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무설계 상담을 빙자해 보험대리점 업체에 개인정보를 넘긴 EBS ‘머니톡’에 대한 개인정보 관련 법 위반에 따른 첫 제재가 내려졌다. 미디어오늘 보도 이후 1년 4개월 만이다. 정부가 EBS 방송의 불법성은 인정했지만 ‘뿌리 뽑기’로 나아가기 위해선 과제가 산적해 있다.

EBS·키움 허위주장 깬 개인정보위 

“와 이렇게까지 절약이 가능하네요. 비싼 보험료, 가입한 보험의 보장이 걱정되신다면, 02-XXX-3986 지금 바로 머니톡에 연락 주세요.” EBS ‘머니톡’ 방송의 한 대목이다. ‘재테크’ 열풍이 이어지는 가운데 등장한 이 방송은 유명 연예인과 전문가들이 출연해 시청자들에게 ‘무료’ 상담을 해준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이 방송은 보험사에 개인정보를 넘기기 위한 ‘기만적인 협찬’이었다. EBS '머니톡'이 전화, 온라인 등 무료 상담을 하는 과정에서 고지를 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보험대리점 업체 키움에셋플래너에 넘겼다. 이 방송에 출연한 전문가들은 키움에셋플래너 소속이었고, EBS가 방송에서 안내한 상담 전화번호도 EBS가 아닌 키움에셋플래너측의 연락처였다. 

▲ EBS 머니톡 갈무리
▲ EBS 머니톡 갈무리

즉 시청자들은 EBS가 전문가들을 섭외해 무료 상담을 해준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특정 보험대리점업체에 이용자를 넘기는 행위였던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보도 직후인 2020년 10월 조사에 착수했고, 지난 9일 제재를 의결했다. 개인정보위는 이들 업체에 총 2억443만 원의 과징금과 100만 원의 과태료, 시정명령을 부과했다. 개인정보위는 EBS에 ‘이용자에게 알리지 않고 개인정보를 제3자에 제공’했다며 정보통신망법 위반이라고 판단했다. 키움에셋플래너에는 제공받은 개인정보를 동의 없이 목적 외 용도(마케팅, 판매)로 이용한 행위, 동의 과정에서 정보주체가 명확하게 인지할 수 있도록 알리지 않은 행위 등을 개인정보보호법 위반으로 판단했다.

▲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지난 9일 의결 내역. EBS와 키움에셋플래너의 법 위반 사항 등이 적시됐다.
▲ 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지난 9일 의결 내역. EBS와 키움에셋플래너의 법 위반 사항 등이 적시됐다.

그러나 2020년 보도 당시 EBS와 키움에셋플래너 모두 ‘법적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었다. EBS는 ‘머니톡’을 폐지하면서도 “적법성 여부를 떠나 국민적 정서를 감안” “일부의 지적을 EBS가 겸허히 수용”이라고 표현해 ‘문제’를 시인하지 않았다. 당시 키움에셋플래너 역시 “법률검토를 마쳤다”며 “기사에서 범법행위를 한 기업으로 보여지고 있다”며 반발했다.

개인정보위의 이번 조치와 관련 키움에셋플래너는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다”며 “법률적 검토 등을 통해 개인정보보호 강화에 더욱더 신경 쓰고자 한다”고 밝혔다. EBS는 “처분 내용을 존중하고, 조치사항을 빠르게 수행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명확하게 고지하지 않은 점에 대해 책임을 느끼며, 문제 발생 즉시 해당 프로그램을 폐지하였고 서비스를 중단하는 등 재발 방지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침묵으로 피해 키운 주무부처 방통위

EBS ‘머니톡’ 등 보험방송 문제와 관련해선 방통위의 ‘소극’ ‘늑장’ 대응이 피해를 키웠다. 2020년 국회 국정감사 당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은 잇따른 질의에 “살펴보겠다”며 원론적인 답을 하는 데 그쳤다. 실제 방통위는 2021년 조사를 시작하는 등 대응이 늦었다. 방통위가 2021년 9월 공개한 모니터 결과에 따르면 보험방송이 19개 채널에서 방영되고 있다고 했지만, 실제 31개 채널에서 방송되고 있어 조사의 허점도 드러났다.

보험대리점업계에 따르면 보험방송은 2017~2018년 경쟁적으로 이어졌다. 초기에는 흔히 케이블채널이라고 부르는 일반PP에 제한적으로 시도하다, 종편, 지상파 라디오, 지상파TV 방송에까지 이어지게 됐다. 주무부처 방통위가 제재를 내리지 않자 보험대리점 업체들은 ‘점점 더 영향력이 큰 방송’을 섭외하기 시작해 EBS까지 닿은 것이다.

개인정보위에 따르면 고지를 하지 않고 개인정보를 넘긴 이들만 5501명에 달했다. 유사 프로그램이 적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피해 규모는 수만 명을 넘길 수도 있다. 

