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9년 EBS 부사장에 임명됐다가 공정방송 훼손 이력 등을 이유로 6개월 만에 해임됐던 박치형 전 부사장이 10일 해임무효확인 소송에서 승소했다. EBS가 박 전 부사장에게 한 해임 처분은 무효라는 판단이다.

의정부지법은 지난 10일 “(박 전 부사장에 대한) 해임 사유는 인정되지 않거나 인정되더라도 근본적 신뢰 관계를 상실할 정도의 사유에 해당되지 않는다”며 “또 EBS 정관에서 정한 사유에 해당된다고 보기 어려우므로 이 사건 해임 통보는 그 효력이 없다”고 밝혔다. 

박 전 부사장은 2019년 4월 EBS 부사장에 임명됐다. 그러나 그 직후 ‘2013년 반민특위 다큐멘터리 제작 중단 사태 책임자’로 꼽히며 EBS 안팎의 반발에 직면했다.

EBS PD들은 박 전 부사장이 2013년 다큐멘터리 ‘다큐프라임-나는 독립유공자의 후손입니다’를 제작하던 담당 연출자 김진혁 전 EBS PD(현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를 부당하게 수학교육팀으로 인사 이동시키는 등 제작 중단 사태를 주도했다고 봤다. 반면, 박 전 부사장은 자신은 그 시기 EBS 평생교육본부장을 지냈을 뿐 사태 주범으로 모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입장이었다.

▲ 김명중 EBS 사장(왼쪽)과 박치형 부사장. 사진=EBS
▲ 김명중 EBS 사장(왼쪽)과 박치형 부사장. 사진=EBS

EBS 노조와 PD협회 등 현업단체의 임명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자 김명중 EBS 사장은 같은 달 EBS 감사실에 박 전 부사장을 둘러싼 의혹에 관해 특별감사를 요청했다. 감사 결과 당시 김진혁 PD에 대한 보복성 인사가 단행됐는지, EBS 독립성 및 공정성이 훼손됐는지 여부 등은 확인할 수 없었다. 

다만 2013년 다큐 불방 사태로 인해 제작비 예산과 인력 손실을 초래하는 등 당시 부서장(EBS 평생교육본부장)으로서 박 전 부사장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은 인정됐다. 

EBS는 2019년 10월31일 △부사장으로서 직무수행 곤란 △규율질서 문란 △공정방송 훼손 △내부 정보 외부 유출 등 사유로 박 전 부사장에게 해임을 통보했다. 박 전 부사장은 해임 통보 1년 후인 지난 2020년 10월 EBS를 상대로 해임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 해임 통보 자체가 무효라는 게 의정부지법 판단이다. 

재판부는 해임 사유 가운데 ‘부사장으로서의 직무수행 곤란’과 ‘공정방송 훼손’을 핵심으로 봤다. 

재판부는 박 전 부사장이 다큐멘터리 제작 중단을 위해 당시 김진혁 PD 인사 발령을 주도했다고 밝힌 증인 이아무개 EBS PD 증언에 대해 “2013년경 당시 발생한 제작 중단 사건에 관한 것으로서 그로부터 8년 이상이 지난 시점의 진술로서 신빙성을 높게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이 PD는 김 PD 인사 발령 후 자신 등이 면담을 통해 항의하자 박 전 부사장이 “정권 초기 굉장히 권력의 힘이 센 상태에서 정권의 눈 밖에 나는 프로그램이 나가는 것은 회사에 좋지 않으니 양해해달라”고 발언했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원고(박치형)가 인사권자가 아닌데도 그 인사 발령을 주도한 것인지 혹은 인사권자 지시에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 소극적 태도를 보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인지 여부가 분명히 확인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그렇다면 다수 관계인 진술을 반영하고 있고, 비교적 객관적이라고 볼 수 있는 이 사건 감사 결과를 중심으로 제작 중단 사건 의혹에 관한 원고의 책임 여부를 살펴보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했다. EBS 감사는 앞서 설명한 대로 다큐 불방을 위해 제작 PD에 대한 보복성 인사가 단행됐는지, EBS 독립성 및 공정성을 훼손시켰는지 여부 등은 확인하지 못했다.

다만 EBS 감사 결과는 제작비 예산과 인력 손실 등 박 전 부사장이 당시 부서장으로서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는데, 재판부는 “이는 제작비 예산과 인력 손실 등 조직 관리상 일부 책임이 인정된다는 취지일 뿐 해임의 직접적 사유로 제시된 ‘제작중단 사건에 원고(박치형)가 관여해 공정방송을 훼손했다’는 사실이 확인된다는 취지로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제작 중단 사건에 원고의 책임이 일부 인정된다고 볼 경우 정권을 의식해 프로그램 제작에 관여하는 것이 부적절한 행위임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도 위 행위(다큐 불방 사태)는 원고가 2013년경 EBS 평생교육본부의 제작본부장으로서 근무할 당시 있었던 사실에 불과하다”며 “부사장으로서 임명된 후 그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 있어 직무수행에 장해가 될 객관적 상황이 발생한 것으로는 볼 수는 없다. 원고가 부사장으로 임명된 이상 위와 같은 사유를 위임 계약의 해지 사유로 보는 것은 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박 전 부사장은 18일 미디어오늘에 “노조의 불법적 억지 주장과 이에 굴복한 사장에 의해 부당한 해임을 당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부사장 해임에 정당한 사유가 없다며 해임 무효를 확인해줬다. 사필귀정”이라며 “30년 동안 일해 왔던 EBS에서 억울하게 쫓겨 나와야 했던 심정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더 이상 명분이 없는데도 회사는 맹목적 항소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EBS 관계자는 “사법부 판단은 존중한다”며 “향후 정해진 절차에 따라 대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소송 당사자는 아니나 언론노조 EBS지부 역시 판결 쟁점 등을 추가 파악할 것으로 보인다.

김 전 PD는 통화에서 “불방 사태 당사자로서 명백하게 기억하는 건, 휴가 중이던 2013년 1월 당시 박치형 본부장으로부터 인사발령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는 것”이라며 “이후 실제 (수학교육팀으로) 인사발령이 났다. 사장과 부사장 등 당시 본부장 윗선에서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모르겠지만 박 본부장이 내게 인사발령을 통보한 사람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박치형 전 부사장은) 다큐 중단에 큰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언론노조 EBS지부는 미디어오늘 보도(“법원, 박치형 전 EBS 부사장 해임에 무효판결”) 이후인 20일 추가 입장을 통해 “(언론노조 EBS지부는) 박치형 전 EBS 부사장이 주장하는 것처럼 불법적 억지 주장을 하지 않았다”며 “박치형 본인이 이에 관해 로펌을 통해 노조위원장을 포함한 3명을 고소했으나 최종적으로 불법적 억지 주장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확인됐다”고 밝혔다.

[기사 보완: 2022년 2월20일 오후 4시15분. 언론노조 EBS지부 입장 추가.]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