의혹과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의혹, 자본주의 대한민국 사회가 정상적으로 유지되는 데 어느 것이 필수 불가결한 핵심 문제냐”고 되물으며 종편이 편향되어 있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러자 이번에는 과방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이 23일 성명을 내고 “이원욱 위원장은 MBC와 TBS의 재허가 여부 입장을 밝혀야 한다”고 나섰다. MBC ‘스트레이트’가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 방송에 나선 다음 날부터 7일, SBS ‘8뉴스’가 김혜경씨의 공무원 및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을 첫 보도한 다음 날부터 7일간 보도량을 조사한 결과 “MBC ‘뉴스데스크’는 김건희씨 보도가 김혜경씨에 비해 6배 이상 많았고, TBS ‘김어준의 뉴스공장’은 김혜경씨 관련 대담‧토론이 5분 남짓이었지만 김건희씨는 195분으로 35배에 달했다”는 게 이들 주장이다. 

▲조선일보 2월24일자 기사.
▲조선일보 2월24일자 기사.

조선일보는 24일자 기사에서 “김건희 7시간 통화 녹취록이 보도됐던 지난달엔 되레 김씨 이슈를 다룬 방송이 많았다”면서 “친여성향의 민언련 조사에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온다”고 보도했다. 해당 기사에서 이원욱 의원은 조선일보에 “180석이 있는데 법이라도 바꿔내 싸우겠다”, “종편을 2개로 줄일 수도, 아예 없앨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곧바로 국민의힘 선대본부는 24일 논평을 내고 “종편 재승인 권한을 가진 방통위를 소관 기관으로 둔 과방위원장이, 권한을 앞세워 언론을 겁박하는데 앞장선 것”이라며 공세에 나섰다.

이원욱 의원 발언은 과방위원장이라는 위치를 감안했을 때 전반적으로 경솔해 보인다. 하지만 국민의힘 의원들은 보도가 편파적이라며 지난달 MBC와 YTN을 항의 방문했고,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는 11일 “(민주당 정권이) 친여 매체를 악용해 가짜뉴스, 여론조작, 정치공작 획책, 언론을 하수인 노릇 시키는 나쁜 관행을 만들어 왔다”고 주장하는가 하면 17일에는 “민주당에 장악된 많은 언론 매체들이 미래비전 없이 엉뚱한 소리만 한다고 (나를) 공격하더라”고 주장하며 부적절한 언론관을 드러냈다. 유권자 입장에선 모두 선거 때만 되면 되풀이되는, 익숙한 장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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