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남쪽으로 튀어’(오쿠다 히데오 저)를 의식했을 KBS의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일본으로 튀어’(이호경 연출)가 지난 2월17일 방송됐다. 소설은 사회 운동으로 청춘을 보냈고 여전히 사회와 불화하는 부모의 좌충우돌을 초등학생 자녀 시점에서 경쾌하게 관찰한다.

2005년 출판된 소설이니 주인공 부모는 부동산과 주식 등에 급격한 거품이 끼기 시작한 1980년대와 90년대 초반에 20대를 보냈을 터. 1970년대 “운동하는 대중의 종말”(요시미 슌야 저, ‘포스트 전후사회’) 이후 한참이나 지났음에도 여전히 ‘변종’으로 남은 그들 부모는 끝까지 저항해야 비로소 변화하는 것들이 세상에 있다고 믿으며, 평등은 거저 얻는 것이 아니라 쟁취하는 것이라 여긴다.

인기 작품 이름을 표절해 손쉽게 사람들의 주목을 사는 방송가의 게으른 작명 관행과 ‘일본으로 튀어’는 다르다. ‘일본으로 튀어’는 1973년 설립된 마산 자유무역지역 한국 공장을 일방적으로 폐업한 산켄전기의 해고 노동자와 일본 시민들의 연대를 다룬다.

2016년 구조조정은 일본 원정 시위와 현지 주민들의 협력 속에서 좌초됐지만 코로나 재난은 노동자의 국제적 연대와 저항을 힘들게 만들었다. 발 묶인 한국 노동자들의 곤궁을 틈타 2020년 7월, 산켄전기는 한국산연 청산을 결정 후 2021년 1월 폐업했다.

한국 노동자들은 해고와 코로나라는 이중 재난 속에서 오늘도 투쟁 중이다. 그리고 ‘투쟁’ 외침은 매주 목요일 산켄전기 본사가 위치한 사이타마현 니자에서도 울려 퍼진다. 핸드폰 화면을 타고 한국 노동자 선창에 따라 본사 앞에서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의 후창이 뒤따른다. 일본에 오지 못한 한국 노동자 백은주, 김현진, 오해진, 이혜민, 김형광 등의 이름과 캐리커쳐가 함께 한다.

‘남쪽으로 튀어’의 주인공 격인 아버지 이치로는 “고독을 두려워하지 마라. 이해해주는 사람은 반드시 있어”라고 아들에게 당부했다. ‘일본으로 튀어’는 고독한 해직 노동자를 이해하는 일본인을 현실로 소환한다.

▲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일본으로 튀어’ 갈무리.
▲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일본으로 튀어’ 갈무리.

이해가 선의로부터 비롯되는 것만은 아니다. 매주 목요일 산켄전기 앞 시위에 헌신적으로 참여하는 이들 중 다수가 한국의 노동자처럼 일본의 정리해고와 구조조정, 비정규직 차별로 삶의 벼랑 끝에 내몰렸다. 열성적인 참여자 중 한 명인 우시로 료코는 지하철 가판대의 서비스직 비정규 노동자로 노조를 결성해 정규직과의 차별 없는 대우를 요구했지만 7년의 송사 끝에 패배하고 2020년 코로나를 이유로 정년 후 고용연장 불가를 통보받았다.

13년간 일한 가판대를 떠나는 마지막 날, 자신의 퇴사 사유와 고객에 대한 감사의 말을 적은 판넬을 몸에 걸치고 일했으나 관리자에게 복장 불량을 지적 받아 마감 시간 전 쫒겨나듯 일터를 떠났다. 그럼에도 고객에게 정중히 인사하며 작별하는 그녀에게 차별 받는 노동자는 남의 이야기, 다른 나라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녀는 4년 전 한국산연 노동자들이 일본에 찾아와 다양한 일본의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연대를 표했던 것을 잊지 않았다.

▲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일본으로 튀어’ 갈무리.
▲ KBS 다큐인사이트 다큐멘터리 ‘일본으로 튀어’ 갈무리.

자본은 수익률을 좇아 환승도주한다. 사람을 갈아타고 공장을 이전하며 업종을 전환한다. 회사를 키운 노동자의 공은 불과 몇 퍼센트의 수익률 상승 앞에서 무력하다.

산켄전기만이 아니다. 2007년 기타 제조사 콜트콜텍은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고자 인도네시아와 중국으로 공장을 옮기며 한국 노동자를 정리했다. 한진중공업은 필리핀 수빅 조선소를 건립하며 영도 조선소를 폐쇄해 수많은 해직 노동자를 양산했다. 2011년 희망버스는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슬로건과 함께 부산 영도와 서울 광화문에서 노동자와의 연대를 보여주며 한진중공업 및 대자본의 막무가내 노동자 해고 문제에 대한 각계 관심을 촉구했다.

KBS는 대선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일본으로 튀어’를 통해 연대의 불씨가 여전함을 보여줬다. 더 많은 국내외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에 대한 KBS의 이해를 기대한다. 대자본의 ‘먹튀’로 거리에 내몰린 노동자들은 여전히 고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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