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말로 ‘가처분 정국’이다. 연일 정치권 뉴스에 가처분 신청과 심리, 이에 대한 법원의 결정 관련 기사가 쏟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법부 불신을 이야기하는 정치권이 사법부에 종속되는 상황을 스스로 연출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지난16일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159회 ‘김건희 씨는 왜?’ 유튜브 방송 갈무리. 사진=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채널
▲지난16일 방송된 MBC 탐사기획 스트레이트 159회 ‘김건희 씨는 왜?’ 유튜브 방송 갈무리. 사진=MBC 스트레이트 유튜브 채널

김건희 7시간 녹취로 시작한 가처분 공방전

첫 시작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배우자 김건희씨 통화 녹취 공개 여부였다. 이른바 ‘7시간 통화’라고도 불리는 녹취가 MBC에 전해졌고, 국민의힘은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으로 대응에 나섰다.

MBC 탐사보도 프로그램 ‘스트레이트’는 지난해 연말 이명수 서울의소리 기자를 통해 해당 녹취를 확보했다. 김씨 측에 반론을 구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국민의힘 역시 녹취 존재를 알게 됐다.

지난 14일 서울서부지법은 MBC 손을 들어줬다. 김씨 측의 방송금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만 인용한 것. 당시 재판부는 수사 중인 사안과 사생활 관련 내용 등에서만 방송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이에 MBC는 16일 첫 보도를 진행했다.

스트레이트 보도 이후 진보 진영에서는 의문이 제기됐다. 유튜브 기반 온라인 매체들은 자신들이 직접 미방송분을 공개하겠다고 나섰다. 국민의힘은 또다시 법원으로 향했다.

국민의힘은 열린공감TV와 서울의소리를 상대로 방영금지 및 배포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그러나 법원은 각각 19일과 21일 열린공감TV와 서울의소리 손을 들어줬다. 사생활 영역을 제외하면  MBC보다 더 넓게 방영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열린공감TV 건은 서울중앙지법에서, 서울의소리 건은 서울남부지법에서 심리가 진행됐다.

국민의힘은 스트레이트 후속 방송에 대해서도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스트레이트가 녹취 보도를 이어가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법원의 심리는 더 진행되지 않았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해 11월1일 오전 국회 잔디광장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지난해 11월1일 오전 국회 잔디광장에서 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사진=노컷뉴스

소수정당, 양자 TV토론에 반발하며 법원행

국민의힘이 김씨 녹취록을 갖고 언론사와 공방전을 벌였다면 소수정당들은 지상파 3사(KBS·MBC·SBS)를 상대로 가처분 신청에 나섰다. 지상파 3사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간 양자 TV토론 추진 때문이었다.

국민의당은 19일 양자 TV토론에 반발하며 서울서부지법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정의당은 서울남부지법으로 향했다. 설 연휴 중 토론을 추진 중인 양자 TV토론의 부당성을 알리겠다며 이 같은 행보에 나섰다.

국민의당은 지상파 방송사가 갖는 전파의 공공성을 강조했고, 정의당은 소수정당이 배제될 경우 대선 국면에서 자신들에게 군소 후보 이미지가 덧씌워질 것이라고 주장하며 양자 TV토론이 방송돼서는 안 된다고 했다.

반면, 지상파 3사 측은 이번 토론이 중앙선거방송토론위원회 주관 토론회가 아닌 언론기관 자체 토론회라는 점을 강조했다. 방송사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 ⓒ연합뉴스

“갈등 해소라는 정치 본질 잊혀”

이와 같은 정치권 모습에 정치 본질인 갈등 조정 기능을 스스로 포기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의도 문법에서 해소하지 못하는 사안을 모두 사법부 판단에 맡기는 후진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여의도에서 해결해야 한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타협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했다.

이어 “정치권이 사법부와 검찰을 불신하면서도 정작 사법부와 검찰 밑으로 기어서 들어가는 행태를 보여주고 있다”며 “대선 후보까지도 사법부 앞에 가서 심판 받는 모습은 삼권 분립에도 별로 좋은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정치적으로 바라봤을 때 전혀 건강하지 않다”며 “정치에서는 갈등 조정 기능이 이론적으로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법원으로 향하는 것은 그걸 못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것”이라며 “정치가 결국 제 기능을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선 정국에서도 이런 모습이 쭉 이어질 것으로 본다”고 했다.

‘비호감 대선’이라고도 불리는 거대 양당 후보들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각종 의혹이 난무하다 보니 정치권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 교수는 “후보들이 비호감도가 높다보니 의혹을 사는, 또 감추고 싶은 일이 많아져 그걸 공개하겠다는 공방전이 이어지고 있다. 법적으로까지 막으려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며 “이런 의혹을 사는 후보들이 없었어야 하는 부분이 안타까운 지점”이라고 지적했다.

신 교수는 “과거 같으면 선거가 끝나면 양측에서 다 풀어주는 경향이 있었는데 최근엔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이는 한 사회의 양분화를 대변하는 것”이라며 “최근 정치권에선 각종 의혹 앞에 자신을 절대선이라 상정하고 상대는 절대악으로 규정하는 이분법 구도가 강하다. 정치 본질인 갈등 조정 기능이 약해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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