▲ EBS '머니톡'(위)과 KNN '머니톡' 방송 갈무리
▲ EBS '머니톡'(위)과 KNN '머니톡' 방송 갈무리

 ‘머니톡’은 EBS 폐지 이후에도 KNN에 동일 프로그램을 그대로 방영하는 등 ‘머니톡’으로 인한 피해는 이어졌다. 다른 방송에서도 시청자들의 피해가 끊이지 않았다. 방통위가 조사를 공표하기 직전인 지난해 6월 방영을 시작한 한 보험 방송 프로그램의 시청자 게시판에는 “고객을 호구로 보는 보험 영업팔이” 등 항의 글들이 올라와 있다. 

다만 방통위가 지난해 9월 뒤늦게라도 ‘방송법 위반’ 가능성을 전제로 적극 조사 의지를 밝히고 모니터 결과를 공개하면서 보험방송이 대거 중단된 점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방통위는 보험방송이 ‘방송서비스의 제공과정에서 알게 된 시청자 정보의 부당유용’을 금지행위로 정한 방송법 위반 소지가 크다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이달 중 보험방송들에 대한 처분을 내릴 예정이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조사 역시 ‘성과’와 ‘한계’가 공존한다. 과징금 규모가 크지 않은 점, 조사에 오랜 시일이 걸린 점, 유사 방송에 대한 조사에 나서지 않은 점 등이 한계로 꼽힌다. 

▲ 보험방송 제작 구조. 방통위 사실조사 보도자료 갈무리
▲ 보험방송 제작 구조. 방통위 사실조사 보도자료 갈무리

정필모 의원은 “공영방송 EBS가 2만 8000여명에 이르는 시청자 개인정보를 부당하게 수집하고 이를 제공받은 키움에셋플래너가 그들 사업 목적으로 이용한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이번 과징금과 시정명령 정도로는 약하다고 본다”고 지적했다.

정필모 의원은 “그동안 방통위가 손을 놓고 있는 사이에 재무 상담 방송을 악용한 업체들은 돈을 벌고 시청자만 피해를 봤다”며 “앞으로 나올 방통위 결정에서는 사안의 중대성을 인식해 강력한 제재와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함께 마련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업계 구조와 욕망은 여전히 남았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판매 회사는 계속 돌파구를 찾으려 노력 중”이라며 “어떠한 형태가 되었든 개인정보 습득으로 영업을 하고자하는 욕망은 위법 판단에도 계속 꿈틀대고 있다”고 지적했다. 금융 당국 등 보험방송에 대한 규제 조치가 마련되자 일부 보험방송은 여전히 특정 업체 보험설계사를 전문가로 출연시키고, 방송 사이에 붙는 광고에 해당 업체 전화번호를 포함하는 등 특정 보험업체를 위한 방송은 ‘변칙’적으로 이어지는 모양새다.

이는 방송과 보험대리점 업계 두 산업의 이익과 연관된 문제이기도 하다. 방송은 ‘협찬’에 대한 규제가 엄격하지 않은 가운데 무한 경쟁이 이어지면서 온갖 영역에 협찬을 해 수익성을 키우는 전략으로 일관하고 있다. 보험대리점업계는 지인 대상 영업이 한계를 갖고 대리점 업계가 과포화돼 경쟁이 치열해진 가운데 ‘방송’이 대안으로 여겨졌다. 

▲ FM에셋의 보험설계사 대상 홍보물. 보험 방송을 통해 개인정보를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 FM에셋의 보험설계사 대상 홍보물. 보험 방송을 통해 개인정보를 거래할 수 있다는 점이 드러난다.

개인정보위 조사 결과에 따르면 EBS는 시청자 2만8000여명의 정보를 재무상담 목적으로 키움에셋플래너에 넘겼고, 키움에셋플래너는 이 가운데 4066명과 계약을 체결했다. 지인 대상 영업으로는 불가능한 ‘체결율’을 보인 것이다. 당시 키움에셋플래너 내부 자료를 보면 “지상파 방송이 늘어나면서 DB(데이터베이스) 확보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지상파 채널 확대는 콘텐츠 신뢰도 측면에서 우수하며 새로운 시장 확보에 도움이 되고 있다” 등의 표현이 등장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앞으로도 방송사가 개인정보를 이용한 보험사 이익에 이용되지 않도록 하는 제도 마련과 해당분야 전문가를 활용한 철저한 모니터링, 감시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했다.  단순히 개별 방송 제재가 아닌 지속적인 감시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는 얘기다.

제도 측면에선 방통위가 홈쇼핑 연계편성 등 문제의 대안으로 마련한 ‘협찬 사실 고지’를 의무화하는 방송법 개정안이 2020년 정부 입법 형태로 제출했으나 관련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협찬 사실을 고지하면 방송사가 보험사 등 협찬주를 방송에서 언급해야 하기에 ‘기만적 정보 제공’ 문제를 일정 부분 해소할 수 있다.

※ 미디어오늘은 14일 오후 6시16분경 EBS에 입장을 물었으나 회신을 받지 못했습니다. 기사 송고 이후인 16일 오후 3시50분경 EBS가 입장을 전해와 반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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